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백암길사람사진관’ 개관을 기념하며 입주 신고식으로 가진
‘사람사는이야기’ 설치전이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정해진 일정을 잘 마무리했다.
야외에 설치한 사진이라 현충사 둘레 길을 산책하는 분들이 쉽게 볼 수 있어,
아산 현충사 둘레 길의 야외전시장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돈 한 푼 없는 처지에 전시를 치룰 수 있었던 것은 ‘예술인복지재단’의 지원금 덕이었다.
3백만 원에 불과하지만, 그걸 바탕으로 주변의 도움을 받아 어렵사리 치루 게 되었다.
그러나 지원금을 받기위한 어이없는 일도 감수해야 했다.
지원금 선정자들을 대상으로 성교육을 시켰는데,
성기능이 사그라진 늙은이들을 손자 같은 애들이 가르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다들 지원금을 받기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두 시간동안 시달려야 했다.
주입시키는 성 교육이란 프로그램이 현실적으로 체감할 수 없는 말들인데,
딱 하나 수긍이 가는 말은 성을 예술로 위장한다는 말이었다.
성을 예술로 위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전시도 처음엔 미투의 폐해를 말하는 신체발언전인 ‘말하다’로 정했으나,
이 또한 스스로의 실책에 발목 잡혀 ‘사람 사는 이야기’로 바뀐 것이다.
사람에게는 양면적인 면이 다소 있겠으나, 나는 유독 야누스 처럼 두 얼굴을 가졌다.
사람에 대한 일에 대해서는 철저한 원칙주의자지만,
사적으로는 자유롭고 낙천적인 삶을 살아온 성개방주의자다.
죽고 나면 아무 소용없다는 생각에서 즐겁게 사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긴다.
그리고 여태 저축이란 걸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지금이야 돈 벌 능력도 없지만, 돈을 잘 벌던 젊은 시절도 돈은 생기면 생기는 데로 썼다.
영화, 음악, 사진 등 어느 한곳에 미치면 다른 것은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개인주의적 삶을 살아 늙어 비참하게 된다지만,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다.
정선 화재로 아끼던 것을 모두 잃기도 했으나, 한편으론 홀가분한 생각도 들었다.
아무것도 없다는 홀가분함이란 모든 두려움에서 해방시켜주었다.
8년 전 쪽방에 들어온 후 생활이 더 안정되었다.
지금은 아산 김선우 덕에 ‘사람사진관’을 만들어 이중생활을 하지만, 죽을 준비를 하는 중이다.
화가 장경호씨 말처럼, 김선우가 나를 요양하는 요양원 원장이나 마찬가지다.
원장 말은 잘 들어야 하니, 순한 양처럼 길들어 가는 것이다.
이제 겨울이 오면 쪽방으로 돌아갈 것이다.
겨울철은 농사일도 없는데다, 전시장도 누구나 오가며 쉽게 볼 수 있어 지킬 필요가 없다.
서울의 쪽방 두고 보일러 기름 태워가며 아산에 머물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동안 등한시한 동자동 일이나 사람 사는 일을 기록하며 마무리하고 싶다.
행여 아산을 지나친다면 ‘백암길사람사진관’에 들려 잠시 쉬어가시라.
전시된 ‘사람 사는 이야기’사진들을 돌아보며,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도 갖기 바란다.
준비된 방명록에 추억의 말씀도 한마디 남기시고...
사진, 글 / 조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