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출처-http://www.soccer4u.co.kr/ 날으는돈까스님의 글
<첼시 V 바르샤 뒤늦은 후기 - 명불허전의 反轉>
1.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
보통 당대의 극강이라 평가받는 팀들끼리의 일전이 서로에 대한 두려움이 증폭된 나머지 맥빠진 범전으로 일관하거나 지루한 공방을 거듭하다 뽀록골로 승부가 갈리는 경우가 종종있어왔다. 아니면 스코어 자체가 아예 팽팽하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어느 한쪽의 일방적 대승으로 끝나버린 나머지 우리가 기대하는 극강과 극강이 충돌하는 혈투의 페이소스를 충분히 느끼지 못한 불만이 엄습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잘까말까 고민하다 그냥 밤새서 봐버린 첼시와 바르샤전은 지난 십수년간 기억나는 전설적 경기의 목록에 당연히 포함시킬 수 있을 정도의 名不虛傳이었다고 감히 평가하고 싶다. 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 유럽의 축구전문기자들이 “흡사 21세기의 축구를 본 것 같다”고 평가했던 이탈리아 대 브라질전, 두팀이 지닌 모든 역량을 다 불태워 버린 프랑스와 서독간의 준결승 연장혈투, 최근의 유로 2004에서 왜 베컴이 지단에 비해 한 수 아래일 수 밖에 없는가를 잘 보여준 잉글랜드 대 프랑스의 반전 등 우리의 심금을 울렸던 클래식들이 많았지만 게임의 수준치에 있어서 첼시 - 바르샤전은 한치도 뒤질게 없는 찬탄의 연속이었다는게 내 느낌이다.
리오넬 메시가 보여준 천재성 - 수많은 포스트 마라도나가 당대의 기대를 한껏 받으며 등장했지만 결코 마라도나의 포스에 미치지 못하는 지리멸렬로서 “뛰어나다 하지만......”이라는 일련의 평가에 머무는 아쉬움으로 그쳤음은 잘 아는 사실인데 어떤면에서 전세계 축구팬들에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확실히 자리매김한 실질적인 ‘데뷔전’으로서는 메시가 오히려 마라도나보다 더 난이도 높은 무대에서 화려하게 등장한 것이라고 진단해 본다. 마라도나라는 존재가 전세계적으로 깊이 각인된 데뷔무대는 아르헨티나와 소련의 코카콜라컵 청소년 대회의 결승이었는데 마라도나의 상대와 메시의 상대는 그 레벨부터가 존재의 지평을 달리하는 수준이었다는 점에서 어쩌면 청출어람일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조심스러운 성급함마저 느껴진다. 아무튼 최근 몇 년간 극강의 첼시수비라인이 그처럼 혹독하게 시달린적이 있었는가하고 갸우뚱거려질 정도로 메시가 보여준 플레이는 첼시의 최강철벽에 비해서도 레벨자체가 틀렸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보는내내 찬탄을 금치못하게 되는............ 슬럼프에 빠졌다는 박주영은 한번쯤 첼시전에서 메시가 보여준 플레이에서 필을 받아보기를..........
