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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과 계시(The Visions and Revelation)
고린도후서 12 : 1-6
1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3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5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6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두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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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가 산책을 하다 감나무 밑에서 홍시를 보았습니다.
그것을 먹으니 얼마나 맛이 있던지,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것도 있구나.”하며 홍시를 더 얻기 위해 땅을 팠습니다. 땅에서 홍시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둥이와 발로 아무리 땅을 파헤쳐도 홍시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목숨을 걸고 파다 보니 주둥이가 부서지고 이빨이 부러지고, 나중에는 과로로 자빠져 죽게 되었습니다.
발랑 자빠져서 보니 홍시가 나무에 달려 있습니다.
그것을 본 멧돼지가 “진작 위를 쳐다 볼 걸.”하고는 죽었답니다.
지어낸 이야기이지만 여기에 큰 교훈이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하늘은 쳐다보지 않고 땅만 보며 열심히 삽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돈벌고, 열심히 여기저기 뛰어 다닙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기진해서 쓰러집니다.
감은 감나무에서 떨어지듯이 인생의 참된 축복은 하늘에서 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야 그 복이 내게 행복이고 기쁨이고 영광이고 존귀함이 되는 것이지, 마귀가 주는 것은 복처럼 보여도 그것 때문에 교만하게 되고 죄 짓게 되고 방탕하게 되고 넘어지게 되고 망해서 초라하게 됩니다.
병아리가 물 한 모금 먹으면 하늘을 쳐다보고 또 한 모금 먹으면 하늘을 쳐다보듯이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늘의 복을 누리며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쌀 가마니나 금 덩어리를 주지 않으시고 말씀을 주십니다.
따라 합시다.
“말씀이 하나님의 복이다.”
우리는 그 무엇보다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을 받는 일에 열심을 내야 됩니다.
신문이나 방송에 ‘오늘 밤 양곡교회 예배에 참석하시는 분들에게 백만 원씩 나누어 주겠습니다.’라는 기사를 내보냈다면 아마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이 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백만 원을 받은들 무엇하겠습니까?
옷 한 벌 사 입고 구두 한 켤레 사 신고 밥 한 끼 사 먹으면 그것이 다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을 받으면 영원히 삽니다.
말씀을 받는 한 시간이 백만 원을 버는 것보다, 일억 원을 버는 것보다 더 귀한 시간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한 시간을 값지게 생각하고 감사하며 말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자기 자랑을 합니다.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바울은 자기가 자랑해서 얻는 것이 없을지라도 부득불 자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11장에서도 어리석은 사람처럼 계속 자기 자랑을 했습니다.
그가 왜 그렇게 자기 자랑을 했습니까?
고린도 교회를 살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거짓 교사들을 추방하기 위해서, 또 자신이 하나님의 참 사도임을 알려 주기 위해서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자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저도 때때로 제 자랑 같은 말을 하는데, 그것은 여러분에게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자랑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필요할 때는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기가 받은 환상과 계시를 자랑합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이 말하는 환상과 계시는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이 말하는 ‘환상’과 ‘계시’는 비슷한 말입니다.
환상은 비몽사몽간에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계시는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의 뜻을 열어 알려주는 것입니다.
원래 ‘계시’라는 말은 ‘너울을 벗긴다’라는 뜻입니다.
예전에는 결혼할 때, 신부가 너울을 쓰고 있어서 신부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 너울을 열어야 신부의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보여 주시고 하나님의 뜻을 보여 주십니다. 그것이 계시입니다.
그러면 오늘의 계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 신구약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성경의 마지막 권을 계시록이라 하지만, 사실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전체가 계시의 책입니다.
왜입니까?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을 말씀으로 나타내 주지 않으시면 우리는 이 세상을 하나님께서 지으신 줄을 알지 못하고, 막연하게 ‘어떻게 이런 세상이 있을까? 신비롭다.’라는 생각만 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얼마나 신비로운 창조 세계인지 모릅니다.
이 지구에 식물만 해도 이백만 가지가 됩니다. 꽃과 나무의 종류가 이백만 가지나 된다니,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런데 학자들이 이름을 붙인 것은 사십만 가지밖에 되지 않습니다. 백육십만 가지는 이름도 모릅니다.
또 이 우주를 보십시오.
그 많은 별들을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태양에 가스를 주입하지 않아도 어떻게 그 열을 계속 유지하는지, 또 그 크기가 변하지 않는지, 아무도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가 만들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우리가 아는 것입니다. 참 신비롭습니다.
