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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광송신경교중
해마다 부활 제4주일은 ‘성소 주일’이다. ‘하느님의 부르심’인 성소(聖召)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특별히 사제, 수도자, 선교사 성소의 증진을 위한 날이다. 성소 주일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진행되던 1964년 성 바오로 6세 교황이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 9,37-38) 하신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정하였다. 이날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성소를 계발하고 육성하는 일에 꾸준한 기도와 필요한 활동으로 협력해야 할 의무를 일깨우는 기회가 되고 있다.
오늘 전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목자의 비유를 드시며 당신을 ‘양들의 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교회는 오늘 ‘성소 주일’을 지내며 주님의 뜻을 받들어 성직과 수도 생활을 지망하는 이들이 주님의 부르심에 늘 귀 기울이도록 기도합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이 미사에 참여하며 주님께서 한국 교회에 풍성한 성소의 은총을 베풀어 주시기를 한마음으로 청합시다.
입당송 시편 33(32),5-6 참조
주님의 자애가 온 땅에 가득하네. 주님은 말씀으로 하늘을 여셨네. 알렐루야.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목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앞장서 가신 나라로
나약한 양 떼인 저희를 이끄시어
하느님과 함께 천상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제1독서<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주님과 메시아로 삼으셨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2,14ㄱ.36-41
오순절에, 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일어나 목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36 “이스라엘 온 집안은 분명히 알아 두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님을
주님과 메시아로 삼으셨습니다.”
37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꿰찔리듯 아파하며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형제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38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39 이 약속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손들과 또 멀리 있는 모든 이들,
곧 주 우리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이에게 해당됩니다.”
40 베드로는 이 밖에도 많은 증거를 들어 간곡히 이야기하며,
“여러분은 이 타락한 세대로부터 자신을 구원하십시오.” 하고 타일렀다.
41 베드로의 말을 받아들인 이들은 세례를 받았다.
그리하여 그날에 신자가 삼천 명가량 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시편 23(22),1-3ㄱ.3ㄴㄷ-4.5.6(◎ 1)
◎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또는
◎ 알렐루야.
○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 돋우어 주시네. ◎
○ 당신 이름 위하여 나를 바른길로 이끌어 주시네.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두려울 것 없나이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 저에게 위안이 되나이다. ◎
○ 원수들 보는 앞에서 제게 상을 차려 주시고, 머리에 향유를 발라 주시니, 제 술잔 넘치도록 가득하옵니다. ◎
○ 제 한평생 모든 날에 은총과 자애만이 따르리니, 저는 오래오래 주님 집에 사오리다. ◎
제2독서<여러분은 영혼의 목자이신 그리스도께 돌아왔습니다.>
▥ 베드로 1서의 말씀입니다.2,20ㄴ-25
사랑하는 여러분,
20 선을 행하는데도 겪게 되는 고난을 견디어 내면,
그것은 하느님에게서 받는 은총입니다.
21 바로 이렇게 하라고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시면서,
당신의 발자취를 따르라고 여러분에게 본보기를 남겨 주셨습니다.
22 “그는 죄를 저지르지도 않았고 그의 입에는 아무런 거짓도 없었다.”
23 그분께서는 모욕을 당하시면서도 모욕으로 갚지 않으시고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위협하지 않으시고,
의롭게 심판하시는 분께 당신 자신을 맡기셨습니다.
24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를 당신의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 나무에 달리시어,
죄에서는 죽은 우리가 의로움을 위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분의 상처로 여러분은 병이 나았습니다.
25 여러분이 전에는 양처럼 길을 잃고 헤매었지만,
이제는 여러분 영혼의 목자이시며 보호자이신 그분께 돌아왔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요한 10,14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 알렐루야.
복음<나는 양들의 문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1-1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는 자는 도둑이며 강도다.
2 그러나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들의 목자다.
3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4 이렇게 자기 양들을 모두 밖으로 이끌어 낸 다음,
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
5 그러나 낯선 사람은 따르지 않고 오히려 피해 달아난다.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에게 이야기하시는 것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하였다.
7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
8 나보다 먼저 온 자들은 모두 도둑이며 강도다.
그래서 양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9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10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올 뿐이다.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보편 지향 기도<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영원한 목자이신 주님, 주님의 백성을 교회로 불러 모으시고 이끌어 주시니, 교회가 세상에서 어떤 어려움과 비난을 겪더라도 꿋꿋이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게 하소서.
2. 성소 주일을 맞아, 성소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영원한 목자이신 주님, 주님의 거룩한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저희에게 강복하시고, 특히 사제와 수도자의 삶을 지망하는 이들에게 지혜와 용기를 주시어, 주님을 향한 믿음과 열정을 충실히 키워 나가게 하소서.
3. 박해받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보호자이신 주님, 억압과 폭력에 시달리는 그리스도인들을 굽어 살피시어, 당신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곳에 예수님께서 언제나 함께하심을 믿고, 모든 교회가 그들과 연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4. 교구(대리구, 수도회)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일치의 주님, 저희 교구(대리구, 수도회)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을 주님의 사랑으로 이끌어 주시어, 서로서로 지켜 주며 하나 되고 각자의 사명과 역할에 충실하게 하소서.
