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미국을 지칭해 동맹 또는 혈맹이라고 한다. 6,25 전쟁 때 미국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걸고 피 흘려 공산침략에서 우리의 국토와 국민을 지켜줬기 때문이다. 전쟁 중에도 먹고사는 문제는 역시 경제다. 즉 돈이 있어야 한다. 미국이 우리의 혈맹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전맹(錢盟)이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대부분 잘 기억을 못 하고 있다.
우리가 아프리카의 후진국이나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국가를 잘 모르듯이 78년 전 아시아의 신생국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아는 세계인들은 별로 없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지 1년 반, 1950년 6,25 전쟁이 터지자 미국의 뉴욕타임지에는 한국의 운명을 걱정하는 기사가 실렸다.
대구, 부산을 제외한 전 국토가 인민군에 점령당하자 미국이 주도한 유엔 16개국이 참전 신의주, 원산까지 북진했다. 중공군 개입으로 1,4 후퇴를 하자, 뉴욕타임지는 "한국전쟁으로 전쟁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미국 정부의 증세와 적자를 톱기사로 다루었다.
정작 재정적자를 걱정해야 할 한국은 걱정을 덜했다. 어차피 미국의 원조로 연명하고 있으니 걱정해 봤자 대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의 회계연도는 독립기념일에 맞춰 7월에 시작했다. 우리 정부는 회계연도를 미국의 회계연도와 일치시키고, 미국의 원조금만 기다렸다.
미국 의회가 한국의 원조금이 확정돼야 우리 정부가 그에 맞춰 예산편성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우리의 현안은 경제사정이 아니라 '돈' 그 자체였다. 한국정부가 회계연도를 1월로 변경한 것은 미국의 원조가 줄어든 1957년부터다.
6,25 전쟁이 터지자 6,27일 정부는 서울을 버리고 급히 남하하면서 한국은행 지하 금고의 화폐를 포기하고 후퇴했다. 그 돈이 북한군 수중에 들어가자 정부는 새 돈을 찍지 않을 수 없었다. 화폐 제작은 일본 대장성 인쇄국이 맡았다. 미 태평양사령부가 일본 인쇄국 직원들을 감금하고 밀어부쳐, 화폐 도안에서 제작 수송까지 보름밖에 안 걸렸다. 인쇄비는 미국이 부담했다.
그 당시 한국이라는 나라는 미국에는 '돈 먹는 하마'였다. 전쟁이 최고조였던 1952년 미국 정부가 한국에 뿌린 돈은 미국의 총생산 (GDP)의 4,2%였다. 미국이 같은 전쟁을 치른 베트남(2,3%), 이라크 (1,0%), 아프가니스탄( 0,7%) 등 3개국 전쟁에서 뿌린 것보다 많았다. 1953년 2월 한국정부는 또다시 인플레이션에 따른 화폐개혁을 실시했다. 그 화폐는 미국정부가 인쇄하고 인쇄비도 미국이 부담했다.
미국은 우리의 '혈맹(血盟)이면서 전맹(錢盟)'이었다. 미 연준은 통화스와프 계약을 통해 달러를 빌려주고 한국은행은 미국 국채에 투자한다. 그 옛날 '돈 먹는 하마가'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되고 믿음직한 미국의 파트너로 발전한 것은 우리의 긍지요 미국의 보람이다. 이러한 우리의 현대사조차 모르는 좌파 정권들은 적(敵)과 동지(同志)도 구별을 못하고, 우리의 안보를 놓고도 미국과의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문재인은 중국방문 때 시진핑에게 미국이 추진하는 한, 미, 일 군사동맹포기, 미국 MD체계포기, 사드추가배치포기 등 3불 정책을 약속하고, "중국은 높은 산 한국은 작은 산봉우리 중국몽(夢)을 따르겠다"고했다" 이재명은 "중국에도 쉐쉐" "대만에도 쉐쉐"라면서 "미군은 침략군" "김일성, 김정일 선대들의 업적을 폄하해서는 안된다" "전시작전권을 임기 내 회수하겠다"는 등 그 따위 소리로 우리의 안보를 무력화하면서 친중, 종중, 친북, 종북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