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덴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증거하는 바울
(사도행전 17 장< 2 >)
...
날마다 우리 안에
말씀의 지식을 넣어 주셔서
바른신학 바른신앙으로 바른 길 걸어가는 우리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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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하나님에 대해서는 소경임을
알아야 합니다. 비록 인간이 눈을 뜨고 세상
만물을 본다고 하지만 영이신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볼 수 없기에
알 수도 없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을 결코 알 수 없는 소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음 문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서 말한다면
그것은 모두 엉터리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자기 멋대로 추측
하고 연구하고 상상해서 만들어지는 가짜 하나님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가짜 하나님을 치기
위해 등장하는 것이 곧 성경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이런 분임을 하나님 스스로가 계시하고 계십니다.
아무도 알 수 없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해 주셔야 하나님을 제대로 찾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점을 그냥
지나쳐 버릴 때 우리는 우리의 헛된
지식으로 하나님을 만들어 내는 크나큰 우를 범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아덴에서 철학자들을 만났습니다.
철학자들은 자신들의 사고와 이성과 생각을
동원해 진리를 발견하고 신을 밝혀내기 위해 힘쓰는 사람들입니다.
인간의 지식을 동원하면 능히
신의 존재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이야 말로 신을 인간 아래 두는 것과 같습니다.
1.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아덴 사람들.
"붙들어 가지고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우리가 너의 말하는 이 교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겠느냐 네가
무슨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 되는 것을 말하고 듣는 이 외에 달리는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사도행전 17 :19-21)
아덴의 철학자들은 바울을
붙들어 아레오비고 광장으로 갔습니다.
이 새 교가 무엇인지 듣고자 바울을 붙들고 아레오바고로 갔습니다.
이곳 언덕에는 평평한 바위 광장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공개 강연도 했으나 주로 재판을 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바울이
말하는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알수 있느냐고 관심을 가졌습니다.
바울이 이상한 부활을 이야기 하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
싶어 했습니다. 아덴 사람들이 바울의 말을 듣고자 하는 것은
진리에 대한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지적 호기심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은 최신 지식에 대해서 논하는 데에만
시간을 소비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항상 새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들은 진리에 대해서 논했으나 진리를 좇지 않았습니다.
진리를 즐기기만 하고 진리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진리를 추구하는 훌륭한 지성인 같이 보이지만
실상은 지적 유희를 즐기는 천박한 내면성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2. 아레오바고에서 행한 바울의 설교.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사도행전 17 :22-23)
여기서는 성경을
인용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이방인들이므로 성경을 모릅니다. 일반적인 이야기로 설교합니다.
바울은 아레오바고 광장 가운데 서서 아덴 사람들이
범사에 종교심이 많다고 칭찬합니다. 바울은 그들의 우상을
보면서 분노하였지만 이제는 그들을 칭찬하면서 메시지를 전합니다.
바울은 이들에게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몰라
기도하던 중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는 메시지 제목이
떠올랐습니다. 바울은 먼저 그들이 종교성이 많음을 칭찬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두루 다니며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제단을 보았는데 그 신에 대해서 알게 해 주겠다고 서두를 꺼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대 최고의 지식을 자랑하는
철학자들을 앞에 앉혀 놓고 메시지를 전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완전히
이교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로서 성경이나 하나님에 관해서 전혀 모르는 자들이었습니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사도행전 17 :24-25)
바울은 이들에게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소개합니다. 하나님은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주관하시는 천지의 주재이십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통치하십니다. 하나님은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에게 섬김을 받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은 우상을 만들고 우상을 자신의 손에 둡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손에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헌금으로
먹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도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하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들에게
창조주 하나님을 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합니다. 바울은 먼저
아덴 사람들에게 천지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증거했습니다.
헬라인들은 종교성이 강하여 수많은
신들을 만들어 섬겼습니다. 이런 신들은 생명이 없기 대문에
인간에게 생명을 줄 수 없고 또 인간을 위험으로부터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천지의 주재로서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십니다.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창조주요 나의 구원자이십니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년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사도행전 17 :26-27)
창조주 하나님은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않으시고 피조물을
초월하여 계신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피조물을 초월하여 계시다고
해서 인간의 삶과 무관하게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신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할 수 있도록
인간의 삶과 역사 속에 구체적으로 살아서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셨습니다. 모든 인간은 아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노아시대에
모두가 심판을 받은 후에 노아를 통하여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후에 인간이 나누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연대를 정하셨습니다.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분복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죽는 것을 정하셨습니다.
각 사람을 인종과 민족과 거주지를 정하여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연과 양심을 통하여 하나님을 계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각사람에게서 멀리 게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셨습니다.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게 하셨습니다.
그와 같이 창조주 하나님을 공경하게 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있는 지금 여기에 계십니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이와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사도행전 17 :28-29)
우리는 하나님을 힘입어 하루 하루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힘입어 기동하며 존재합니다.
태양 없이 식물이 살 수 없듯이 우리는 하나님 없이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겨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우상을 섬기지 말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겨야합니다. 바울은 신을 우상 섬기듯이
한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올바르게 섬겨야 함을 증거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자연계시를
통하여 그의 능력과 신성을 계시
하셨으므로 하나님을 찾고자 하면 더듬어 발견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하나님을 알기에
부족함으로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특별계시를 허락하셨습니다.
3. 아덴에서의 전도.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사도행전 17 :30-31)
바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옛시대에는 하나님께서 버려두셨으나 이제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명하시기를 회개하라고 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습니다.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눈감아 주셨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는 자는 심판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정하신 예수님을 통하여 공의로 심판할 날을 정하셨습니다.
이 역사는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아무도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 날에는 우리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였지만.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해서 다시 듣겠다고 하였습니다. 복음에 대한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나중에 다시 들어 보겠다고 하며 떠났습니다.
"저희가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혹은 기롱도 하고 혹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이에 바울이 저희
가운데서 떠나매 몇 사람이 그를 친하여 믿으니 그 중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사도행전 17 :32-34)
바울은 아덴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길가와 같은 척박한 곳에서도
몇 사람이 믿었습니다. 바울이 가는 곳마다 교회가 세워졌지만
아덴에서는 교회가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아덴 전도는 미미하였습니다.
단지 몇 사람이 그의 말을 믿었습니다.
전도의 결과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전도를 받고 믿는 자들이 많든지 적든지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요 우리는 단 한 사람이 구원받을 지라도 귀하게 여겨야 할 것입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성령의 도우심 없이 인간의 지식과 지혜로
복음을 전하게 될 때 능력과 결실을 얻어낼 수
없음을 아덴에서 바울의 전도를 통하여 깨닫습니다.
결국 바울은 아덴 사람들로부터 몇명의 회심자를
얻었을 뿐 그들의 무관심과 조롱속에서 돌아설 수 밖에
없었음을 보면서 인간이 아무리 지식이 많고 지혜가
뛰어난다 할지라도 성령님의 도움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보잘것 없는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비록 아무것도 할수 없는 우리들이지만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능치 못함이 없는 것 또한 믿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의지하여 남은 생애를 승리하는
우리 모두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하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4. 7. 30. -샬롬- 예수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