예물 기도
주님,
이 거룩한 파스카 신비로 저희 구원을 이루시니
저희가 감사하며 드리는 이 제사가
저희에게 영원한 기쁨의 원천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감사송<부활 감사송 1 : 파스카의 신비>
주님, 언제나 주님을 찬송함이 마땅하오나
특히 그리스도께서 저희를 위하여 파스카 제물이 되신 이 밤(날, 때)에
더욱 성대하게 찬미함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죄를 없애신 참된 어린양이시니
당신의 죽음으로 저희 죽음을 없애시고
당신의 부활로 저희 생명을 되찾아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기쁨에 넘쳐 온 세상이 환호하며
하늘의 온갖 천사들도 주님의 영광을 끝없이 찬미하나이다.
영성체송
착한 목자, 당신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셨네. 당신 양 떼를 위하여 돌아가시고 부활하셨네. 알렐루야.
영성체 후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양들은 목자의 목소리를 알기에 낯선 이를 따라가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가끔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운 인생의 갈림길과 유혹을 만납니다. 그때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그분의 품에 머무른다면 참된 삶의 길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착한 목자이신 하느님,
성자의 고귀한 피로 구원하신 양 떼를 인자로이 돌보시고
하늘의 영원한 풀밭으로 이끌어 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복음 묵상),요한의 뜨락에서 퍼옴
목자에 관한 예수님의 담화는 오늘 복음에 앞서 소개된 예수님과 바리사이들의 논쟁(9,40-41)에서 시작됩니다. 바리사이들은 자신들이 눈먼 자임을 인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잘 보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모든 지식을 지니고 있다는 자기만족과 교만으로 그들은 죄인으로 단죄받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에 머물러 있는 바리사이들에게 목자에 관한 이야기로 가르치십니다. 먼저, 목자에 관한 비유에서는 서로 다른 두 부류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한 부류는 ‘도둑과 강도’입니다. 그들은 양 우리로 들어갈 때 문이 아닌 다른 곳으로 넘어 들어가 양들을 훔치고 죽이며 멸망시키려고 합니다. 다른 부류는 ‘양들의 목자’입니다. 목자는 도둑이나 강도와는 달리 문으로 들어가서 양들의 이름을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가고, 양들은 그를 따릅니다.
이처럼 목자가 양들에게 가는 이유는 양들이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비유에 이어지는 가르침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양들의 문’으로 계시하십니다. 앞선 비유에서 ‘문’은 양들이 드나들 수 있는 곳으로 상징되었고, 이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문’으로 소개하십니다. 양들은 ‘양들의 문’이신 예수님을 통해서만 좋은 풀밭으로 갈 수 있고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양들의 생명을 위하여 필요한 것을 주시는 중개자이십니다. 여기서 도둑과 강도는 예수님과 대립하는 바리사이들을 가리킵니다. 오늘 복음은 ‘양들의 목자’이자 ‘양들의 문’이신 예수님을 조금 더 바라보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그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그분의 안내를 받을 수 있고, 그분을 통하여 풀밭으로 들어갈 때 먹을 것을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할 분은 오직 목자이신 예수님뿐이십니다.(정진만 안젤로 신부)
예수님께서 나셨던 팔레스티나는 우리나라 경상도 정도 크기의 작은 나라입니다. 해안 지역을 빼고는 대부분 지역의 기후가 건조하고 메마른 나라입니다. 당시 내륙 지방의 갈릴래아 지역과 요르단 강 주변을 빼고는 올리브를 가꾸고 양 떼를 기르며 목축업을 할 수 있는 산록 지대였습니다.
