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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생명을 죽인다. 일반적인 도덕을 배운 사람들에게는, 죽인다는 행위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힘들고 버거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 어려운 일이 무엇보다 쉬웠던 파르바티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일을 해야 할 나이가 되었을 때 여러 일을 했었지만 결국 이렇게 폭력을 쓰는 것을 선택하게 되었다.
“살… 려… 줘….” 이 말을 끝으로 목 졸려 죽은 사람을 보면서 파르바티가 생각한 것은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였다. 누군가 이런 파르바티를 보면 미친년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파르바티에게는 이건 사무직에 종사하는 사람이 그날의 보고서를 하나 쓰는 것과 같은 종의 일이었다. 그들이 일을 하면서도 그날 먹을 것을 생각하듯 말이다.
“역시 누님의 현장에는 피도 눈물도 없다니까요.”
파르바티에게 웃으며 다가오는 부하를 바라보았다. 부하는 평소처럼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타겟을 제거한 파르바티의 솜씨에 감탄하고 있었다.
“일은 다 끝났어. 돈은 확실히 받아 놓도록 해. 그리고 피 한 방울 흘렸어.” 파르바티는 자신의 와이어를 부하에게 보여주었다. 평소와 달리 한 방울 정도 피가 묻은 것을 본 파르바티는 얼굴을 살짝 일그러뜨렸다. ‘조금 쓸데없는 힘이 들어갔나 보네. 어제저녁에 먹어야 할 맛집 메뉴가 내 앞에서 끊긴 탓인가? 오늘은 꼭 먹어야겠어.’ 생각을 마친 파르바티는 부하를 보았다. 부하는 타겟의 사진을 각종 각도로 찍고 있었다.
부하가 파르바티를 내쫓듯 손짓했다. “사진도 다 찍었고, 시체는 제가 알아서 잘 처리할게요. 누님은 먼저 들어가세요.”
그런 부하를 보며 파르바티는 가볍게 손짓으로 ‘알았다.’라는 뜻을 보여줬다. 이렇게 오늘의 일을 기분 좋게 끝내려고 할 때 이 현장을 가득 채우는 큰 소리가 들렸다.
“언니!”
파르바티와 부하 둘 다 소리가 나는 곳을 보았고 그곳에는 파르바티의 여동생 티니아가 있었다. 자매라고는 하지만 사실 둘의 모습은 많은 차이가 있었다. 파르바티는 장신이며 암살에 편하게 활동하기 편한 복장을 하고 있었고 머리카락은 단발을 유지했다. 그러나 그녀의 여동생인 티니아는 다소 작은 키에 긴 머리를 가지고 있으며, 데저트 엘프의 전통복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보통의 남자라면 한번은 쳐다볼 만한 아름답게 빛나는 은색 머리칼에 수정처럼 붉은 두 눈은 둘이 자매인 것을 알려주었다.
파르바티가 시끄럽다는 듯 양 손바닥으로 귀를 막았다. “소리치지 마, 작게 이야기해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으니.”
그러나 파르바티의 말을 무시하듯 티니아는 파르바티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와 큰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이게 뭐야? 또 죄 없는 사람을 죽인 거야?”
티니아의 원망하는 듯한 눈빛을 피하지 않으며 파르바티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세상에 죄 없는 사람은 없어. 내가 하는 일은 의뢰를 해결하는 일이고 의뢰인이 원한 건 타겟의 시체였을 뿐이야. 그건 그렇고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야? 누가 알려준 거야?”
파르바티는 부하를 째려봤지만, 부하는 억울하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확 올라오는 짜증을 느끼며, 파르바티는 자신의 어깨로 티니아를 밀치고 걸어가려 했지만 티니아는 파르바티의 양 어깨를 잡은 채 흔들어 대기 시작했다. “제발, 죄가 없는 사람들을 죽이지 마, 우리의 힘은 정의를 위해 쓰여야 하는 거야. 엄마의 마지막 유언 잊은 거야? ‘정의를 잊지 말고, 정의를 지키면서 살아야 한다.’라는 거였잖아. 그런데 왜 자꾸 언니는 그 힘을 돈을 위해서만 쓰는 거야?”