또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는 것을 하나님께서 알려 주지 않으시면 우리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천국을 보여 주지 않으시는데 천국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으로 알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으로, 믿지 않으면 지옥으로 간다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구약은 모든 것이 계시입니다.
특별히 예수님께서 오실 것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신약은 구약의 예언대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사시고 돌아가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것을 보여 주셨고, 앞으로 재림하실 것까지 보여 주셨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모든 뜻이 계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만나고 천국을 발견하고 구원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신비로운 책입니다.
천육백 년에 걸쳐 사십여 명의 사람이 쓴 책입니다.
시대가 다르고, 여러 가지가 다른,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썼는데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구슬을 꿴 것처럼 다 이어져 있는, 신비로운 하나의 책입니다.
창세기와 요한계시록이, 출애굽기, 레위기와 요한계시록이 다 이어져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디모데후서 3장 16절 말씀대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썼든, 베드로가 썼든 성경은 성령님께서 쓰신 것이기 때문에 성령님 한 분이 쓰신 책과 똑같습니다.
그러니 성경의 저자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님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놀라운 책입니다.
그런데 구약 시대에는 이 성경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울 시대에는 구약 성경은 있어도 신약 성경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쪽 복음이 서신의 형태로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하나님께서 환상을 통해 직접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창세기 12장 1절에서 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친히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아브람아,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네게 복을 주어 큰 민족을 이루게 하고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할렐루야!
창세기 13장 14절에 보면, 롯이 아브라함을 떠나갑니다.
아버지 없는 조카 롯을 아브라함이 아들처럼 사랑했는데, 조카가 욕심을 내어 삼촌을 등지고 좋은 땅을 차지해서 떠나갔습니다.
아브라함이 ‘자식처럼 사랑하는 조카가 저러다니…….’하며 쓸쓸해하고 있을 때, 또 하나님께서 환상 가운데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람아,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네가 바라보는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네 자손이 땅에 티끌같이 많으리니 사람들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걸어보아라. 네가 밟는 땅을 네게 주리라.”
창세기 15장 1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연합군을 치고 조카 롯을 구해 왔지만 연합군의 보복을 두려워합니다.
그 때에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환상 중에 나타나셔서 직접 말씀하십니다.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니라.”
또 창세기 17장 1절에 보면, 아브라함의 나이 구십구 세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아브람아,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언제까지 거짓말하면서 살겠느냐?”
이 외에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환상 가운데 계속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벧엘 광야에서 무서움에 떨던 야곱이 돌을 베개 삼아 외롭게 누워 있다 잠이 들었는데 꿈을 꾸었습니다. 여기에서 꿈은 환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땅에서 하늘까지 닿아 있는 신비로운 사닥다리에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는데, 그 위에 하나님께서 서 계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야곱을 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야곱, 나는 너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너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다. 두려워 말라. 네가 가는 곳에 내가 함께 있어 너를 지켜 주겠고 너를 이끌어 이 땅에 돌아오게 하겠다.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
야곱은 그 꿈(환상) 때문에 마냥 기뻐했습니다.
또 창세기 46장에도 보면, 하나님께서 야곱의 환상 중에 나타나십니다.
야곱이 애굽의 총리로 있는 아들 요셉에게 가면서 ‘낯설고 물 선 타국에 가서 어떻게 살까? 내 나이가 이렇게 많은데 타국에 가서 살 수 있을까? 혹 우리 때문에 요셉이 잘못되면 어떻게 할까?’하고 염려할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야곱, 야곱.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가겠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야곱은 “하나님! 하나님!”하며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도 환상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다니엘에게도 환상 가운데 나타나셔서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보여 주시고 해석하게 하셔서 다니엘을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엘리야, 엘리사에게도 환상을 많이 보여 주셨습니다.
신약시대에도 성경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환상으로 자주 나타나셨습니다.
바울도 환상을 보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사도행전 9장에 보면, 그가 예수님을 오해해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기 위해 대제사장에게 권한을 받아 가지고 다메섹으로 갑니다.
가는 도중 갑자기 하늘에서 강렬한 빛이 그에게 비취니 그가 쓰러집니다.
그때 하늘에서 음성이 들립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주여, 뉘시오니이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길을 보이리라.”
그는 두려워 떱니다.
장님이 된 그는 그 성에 있는 유다 집에서 식음을 전폐하고 기도하다가 환상을 봅니다.
