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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추억이 남아있는 음악다방
속어로 '판돌이' 라는 DJ (디스크 작키) 가 LP 판을 골라
신청곡을 들려주는 음악다방도 있으며,
은은한 차 한 잔 ~
다향이 흐르는 탁자에 마주앉아
인생을 이야기 하던 추억어린 장소
다방
다방이라면 떠오르는 곳이
아마도
대학로의 유서깊은 학림다방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글쓴이 : 윈드
1980년~1983년 약 3년간 음악다방에서 활동
당시예명 : 혼혈가수 윤수일과 닮았다고 "수일"이라 불림
LP 레코드판이 빽빽하게 꽂혀 있는 MUSIC BOX
사연과 신청곡을 담은 정성어린 예쁜 엽서들...
낭만적인 커피향, 담배연기....
그리고 뮤직박스에서 팝송, 가요, 칸쏘네. 샹송, 쎄미 클래식,
영화음악 등 고객의 다양한 신청곡과 사연을 소개하는 DJ
지난 1970∼1980년대의 음악다방의 모습이다
음악다방의 역사
1970년대의 대표적인 음악다방으로는 종로 1가의 "희다방", 그리고
팝송 외에 당시 인기 있던 통기타 가수들의 노래를 들려주던 “향원” 이
있었고, 동숭동 대학로에는 "슈만과 클라라" "학림다방" "참스다방"
"대학다방" 이 있었다. 위 사진은 "학림다방"이다. 이 다방은 지금까지
존재한다. 50년이 되었다.
그리고
1980년대에 들어서는 음악다방의 최고의 전성기이자 마지막 불꽃
이라고 볼 수 있는 시기가 있었다.
이 시기에 대표적인 음악다방으로는 종로의 무아다방, 청궁다방,
엘파소, 호다방, 양지다방, 성전다방, 돌체다방, 약속다방, 솔다방,
희다방, 돌고래다방, 원앙다방, 타임다방, 세시봉 다방, 국일다방,
초우다방, 황제다방
명동, 을지로의 꽃다방, 호수다방, 청자다방, 설파다방, 가로등다방,
영화다방, 참피온다방, 카네기다방
동대문의 못잊어다방, 돌체다방, 선구자다방, 수산다방, 청자다방,
산울림, 금성다방, 동궁다방, 역마차, 청춘스케치
서대문, 신촌의 독수리다방, 빌보드, 파리다방, 상록수다방, 성지다방,
참피온다방, 노라노다방, 타임다방
고대앞 보성다방, 서브웨이... 경희대 입구의 궁다방, 상원다방
신당동의 너와나, 주희다방... 화양리의 매킨토시, 타임다방
청량리의 남지다방, 지하철다방, 동산다방
왕십리의 축제다방, 돌체다방, 약속다방, 불새다방
영등포의 꽃샘다방, 약속다방, 종점다방, 그리고 강남에는 신사동의
영일다방, 타임다방, 로마의 휴일이 있었다.
사진의 '독수리다방'은 지난 1971년에 생겨 35년간 운영되다,
지난 2005년에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대학입시에 실패한 재수생들이 모여 그들의 젊은 아지트 역할을
해내었던 학원근처의 음악다방들도 있었는데 대표적으로는 노량진의
중앙다방, 타임다방, 영일레븐, 블랙박스, 그리고 학원이 밀집해 있었던
서울역 근처에도 여러 음악다방들이 있었다
또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 도시의 대학가와 유명상권에 넓게 분포되어
있었고, 이 음악다방들은 80년대 중반까지 최고의 황금기를 보내면서
다운타운 문화를 가꾸어 나갔다.
나도 이 시기에 DJ활동을 했다..
DJ의 역할
미국의 "쥬크박스", 일본의 "가라오케"가 그 나라의 고유 문화였듯이
한국은 "음악다방"이 70~80년대의 다운타운가의 고유문화였었다.
그리고 이 고유문화를 이끌어나간 주역들이 DJ였다.
DJ의 어원은 Disk(음반)와 Jockey(말을 타는 기수)의 약자로 말(馬)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타는 기수처럼 Disk(음반)를 자유자재로 다룬다는
의미에서 만들어졌으며
음악다방 DJ가 하는 일은 소속 다방의 자체 음악프로그램 진행자이다.
뮤직박스 안에서 날씨와 계절, 분위기에 맞는 선곡을 하고 음악적인
주제와 화제의 멘트를 하는데, 주로 고객의 신청곡과 사연들을 위주로
방송을 한다.