팔레스티나 지역의 기후는 우기와 건기로 나누어지는데, 특히 건기가 되면 목자들이 양들을 데리고 멀리 풀밭을 찾아다녀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날이 저물면 임시 양 우리에 들어가 다른 양 떼들과 섞여 밤을 지내게 됩니다. 그래서 밤이면 종종 도둑들이 양 우리를 넘고 들어와 양들을 해치고 훔쳐서 달아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아침이 되면 목자들은 각자 자기의 양들을 하나하나 불러내어 다시 풀밭으로 데려갑니다. 목자들이 양 떼를 그냥 몰고 다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양들 하나하나에 목자들이 지어 준 고유한 이름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목자가 이름을 부르면 그 목소리를 정확히 알아듣고 소리를 내며 주인을 따라 나선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목자와 양들의 풍경을 보시며 사셨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의 무리가 마치 양들처럼 느껴지셨을 것입니다. 어디로 갈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바라보시며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다.”(마르 6,34)라고 하셨지요. 그래서 몸소 우리 인생길을 이끄시는 목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이른 아침 목자를 따라 나서는 양들처럼, 우리는 오늘도 신나게 주님을 따라나서는 것입니다. 그분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분께서 이끄시는 대로 사는 것입니다. 착한 목자이신 그분께서 오늘도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부활 제4주일은 1964년 교황 바오로 6세의 지향을 따라 ‘성소주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 그러니 하느님께 일꾼을 청하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황님은 교회 공동체가 함께 기도하면서 교회를 위해서 봉사할 일꾼을 하느님께 청하자고 하였습니다. 성소는 하느님의 부르심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예언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 모세,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예’라고 응답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였습니다. 예언자들은 고통 중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위로와 용기를 주었습니다. 우상 숭배를 일삼는 백성들에게는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하느님께 돌아 올 수 있도록 촉구하였습니다. 구약성서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충실하게 응답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모세는 시나이 산에서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십계명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잘 지키는 사람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성실하게 응답하는 사람입니다. 십계명의 가르침을 어기는 사람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따르지 않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면서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들을 부르셨습니다. 어부들은 그물을 버리고, 배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죄인으로 손가락질 받던 세리를 부르셨습니다. 세리는 세상의 재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열혈당원 시몬도 부르셨습니다. 열혈당원 시몬은 칼로 세상을 바꾸는 길을 포기하고 복음으로 세상을 바꾸는 길을 따랐습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는 12명의 제자들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과 함께 길을 떠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3가지 권한을 주셨습니다. 첫째는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기쁜 소식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예수님의 말씀과 표징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복음서를 만들었습니다.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표징과 말씀을 전하는 책입니다. 복음은 죽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신앙의 신비여! 우리는 주님의 죽음을 전하며, 주님의 부활을 굳게 믿나이다.’라고 선포하였습니다. 둘째는 마귀를 쫓아내는 것입니다. 마귀는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갈 때 사라집니다. 셋째는 병자들을 치유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마귀를 쫓아내고, 병자들을 치유하는 사도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의 자세를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너희 중에 첫째가 되고자 하는 자는 꼴찌가 되어야 한다. 나는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려고 왔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은 성공, 명예, 권력에 연연하면 안 된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하느님의 나라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였습니다.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습니다. 교회가 권력과 가까이 있을 때는 부정과 부패가 있었고, 타락하였습니다.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은 겸손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직접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면서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의 교만과 위선을 꾸짖으셨습니다. 과부의 정성과 세리의 겸손한 기도를 칭찬하셨습니다. 학식이 많은 사람도, 능력이 많은 사람도 교만의 유혹을 이기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교회의 문턱이 높아질 때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은 교회를 떠나야 했습니다.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까지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그 십자가 위에서 부활의 꽃이 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십자가를 두려워했고, 모두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2000년 교회의 역사는 십자가를 충실히 지고 갔던 신앙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기꺼이 목숨을 바쳤던 순교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성소주일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충실하게 응답하는 신앙이 되면 좋겠습니다.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답게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겸손한 마음으로 주어진 십자가를 충실하게 지고 가면 좋겠습니다. “선을 행하는데도 겪게 되는 고난을 견디어 내면, 그것은 하느님에게서 받는 은총입니다. 바로 이렇게 하라고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시면서, 당신의 발자취를 따르라고 여러분에게 본보기를 남겨 주셨습니다.”
유목생활을 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목자라는 낱말은 매우 친밀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은 그들의 신앙 안에서 목자라는 말을 들으면, 그들의 삶을 이끌어주시는 주 하느님을 떠올리게 됩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를 돋우어 주시고 바른길로 나를 끌어 주시니 당신의 이름 때문이어라.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가 저에게 위안을 줍니다.
당신께서 저의 원수들 앞에서 저에게 상을 차려 주시고 제 머리에 향유를 발라 주시니 저의 술잔도 가득합니다.
저의 한평생 모든 날에 호의와 자애만이 저를 따르리니 저는 일생토록 주님의 집에 사오리다.”(시편 23편)
성소주일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묵상하는 날입니다.
성경에서 하느님께서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부르실 때, 그 부르심은 항상 그들에게 이웃들의 구원에 도움을 주라는 "사명"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모세를 부르실 때도 그러했고, 사무엘을 부르실 때도 그러했으며, 예레미야를 부르실 때도 그러했고,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을 부르실 때도 그러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도 신학대전 2부를 쓰시며 그리스도인이 받는 부르심이라는 은사는 자기 자신의 이익이나 자아실현이 아닌 '공동체의 성장"을 위한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신앙생활을 "마음의 평화"와 같은 개인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 같은 것으로 생각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모든 세례받은 신자들, 특히 사제성소과 수도성소의 은사를 받은 이들에게 바라시는 사명은 공동체와 그 구성원들의 영적인 성장에 이바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부르심은 참으로 성체성사적입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를 성장시키는 맛있는 빵이 되라고 부르심을 받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른 이들의 생명을 충만하게 하는 빵이 될 때, 우리는 참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성취하게 됩니다.
우리는 어쩌다보니 태어나 있으니 기왕이면 죽기 전까지 적당히 재미있고 편하게 사는 것이 목표인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느님이 없다고 생각하고 사는 수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하느님께 사명을 받는 사람의 삶은 그렇지 않은 사람의 삶과 다를 수 밖에 없고, 또 달라야 합니다.
부르심이라는 은사로 인하여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어디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