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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월)
나는 요즘 목동 청소년 수련관에서 월수금 오전 7시~8시에는 수영,
8시~9시에는 헬스를 한다.
운동의 필요성, 중요성을 잊기 전에
얼른 나 스스로를 운동을 할 수 밖에 없는 체제 속에 넣어둔 것이다.
청소년 수련관인만큼 건강을 챙기는 학생들이
많이 오리라 기대했는데, 나는 탈의실에 들어가는 즉각
수련관 이름에 모순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분명 ‘노인 수련관’ 혹은 ‘실버 수련관’이어야 했을 광경이었다.
수영복을 갈아입고 있는 사람들은 청소년들이 아닌,
희끗희끗한 파마 머리의, 다름 아닌 할머니들이었다.
가장 어린 사람이 40대 후반, 50대쯤으로 보였다.
수영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청소년 풀의 가운데 레인에서
수영을 했는데, 나의 양 옆 레인, 그리고 어린이 풀에서 발차기 연습을 하는
사람들까지 전부 할머니, 할아버지 혹은 아줌마, 아저씨였다.
청소년 수련관에 청소년인 내가 있는 것이 오히려 이상해 보였다.
나는 최소 1,2년동안 꾸준히 수영을 해온 이 어르신 분들께 뒤지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수영했다. 괜히 뒤에 쳐져서 눈에 띠고 싶지 않았다.
한쪽 벽에 도착하면 다른 쪽 벽을 향해 쉴 틈 없이 바로 수영했다.
그동안 체력이 많이 늘어서인지 별로 힘들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열심히 수영을 하니 오히려 눈에 더 띠었다.
옆 레인에서 쉬엄쉬엄 수영을 하고 계시던 아줌마, 할아버지가
어쩜 이렇게 수영을 잘하냐며 수영하는 나를 계속 쳐다보시는 것이었다.
나는 머리를 물 속 더 깊숙이 넣고, 숨도 거의 쉬지 않으며
1시간 내내 오로지 수영에만 집중했다.
수영이 끝나고 나는 어르신 분들의 킥판을 모두 걷어서 정리했다.
하반하 정신이 남아 있는 상태여서 저절로 나온 무조건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그 후 고개를 숙이며 했던 ‘수고 하셨다’는 인사도.
나의 이런 행동과 인사는 어르신 분들의 예쁨을 샀다.
‘우리 딸, 아주 훌륭하네~’, ‘고마워요 아가씨~’등의 인사가 돌아왔다.
수영 첫 날, 여러모로 많이 당황하고 긴장했던 나는
이 말을 듣고는 몸에 힘이 풀려 다리가 후들 거렸다.
‘하….드디어 끝났구나….’
이제는 수영을 한지 일주일이 조금 넘었다.
나는 7시 수영팀의 구성원 한 명으로서 잘 자리잡았다.
비록 다른 팀원들과는 나이, 몸집에 있어서 큰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수업할 때는 어른 한 명으로 쳐도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잘 어울리고 있다.(내 생각엔)
나는 내 옆 라인에서 수영하시는 금색 수영모의 할아버지와도 아주 친해졌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신데, 너무 열심히 전도를 하시는 바람에
주변에 있는 아주머니들은 모두 그를 피해 도망 다닌다.
하지만 나는 열심히 교회를 다니고 있다고 말씀 드려서 그와 친해졌다.
우리는 둘 다 수영장에 10분 정도 빨리 오기 때문에 아침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대게는 내가 할아버지의 말씀(충고나 응원이나 칭찬 같은 것)을 듣는다.
‘열심히 수영해서 수영선수가 돼라’, ‘아주 멋있다’ 같은.
그리고 수영이 끝날 때는 항상
‘은재, 오늘도 네가 승리했어~’라는 말씀을 해주신다.
이 말은 ‘오늘도 악마의 속삭임(아침에 수영을 나오기 싫은 마음, 유혹)을 이겨내고
승리의 길(하나님 나라?)을 택했다’는 뜻이다.
지난 수업 때는 할아버지가 무슨 일이 있으셨는지 수업에 빠지셨다.
워낙 부지런하신 분이라 그냥 빠질 분이 아니신데..
나도 모르게 할아버지를 걱정하게 됐다.
아직 자유형도 안 들어가셨는데, 설마 이대로 끊으신 건 아니겠지?
끊으신 거라면 많이 서운할 것 같다.
민승쌤이 ‘자전거 타기’로 다리 근력운동을 하라고 했던 것이
기억나 헬스까지 신청했다.
자전거가 너무 커서 페달을 돌릴 때 매우 불편하긴 하지만
그래도 15분씩 강도 5로 자전거 타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40분간 속도 6으로 런닝머신을 걷는다.
런닝 머신이 끝난 후에는 가끔 기분에 따라 근력 운동도 한다.
기분 좋은 날엔 특별히 하반하에서 돌아가면서 했던
팔굽혀 펴기, 다리 들었다 올리기 등을 한다.
이전에는 운동을 하려고 해도 뭘 어떻게 얼마나 해야 할지 몰랐는데,
요즘은 아이들 얼굴을 한 명 한 명씩 떠올리며 운동을 한다.