환상 중에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들어와서 “형제 사울아, 네가 길에서 만났던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어 너에게 안수하게 하시고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케 하신다.”하며 자기에게 안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편 예수님께서 아나니아에게도 환상 중에 말씀하셨습니다.
“아나니아야, 지금 일어나 직가라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 있는 다소 사람 사울을 찾으라. 그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라.”
아나니아가 놀라서 주님께 말합니다.
“주여, 제가 사울에 대하여 여러 사람에게 들었습니다. 그가 예루살렘에서 성도들에게 적지 않게 해를 끼쳤습니다. 그리고 그가 여기에 온 것도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결박하기 위함이고,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에게 받아 가지고 온 줄로 압니다.”
“그는 이스라엘과 이방인과 임금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내가 택한 그릇이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해를 받을지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 말씀대로 아나니아가 직가라는 거리의 유다 집에 가니 사울이 있었습니다.
아나니아가 사울의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했습니다.
“형제 사울아, 길에서 만난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고, 성령으로 충만케 하신다.”
그 때 성령이 임하니 사울의 눈이 밝아지고 사울이 성령으로 충만했습니다. 할렐루야!
오늘 이 시간에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성령의 기름을 부어 주시고 영안을 밝혀 주시고 몸을 새롭게 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도행전 16장 9절에도 보면, 사도 바울이 환상을 봅니다.
꿈에 한 마게도냐 사람이 그에게 와서 “와서 우리를 도와주시오. 우리를 도와주시오.”라고 합니다.
환상을 본 그는 ‘아, 하나님께서 나를 마게도냐로 보내기 원하시는구나.’라고 깨닫고 마게도냐에 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또 사도행전 18장 8절에서 9절에 보면,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하다 유대인들에게 핍박과 훼방을 받고 두려워서 ‘이곳에서 계속 복음을 전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하며 고민하는 바울에게 예수님께서 환상 가운데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외쳐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너를 해할 자가 없으리라. 이 성에 내 백성이 많으니라.”
따라 합시다.
“이 성에 내 백성이 많으니라.”
우리 주변에도 하나님 백성이 많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잠잠하지 말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27장에도 보면, 풍랑을 만나 배에 타고 있던 이백칠십육 명 모두가 14일간 먹지도 못하고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어 바울에게 말씀하십니다.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되겠고, 또 뱃사람들을 다 네게 맡겼으니 두려워 말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바울이 그들에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배는 부서져도 우리는 한 사람도 죽지 않는다. 그러니 이제 배 안에 남아 있는 음식을 안심하고 먹자.”
그래서 이백칠십육 명을 살렸습니다.
이런 간증들은 바울이 부담 없이 했는데, 오늘 본문의 간증은 조금 다릅니다. 부득불 한다고 했습니다.
그가 삼층천에 이끌려 갔다고 했는데, 삼층천이 무엇입니까?
대기권을 첫째 하늘, 우주를 둘째 하늘, 천국을 셋째 하늘로 봅니다.
삼층천은 하늘 중의 하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천국을 뜻합니다.
열왕기상 8장 27절에 보면, 솔로몬도 ‘하늘들의 하늘’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비몽사몽간에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몸이 직접 갔는지 몸은 땅에 두고 영만 갔는지 그로서는 알 수 없고 하나님만 아신다고 했습니다.
구약시대의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 죽음을 맛보지 않고 그냥 천국으로 올라갔습니다.
엘리야도 죽음을 맛보지 않고 불병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래서 에녹이나 엘리야는 무덤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도 이런 은혜를 주셔서 저도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가게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제 생애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를 원합니다.
에녹과 엘리야는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갔는데, 바울은 올라갔다 내려왔습니다. 그러니 바울은 자신이 몸으로 갔는지 영으로 갔는지 모릅니다. 주님만 아십니다. 그런데 바울이 거기에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습니다.
달나라에 갔다 온 한 우주인이 그 스릴을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달나라에 갔다 온 것도 표현하지 못한다면, 천국에 다녀온 것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저도 천국에 갔다 온 것이 아니라 천국을 눈으로 한 번 본 적이 있는데, 그때 흥분해서 소리만 질렀습니다.
천국에 갔다 온 바울은 천국을 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 또 그것에 대해 말하면 사람들이 지나치게 생각할까 봐 14년간 간증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에 들어온 거짓 교사들을 추방하기 위해 그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어서 그 때의 일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이래 뵈도 내가 14년 전에 천국에 다녀온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천국으로 이끌어 주셔서 천국을 보여 주시고 말할 수 없는 말씀을 들려주셨다. 나에게는 그런 경험이 있다.”