호나우딩요 - 게임의 승패를 가르는 키플레이어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준 후반 중반이후의 마술은 메시의 재능과 시너지를 이루면서 더욱 빛을 발했다. 슬로우-퀵, 슬로우-퀵으로 템포를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그의 패싱과 볼컨트롤은 그동안 투박하고 천편일률적인 프리미어리그의 상대팀들과는 전혀다른 스타일로 첼시라인에게 다가왔을게 분명하다. 특히 사이드라인에서 별로 대수롭지 않아보이는 능수능란한 볼터치로 여유있게 메시와 데코와의 주고받음으로 첼시진영을 휘젓는 포스는 정말 대단했다. 마치 재즈연주에서 오랫동안 쉬다가 갑자기 빛을 발하는 즉흥 트럼펫 독주를 듣는듯한 감흥 - 원래 위대한 연주자는 짧은 순간의 프레이즈로 절제하는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라르손의 결정적 슈팅시도를 몸을 던져 막아내는 존 테리의 그렁그렁한 눈망울이 오래전부터 바르샤 광팬인 필자의 입장에서도 이 경기에서 가장 인상깊은 부분이었다. 전날 레알과 아스날전을 시청한 필자는 감히 레알의 멤버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은데 당신들 다 합쳐도 존 테리만큼도 못하다고 따끔하게 질책하고 싶다. 갈라티코 정책이라 명명되는 선수사재기의 외형적 본질은 언뜻 레알과 첼시가 닮아있지만 그 내포적 함의가 결정적으로 차이나는, 레알엔 없고 첼시엔 있는 그것은 바로 존 테리의 그 투혼의 눈동자였다. 바르샤 못지않게 첼시의 멤버들이 유감없이 보여준 투혼과 저항정신은 바르샤의 화려함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는 순도높은 수준이었음에 경의를 표한다. 메시와 비교해서 별로 뒤지지 않는 윙어의 질주를 잘 보여준 아르옌 로벤의 휘젓기는 일전의 씨날도 비판글에서도 지적했듯이 요컨대 씨날도가 왜 로벤이나 메시에 비해 비능률적이고 축구를 보는 안목이 한참 처지는가를 잘 보여준 것이었다. 씨날도 너는 아~~~직 멀었다. 경쟁자들에 비해서..............
2. 진정한 축구란 무엇인가? - 기계적 메커니즘과 즉흥연주의 feel
1) 일명 ‘첼스키 제국’이 지니는 시대적 의미
현재 첼시만큼 애증이 교차하는 팀도 없을 것이다. 선수사재기의 포식성이 리그는 물론 유럽축구 전반의 균형발전을 가로막는 빈익빈 부익부를 야기한다는 비난, 그 아브라모비치의 종자돈이 결국은 구소련 붕괴의 혼란에 편승한 지저분하고 더러운 검은 돈일 가능성이 크다는, 무엇보다 일종의 신흥재벌 내지는 졸부가 리그의 선두질주와 트로피의 독식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어떤 질시와 배아픔 등등....... 어차피 자본주의 구조에서 돈많은 쪽이 이기는건 너무도 당연한 거 아니냐는 시각등이 버무려져 어떤면에서 ‘첼시’는 현대의 축구가 직면한 시대적 논쟁거리이자 화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시각은 이와는 조금은 다른각도에서 첼시가 조명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리가 축구에 빠져든 것은 개개인의 이력에서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농구, 야구 혹은 미식축구처럼 애초부터 역할분담이 미리 정해져 있는 기계적 분업논리 혹은 그렇기 때문에 승패의 예상이 크게 빗나가지 않는 전력의 우열등이 가져다 주는 투명성과는 축구란 본질부터가 틀리기 때문이라고 본다. 축구의 포지션이나 전형이란 원칙적으로 편의성과 대체적 아우트라인에 불과한 것이지 골키퍼라는 특화된 포지션을 제외하고는 10명의 플레이어가 공격을 하든 수비를 하든 별로 어색하지 않은 것이다. 축구는 흐르는 물이며 형체가 없다. 알렉산더 대왕이 남긴 유명한 어구 - “전쟁이란 물과같이 일정한 형태가 없으며 시시각각 변동하는 격동의 연속이다. 