지원 형님이 했던 사이클링, 호근이가 했던 팔굽혀 펴기, 동군이가 했던 런지..
20번 하는 것을 기준으로, 상태가 더 좋은 날은 25번, 30번씩도 한다.
이렇게 운동하는 모습을 보더니
한 아주머니는 내게 학교 운동부냐고도 물으셨다.
스포티한 머리에, 팔굽혀펴기라…
그래 보일 법도 하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청소년 수련관 사람들은 모두 내가 운동광인 줄 안다.
딱 하루를 제외하고는 한번도 빠진 적이 없고,
항상 쉬지도 않고 수영을 하고, 땀 뻘뻘 흘리며 헬스를 하기 때문이다.
‘저 운동광도 아니고, 운동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요…
운동 진짜 싫어하는데 해야 돼서 하는 거라구요!!’
마음 속으로 이렇게 외치지만,
겉으로는 그냥 운동광 이미지를 굳히기로 했다.
이 참에 진짜 운동광이 되어보겠다는 작정으로…
9/4(화)
이태원 경리단 길에 있는 ‘더 젤’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젤의 사장님은 아빠와 아는 사이다. 같이 골프를 치는 친구 사이?
사장님은 직접 요리를 하시지는 않고 요리 개발만 하시는데
일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시다.
사장님은 우리나라 전통음식(퓨전)에 관심이 아주 많으시다.
울릉도와 강원도에서만 사육되는 우리나라 전통 소, 칡소를 직접
구해와 새로운 스테이크를 개발하기도 하고,
맛 좋은 전통 소금을 찾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기도 하신다.
소금이 다르다고 해서 얼마나 다르고, 맛있다고 해서 얼마나 맛있을까가
나의 의문이지만, 사장님은 요리에 최고의 재료를 사용하는 게 철칙이시다.
요리에는 요리사의 신념과 정성이 그대로 반영된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장사를 위해 대충 만든 스파게티와
최고의 맛을 만들어내기 위해 몇 년을 연구한 끝에, 최고의 재료로
만들어낸 스파게티..
같은 스파게티여도 맛은 천지 차이다.
젤의 음식을 먹으며 특히나 요리사의 열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꼈다.
맛집은 어쩌면 요리사의 의지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요리사가 쏟아 붓는 만큼, 그의 요리는 숨김없이, 맛을 통해 그것을 증명해내니까.
세상 모든 맛집의 요리사들과 그들의 열정을 흠모한다.
9/7(금)~9/9(일)
원래 우리 가족은 9/7(금)에 상하이로 떠나 2박 3일 여행을 하고
9/9(일)에 돌아왔어야 했다. 오빠의 대학 입학 전에 가족끼리 여행도 하고,
학교까지 오빠의 짐도 같이 날라주는 것이 우리 가족의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9/6(목) 저녁에 여권을 정리하며, 우리는 말도 안되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기간이 만료된 여권.
엄마의 여권은 지난달 2일에 이미 그 효력을 다한 것이었다.
우리는 다음날 ‘긴급여권’을 발급 받기 위해 급히 인천 공항을 찾았다.
인터넷에서 지시했던 대로, 여권 발급 사유서를 작성해 사진과 함께 제출했다.
공항 직원은 사유서를 슥 보더니,
“중국 가시네요. 먼저 비자부터 볼 수 있을까요?”라고 했다.
비….자…요…..?
헉. 우리는 비자를 발급받지 않은 상태였다.
중국에 갈 때 비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비자가 없으면 긴급 여권 발급도, 비행기 탑승도 불가하다고 했다.
하지만 비행기 시간까지 10시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
비자를 발급받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게 해서 내가 이집트 다합에 있을 때부터 계획했던
상하이 여행은 무산되었다.
6개월간 세계여행을 다녀온 나도, 여기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나와 엄마와 아빠는 비행기표와 호텔을 모두 취소했고,
비자와 유효한 여권이 있는 오빠만 혼자 상하이로 떠났다.
하지만 무산된 여행에, 우리 가족은 모두 체념하기 보단, 훨씬 만족스러워했다.
나와 엄마는 상하이 여행을 대신해 2박 3일간 무엇을 할지 생각하며 더 들떴고,
아빠는 여행 가방을 부치고, 공항 절차를 밟는 피곤한 작업을 하지 않게 되었다며 안도했고,
오빠는 가족과 함께 보내야 했을 3일을 여자친구와 보낼 수 있게 되어 기뻐했다.
이번 상하이 여행은 우리 가족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원래부터 취소되기로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엄마의 만료된 여권과 위로 차원에서 먹은 순두부찌개.
그래서 우리는 상하이 여행을 대신해 새로운 여행을 기획했고
그것이 바로 ‘서울 도심 여행’이었다.
토요일에 우리는 배낭을 메고, 버스를 타고, 대학로로 향했다.
대학로에서, 우리는 연극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봤다’
그리고 낙산 공원에 올랐다.
낙산 공원에서 내려오는 길에, ‘개뿔’이라는 술집에서
엄마,아빠는 맥주, 나는 자몽 에이드를 마셨고,
이화동 벽화 마을을 지나
서울 성곽길을 걸었다.