정의를 울부짖는 여동생을 보며 티니아는 가슴속에서 울컥하는 것을 느꼈다. ‘또, 그 여자 타령인가?’ “티니아, 정신 차려. 내가 말했지. 정의만 이야기해서는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니까. 지금 네가 먹고, 자고 할 수 있는 게 다 누구 덕분인데? 내가 의뢰 금으로 받아오는 돈 아니면 네가 살아갈 수 있어?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 잊은 거야? 정의만 울부짖으며 마을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고 살아가며 제대로 먹지 못했던 널 누가 살려준 건데!”
파르바티의 갑작스러운 쏘아댐에 당황한 티니아는 화로 인해 얼굴이 붉어졌다. “언니가 뭘 알아? 마을 사람들이 다 나쁜 건 아니야! 몇몇 사람만 나쁜 마음을 가지고 날 이용하려 했던 거지! 그리고 돈? 사람들 죽이고 납치하고 남들 협박해서 받아낸 그 더러운 돈? 그딴 더러운 돈 필요 없어!”
순순한 아이처럼 생떼를 부리는 모습을 본 파르바티는 순간 짜증을 느꼈다. 솔직히 평소라면 여동생의 이런 말들조차 웃으며 넘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전날 맛집에 가지 못한 탓일까? 아니면 평소와 달리 타겟의 피가 묻은 탓일까? 그것도 아니면 티니아가 이야기한 그 여자 때문일까? 파르바티는 벗다 만 사무용품을 손으로 쥔 채 휘둘렀다. 하필 사무용품의 윗부분이 티니아의 얼굴을 향했기에 티니아의 얼굴에는 여러 자국이 남았다. 파르바티에게 맞은 티니아는 아픔보다는 언니에게 맞았다는 충격이 컸는지 놀란 눈을 한 채 파르바티를 쳐다보았다.
‘내가 지금 뭔 짓을 한 거지?’ 놀란 건 파르바티 역시 마찬가지였다. 파르바티가 티니아를 어루만지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티니아는 그 손을 뿌리치며 몸을 돌려 달렸다. 파르바티는 그런 티니아를 쫓아갔지만, 재빠른 발이 일품인 티니아는 어느새 파르바티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티니아! 티니아!” 계속해서 여동생의 이름을 불러댔지만, 티니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파르바티는 양손으로 눈을 가린 채 한숨을 쉬며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괜찮으세요?”
파르바티는 자신의 곁에 다가온 부하를 살짝 올려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최악이야. 내 마음은 이게 아닌데, 왜 이런 걸까?”
“그러게요, 평소와 다르게 감정적이었어요.”
파르바티는 다시 고개를 숙이며 말하기 시작했다. “그 여자 때문일 거야.”
부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여자요?”
“응, 내 엄마.”
“어머니요?”
부하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파르바티는 허탈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응, 우리 부모는 둘 다 정상이 아니었어. 아빠라는 작자는 전업 킬러였지. 납치나 협박, 조사 등도 하는 나와는 달리 철저하게 죽이는 것만 업으로 삼았어. 살인이 취미였기에 의뢰가 들어오지 않을 때는 그냥 아무나 죽였지.”
파르바티의 말을 듣던 부하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건 좀 심한 거 아닌가요?”
파르바티는 코웃음 쳤다. “그런 표정 짓지 마. 물론 정상인은 아니었지만, 우리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비슷한 일을 하면서 벌어먹고 있잖아. 물론 아빠는 빌어먹을 인간인 게 맞아. 어떻게 된 게 걷기 시작한 우리에게 가장 먼저 알려준 게 생명체를 죽이는 기술이었으니까.”
파르바티는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긴 듯 가만히 있다가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런 아빠와 달리 엄마는 철저하게 정의를 외치는 인간이었어. 정말 웃기지 않아? 죽을 때 유언조차 정의를 지키는 삶을 살라고 말했다니. 아무튼 엄마는 이런 아빠의 모습을 결코 이해할 수 없었고 나와 티니아를 데리고 도망가려 했지만, 아빠한테 들켰고 티니아만 데리고 도망가 버렸어. 덕분에 티니아를 찾을 때까지 20년이 걸렸고.”
“그건 저도 알죠. 티니아님을 찾은 건 제가 물어온 정보 덕분이잖아요.”
“그래, 우연히 네가 가지고 있던 티니아의 정보였지. 그 덕분에 네가 죽지 않고 살아날 수 있던 거고.”
