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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4일 화요일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
제1독서 : 갈라 1,13-24
복 음 : 루카 10,38-42
그때에
38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러자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39 마르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40 그러나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가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41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42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자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 때문에 커다란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자기를 낳아준 부모이니 누구보다도 잘 이해해줄 것 같지만,
‘너를 잘 알고 있다’라는 단정적인 생각으로 오히려
전혀 모르는 사람보다도 못한 사람이 부모일 때가 많습니다.
이런 트라우마로 힘든 삶을 살았던 아주 유명한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빈센트 반 고흐입니다.
독특한 그의 그림에 세상은 ‘창조적’이라고 했지만,
그의 부모는 이 그림을 보면서 고흐가 ‘미쳤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아버지는 “정신병원에 보내야 한다”라면서 화를 내곤 했다고 합니다.
만약 고흐가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쉽고 어여쁜 그림,
그리고 사실적이고 바람직한 그림만 그렸다면 어떠했을까요?
부모에게 인정받고 특별한 사랑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고흐는 가족과 가까운 사람에게 인정받는 작품보다
자신이 생각했던 궁극의 아름다움을 그렸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눈을 찌르는 듯한 ‘해바라기’가 탄생했고,
마음속의 불꽃놀이를 떠올리게 하는 ‘별이 빛나는 밤에’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는 부모 자녀 간의 간격이 세상에서 가장 먼 사이가 될 수도 있습니다.
가족 안에서도 그런데, 나의 이웃들과는 어떨까요?
나의 편견을 내려놓지 않는다면, 또 있는 그대로 받아주지 않는다면
어떤 좋은 관계도 형성할 수 없습니다. 그저 가장 먼 사이가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을 방문하십니다.
그러자 마르타는 분주하게 예수님 시중을 듭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 발치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주님을 맞이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마르타처럼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주님의 일을 함께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마리아처럼 주님 발치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집중하는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그 밖에도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이 방법을 틀렸다고 할 수 있을까요? 틀린 것이 아닙니다.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다양한 방법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마르타는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라면서,
자기의 방법만 맞는 것으로 주님께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라고 하십니다.
마리아의 선택만 옳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방법이 다 틀리지 않았음을 이야기하시는 것이지요.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방법도 틀리지 않다는 원칙을 기억하면서
주님께 나아가는 다양한 길을 서로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모두 가까운 사이가 될 수 있습니다.
회심의 여정
-무지에 대한 답은 회심뿐이다-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오늘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입니다.
종파를 초월하여 가장 많이 사랑과 존경을 받는 가톨릭교회의 성인입니다.
개신교 신자들 역시 참으로 좋아하는 성인이요 제가 예전 개신교 다닐 때 알았던
최초의 유일한 한 성인이였고 개종 후 세례명 역시 지체없이 프란치스코로 택했습니다.
우리의 사부 성 베네딕도와 참 좋은 보완관계를 이루는 성 프란치스코입니다.
산 같은 정주의 성 베네딕도라면 강 같은 흐름의 성 프란치스코입니다.
전임 교황 베네딕도 16세와 현임 교황 프란치스코가 이루는 보완관계도 이와 흡사합니다.
베네딕도회 영성을 요약하는 “산山과 강江”이라는 짧은 자작 애송시를 들어 보세요.
“밖으로는 산, 정주의 산, 천년만년 임 기다리는 산
안으로는 강, 흐름의 강, 천년만년 임 향해 흐르는 강”
여기에다 성 베네딕도와 성 프란치스코를 넣어 읽어보면 참 재미있게 잘 어울립니다.
“밖으로는 산, 정주의 산, 천년만년 임 기다리는 산, 성 베네딕도
안으로는 강, 흐름의 강, 천년만년 임 향해 흐르는 강, 성 프란치스코”
그래서 제 삶의 영성 모토는 “밖으로는 산, 성 베네딕도, 안으로는 강, 성 프란치스코”입니다.
밖으로는 늘 거기 그 자리의 하느님 중심에 자리 잡은 산 같은 정주의 산이지만
안으로는 끊임없이 맑게 흐르는 강 같은 내적 여정, 회개의 여정이라는 것입니다.