그리고 서울의 높은 빌딩과 도심의 경치가
아주 잘 보이는 언덕에서 도심의 분위기를 한껏 누렸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좋아던 순간을 꼽으라면, 이때였다)
그런 다음엔 광장시장으로 걸어가
가장 유명한 육회 집이라는 ‘육회 자매집’에서 번호표를 받아
(두번째로 유명한 집은 ‘육회 형제집’이라고 한다)
육회낙지탕탕이 한 접시를 먹고
가장 유명한 녹두빈대떡집인 ‘순희네 빈대떡’에서
빈대떡 2장과 꼬마김밥 세 줄을 먹었다.
밤 12시까지 시내 구경을 더 하다가 인근 호텔을 잡아 하룻밤을 자자는 얘기가
시내 구경에 들뜬 나와 엄마의 입에 오르는 찰나에,
아빠는 칼 같이 선언했다.
나는 집에 가야만 한다. 더 구경을 하려면 알아서들 하고,
나는 지금 당장 집에 가겠다.
우리의 여행이 시작과는 달리 뚝 끊기 듯이 끝난 이유는
이런 아빠 때문이었다.
아빠의 너무나도 확고하고 강철한 주장에
나와 엄마의 막 부풀어올랐던 기대는 푹 가라앉았고
분위기도 꺼졌다.
출발할 때 아빠가 버스를 타고 가자고 제안해서
‘아빠가 정말 많이 달라졌구나’ 생각했는데,
설마 했더니 역. 시. 나.
아빠는 화장실이 급한 사람 마냥 급하게 택시를 불렀고,
우리의 여행은 그렇게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처럼
아쉽고, 뭔가 깔끔하지 않게 끝났다.
이런 것도 긍정적이게 사고한다면
‘여행은 아쉬울 때 끝내야 가장 만족스럽다’는 식으로
포장할 수도 있겠지만,
필 받았을 때 더 구경을 하지 못한 게 나는 한이 되기만 한다.
다른 곳도 아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도심, 서울이었기에 더.
일요일에는 영화 ‘너의 결혼식’을 봤다.
주변에서 재미있다는 사람들도 많고,
심지어는 ‘인생 영화’였다고 하는 사람도 있어서
기대를 잔뜩 했다.
그런데, 나는 영화를 보며 정말 깜짝 깜짝 놀랐다.
‘설마 이렇게 전개되는 건 아니겠지’했는데
내가 상상하는 그대로 내용이 흘러갔기 때문이다.
‘설마 공부를 못했던 남주가 여주 때문에 갑자기 공부를 잘하게 되는 건 아니겠지?’
했는데 정말 공부를 지지리도 못했던 남주가 갑자기 똑똑해져서 여주와 같은 명문대에 들어갔고,
‘설마 남주가 여주를 지켜주려다가 자기가 다치거나 뭐 그러진 않겠지?’
했는데 마침 여주를 향해 날아오는 벽돌을 남주가 대신 막아주다가 어깨를 다쳤다.
‘설마 저렇게 남주랑 여주랑 사귀다가 헤어지고, 한쪽이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는데,
그걸 다른 한쪽이 보게 돼서 너의 결혼식인건 아니겠지?’
했는데 정말 내 예상에서 한 치도 빗나가지 않았다.
영화를 보며 이렇게 어이가 없었던 적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스토리라인도 너무 뻔하고, 교훈도 없었다.
사람마다 취향은 다른 거니까,
물론 이 영화를 정말로 재밌게 본 사람도 있겠지만,
이 영화에 대한 나의 평은
‘너무 어이가 없고 허탈해서 영화가 끝나고도
내가 본 것이 정말 영화가 맞는지 의구심을 품게 되는 영화’이다.
나는 이 영화를 다른 이들에게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상하이 여행을 대체한 이번 ‘서울 구경’과 ‘영화 관람’은
준비가 미진했던 탓에 아쉬운 부분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급히 계획했던 것 치고는 아주 짜임새 있는 여행이었다.
비자를 발급받지 못한 덕에 이렇게 더 만족스런 주말을 보냈으니,
갑작스럽게 마주하게 되는 장애물을 너무 성급하게 ‘불행’으로 치부해 버리진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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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계획했던 일이 틀어졌어도 (비자가 필요한 몇안되는 나라중 하나지요 중국이 ) 당황하지않고 다른 계획을 세워 나가다니 역시 멋진 가족이십니다 입학식을 못가 아쉬웠겠지만 서울투어도 재미났겠어요
은재가 좋아하는 도시 서울 ㅡ 그날 날씨는 환상적이었지. 이 사진 봐. 하늘 색깔하며 구름 모습하며..애니메이션 장면에 들어와 찍은거 같은 비현실적인 아름다움 ㅋ. 이국의 유적지 탐방 중인거 같아^^
하하하~
급조된 서울여행이지만
내용은 상당히 알차 보입니다^^
행복한 향기가 솔~솔~
- 준휘 엄마 -
바쁘고 알차게 보내는 은재 화이팅!!!
언제나 은재를 응원한다. <준형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