연인과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팝송을 마음껏 들을 수 있는 음악다방의
인기는 하늘로 치솟았다. 차 한잔 값이 100∼200원 정도 하던 시절,
음악다방은 마땅히 갈 곳 없는 젊은이들의 유일한 휴식처였다.
손님 중에는 일상의 피로에 지친 이들, 고향을 떠나온 외로운 이들
또 사랑의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DJ들은 이들의 신청곡과
사연을 전하며, 이들에게 힘과 용기, 그리고 위안을 주었었다..
DJ의 분류
DJ는 "정석 DJ", "시사 DJ", "개그 DJ"로 분류한다.
아티스트, 가사 등 음악해설 위주로 진행을 하는 "정석 DJ"이고...
자신의 끼와 유머를 보여주는 것이 "개그 DJ"이다.. 머리 기르고
머플러 하고 도끼빗 꽂은 DJ는 대부분 개그 DJ였다. 고 김형곤,
서세원이 개그 DJ 출신이다.
신문을 보고 주요 시사를 체크해서 그 내용을 중심으로 하는
"시사 DJ", 그리고 이 3가지를 모두 합쳐 다 하는 것을 "상황 DJ"
라고 한다.
나는 대부분은 "정석 DJ"를 했고, 잠시 "상황 DJ"를 한적도 있다.
DJ의 역량
DJ는 PD, 작가, 엔지니어 등 서브 맨의 도움없이 홀로 진행하는 매우
어려운 역할의 수행자, 혼자서 기획, 연출을 하는 복합 아티스트 이다.
그러므로 음악에 대한 객관적인 평론을 할 수 있는 실력과 방송을 하기
위한 기본적인 오디오 상식, 방송원고의 작성 및 프로그램의 연출 등
다방면에 감각적인 순발력과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또 다수의 팝송 가사, 아티스트에 대해서 꿰고 있어야 하며,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대해 박식해야 한다.
가능하면 목소리가 감미롭고 좋아야 하고, 국어발음은 물론, 영어발음
까지 좋아야 한다. 화술과 임기웅변에도 뛰어나야 하고, 다방 안의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이끄는 분위기 메이커가 되어야 한다.
DJ의 힘
이때는 다방 DJ를 가리켜 "대중가수 홍보대상 0순위"라고 칭했다.
가수의 새 음반이 나오면 매니저나 관계자들이 찾아와 밀어주기를
바라는 곡에 동그라미 표시를 한 "PR 음반"이라는 것을 주고 갔다.
가끔 전화로 DJ를 불러내어 식사대접을 하기도 했었고
음악다방에서 계기가 되어, 크게 히트한 대표적인 노래는 윤시내의
"열애"이다. 이 곡을 만든이가 부산의 유명한 DJ였었다. 또 패티김의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랑", 그리고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은
부산의 음악다방에서부터 뜨기 시작하여, 크게 히트한 곡들이다.
DJ 선후배들이 연합이 되어, 한 가수의 곡을 같은 날 일제히 밀어주던
일도 가끔 있었다. 손님이 음악다방에서 자주 들어 귀에 익고 좋아진
노래를 방송국으로 엽서신청을 하게 되는 과정을 거치며 히트곡이
탄생하였다.
음악다방 시스템
LP 디스크
수천장에서 10,000여장까지 다양한 LP 디스크가 구비되어 있다..
70~80년대 유행했던 가요도 모두 준비되어 있지만, 훨씬 더 많은
비중은 외국곡이 차지하고 있다. 락, 메탈, 팝, 쎄미 클래식, 샹송,
칸쏘네, 영화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담긴 디스크들이다..
턴테이블 (Turn Table)
이때는 레이저 디스크, CD 플레이어, MP3 등이 가 나오기 전이라
음원재생 매체는 턴테이블이었다. 턴테이블에서의 음원 재생은 LP를
일정속도(보통 분당 33.3회전)로 회전시키고, 그 위에 올려진 카트리지
바늘이 회전하는 디스크의 홈에 닿아 마찰하면서 저장된 음향을 재생하는
원리이다.
MUSIC BOX 안의 턴테이블은 2개이다. 음악이 끊이지 않기 위해,
음악이 나가는 중에 다른 턴테이블에 다음곡을 준비한다.