그러면서도 교인들이 지나치게 생각할까 봐 그 정도에서 그만 둔다고 했습니다.
이 본문을 읽은 고린도 교인들이 사도 바울의 말을 확신하게 되어서 거짓 교사들과 거짓 일꾼들을 추방하고 안정을 회복한 줄로 믿습니다.
본문은 고린도 교인들만 위해서 주신 말씀이 아니라 여러분과 저, 오늘의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를 위해 주시는 말씀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오늘날 우리는 ‘환상과 계시’를 어떻게 해석해야 됩니까?
오늘날에는 성경이 다 완성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부족함 없이 성경에 나타나 있어서 하나님께서 환상 중에 아브라함에게, 모세에게, 다니엘에게, 바울에게 나타나신 것처럼 그렇게 자주 나타나지 않으십니다.
오늘날에는 하나님의 계시를 성경으로 열어 주십니다. 특별히 설교로 열어 주십니다.
저는 상담학을 부전공했습니다.
리고 2년간 신학교에서 상담학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상담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목사님, 저는 아픈 상처가 많은데요.”라고 하시는 분이 계실지 몰라도, 주일 낮과 밤과 삼일 예배에 참석하여 정기적으로 예배를 드리면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비로우셔서 교우들의 형편을 다 아시고 목회자의 마음에 감동을 주셔서 삶의 해답을 말씀으로 주십니다.
베드로가 한 나라 말로 설교해도 십수 개국의 사람들이 다 자기 말로 알아들었듯이, 목회자가 한 설교를 해도 교우들은 자기 상황에 맞게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의 계시의 책입니다.
그래서 이 시대의 우리는 어떤 환상을 기다리면 안 됩니다.
저도 어릴 때는 ‘주여, 오늘 큰 것을 보여 주세요.’ 하고 기도하고 누워 잤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환상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개꿈을 자주 꾸게 되고, 또 이상한 꿈을 꾸어 시험들 뻔했습니다.
오늘날에는 환상을 보려고 애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께 직접 들으려고 할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특별히 설교를 통해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님 말씀은 신비롭습니다. 늘 읽는 같은 말씀인데도 그 말씀이 내게 확 살아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그 말씀이 바로 나를 위한 말씀인 것입니다.
저는 이사야 43장 1절에서 5절을 매일 읽습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내가 너를 보배롭게 하였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
제가 목회를 출발할 때 ‘이제 나는 죽었구나.’하며 두려워하는데 ‘일어나 성경을 펴라.’하는 감동이 와서 성경을 펴니 이 말씀이 나왔습니다.
이 말씀을 보고 감격하여 “여보, 여보!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셨어요.”하며 부엌에서 일하고 있는 아내를 불렀습니다.
아내와 함께 이 말씀을 읽고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가장 큰 계시였습니다.
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1986년, 일본 메트로폴리탄 호텔에서 영국, 미국, 중국,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 목사님들의 컨퍼런스가 있었습니다.
그때 필리 탱이라는 위대한 영적 지도자가 볼펜에 실을 묶어 흔들면서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 볼펜은 여러분이 보아도 제 것이고 제가 보아도 제 것입니다. 그러나 제 마음대로 쓸 수가 없습니다. 이런 상태로는 제 이름도 쓸 수 없고 A, B도 쓸 수 없습니다. 우리 중에 이런 종들이 많습니다. 자기도 하나님의 종인 줄 알고 남들도 하나님의 종인 줄 아는데, 하나님께서 쓰시려면 쓰기에 곤란한, 실에 매인 이 볼펜 같은 종들이 많습니다. 이런 볼펜 같은 종이 되지 말고 하나님의 손에 잡힌 종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묶여 있는 종이 되지 말고 하나님께 백 퍼센트 순종하는 종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때 제가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제가 실에 달린 그 볼펜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때 그분의 말씀이 제게는 환상보다 더 귀한 계시였습니다.
말씀이 계시입니다.
설교가 계시입니다. 말씀을 듣다가 ‘아멘! 맞아.’하게 되면 그것은 흔들림이 없고 실수가 없는, 잘못되지 않는 확실한 하나님의 뜻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설교나 성경을 통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환상을 보여주시는 때가 있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예수님을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하늘에서 빛이 내려와 저희 집을 좍 비추더랍니다.
어머니께서 너무 좋아 “할렐루야!”하며 밖으로 나가셨답니다.
그런데 그때 어머니의 입에서 「주 예수의 강림이 불원하니~」하는 찬송이 막 나오더랍니다.