따라서 전쟁터에서의 결정 역시 격동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된다.”- 와 축구가 지니는 본질은 같다. 따라서 우리는 야구가 일일이 감독의 싸인을 받아가며 번트를 대거나 커브를 던지는 장면을 비아냥 거리는 것이며, 엄청난 떡대와 키큰 달리기선수로 특화된 미식축구를 양키나 하는 운동으로 폄하하고, 근본적인 피지컬의 차이가 대체로 승패의 최우선 요소일 수 밖에 없는 농구에도 ‘감격’의 수준에는 필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가장 정해진 것이 없는 무정형과 자유, 원시적 질주의 격동, 하나하나의 플레이어가 조직적 조화를 추구하면서도 개개인의 개성이 발현되어야 하는, 더 나아가 피를 끓게만드는 축구에 헌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축구는 이러한 자유와 격동성보다는 미리 짜여진 정형과 틀에 끼워맞춰지는 메커니즘이 승리를 부르는 분업원리가 대세로 자리잡기 시작한 듯 보인다. 애초에 원시적인 WM포메이션에서 시작한 축구의 전형이 카테나치오와 토틀사커로 업그레이드되고 아리고 사키의 352에서 급기야 에메자케가 잘보여준 4231, 오늘날의 주류인 변형 433 내지 442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내가 보기엔 매뉴얼적인 체계성은 분명 확보한반면 축구가 위대한 플레이어의 천재적 역할에 따라 반전되는 드러마틱한 요소는 확실히 감소해버린 듯 하다는건 나만의 착각인가? 특히 위닝이나 씨엠에서 한번쯤 경험해본 팀빌딩의 기계적 원리가 현실에서 재현되는 건 바로 ‘첼시’라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마치 명품보석을 저택의 진열장에 사모으듯 타팀에서는 레전드급의 상시주전일 선수들을 끌어모아 이 기계가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하려면 이 부분에서 어떤 크기의 톱니바퀴가 끼워져야 하는가하는 냉혹한 효율논리가 지금 첼시의 선수기용과 정책 - 특히 무링요의 전술에서 짙게 배어나온다. 다시말해서 무링요에게 있어 축구와 선수란 단지 승리라는 무링요의 오만함에 덧붙여질 당연한 결과의 소모품 그 이상도 그이하도 아니다라는 멘털리티가 느껴지는건 나만의 비약에 불과한 것일까? 바티와 비교해서 별로 뒤질것없는 크레스포가 보통 전반전에 한번쯤 기용되다 옵사이드에 몇 번걸리는 장면에서 드록바나 구드욘센으로 대체되고 SLP같은 아까운 재능이 벤치를 데우는 안타까운 시간들하며, 조콜의 댄스에 대한 무링요의 장난아닌 경고성 멘트 급기야 웨인브리지가 임대되어 가는 현실은 어떤면에서 ‘먹자니 이미 배는 부르고 남주자니 아까운’의미로 다가온다. 첼시의 탄탄한 전술이라든가 팀의 짜임새를 결코 폄하하는 것은 아니나 어떤면에서는 첼시의 질주가 그팀의 자생적 노력의 결과라기 보다는 타팀의 눈물겨운 보강시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사재기 정책’에도 무시할수 없을 정도의 요인이 있다는 것을 감히 지적해두고 싶다. 졸라가 활약하던 첼시가 지금은 오히려 그립다.
요컨대 첼스키제국이라는 다의미적 언어가 지니는 형용은 현대의 비인간적인 신자유주의와 기계적 메커니즘이 축구의 영역에서 잘 체화되어 나오고 있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그것은 레알과 마찬가지의 갈라티코에 무링요의 냉혹한 효율이 맞물리는 과정에서 더욱 상승기류를 일으킨다. 이제 축구선수는 땀과 체온이 느껴지는 ‘인간’이라기 보다는 1대0승리라는 한계가치를 위해 투입하는 생산요소로 전락한 느낌마저 든다. 최근의 첼시가 바로 이런점에서 필자는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인간이 느껴지는 축구에서 기계적 몰인간성의로의 전환이 특히 자본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것이 자칫 종국적으로 “공은 둥글다”라는 축구본연의 요소를 사장시킬 위험성이 크기에 더욱 그렇다.