오디오 믹서 (Audio Mixer)
좌우 2개의 턴테이블의 Play, Stop, 볼륨조절 등의 콘트롤을 하고,
이들을 번갈아 플레이하면서 음악이 끊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방송
되도록 하고, 또 DJ의 마이크 음량까지, 뮤직박스 내의 모든 음향을
믹스 및 조절하는 '콘트롤러'라고 할 수 있다.
또 에코(Echo)기능이 있어, DJ의 목소리를 신비롭게 들리게 하는
부가 기능도 있다.
제품에는 70∼80년대의 추억이 어린 또또, 영스튜디오가 있었고,
인켈에서 제작한 믹서가 주로 사용이 되었었다. 현재는 타스캄,
로덱 등 대형화, 전문화 된 제품들이 사용된다.
마이크(MIC)
DJ의 목소리를 출력하는 마이크.. DJ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기기에
해당한다. 까다로운 DJ들은 본인 전용의 마이크를 소지하며 그것만
사용하기도 하였다.
70~80년대 주로 사용된 제품은 SONY(소니), SURE(슈아) 등이었고,
현재도 AKG 제품 등과 함께 사용되고 있다.
앰프 (AMP)
턴테이블에서 오는 음향신호, 마이크에서 오는 DJ의 목소리 등 입력
측에 들어가는 적은 신호를 출력측에 큰 신호로 변환시키는 기기이다.
이때는 주로 마란츠, 테크닉스, 켄우드, 파이오니어 등 수입제품이
사용되었었다.
스피커 (Speker)
앰프에서 오는 전기적인 음원신호를 진동으로 바꾸어 음파로 변환 시키는
장치이다. 스피커를 통해서만이 모든 음향을 귀로 들을 수 있다. 또 좌우
스피커의 음원신호가 서로 다른 스테레오 음을 들을수 있다. 70~80년대에
주로 사용된 기계로는 산슈이, JBL, EVE, 탄노이 등이었다.
헤드폰 (Head Phone)
글자 그대로 머리에 쓰고, 음향을 듣는 소형 스피커이다. 스피커로
듣는 것보다 훨씬 작은 음성신호를 청취할 수 있고, 또 주위의 잡음에
방해받지 않는다. 이때는 헤드폰을 쓴 모습이 DJ의 캐릭터이기도 했다.
신청곡 창구
유리에 반원형으로 구멍을 내어 뮤직박스 안으로 신청엽서를 넣을수 있는
창구이다. 이곳으로 하루 수백곡의 신청곡 다양한 사연들이 접수된다
음반찾기
수천장에서 10,000여장의 디스크중, 손님이 신청한 곡을 빠르게 찾는
순발력이 있어야 한다.
음반을 찾는 일은 DJ들에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디스크는 그룹,
아티스트명이 알파벳 순으로 진열되어 있다.
Eric Clapton의 Tears in heaven을 찾는다면 "E구역"에서 찾아야
하는데, 늘 하는 일이라 감각이 생겨 "E구역"에 손을 대 1장 정도 빼어
보면 평소 감각으로 그 디스크가 대략 어디쯤 있는지 한두뼘 정도의
범위로 축소할 수 있다.
이어 한두뼘 정도되는 분량의 디스크를 하나씩 한손으로 뺏다 끼웠다
하는 동작을 빠르게 취한다. 물론 이렇게 빠른 동작속에도 디스크 자켓을
정확히 본다. 여러 장의 Eric Clapton의 음반중, Tears in heaven이
어느 디스크에 있는지 기억을 하고 있다. 해당 디스크를 찾는데는 30초
정도가 걸린다.
음반 다루기
요즘의 CD, DVD와는 달리 LP 디스크는 플라스틱 소재로 되어있어,
스크래치가 생기면 음질도 안좋고, 복원도 안된다. 매우 주의해서
다루어야 한다.
방법은 음반을 사진과 같이 잡는다. 엄지에는 걸치기만 하고, 검지,
약지 두 손가락으로 음반 중안의 라벨 부분만 만진다. 이렇게 하면
음반 어느 표면도 손이 닿지 않는다. 부자연스러운 동작이지만 숙달이
되면 이런 동작으로 쟈켓에서 꺼내고, 넣는 일, 턴테이블에 올리고
내리는 작업이 자연스럽게 된다.
이외 턴테이블 옆에 손수건 크기의 부드러운 천을 물에 약간 적셔
턴테이블에 올릴 때마다 가볍게 닦아준다.
카트리지(Cartridge) 다루기
음반 한쪽 면에는 5~7곡이 담겨있다. 곡과 곡의 구분은 1mm도 안되는
얇은 홈으로 구분되어있는데, 이 홈에 카트리지 바늘을 정확히 올려야 한다.