어머니께서 듣지도 못하셨고 불러보지도 못하셨던 찬송을 끝 절까지 다 부르셨답니다.
주무시던 아버지께서 그 소리에 일어나셔서 “아니, 이 여자가 미쳤나? 자다가 일어나 노래를 하다니!”하며 놀라셨답니다. 그것이 어머니의 환상이고 그 때 그 찬송이 어머니의 찬송이 되었습니다.
저도 환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1993년 3월 7일, 흰옷을 입으신 주님께서 제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피를 뚝뚝 흘리셨습니다.
주님께서 흘리신 피가 흥건히 고이자 제 오른손을 잡으시더니 그 피에 제 손을 적시셨습니다.
“주님, 제가 이 손으로 얼마나 더러운 죄를 그렇게 많이 지었기에 제 손을 다시 주님의 피에 적십니까?”하며 손을 빼내니 주님께서 다시 제 손을 잡아 피에 적시셨습니다. 제 마음이 얼마나 무거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이튿날 아침 10시에 우리 교우 한 분이 어린 딸을 데리고 제게 기도를 받으러 왔습니다.
그 어린 딸의 한쪽 눈은 거의 시력을 다 잃어가고 있고 나머지 한쪽 눈은 그래도 시력이 조금 남아 있다고 했습니다.
그 아이의 눈에, 그 전날 주님의 피에 적셔진 제 손을 대고 기도했습니다. 그때 아이의 시력이 회복되었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공부하려 할 때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학교에서 공부할까?’하고 고민하고 있는 제게 하나님의 사자가 학교 이름을 지적해 주어서 제가 풀러신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제 평생 그 일을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주일도 잘 지키고 십일조도 잘 하는 한 사람이 제게 “목사님, 저는 목사님을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제가 사업하는 목적은 목사님을 위해서, 목사님의 선교 사업을 돕기 위해서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사람을 장로로 세우려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환상 중에 그 사람의 모습을 보여 주시는데, 아주 나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세우지 않았는데, 결국 나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설교로 계시해 주시지만, 필요할 때면 이따금 환상으로도 보여 주십니다. 그러나 환상은 조심해야 됩니다.
마귀도 환상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환상을 보게 되면 그것이 성경과 맞는 것인지, 그 환상이 이루어질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인지, 교회 질서가 깨어지는 것은 아닌지 잘 살펴야 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새벽기도회에 나왔더니 한 여집사님이 목사님의 의자에 앉아서 “주여, 주여!”하고 있더랍니다.
“아니, 집사님. 뭐하세요?”하고 물으니, 그 여집사님이 “하나님의 사자가 ‘너도 주의 종이니 강단에 서라.’라고 해서 여기에 있어요.”라고 하더랍니다. 마귀의 영을 받으면 그렇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환상이나 음성을 들었을 때 그것이 성경과 다르면 배척해야 됩니다.
아주 오래 전에는 제가 기도원에 자주 갔습니다. 그래서 기도원을 잘 알기 때문에 여러분을 기도원에 보내지 않습니다. 기도하기에 제일 좋은 집은 교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큰 기도원에서 저를 강사로 부르는 일이 많지만, 저는 가지 않습니다. 좋은 기도원도 있지만 좋지 않은 기도원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제가 한 기도원에서 기도할 때의 일입니다. 새벽 두 시에 제가 기도원에서 기도하고 있는데, 어떤 장로님이 제게 물었습니다.
“세상에! 하나님도 거짓말하십니까?”
“무슨 말입니까?”
“내가 ‘하나님, 제게 물질을 주세요. 물질을 주세요.’하고 철야기도를 하는데, 어느 날 새벽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래, 네가 물질이 필요한 줄을 내가 안다. 내일 아침 새벽에 일찍 일어나 괭이와 자루를 가지고 앞산에 가라. 해가 뜰 때 해를 보고 열 번 절하고 그 자리에서 땅을 석 자 파들어 가면 보물 항아리가 나올 것이다. 그 보물 항아리를 네게 주노라.’ 그래서 제가 ‘할렐루야! 감사합니다.’하고 그대로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파도 항아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돌멩이만 나왔습니다.”
그래서 그 장로님이 제게 “세상에! 하나님도 거짓말하십니까?”하고 물었던 것입니다.
어리석은 장로님입니다.
하나님께서 태양을 보고 절하라고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런 계시는 하지 않으십니다. 장로님이 마귀에게 속은 것입니다.