2) 기계적 메커니즘과 즉흥연주의 feel: 첼시 대 바르샤
필자가 이 경기를 관심있게 지켜본 논점은 바로 이것이었다. 과연 바르샤의 현 멤버가 보여주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정신의 프리롤이 첼시의 꽉짜여진 철벽과 만나면 어떤 화학반응을 일으킬 것인가하는 것이었다. 첼시가 패배한 이유는 내가 보기에 ‘무링요의 안일함과 나이브함“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프리미어리그의 호적수들을 상대하는 밑그림의 답습으로 바르샤도 역시 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그런........ 바르샤가 그런 팀들과 레벨이 다른 위대한 팀임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한마디로 ”스타일“이 전혀다른 팀이었음을 간과한 것은 아닌가? 아니면 설마 무링요 자신이 지니는 자기 전술에 대한 정체성이 너무도 강한 나머지 자존심상 도저히 ”바르샤용 새로운 틀“을 들이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델 오르노의 석연찮은 퇴장이 게임의 전환점이었음은 분명하지만 그 이전부터 게임의 주도권은 확실히 바르샤가 쥐고 있었다. 필자가 보기에는 설혹 델 오르노가 피치에 계속 남아있었어도 결과는 크게 다른 결말로 연결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무링요 스스로는 자신이야말로 지금의 첼시가 첼시일 수 있는 이유는 사실상 무링요 자기자신이라는 최면상태인 것으로 분석되지만 내가 힘주어 강조하고 싶은 것은 첼시가 첼시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존 테리, 마켈렐레, 램파드라는 제국의 기둥들이 타팀의 선수들에게서는 쉽게 감지되기 어려운 투혼과 헌신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저 세 명은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재즈를 좋아하는 필자가 오래전부터 가끔 들르는 대학로의 ‘Basic on Stage'라는 재즈카페가 있었다. 허름한 지하창고에 겨우 한 대 여섯팀이나 앉을 수 있는 협소하고 남루한 공간이었지만 악보에 연연하지 않는 잼 세션이 라틴계열의 보사노바 리듬과 함께 유장하게 연주되고 있었으며 필자가 참 좋아하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얼마전 같은 장소에 가보니 카페의 외양은 요즘 세대들이 좋아할 밝고 삐까번쩍한 인테리어에 공간도 훨씬 넓어졌지만 거기에서 연주하는 친구들은 음대출신들인데 그저 악보대로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음을 “찍어대고”있을 뿐(난 그래서 대부분의 음대출신들 별로 신용하지 않는다) 재즈가 주는 온몸으로 느끼는 필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으며 무엇보다 그 연주자체에 대부분의 젊은 친구들이 전혀 관심조차 없는 수다로 일관하는데 일종의 분노마저 느꼈다. ’개발에 편자라고........‘ 축구가 축구일 수 있는 건 인간과 자유정신의 응축이기 때문이다.
3. 결론 : 느껴지는 후폭풍들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 누캄프가 만만찮은 공간이라지만 첼시는 언제든 작년과 같은 반전을 일으킬 능력이 있다는 건 바르샤 광팬인 필자로서도 당연히 인정해야만 한다. 바르샤는 지난날 호마리우와 스토이치코프가 활약하던 이래로 팀이 가장 안정되어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기에 다가오는 2차전 역시 흥미만점의 게임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극히 당연하게 바르샤가 이겨주기를 바란다. 그건 앞서에서도 밝혔듯 이 대결이 단순히 첼시와 바르샤라는 팀의 대결만이 아니라 앞으로 현대축구가 나아갈 어떤 방향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의미를 개인적으로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옛날의 위대한 “선수”가 이끌어가는 팀으로서의 축구가 앞으로 죽 계속될 것을 기원하는게 솔직한 심정이기 때문이다. 선수의 서포트와 지원에 머물러야할 부차적 변수로서의 구단프런트와 감독의 기계적 리빌딩이 축구의 본질적 요소로 전환된다면 인생을 살아갈 흥분과 재미가 상당히 반감될 것이기 때문이다. 축구팬이라서 행복했다. 아무튼........ 당대 최고의 경기를 볼 수 있어서.
첫댓글 메시도 대단했지만 딩요에 인간같지않은 모습에 감탄
전반에는 아쉽게 호나우딩요선수의 활약이 그다지 돋보이지않았던
전반에는 인간인척 후반에는 본모습을 드러낸듯 ㅋㅋ
축구에서 특히 이런 최강팀과의 경기에서.. 10명이 싸운다는게 그냥 쉽게 넘어갈문제는 아닙니다.. 그전까지 바르샤가 좀더 좋은찬스를 잡은것은 맞지만 , 첼시는 원래 초반에 강한팀이 아닙니다.. 주로 전반 후반이나 후반전에 강한팀이죠, 첼시 나름대로 좋은 분위기로 경기를 이끌어나가고 있는 찰나에..
퇴장이 나왔고,, 어쩔수 없이 첼시의 공격은 구디-로벤둘이서 만들어 가는 식이될수밖에 없었죠,, 후반초반 드록바가 좋은찬스 2개중에 하나만 살려줬다면.. 이런결과는 없었을텐데.. 까르발료가 쓸떼없이 등지고있는 라르손을 밀어서 파울만 안했어도,, 적어도 첼시가 지는 경기는 아니었습니다.. 물론 지나간일이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