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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말씀/ 출애굽기 3:1-4:31 요절/ 출애굽기 3:12 | 2025. 3. 23 | |
출애굽기 제 3 강 |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우리 자신을 보면 낙심하고 무력감에 빠집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우리는 희망으로 채워지고 일어나 도전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오늘 말씀은 모세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사건입니다. 그는 어떻게 이스라엘의 지도자요 출애굽 역사의 주역이 될 수 있었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하여 나를 부르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배우고, 꽃피는 봄과 같은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모세는 십보라와 결혼한 후 40년 동안 장인의 양떼를 치고 있었습니다. 그는 과거 애굽의 왕자였지만 이제는 미디안 광야에서 양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요, 이름도 없고 빛도 없는 평범한 사람, 무명의 목동에 불과했습니다. 그는 양떼를 인도해서 광야 서쪽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산 호렙 산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타지 않는 떨기나무는 모세에게 큰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40년 전 애굽에 있을 때 모세의 열정은 뜨거운 불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모세는 다 타고 남은 재와 같았습니다. 그에게는 열정도 비전도 없었고, 모든 것이 끝나버린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타지 않는 떨기나무를 통해 그의 인생에 열정과 비전을 심어주고자 하셨습니다. 또한 타지 않는 떨기나무는 고통스러운 학대 속에서 없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어떤 시련 속에서도 없어지지 않고 불꽃과 같은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두 번씩이나 그 이름을 부른 것은 모세를 향한 특별한 애정의 표현입니다.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를 잘 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아픔과 상처를 잘 아셨습니다. 정체성을 잃고 40년 동안 이방인으로 고독하게 지내야 했던 그의 형편을 하나님은 잘 아셨습니다. 그의 잠재력과 가능성도 잘 아셨습니다. 모세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하며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하나님은 모세가 서 있는 곳을 거룩한 땅이라고 하십니다. 모세는 그 땅을 지루하고 무의미한 땅, 청춘을 허비한 땅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나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면서 그 땅은 거룩한 땅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내가 있는 곳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잠시 거쳐 가는 땅, 재수 없는 땅이라고 생각하며 빨리 떠나고자 하지는 않습니까? 저는 군대 갈 때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처럼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제대할 날이 빨리 오기만을 기다리며 힘든 훈련을 악으로 깡으로 버티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을 때 군대는 거룩한 땅이요 아름다운 땅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다니는 대학이나 직장에 만족하지 못하고 빨리 떠나 다른 곳으로 가고자 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어디를 가나 그곳은 저주 받은 땅이요 어두움과 죽음이 지배하는 땅입니다. 어느 땅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났는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그 어디나 거룩한 땅이요 천국이 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셨습니까? 6a절을 보십시오.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하나님은 자신을 모세 조상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자신을 버리셨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세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 백성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들을 돌보시고 그들을 아셨습니다.
과거에 모세는 자기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고 하였습니다. 그에게는 열정이 있었고 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당시 모세에게는 자기 백성을 어디로 데려갈지 그 목적지를 몰랐습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역사는 모세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으로 데려가려 하노라.” 그리고 모세에게 ‘가라’고 하시며, 그의 사명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려주십니다. “이제 가라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7-10절까지의 주어는 모두 하나님입니다. 이스라엘의 형편을 아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그들을 구원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모세를 보내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출애굽 역사, 구원역사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구원계획을 세우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구원을 실행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구원을 완성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이 구원역사를 위하여 하나님은 모세를 40년간 광야에서 훈련하시고 준비시키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 모세를 하나님의 대리자요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부르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아멘’ 하고 바로 순종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내가 누구이기에 그 일을 하느냐”며 거절의 의사를 보였습니다. 그에게는 동족들에게 거절당한 상처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누가 너를 우리의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세웠느냐?”고 하면서 모세를 거절했습니다. ‘누가’라는 말은 모세에게 트라우마로 남았고, 자기는 자격이 없는 자라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지금 목동이고 권력도 힘도 없습니다. 이렇게 별 볼 일이 없는 자가 어떻게 대제국 애굽 왕 바로에게 간단 말입니까? 누가 이런 사람을 따라서 애굽에서 나오려고 하겠습니까?