부하는 양손으로 자기 목을 만져보았다. “그 덕분에 제가 누님이랑 일할 수 있게 되었죠. 그건 그렇고 정의를 이야기하는 거면 문제없는 거 아닌가요?”
부하의 말에 파르바티의 표정이 굳어졌다. “정의만 이야기 하는게 문제였어. 엄마의 정의는 뒤틀린 정의야. 정의를 지킬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어. 생각해 봐. 다섯 살짜리 꼬마가 있어. 이 아이가 가게에서 팔고 있는 과자를 먹고 싶은데 돈이 없는 거야. 그래서 아이는 과자를 훔쳤어. 그럼 그 아이는 어떻게 해야지?”
“뭐 그거야. 부모가 변상하던지, 아니면 주인이 아이를 혼내고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솔직히 저도 어릴 때 훔친 물건만 해도 보따리 하나는 가득 채울걸요.”
부하는 자신이 행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키득키득 웃었다.
“그렇지, 보통은,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고 하지만 그건 무한한 가능성 중 하나일 뿐이야. 오히려 그날의 잘못을 거울삼아 다시는 훔치지 않을 수 있지. 그런데 엄마의 경우 그 아이는 악이야. 그리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그 아이를 죽여야 해.”
부하는 놀란 듯 눈이 동그래졌다. “죽여요?”
“응, 죽였지. 내 눈앞에서 바닥에 있던 돌덩이로 때려죽였어.” 파르바티는 과거의 어이없던 기억을 생각하며 미친 듯이 웃었다. “이제 알겠어? 내 엄마라는 작자 역시 엄청난 살인자야! 정의를 행한다는 명목 아래 손에 묻힌 피가 얼마나 되는지 생각도 할 수 없는. 그런 엄마와 아빠가 서로를 죽이지 않은 건 그 둘이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증거겠지. 그렇게 그 미친 엄마 밑에서 자란 티니아는 역시 뒤틀려 버렸어. 그 아이를 다시 만나고 너무도 기뻤어. 그런데 어느 날 그 아이가 식당에서 사람을 죽였다는 거야. 그 이유가 뭔지 알아? 식당에서 후식으로 먹으라는 도넛을 두 개 먹었기 때문이야. 그 도넛은 한 개만 먹으라고 쓰여 있었거든. 사장이 도넛 두 개를 먹는 사람을 가리키며 ‘저런 못된 녀석.’이라고 말해서 죽였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는 그 모습은 악의가 하나 없어서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히더라.”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파르바티는 헛구역질을 느꼈다. “그때 깨달아 버렸어. 이 아이 역시 뒤틀린 정의를 가져버렸구나. 그래도 이때는 티니아를 바꿀 수 있을 줄 알았어. 그러나 티니아를 보면 볼수록 그 아이가 보여주는 모습은 엄마와 닮아있었어. 다만 다른 점은 엄마가 직접 판단하고 죽여버린다면 티니아는 남들의 말을 듣고 행동한다는 거야.”
“그래서, 누님이 저한테 티니아를 감시해 달라 그런 거군요.”
“그래, 그 아이가 또 무슨 짓을 할지를 모르니까. 그런데 내가 그 아이를 바꾸려고 하고 억지로 통제하려 할수록 그 아이 하고의 관계는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어. 솔직히 나도 할 말은 없지, 결국 내 손에도 피를 묻히는 일을 하니까.”
고개를 떨구고 쓴웃음을 짓는 파르바티를 보며 부하는 고개를 강하게 저었다. “너무 그렇게 말씀 마세요. 최소한 협박이나 납치 등은 몰라도 살인 만큼은 철저하게 가리잖아요. 오늘 죽인 녀석만 해도….”
“그만” 파르바티는 부하의 말을 끊고 다시 말했다. 그 말은 마치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았다. “그만해, 아무리 뭐라 해도 내 손에 묻은 피는 지워지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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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바보!”
파르바티에게 맞은 충격보다는 마음에 새겨진 충격이 컸기에 티니아는 이미 통증이 남아 있지 않은 뺨을 계속 만지고 있었다.
“언니는 바보야!”