카트리지 바늘이 약간 뒷부분에 올려지면 전 곡의 끝 부분부터 들리게 되고,
반대로 약간 앞에 놓여지면 해당곡의 전주가 이제 막 회전을 시작한 음반의
회전속도와 안맞아 우스꽝스러운 소리를 내며 곡이 시작된다.
신청곡 소화하기
항상 신청곡이 밀린다. 많이 밀릴 때는 짧은 곡 위주로, 그리고 중복
신청곡을 틀어 시간을 절감한다. 멘트도 짧고 재치있게, 그러면서도
들어온 사연은 다 전한다.
노래 신청을 해놓고 나간 손님들의 신청엽서도 알아차려 순번에서
제외시키는 것도 큰 능력이다. 상당한 순발력이 필요하다.
예쁜 엽서들...
다방안에 메모지가 준비되어있어, 손님들 대부분이 이 메모지를 이용
하지만, 특별한 손님들은 특별한 엽서를 보내온다.
이 엽서들은 학교나 집에서 미리 준비해온 것들이다. 예쁜 그림, 예쁜 글
온갖 정성이 가득 들어있다. 이런 예쁜 엽서들은 웬지 경건한 마음으로
받게된다. 가능하면 신청곡도 빨리, 많이 틀어주고 싶어진다.
그리고 잘 보관했다가, 정규적인 게시를 한다. 사진과 같이 다방 한켠에
게시판을 걸어 예쁜 엽서를 전시한다. 가끔은 예쁜 엽서 콘테스트도 갖는다.
DJ들의 학습
팝송 히트차트 입수
DJ들은 팝송과 관련한 공부를 많이 해야한다. 빌보드 히트차트를 비롯,
AMERICAN TOP 10, 롤링스톤지, 캐쉬박스지 등을 입수해 상위에 랭크된
곡들을 알아야 했으며...
전문 음악잡지 구독
당시 발행되었던 팝송 위주의 음악잡지 "월간팝송", "음악세계"를
구독하며, 음악공부를 했고...
FM 방송 청취
팝송을 선곡해주는 FM 방송 프로그램을 청취하였다.
당시 대표적인 FM 방송 프로그램 및 DJ들.
김기덕의 "2시의 데이트"
김광환의 "팝스 다이알"
박원웅의 "추억의 골든디스크"
이종환의 "밤의 디스스크 쇼"
황인용의 "영 팝스"
음악사 방문
그리고 틈 나는대로 음악사를 방문, 신곡 디스크를 직접 구매했다.
디스크는 90% 이상이 '빽판'이라 불리는 복사판이었다. 1장에 400~500원,
자켓도 허접하기 이를데 없고, 음질도 원판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 하지만
이때는 대부분 복사판 정도로 만족했고, 가끔 어렵게 구한 원판으로 음악을
들을때면 감동과 행복을 느꼈다..
그외 스포츠신문, 일간신문 등을 보며, 뉴스, 시사, 화제거리를 찾아
멘트자료로 이용했다..
DJ들의 낭만, 휴식
MUSIC BOX안의 소박한 낭만
뮤직박스 창구로 신청곡만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커피와 거북선 담배가 팬들로부터 들어오기도 한다.
뮤직박스 안에서의 흡연
이때는 흡연에 대한 인식이 무척 관대하여, 대부분의 DJ들이 뮤직박스
안에서 담배를 피웠었다.. 나도 자주 담배를 피웠다.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멋있다는 글도 많이 들어왔었다..
뮤직박스 안의 이면..
뮤직박스 바닥은 대부분 이렇게 생겼고,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이곳에서 근무가 아닌 DJ는 잠을 자기도 하고, 사진처럼 조촐한 술판을
벌리기도 한다. 가끔은 방송중에도 아래에서 이런 술판이 벌어지기도 한다.
물론 밖에서는 모르는 일이다.
휴식..
디스크, 또는 음반 한면 전체가 긴 음악 한곡으로 되어있는 디스크를
올려놓고 뮤직박스를 나와 휴식을 취한다.
그런데 15분짜리 한 면이 어느새 다 돌아가 사진과 같이 카트리지가
디스크 끝에 걸려 '지익 지익~" 하며 듣기 안 좋은 소리를 내고 있을
때가 있다.. 턴테이블의 맹점 중 하나이다..
패션
당시 내가 주로 입었던 의상이다.
한 2년간은 흰색 옷만 입었었다..