‘ 내가 누구이기’에 하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모세에게 하나님은 무슨 말씀을 주십니까? 1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내가 누구인가’ 보다는 ‘나를 보내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가 더욱 중요합니다. 내가 누구인가 하는 모세의 질문에 하나님은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대답하십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모세의 정체성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와 함께 하심으로 출애굽의 역사. 구원의 역사는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모세와 반드시 함께 있으리라고 하심으로, 모세가 자기를 바라보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믿고 나아가도록 그를 도우십니다. 모세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십니다. 모세는 그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가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그를 보내셨다는 증거를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이 산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뒤에 이루어질 일이기 때문에 당장 모세가 애굽에 가서 하나님이 자기를 보내셨다고 내세울 증거로는 부적절하게 보입니다. 모세가 바로 앞에서 행하게 될 이적들이 하나님이 그를 보내셨다는 확실한 증거가 되지 않을까요?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이 모세를 보내시는 가장 중요한 목적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목적은 하나님을 섬기는 민족을 창조하시는 것입니다. 이 일은 반드시 성취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것을 증거로 붙들라고 하신 것입니다.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애굽의 노예상태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무거운 노동과 죄의 짐과 죽음의 멍에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를 얻는 것입니다. 하지만 구원은 무엇을 향하여 가는지 그 방향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거운 인생의 짐과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되었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진공 상태에 빠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유를 죄 짓는 데 사용하고 과거의 비참한 삶으로 돌아가고 말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을 향하여 가는 것이요,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삶, 천성을 향하여 거룩한 순례자의 삶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분명한 비전과 방향이 있을 때, 우리는 과거를 청산할 수 있고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이냐 할 때 어떻게 대답해야 하느냐’고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고 두 번 대답하십니다. 이는 “나는 나다”라는 말씀입니다. 과거 조상들과 함께 계셨던 하나님이 지금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계십니다. 또한 미래에도 계십니다. 하나님은 조상들과 맺은 언약 때문에 모세와 함께 계시고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계십니다.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성취하기 위해서 지금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이 어떤 형편 가운데 있든지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형편을 초월하여 언약의 하나님으로 존재하십니다. 이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구속주이시고,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우리의 인생의 진정한 주인이십니다.
이 언약의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을 “내가 그니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언약의 성취로서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떡, 세상의 빛, 문, 선한 목자, 부활이요 생명, 길이요 진리요 생명, 참 포도나무로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영접하는 사람과 시공간을 초월하여 생명과 빛으로 함께 하시며, 보호하시고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과 바로에게 갔을 때 겪게 될 일을 자세하게 알려주십니다.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쉽게 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를 굴복시키고자 모세를 통해 열 가지 재앙을 내릴 겁니다. 마침내 이스라엘 자손은 애굽에서 나오게 되는데 그 때 빈 손으로 나오지 않고 애굽 사람들로부터 물품을 취해서 나오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상황을 이미 일어난 일처럼 알려 주십니다. 모세는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한 걸음씩 나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모세는 장로들이 그를 믿지 않고 듣지 않을 거라고 말합니다. 그에게는 이스라엘 자손에 대한 불신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모세를 세 가지 표적으로 도와 주십니다. 첫 번째는 지팡이가 뱀이 되게 하는 표적입니다. 두 번째는 모세가 손을 품에 넣었을 때 나병이 생기고 다시 그의 품에 넣었을 때 본래의 살로 회복되는 표적입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이 두 번째 표적도 안 믿으면 나일 강물을 떠다가 땅에 부으면 피가 되는 표적을 행하라고 하십니다. 이를 볼 때 하나님이 모세를 보내셨다는 증거는 차고 넘칩니다.
