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무더위에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삽시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 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시편 56:4절 말씀)
1, 시편 56편의 <표제어> 세 가지
시편 56편은 다윗의 비탄에 잠긴 시입니다. 다윗은 34편과 마찬가지의 배경, 즉 가드의 아기스 왕에게로 가는 중입니다. 다윗의 시편들 중에 34편과 본문 56편, 이 두 편은 같은 배경을 두고서 쓰였습니다. 본문인 시편 56편에는 <표제어>가 세 가지나 붙어 있습니다.
1) 첫째가 ‘다윗의 믹담’입니다.
시편에는 ‘믹담’이라고 표제어가 붙어 있는 것이 6편이 있습니다. 16편, 56~60편까지 5편입니다. ‘믹담’은 그 뜻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2가지 정도로 정리 됩니다. -하나는 ‘황금시’라는 의미입니다. 아주 귀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또 하나는 ‘돌비에 새겨진 노래’입니다. 모두가 기억해야 할 시편이기에 돌에다 새겼다는 의미입니다. 믹담의 의미가 황금시이든, 돌비에 새겨진 노래이든 그 의미는 아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 시편을 마음에 새겨서 읽고 들어야 합니다.
2) 표제어 둘째 표현이 ‘요낫 엘렘 르호김에 맞춘 노래’입니다.
이것은 운율의 표현인데 ‘먼 느티나무 위의 비둘기 한 마리’라는 뜻이며, 노래의 곡조입니다. 이것은 다윗의 처지을 묘사하는 말로 이해가 됩니다. 그렇게 처량하고도 고독하게 도망을 가야 했고,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던 다윗의 심정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마치 우리나라 가곡 ‘울밑에서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라는 노래와 비슷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 노래를 누군가가 부르면 그 사람은 참 처량한 지경에 있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편도 다윗의 개인의 경험이 국가의 경험이 되고, 개인의 처량함이 민족의 우울함으로 확대된 것입니다.
3) 표제어 세 번째는 ‘다윗이 가드에서 블레셋인에게 잡힌 때에’.
이것은 사무엘상21:10-15절이 그 배경입니다. 사울에게 쫓겨다니던 다윗은
망명하기 위해서 자신이 죽였던 골리앗의 고향인 가드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가드 왕 아기스의 신하들이 다윗을 보고는 “저 사람은 다윗이 아닙니까? 이스라엘 여인들이 다윗이 행한 일을 보고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고,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순간 다윗은 잘못 왔다고 생각하고, 가드 왕 아기스 앞에서 미친 척하며 성문짝에 아무렇게 글씨를 쓰기도 하고, 자신의 수염에 침을 질질 흘리면서 그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그 때에 지은 시가 바로 시편 56편입니다.
2. 핵심표현
1)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4절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합니다. 이 구절에서 특이한 것은 다윗은 ‘말씀을 찬송한다’고 합니다. (히, 할랄). 하나님의 성품이나 역사를 찬송하는 것은 맞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한다(?)는 것은 빨리 와 닿지 않습니다. 4절 뿐만 아니라 10절에도 또 나타납니다. 10절에서는 두 번이나 ‘말씀을 찬송(할랄)한다’고 합니다. 시56편에 총3번 나오죠. 여기서 찬송한다는 '할랄'은 '자랑한다 boastful'는 뜻도 함께 들어있습니다. 그러니 '말씀을 자랑한다'는 뜻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의 '찬양'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자랑하올지라' 두려움이 닥친 시간에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안전을 발견합니다. 다윗은 자신이 두려움에 사로잡힌 때에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또는 자랑)하겠노라고 했습니다. 사실 인간적인 공포에 휩싸이게 되면 하나님을 찾기보다는 마음이 혼란하여 동요하가 더 쉽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힘입어서 그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고 더욱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질 줄 알고 찬송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상황 중에도 당신의 말씀을 의지하는 자에게 구원의 은총을 베푸실 뿐 아니라 그 입술에 찬송도 있게 하십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자랑)하올지라’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일은, 곧 그 말씀을 의지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만약 다윗이/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갖지 못했다면 매우 위협적인 상황에서 거의 속수무책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두려워하는 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찬양, 자랑합니다.
2)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마르틴 루터도, 통치자의 칙령으로 아무 사람이라도 자기를 죽여도 죄가 되지 않는(살인죄를 묻지 않는) 그렇게 쫓기는 사냥감 신세가 되었지만 '내 주는 강한 성이요'를 찬송하며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는 평소에 늘 시46편 말씀을 찬양하고 자랑했습니다. 예수님도 '자기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하면서, 요7:30. 8:20 당시 유대 권력이 자기를 해치려고 했어도, 전혀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사도바울도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하며 죽음을 초월하고 담대하게 살았습니다. 빌1:21. 백전노장은 전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워낙 경험이 많으니까, 생사를 가르는 전쟁터에서도, 전혀 신경이 곤두서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양, 자랑하는 사람은.. 위기를 만나도 그런 안정감과 평안함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3. 신학적 의미
이 구절은 성경의 여러 중요한 신학적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데바르)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다윗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찬송의 대상이며 삶의 확신을 주는 원천이었습니다. 이는 성경 전체에서 강조되는 말씀의 능력과 권위를 반영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초월성과 인간의 유한성 사이의 대조를 보여줍니다. 이는 구약 전체에 흐르는 중요한 주제로, 인간의 제한된 능력과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대비시킴으로써 신앙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셋째, 신앙과 두려움의 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다윗은 두려움을 부정하거나 억압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통해 두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는 요한일서 4:18의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라는 신약의 가르침과도 연결됩니다. 현대 신앙인들에게 이 구절은 다음과 같은 실제적 적용점을 제공합니다. 말씀 중심의 신앙 생활: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히 읽는 것을 넘어 묵상하고, 찬송하며, 선포하는 적극적인 신앙 생활이 두려움을 극복하는 열쇠입니다. 반복적 신앙 고백의 중요성: 다윗이 "하나님을 의지하고"라는 표현을 반복한 것처럼, 우리도 신앙의 고백을 지속적으로 반복함으로써 믿음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올바른 관점 정립: 인간의 위협과 하나님의 능력을 올바른 관점에서 바라볼 때, 현실의 문제들이 올바른 비율로 보이게 됩니다. 이는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하는 데 핵심적입니다.
결론으로 시편 56편 4절은 신앙의 승리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의 말씀을 찬송함으로써 인간적 두려움을 초월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 구절은 오늘날 많은 위협과 불안 속에서 살아가는 신앙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신뢰가 두려움을 극복하는 길임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신뢰하고 찬양할 때,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라는 확신에 찬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신앙의 자유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