강은 흘러야 삽니다. 물도 고이면 썩습니다.
정주가 안주가 되어 계속 흐르지 않고 내적으로 멈추어 웅덩이에 고인 물이 되면 썩기 마련입니다.
밖으로는 정주의 산이지만 안으로는 끊임없이 맑게 흘러야 늘 새로운 시작의 파스카의 삶입니다.
너무나 좋은 보완관계에 있는 성인들이요, 두 성인의 영성을 종합하여 산과 강의 영성을 사는
불암산 배경의 우리 성 베네딕도회 요셉 수도원 수도형제들입니다.
참으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삶은 이제 전설이자 신화가 되었습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늘 가까이 살아 있는 성인처럼 느껴지는 분이요
성인에 대한 일화는 늘 들어도 새롭고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성인의 44년 한 생애가 그대로 한 권의 성경책 같습니다.
성인의 행적을 자랑하는 마음으로 많은 부분을 나눕니다.
성인의 놀라운 행적을 통해 결국은 이런 성인을 가톨릭교회는 물론
온 인류에게 참 좋은 선물로 주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1. 인도의 성자 마하트마 간디는
“백 년마다 한 번 성 프란치스코가 태어난다면 세상의 구원은 보장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2. ‘그리스인 조르바’의 저자로 ‘성 프란치스코 전기’를 쓴
유명한 그리스의 소설가이자 영성가인 니코스 카찬스키스는 말했습니다.
“나에게 있어 성 프란치스코는 사람의 본분을 다한 인간의 표본이며,
시련 또한 평화로운 투쟁으로 이겨내 인간으로서 가장 아름답고 숭고한 의무를 실천한 인물이다.
그것은 윤리나 진리, 또는 아름다움보다도 더 지고한 차원의 것,
곧 우리를 통하여 하느님이 맡기신 물질을 닦아 영혼으로 승화시키라는 본질의 의무일 것이다.”
3. 성 프란치스코가 남긴 마지막 임종어는 “내 형제 죽음이여, 어서 오라.”입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임종어와 흡사합니다. “내 벗인 죽음이여, 어서 오게나. 기다리고 있었네.”
죽음은 삶의 요약입니다.
참으로 최선을 다한 치열하고도 아름다운 삶이었기에
이처럼 죽음과 완전 화해한 아름다운 죽음일 것입니다.
얼마나 노고에 가득한 삶이었는지 짐작이 갑니다.
이 성인들에게는 죽음이야말로 주님 안에서의 편안한 휴식이었을 것입니다.
성인의 회심의 여정에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영적체험도 참 신비롭고 아름답습니다.
4. 1205년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가던 중, 주님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주인과 종 가운데 누구를 택하겠느냐?” 질문에 “주인입니다.”라고 대답하자,
“너의 고향으로 돌아가라, 거기에서 네가 할 일을 가르쳐 주겠다.”
주님과 만남과 동시에 결정적 회심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5. 어느 날 성 프란치스코는 성 다미아노 성당에서 기도하던 중 주님의 음성을 듣고
자신의 사명을 확인합니다. “프란치스코야, 무너져가는 나의 교회를 고쳐라.”
6. 아버지와 결별 과정도 회심의 결정적 계기가 됩니다.
프란치스코는 아버지의 돈주머니와 옷을 모두 벗어 던지고 군중 앞에 선언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내 말을 들으십시오.
지금까지 나는 피에트로 베르나도네를 나의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나는 그에게서 받은 돈과 의복들을 돌려줍니다.
이제 나는 하늘에 계신 유일한 아버지 한 분만을 섬길 것입니다.”
성인의 프란치스코회 설립과정과 전교 활동을 보면
성인의 업적과 영향력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놀랍습니다.
무엇보다 성인은 가난을 매우 사랑했고 자연 역시 끔찍이 사랑했으며
그 안에서 하느님을 느끼고 찬미하였습니다.
그는 하느님이 창조한 모든 피조물에게 “형제”나 “자매”라 불렀으며 새들과 늑대에게도 설교했습니다.
