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의 효도 박철웅 전깃줄은 바람에 부딪혀 윙 소리를 내며 먼 곳으로 끝없이 휘달리고 있다. 이른 아침에 지저귀는 새들은 전 깃 줄 위에서 고요한 정적으로 잠들어 있는 산촌에 하루가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그 새 중에는 까마귀도 있다. 요즘 까마귀들이 시골에 번식하여 많이 울며 날아다니고 있다. 며칠 전 고향 집에 추석 명절을 쇠기 위하여 온 집안 식구들이 모였다. 아버지는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시고 전깃줄에 앉아있는 까마귀를 가리키며, 까마귀가 부모에게 부리를 비비며 음식물을 넣어 주는 장면을 자주 목격하신다고 말씀하신다. 그러시면서 한자 숙어인 반포지효 (反哺之孝)를 검지 손가락으로 방바닥에 쓰시면서 까마귀도 알에서 깨어 자라서 날기까지 계산해서 부모를 봉양한다고 설명하신다. 혹여 마음속으로 다하지 못한 효를 꾸짖을까 싶어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붉어져 화끈거린다. 아버지는 추석 명절을 즈음하여 산소에 벌초하러 오지 않는 후손들을 나무라는 것이었다. 또 마을에 홀아비를 혼자 집에서 생활하게 하며 명절에 자식이 많은데 누구 하나 찾아오지 않는 모습을 보시고 배은망덕한 것은 인간이라고 말씀하신다. 짐승만도 못하단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고, 아름다운 한자 숙어가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라고 일장 훈시를 하신다. 사실 나 자신도 형식적으로 부모님을 찾아올 뿐이지 이러한 지적에 자유스럽지는 못한다. 아버지께서는 지난 과거의 교육은 효를 바탕으로 나라에 충성을 교육은 받았으나 지금은 효 나 충성이란 단어는 개인의 인권 존중 앞에서 무릎 꿇는 실정이라 말씀하셨다. 그리고 새롭게 도덕. 윤리를 바탕으로 한 교육이 회복되지 않는 한 인간의 미래는 까마귀만도 못한 질서의 상실 속에서 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아버지께서 깊은 한숨을 내쉬며 하늘 높이 올려다보시고 고개를 내리시지 않으신다. 그런 아버지를 보며 나 또한 무어라 형언하기 어려운 이 시대 교훈을 잃어가는 방랑자는 아닌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