그런데도 모세는 또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절합니다. 이번에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해서 본래 말을 잘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말로 백성을 설득하고 바로를 설득해야 하는데 자기는 말주변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는지 물으십니다. 누가 말 못하는 자, 눈 밝은 자, 맹인이 되게 했는지 물으십니다. 말하고 듣고 보는 것이 하나님께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기 고집을 꺽지 않고 “오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하였습니다. 모세는 어찌하든지 애굽에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찌하든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포기해야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하나님은 그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모세를 향하여 화를 내시고, 그의 형 아론을 대변인으로 세워주십니다.
하나님은 왜 모세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도우십니까? 하나님의 부르심은 80년에 걸쳐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다 아시고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오래 참으셨고 그를 끝없는 사랑으로 감당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인간조건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불가항력적인 은혜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대화 중에 가장 긴 대화는 오늘 본문, 출애굽기 3-4장에 기록된 하나님과 모세의 대화입니다. 모세의 부르심을 왜 이렇게 길고 자세하게 다루고 있을까요? 이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가, 한 사람의 인생과 역사를 바꾸어놓는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는가를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구원 받은 사건은 참으로 엄청난 사건입니다. 이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어두움에서 빛으로 옮겨지는 역사적 사건이기에 우리는 구원의 은혜를 잊지 말고 매일 매주일마다 기념하고 새롭게 해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캠퍼스 개척과 세계선교에 목자요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은 사건은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주역이 되는 의미 있는 사건이라는 것을 알고 늘 감사하며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드디어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영접했습니다. 그는 장인에게 애굽에 있는 형제들의 생사여부를 알아보러 간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미디안에서 모세에게 다시 한 번 애굽으로 돌아가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모세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들이 다 죽었다는 정보를 주십니다. 모세를 죽이려는 바로가 있다는 것은 모세가 애굽으로 돌아가는 데 걸림돌이 되었을 겁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애굽으로 갈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취하셨습니다. 4장 20절을 보면 모세는 혼자 가지 않고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갑니다. 그리고 모세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습니다. 모세의 손은 아무 능력이 없습니다. 그의 손으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으로부터 나오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의 손에 하나님의 지팡이가 있었습니다. 그 지팡이는 양치던 지팡이인데 이제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와 함께 하시고 모세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나아갈 때 모세는 출애굽의 역사를 능히 이룰 수 있습니다.
모세가 애굽으로 가는 도중에 숙소에 있을 때 하나님이 모세를 죽이려고 하셨습니다. 모세를 도우셔서 애굽으로 보내시는 하나님이 왜 모세를 죽이려고 하십니까? 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입니다. 이때 십보라가 아들의 포피를 베어 모세의 발에 갖다 대었습니다. 십보라가 할례를 행한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모세를 놓아주었습니다. 이를 볼 때 모세가 장자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죽이려고 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가 왜 장자 게르솜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았을까요? 모세는 할례로 인해 애굽에서 수치를 당했습니다. 그는 언약백성의 정체성이 부족했습니다. 하나님은 장자에게 할례를 행하도록 함으로서 모세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세워주셨습니다. 십보라는 할례를 행한 후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라고 말합니다. 그녀는 모세를 애굽인 남편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백성인 남편으로 새롭게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혈육의 가족들 모두가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되고 교회가 하나 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 마음 한 뜻이 될 때 우리는 어떤 악의 세력도 물리치고 정의의 나라, 사랑과 평화의 나라를 세워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론에게 광야에 가서 모세를 맞으라고 하셨고, 모세와 아론은 극적인 만남을 갖게 되었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가서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장로들을 모았고,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전하고 그 백성 앞에서 이적을 행하니 백성이 믿고 하나님을 경배하였습니다. 모세가 걱정했던 일들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고, 백성들은 모세를 그들의 지도자로 영접하고 하나님께 감사 찬양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나 한 사람을 준비시키시고 때가 되면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부르십니다. 우리는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이시며, 창조주요 구속주이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반드시 나와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은 문제 되지 않습니다.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나아갈 때 우리는 인생의 짐과 죄 짐으로 고통하는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고 그들을 언약백성으로 세우는 일을 능히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