머리는 장발이었지만, 지나치게 긴 장발은 아니었고
20대 초반이었지만, 나이보다 들어보이는 마스크였었다..
모자는 '헌팅캡'을 착용했었고...
흰색 다음으로 즐겨 입었던 의상은 자주색 양복이었다
머리가 가장 길었을 때의 모습이다. 이보다 더 길게 기르지는 않았다.
의상은 상의의 단추를 풀어 가슴을 드러낸 모습이다. 당시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은 이런 모습을 많이 보였다.
현재 20대 초반인 나의 아들과 비교사진이다. 헤어스타일이 비슷한 것이
26년전 사진 같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착각만은 아닌 것 같다.
팬관리
여성팬 관리.
그 시절 음악다방 DJ는 여성들에게 인기가 대단했었다. 젊은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꿈을 꾸었을 정도로 DJ는 유명 연예인에 버금가는
동네의 우상이었다.
DJ의 근무시간에 맞추어 여성 팬들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DJ들은 여성 팬들을 몰고 다녔다. DJ가 다른 다방으로
옮기면 그 곳을 따라 다녔다. 그래서 DJ의 인기도에 따라 음악다방의
매출차이가 있었다.
팬래터...
여성팬들에게 팬래터도 많이 받았다. 온갖 미사어구로 쓰여진 글..
예쁜 그림으로 장식된 정성어린 팬래터가 자주 배달되어 왔다.
낭만파, 순애보에서 스토커까지 뭇 여성의 선망의 대상...
비가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찾는 여성도 있었다. 그녀는 엽서에
늘 "우(雨)요일" 이라고 쓰고, 신청곡을 보내왔었다.
DJ를 말없이 동경하고, 마음의 상처까지 받는 순애보 여성부터,
무작정 DJ의 인기를 좇는 스토커형 여성까지, 다양한 여성팬들이
있었다.
DJ들은 스스로 인기관리를 했다. 개인적으로 누구를 만나면 금방 소문이
나고, 인기가 떨어졌다. 질투와 시기로 다방을 오지 않는 여성도 있었다.
그래서 공개적인 만남의 자리만 가지며, 만인의 연인으로 군림했었다.
음악다방 안의 추억의 물건들...
덕용성냥
음악다방 안의 테이블 위마다 올려져 있었던 덕용 성냥의 모습이다..
돈표, 비사표, 화랑, 아리랑 등의 상표들이 있었다.
지금은 볼 수 없는 엽차잔들...
10원으로 사용했던 다방안 빨강색 공중전화와 카운터위의 전화...
모두 다이얼식이다.
당시의 담배들...
청자는 저가, 한산도는 중저가... 선(SUN), 거북선은 고급담배였다..
음악다방의 황금기, 쇠퇴기, 그리고 부활
황금기...
서울을 비롯해 전국 각 도시의 대학가와 유명상권에 넓게 분포되어
80년대 중반까지 최고의 황금기를 구가하면서 다운타운 문화를 대표
했던 음악다방...
세퇴기...
86년 아시안 게임과 88올림픽을 전후로 음악다방의 명성은 새롭게
다가오는 시류앞에 그 불꽃이 서서히 약해지기 시작하였다.
1980년대에 새롭게 시작된 컬러 TV방송과 프로 스포츠의 열기
각 가정의 오디오 보급과 다양한 여가문화(노래방, 게임방 등)의 출현이
젊은이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에 충분하였으며, 이런 다양한
미디어의 보급으로 서서히 그 입지가 좁아지게 되었다.
이렇게 다운타운의 DJ문화는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되고 현재는
"음악다방"이라는 간판조차도 발견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부활, 7080...
그러나, 밀레니엄 시대를 살아가는 2000년대에 다시 변화가 생겼다.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여유에 반비례하여 지금 복고의 붐이 일고 있다.
바로 "7080"이다. "7080카페" "7080 음악다방" 등 그 시절 그 DJ들을
그리워하고 그들이 활동하는 공간이 하나 둘씩 생겨나고 있다.
방송가에서는 "콘서트7080" 이라는 프로그램까지 생겨 7080 세대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제는 LP를 동경하고 있다.
LP 디스크가 훌륭한 인테리어 소재로 사용되기도 하고...
DJ의 재현...
드디어 국내 톱스타가 DJ로 등장했다. 요즘 두드러진 CF 장면중 하나..