엄마에 의해 헤어진 지 20년 만에 찾은 언니는 옛 기억 속의 언니처럼 티니아보다 크고 듬직했다. 엄마가 병으로 죽고 자신을 이용하던 촌장에 의해 죽어가다가 나타난 파르바티는 티니아가 잊고 있었던 따스함을 주었다. 그렇기에 티니아는 행복했다. 파르바티라면 그녀의 정의를 이해해 줄 거라 믿었기에. 그러나 파르바티는 티니아를 이해하지 않았다. 도넛 두 개를 먹은 악을 죽인 자신에게 화를 내고 그러면 안 된다고 울며 매달렸다. 티니아는 그런 언니가 이해되지 않았지만 이해해 보려 했다. 그렇기에 악을 보고도 애써 무시하려 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신의 유언을 듣지 않는다고 저주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기에 티니아는 결국 악을 죽였다. 그러자 자신을 저주하던 엄마의 목소리가 칭찬으로 바뀌었다. 티니아는 기뻤다. 눈앞의 언니가 주지 못하는 만족감을 죽은 엄마가 줬기에. 그래서 티니아는 계속해서 악을 죽였다. 그렇게 남들이 악이라 하는 것을 죽이며 정의를 실현해 나갈수록 언니하고 멀어지는 게 느껴졌다.
“왜 내 마음을 몰라주는 거야. 나는 언니가 악을 행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인데. 언니와 함께 정의를 행하고 싶을 뿐인데….”
파르바티에게 싫은 소리를 들었어도, 파르바티에게 싫은 소리를 했어도 티니아는 여전히 파르바티를 사랑했다. 요즘엔 멀어지긴 했어도 다시 언니와 웃으며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언니 보고 싶어.’ 파르바티를 생각하며 길을 걷던 티니아의 귀에 비명소리가 들렸다. 멀어서 제대로 들리진 않았지만 분명 비명이었다. 티니아는 재빨리 소리가 난 곳으로 움직였다. 티니아가 도착한 곳에는 빛나는 금색 머리를 휘날리며 금색 몸통에 푸른색 보석을 단 홀을 쥐고 있는 수녀가 있었다. 수녀 주위에는 똑같은 문신을 한 남자들이 여럿 있었는데 티니아도 알고 있는 문신이었다.
‘저건 저수지의 뱀의 문신? 저 녀석들이 수녀님을 노리고 있구나?’
티니아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활 사릉가의 시위를 당겼다. 마치 하프처럼 생긴 사릉가는 티니아가 활시위들을 어루만질 때마다 조금씩 다른 소리를 내며 저수지의 뱀 조직원들을 꿰뚫었다. 갑작스러운 티니아의 공격에 당황한 그들은 수녀와 티니아 어느 한쪽에 집중하지 못했고 수녀도 홀에서 빛을 뿜어내며 조직원들을 쓰러뜨렸다. 갑작스러운 반격에 당황한 저수지의 뱀 조직원들은 절반 정도 동료를 잃게 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망가는 악들을 쫓을까 했던 티니아는 멈춰서서 수녀를 바라보았다. 수녀는 티니아를 향해 기쁘게 인사를 했다.
“감사해요, 덕분에 살았어요.”
순수하게 기쁨을 담아낸 목소리를 들으며 티니아는 가슴속에서 벅차오르는 기쁨을 느꼈다. “정말 제 덕분인가요? 제가 정의를 실현한 건가요?” 티니아가 오히려 눈을 반짝이며 묻자 잠시 당황한 수녀는 곧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예, 자매님 덕분에 살았어요. 갑작스럽게 공격을 받아 동료들을 잃고 혼자 포위되어서 꼼짝없이 죽을거라 생각했는데 자매님이 정의를 실현해 주셔서 감사해요.”
수녀의 말을 듣던 티니아는 눈물을 한두 방울 흘리며 말했다. “계속 말해주세요.”
티니아의 말에 수녀가 잠시 당황하며 되물었다.
“네?”
“방금 했던 말요.”
“아…. 정의를 실현해 주셔서 감사해요.” 수녀는 티니아 때문에 몇 번을 더 이 말을 해야 했다. 그러던 중 티니아는 수녀의 다리에 상처가 난 것을 발견했다.
“이거 다친 거 아닌가요?” 티니아가 상처를 가리키자, 자신의 상처를 본 수녀는 별거 아니라며 이야기했지만, 티니아는 치마의 한쪽 부분을 잘라 상처를 묶었다. 수녀는 계속해서 괜찮다고 말했지만, 티니아가 계속해서 치료하자 감사하다고 이야기하며 앉았다.