환상 같은 것을 보려고 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혹 보이거든 성경 말씀으로 분별해서 마귀가 주는 것은 버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대해서는 꿈을 갖고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가장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는 길은 날마다 성경을 가지고 다니면서 읽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 시간에 빠짐없이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그러면 환상을 보지 않아도, 다른 계시를 받지 않아도 능히 승리하며 살아갈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통해 계시해 주십니다.
우리 안에 성령님께서 계십니다.
따라 합시다.
“성령님께서 내 안에서 나를 감동시키시고, 나에게 계시하시고, 나를 인도하신다.”
우리가 ‘성령님, 성령님!’하며 살면 성령님께서 ‘그 사람은 만나지 마라. 거기에 가면 큰일 난다. 정신 차려라.’ 하시며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다이어트를 할 때도 한 달에 1㎏씩 체중을 줄여야지, 한 달에 10㎏을 줄이면 죽습니다.
우리가 크게 되거나 부하게 되는 것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야지, 갑자기 죽 올라가면 떨어져 죽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차분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차분하게 하시고 생각하게 하십니다. 우리 마음을 섬세하게 감동시키십니다.
어제 밤에 설교 준비가 덜 되었는데도 교회 문을 닫아야 하기 때문에 교회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아주 늦은 밤이었지만 주일에 기름을 넣지 않으려고 주유소에 들렀습니다.
여러분, 주일에 돈을 쓰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피치 못할 경우에는 주일에 돈을 쓸 수도 있지만 여기저기 다니며 돈을 쓰면 안 됩니다.
주유소에 갔더니 두 아르바이트생이 피곤에 지친 모습으로 앉아 있다가 기름을 넣어 주었습니다.
그 학생들에게 전도하려고 전도지를 주려 하는데 성령님께서 ‘얘야, 저 학생들을 격려해 주어라.’하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만 원을 꺼내었다가 ‘나도 돈이 없는데…….’ 싶어서 다시 돈을 넣었더니, 성령님께서 또 ‘선을 행해야 할 줄 알면서 하지 않는 것은 죄니라.’라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학생들에게 수고한다고, 음료수라도 사 마시라고 하면서 전도지와 만 원을 주었더니, 그 학생들의 눈이 반짝거리고 표정이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한 학생이 다른 학생에게 “저 분, 유명한 목사님이야.” 하고 속삭이는 소리가 제 귀에 들려왔습니다.
얼마 전, 목사님들 모임에 갔다가 어느 교회로부터 한 식당에서 대접을 받았습니다.
목사님들을 대접한다고 종업원들이 정성을 쏟아 준비하고 아주 친절하게 서빙했습니다.
대접을 다 받고 많은 사람들이 식당에서 나올 때 성령님께서 저를 붙잡으셨습니다.
‘그냥 가지 말고 종업원들을 위로해라.’
‘제가 대접하는 날도 아닌데요.’
‘나의 영광을 위해 네가 해라.’
그래서 제가 이만 원을 주며 “고마워요. 오늘 너무 고마웠어요.”라고 했더니, 활짝 웃으며 “목사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그분들이 얼마나 섭섭해 했겠습니까?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돈을 써야 할 때는 쓰게 하시고, 위로해야 할 때는 위로하게 하십니다. 성령님의 인도를 따르면 먼저 우리 자신이 편안합니다.
제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목사님이 한 분 계십니다.
그 목사님의 어머니께서는 거지가 오면 쌀을 한 바가지씩 부어 주셨습니다.
다른 집들은 쌀을 자그마한 쪽박으로 퍼서 주는데 그 목사님의 어머니께서는 언제나 한 바가지 가득 부어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그 목사님의 할머니께서 “얘야, 좀 많이 드려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목사님의 어머니께서는 또 쌀을 퍼서 더 부어 주시면서 즐거워하셨습니다.
여러분, 돈을 벌어서 은행에 예금이 쌓일 때만 행복한 줄 아십니까?
조금씩이라도 조금 조금 나눌 때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록펠러가 돈을 쌓고 쌓을 때는 병들어 죽을 지경까지 갔지만, 회개한 후 교회를 짓고 나누며 사니 99세까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성령님께서는 돈을 벌게도 하시고 쓰게도 하십니다.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작은 뜻까지 계시해 주십니다. 설교를 통해, 성경을 통해, 성령님을 통해 계시 받아 나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길입니다.
우리 모두 천국에 갈 때까지 계시를 잘 받아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달려가는 하나님의 왕자와 공주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