톱스타 장동건이 뮤직박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LP 디스크가 다시 돌아왔다. 그것도 첨단 정보통신 휴대폰 광고로
국내 톱스타가 멋진 포즈로 재현을 했다. 분명한 것은 LP 디스크가
CD나 DVD 보다 깊은 멋이 풍기는 것은 사실이다..
현대인들이 그 멋을 다시 찾아낸 것이다..
에필로그
그 시절에서 29년이라는 긴 세월이 강물처럼 흘러버렸다.
그 시절은 미디어 조건도 열악하고, 지금처럼 UCC시대가 아니어서,
DJ들 거의 모두가 활동했던 모습들의 동영상을 남길 수 없었다..
"On Air"...
글자 그대로 그것은 허공에 바쳐진 음악에 대한 열정들이었다.
보고싶은 얼굴들도 많다. 1982년.26년 전에 만났던 친구들..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소식도 모른다
다행히 그 때의 사진들이 남아있어서 그 시절을 재현할 수 있었다.
그 옛날 투박하게 생긴 수동카메라, 자동카메라, 1회용카메라 등..
열악한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이지만 한장 한장 정성들여 스캔을 받아
카페에 올리니, 어느새 그때의 모습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재현이
되었다. 완성하여 처음부터 다시보니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오직 음악만을 좋아했던 순수한 시절의 청춘 자화상
이제는 수많은 음악과 함께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절의 향수
잠시 추억에 젖어보았다. (펌)
첫댓글 안양 유원지에는 지금도 있어요
옛날을 즐기려는 5,60대들이
많이 와요
아하~ 그렇군요.세운상가
부근에 6.70대들만 가는
주점들이 있더군요.밑에 글쓴
DJ출신 분은 박사학위 논문
같아요~ㅋ
추억의 음악다방 ㅎㅎ
전 건대앞에 있는 곳을
친구들과 자주 갔었어요
수업이 끝나고 ㅎ
DJ가 선배였는데
맨날 놀러오라고 해서리
가면 커피는 공짜였거던요
LP판 모으려 청계천을 엄청 다닌기억도 있네요
참 아름다운 추억이였어요
아하~ 건대쪽에 자주 가셨군요.
그당시 대학가 인기 DJ분들은
연예인 같았지요.청계천 고서점
부근에는 학기지난 책 팔러도 자주
갔었지요~ㅎ 이때부터 민지맘님
음방하시는 자질이 함양된 것 같군요.
아직도 진행하시던 목소리가 생생합니다.
편안하고 시원한 , 아름다운 시간 되세요.
올여름..그냥 지나치나보다 하면서..
어제 저녁 산책길에 핸폰으로 키보이스의 해변으로가요를 찾아서 들었어요
여름이면 꼭 들어야할 것 같은 우리들의 청춘시절 음악같아서요 ㅎㅎ
동인천역부근 다방에서 DJ가 있는 곳이면 몰려들어서 음악신청하면서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다방에서 죽돌이 죽순이들처럼 머물렀던
순수의 시절..아름다웠던 그 시절이 생각나서 길게 중얼거려보았습니다^^*
아직 안늦었으니 가까운 해변을 다녀오시지요.
휴가객들이 폭염으로 인하여 바닷가 보다는
계곡으로 몰려서 해수욕장 영업이 안된다고
하더군요.동인천 부근까지 가려면 대학에서
몇정거장 가야하지요.춘천은 전원다방이라고
이외수 춘교대 다니던 시절에 자주 가는
다방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문학도 들이 모이곤
했던 기억이 나는군요.맛있는 점심식사 하세요.
종올 2-3가 등지에 분식집에서도 DJ가 있었어요
그 규모가 상당히 컸구요
친구들과 학교 끝나고 그곳으로 가서 음식먹으며 좋아 했던 노래 신청해서 듣곤 했지요
아 예쁜시절 파람님덕에 돌아보네요
그렇군요.종로통에는 분식집에도
DJ가 있었다는 사실은 몰랐네요.
지방출신이라 찐빵 골목에서 먹으면서
여학생들과 이야기 했던 기억만..
대전 은행동 있었던 음악다방
친구들과 닐 다이아몬드에 Solitary man 등
신청곡 많이 듣던 아름다운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네요..
상쾌한 아침에 좋은 신나는 음악 듣고 출근 준비 합니다~~
포인님,안녕하세요.어제는 비가 오다가 말았지요.
대전도 대도시라 음악다방이 많았겠군요.이제
무더위도 조금은 기세가 꺽이는것 같아요.
건강 잘 챙기면서 작업하세요.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