“다 끝났어. 상처는 깊지 않으니까 걷는 게 힘들지는 않을 거야.” 티니아는 주위를 돌아다보았다. 시체투성이에 수녀를 혼자 두고 가는 게 맞는가? 생각이 들었다. “혼자 갈 수 있겠어요?”
수녀는 티니아를 보며 환하게 미소 지어 보였다. “지금까지 도와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좀 힘들 것 같아요. 이렇게 피를 보고 있으니 사실 치료해 주시지 않았더라도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것 같았거든요. 죄송하지만 좀 도와주시겠어요?”
“어떻게 도와줄까요?”
“시체들 없는 곳으로 가서 마음이 좀 진정될 때까지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야기에 몰두하다 보면 놀란 마음이 진정될 것 같아요.”
수녀의 말을 들은 티니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뻗었다. “좋아요, 빨리 이동해요.”
수녀는 티니아의 손을 잡고 일어났고 둘은 시체가 보이지 않는 곳까지 이동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는 주로 티니아가 하고 수녀는 들으며 맞장구를 쳐줬다. 티니아는 어릴 때의 이야기 엄마와 둘이 살았던 이야기, 언니를 다시 만난 이야기 그리고 언니와 조금 소원해진 이야기들은 했다. 수녀는 가끔은 놀란 표정을 짓기도 가끔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티니아의 마지막 이야기를 들은 후에는 눈물을 참지 않고 펑펑 울기 시작했다. 수녀는 두 눈은 울고 있으면서도 두 팔은 쭉 뻗어 티니아를 따뜻하게 감싸 안았다. 그리고 말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아무도 이해해 주지 않는 정의를 지켜나가기 위해서 외롭게 싸웠던 그 순간들이, 그리고 친언니에게 조차 이해 받지 못했던 그 고독이. 저는 다 이해해요.”
수녀의 말은 마치 그동안 눌러왔던 티니아의 감정을 뽑아내는 지렛대처럼 작동했고 티니아는 수녀에게 안겨 펑펑 울기 시작했다. 수녀는 티니아가 감정을 다 토해낼 때까지 참을성 있게 안아주었다. 티니아는 한참을 더 운 후에야 수녀의 품에서 나와 눈썹에 매달린 눈물을 떼어냈다.
“자매님, 제가 한가지 말씀드릴 게 있어요.”
눈물을 때어내 던 티니아가 수녀를 바라보자, 수녀가 말을 이었다. “친언니분이 자매님에게 화를 낸 건 자매님의 정의를 아직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그렇다면 자매님이 명확하게 정의로운 일을 행한다면 언니분도 이해하실 거예요. 그리고 제가 도울 수 있고요.”
수녀의 말을 듣던 티니아가 눈을 반짝였다. “어떻게 도울 수 있다는 거죠?”
수녀는 싱긋 웃었다. “간단하죠, 우리 교단에서 체크한 악인들이 있어요. 정말 끔찍한 죄를 저지른 용서 받을 수 없는 악인들이죠. 이들을 자매님이 처단하신다면 진정한 정의가 행해지는 것에요. 그렇게 정의를 행하신다면 언니도 자매님을 인정하실 수밖에 없으실 거고요.”
‘언니가 인정해 준다고?’ 수녀의 이 말은 티니아의 가슴속에 강력하게 박혔다. 하나밖에 없는 가족에게 자신의 정의가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은 다른 것을 생각하지 못하게 했다. 티니아는 거절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도와줄게.”
티니아의 대답을 들은 수녀는 거짓이 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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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래동화 흥부와 놀부에서 모티브를 딴 티니아와 파르바티의 이야기입니다. 특히 파르바티는 스토리상에서는 거의 등장하지 않았지만 매력적인 캐릭터인거 같아 아쉽더라구요. 2편은 내일 올리겠습니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덕분에 두 캐릭터 스토리를 다시 확인하고 왔구요. 정의에 대한 엇갈린 믿음과 정확히 알고는 있지만 행하지 않는 사무직(킬러) 그리고 용사교의 등장까지. 이번편 어떻게 마무리 될지 기대됩니다.
언제나 처럼 와장창 엔딩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