프란치스코가 지은 태양의 찬가는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현대의 기후 위기에 대한 답은 성 프란치스코일 뿐입니다.
성인은 자신이 직접 쓴 태양의 찬가에서 태양, 불, 바람 등을 “형님”으로,
달과 별들, 물, 땅, 죽음 등을 “누님”으로 호칭하며,
심지어 자신이 앓고 있는 만성 질병들을 “자매들”이라고 불렀습니다.
1939년 교황 비오 12세는 프란치스코를 시에나의 카타리나와 더불어
이탈리아의 공동수호성인으로 지정하였고,
이어 1979년 11월 29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프란치스코를
생태계의 수호성인으로 지정하였으며,
1982년 세계 환경의 날에는 “피조물들에 대한 프란치스코의 사랑과 보살핌”을
현대 가톨릭 신자들이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로 끝맺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선하고 아름다운 것들과
형제애를 갖도록 언제나 우리를 도와주며 고무하리라고 나는 희망한다.”
마지막 임종 장면도 감동입니다.
1226년 10월 3일 죽음이 다가온 것을 알자 동료 수도자들에게
자신이 걸친 옷을 모두 벗겨 잿더미 위에 눞혀 달라 한 후
요한복음서의 수난기를 읽어달라고 청하고 나서 시편 142장을 읊은 후 선종합니다.
성인은 선종 후 2년만인 1228년 7월17일 교황 그레고리오 9세에 의해 시성 됩니다.
모든 성인들이 그렇지만 성 프란치스코의 전 생애는 말 그대로 회심의 여정이었습니다.
문득 고故 정요한 수사가 수도원 정자에 붙인 “회심정回心亭”이란 이름이 생각납니다.
오늘 말씀도 이런 회심의 관점에서 보면 이해가 확연해집니다.
주님과 환대의 만남과 동시에 이뤄지는 회심입니다.
마르타가 예수님을 환대했을 때,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경청합니다.
주님과 환대의 만남 중에 경청을 통해 마리아의 내면에서는 조용히 회심이 이뤄졌을 것입니다.
마리아에게 불만을 지닌 마르타에 대한 다음 충고를 통해 마르타도 분명 회심했으리라 봅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우선적 환대는 경청임을 마르타는 깊이 깨달았을 것입니다.
이것은 환대에 있어 양자택일이 아닌 우선순위 문제였던 것입니다.
마치 미사 시 말씀전례 후 성찬 전례가 뒤를 잇는 이치와 똑같습니다.
오늘 제1독서 역시 바오로 사도의 회심의 여정에 대한 고백처럼 들립니다.
주님과 만남을 통해 회심과 더불어 참 자기의 성소를 발견한 바오로입니다.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나를 따로 뽑으시어
당신의 은총으로 부르신 하느님께서 기꺼이 마음을 정하시어,
내가 당신의 아드님을 다른 민족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그분을 내안에 계시해 주셨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쓰는 이 글은 하느님 앞에서 말합니다만 거짓이 아닙니다.”
자신의 회심의 여정을 렉시오 디비나 하는 바오로입니다.
그러고 보니 성인들의 삶은 끊임없는 회심의 여정 중에
날로 주님을 닮아가는 예닮의 여정임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복음의 주인공인 마르타와 마리아가 그러하고 제1독서의 바오로 사도가 그러하고,
오늘 기념하는 성 프란치스코가 그러하고 우리 또한 그러합니다.
무지의 어둠에서 벗어나 빛이신 주님께 이르는 회심의 여정입니다.
이런 회심의, 회개의 여정만이 무지에 대한 유일한 처방임을 봅니다.
바로 주님의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회심과 더불어 날로 주님을 닮아 참 내가 되어가는 우리들입니다.
끝으로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로 강론을 마칩니다.
제가 소망하는바 제 장례미사 시 입당성가는 “태양의 찬가”요, 퇴장 성가는 “평화의 기도”입니다.
“주여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어둠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고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아멘.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우리 속담에 ‘남의 떡이 커 보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신학생 때입니다.
