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을 아는 것이 큰 힘이 된다)
맹상군의 집에는 늘 식객이 북적거렸다.
그는 아버지 전영이 재상을 지낼 때부터 모은 많은 재산을 털어 그 식객들을 대접하였다.
식객들이 수천이나 되었지만 귀천을 가리지 않고 한결같이 후대하였다.
어느 날 맹상군이 손님을 접대하여 같이 저녁을 먹을 때였다.
그때 누군가가 불빛을 막아 맹상군의 식탁을 가렸다. 손님은 맹상군과 자신의 식탁에
차등을 두었기 때문에, 일부러 불빛을 막아 감추려 한다고 생각하고 투덜거렸다.
맹상군은 자신의 식탁을 손님에게 보여주었다. 손님의 식탁과 똑같았다.
그 손님은 자신의 못난 행동을 부끄럽게 여겨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진(秦)나라 소왕(昭王)도 맹상군의 명성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느 날 진나라 경양군(涇陽君)을 제나라에 인질로 보내고, 그 대신 맹상군을 진나라로 초청하였다.
맹상군의 식객들은 모두 말렸다.
“진나라로 가면 잡힙니다. 가지 마십시오.
“그래도 저쪽에서 초청한 건데 아니 갈 수가 없질 않소?”
맹상군은 제나라의 입장을 생각해서 진나라로 가려고 하였다.
그때 소진의 아우인 소대(蘇代)가 다음과 같은 ‘우화’를 예로 들어 말하였다.
“오늘 아침에 제가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나무로 만든 인형이 싸우는 걸 목격했습니다.
나무 인형이 ‘하늘에서 비가 오면 네 몸은 허물어지고 말거야’ 하고 흙 인형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흙 인형이 ‘나는 흙에서 출생하였으니 허물어지면 다시 흙으로 돌아가면 그뿐이지만,
너는 비가 오면 정처 없이 떠내려가서 다신 돌아오지 못할 거야’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진나라는 호랑이나 이리처럼 사나운 나라입니다.
그런 곳에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다면 흙 인형에게 비웃음을 당한 나무인형 꼴이 되고 말 것 입니다.”
소대의 말을 듣고 맹상군은 진나라로 가지 않았다.
그러나 제나라 민왕 25년에, 맹상군은 어쩔 수 없이 진나라 사신으로 가게 되었다.
진나라 소왕은 맹상군을 보자 곧 자기 나라의 재상으로 삼으려 하였다.
그때 진나라 신하가 말하였다.
“맹상군은 현명합니다.
진나라 재상이 되더라도 제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반드시 자기 나라를 위하여 일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 진나라에게는 위험인물입니다.
이 기회에 그를 가둔 후, 죄를 씌워 죽이는 것이 상책입니다.
이번에 그를 놓아 보낸다면 크게 후회할 날이 있을 것입니다.
진나라 소왕은 신하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였다. 곧 맹상군은 숙소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진나라 소왕이 군사들에게 명령하여 연금을 해버린 것이었다. 이렇게 되자 맹상군과
그리고 그와 함께 간 식객들은 진나라에서 벗어나 무사히 제나라로 돌아갈 방책을 논의 하였다.
식객 중에 진나라 소왕의 애첩 행희(幸姬)와 잘 통하는 사람이 있었다.
“염려 마십시오. 소왕이 총애하는 애첩으로 하여금 승상을 석방하게 해달라고 부탁해 보겠습니다.”
그 식객은 곧 행희를 만나 부탁하였다.
“맹상군은 흰 여우 가죽으로 만든 귀한 옷을 갖고 있다들었소.
그것을 내게 주면 맹상군을 풀어 달라고 대왕께 부탁드려 보지요.”
식객은 이와 같은 행희의 말을 맹상군에게 와서 전하였다.
“허어, 큰일이군. 하나밖에 없는 그 옷은 이미 소왕에게 바쳤는걸.”
‘호백구(狐白裘)’라는 그 옷은 값이 천금이나 나가는 천하에 둘도 없는 보물이었다.
“염려 마십시오. 그 호백구를 제가 훔쳐오겠습니다.”
한 볼품없이 생긴 식객 하나가 선뜻 나섰다.
“그대가 어떻게?”
“전직이 도둑이었습니다.”
밤에 나간 그 식객은 새벽녘이 되자 진나라 보물 창고 깊숙이 숨겨져 있던 호백구를 훔쳐가지고 돌아왔다.
맹상군에게서 호백구를 선물 받은 행희는 곧 소왕을 만나 간곡하게 부탁하였다.
애첩의 말을 거절하지 못하는 소왕은 곧 맹상군을 연금 상태에서 풀어주었다.
밤이 되기를 기다려 맹상군 일행은 몰래 진나라 궁궐을 빠져나와 함곡관까지 왔다.
그런데 관문이 꼭 잠겨 있었다. 당시에는 첫닭이 울어야 관문을 열게 되어 있었다.
야반도주를 한 맹상군 일행은 진나라 관군이 추격해 올까봐 새벽까지 기다리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한편 진나라 소왕은 맹상군 일행이 몰래 궁궐을 빠져 나간 것을 알고 크게 노하였다.
“맹상군을 풀어준 것은 과인의 실수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맹상군이 아직 함곡관을 벗어나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차피 새벽이 되어야 관문이 열릴 것이니 서둘러 추격하라.”
소왕은 군사들을 함곡관으로 출동시켰다.
맹상군 일행은 함곡관 관문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르며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때 식객 하나가 불쑥 튀어나와 말하였다.
“제가 관문을 열어 보겠습니다.”
“아니, 어떻게?”
“앉아서 구경만 하십시오.”
그 식객은 입을 오므려 닭울음소리를 내었다. 그러자 인근의 닭들이 모두 그 소리를 흉내 내어 울었다.
함곡관을 지키던 문지기 들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아니 벌써 새벽인가?”
문지기들이 관문을 열자, 맹상군 일행은 미리 가짜로 만들어 두었던 통행증을 제시하고
무사히 함곡관을 벗어나 제나라로 돌아왔다.
-《인물로 읽는 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