본당 신부님께서는 방학이 되어 본당으로 돌아오면 신학생들에게 일을 맡겨 주셨습니다.
동창 신학생에게는 성당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게 하였고,
첫영성체 교리를 가르치도록 하였습니다.
제게는 주일학교 여름행사를 도와주도록 하였습니다.
저는 답사를 다녀왔고, 여름행사에 함께 했습니다.
처음에는 친구가 부럽기도 했습니다. 여름에도 시원한 사무실에서 일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귀여운 초등학생에게 교리를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저는 땀을 흘리면서 산을 오르기도 했고, 캠프파이어를 위해서 장작을 쌓기도 했고,
텐트에서 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생각하니 저와 동창 신학생의 성격을 아셨던 본당 신부님의 배려였습니다.
저는 활동적이고,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본당 여름 행사를 도와주도록 배려하셨습니다.
동창 신학생은 과묵하고, 술도 잘 마시지 않고, 차분하기 때문에 사무실 업무를 맡겨 주셨습니다.
제가 사무실 업무를 맡았다면 저는 실수를 많이 했을 것입니다.
동창 신학생이 여름 행사를 도와주었다면 저보다는 더 힘들었을 것입니다.
사제서품을 받고서 저는 주로 강북에서만 지냈습니다.
중곡동, 용산, 세검정, 제기동 본당에서 보좌신부로 지냈습니다.
아파트보다는 단독주택이 많았던 본당이었습니다.
강남 본당에서 지내는 동창 신부들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보좌신부를 마치고 처음으로 본당신부가 돼서 간 곳도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에 있는 적성 성당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의정부교구가 분할되기 전이었기에
경기도 지역의 본당으로 임명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처음 부임해서 미사를 봉헌 할 때는 신자들이 5명 나왔습니다.
주일에도 100여 명이 나왔습니다. 헌금도 300,000원 정도 나왔습니다.
서울의 본당에서 사목하는 동창신부들과는 사목의 환경이 많이 달랐습니다.
그러나 제가 있던 적성 성당에는 서울의 본당에는 없던 것들이 있었습니다.
조금만 나가면 임진강이 있었습니다.
농사를 짓는 교우들은 싱싱하고 신선한 농산물을 가져왔습니다.
양계장, 목장, 인삼밭이 있었습니다. 임진강의 매운탕도 쉽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12명의 제자들과 함께 지내셨지만
저는 그래도 100명이 넘는 신자들과 함께 지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적성 성당에서 즐겁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감사했던 시간들입니다.
시골의 맑은 공기, 신선한 먹거리, 가족과 같은 본당 공동체는 저의 건강을 위한 삼위일체였습니다.
혈압이 있었지만, 그곳에 있으면서 혈압도 정상이 되었습니다.
도시에서는 하기 힘든 일들도 재미있게 할 수 있었습니다.
도시 본당에서 여름 농촌 봉사활동을 오면 기꺼이 성당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마당이 넓었기 때문입니다. 전신자가 매년 가족 수련회를 다녔습니다.
그래도 버스 2대면 충분했습니다.
농산물 직거래도 했었고, 아이들에게 태권도를 가르 칠 수 있었습니다.
31년 사제생활 중에 가장 보람 있고, 행복했던 시간입니다.
주교님께서는 저의 건강과 성격을 배려해서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으로 보내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 있느냐가 아닙니다. 어떻게 사느냐입니다.
과거에 무엇을 했느냐로 하느님께 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교회를 박해했었지만,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고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예수님을 배반하였고 불행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남의 떡은 단지 커 보일 뿐입니다.
마르타처럼 지금 하고있는 일을 불평하기보다는,
지금 내가 하는 일에 감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내가 하고있는 일에 감사할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크고 맛있는 떡이 될 것입니다.
구상 시인의 ‘꽃자리’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앉은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나는 내가 지은 감옥 속에 갇혀 있다
너는 네가 만든 쇠사슬에 매여 있다
그는 그가 엮은 동아줄에 엮여 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을 맛본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마르타와 마리아
조욱현 토마스 신부
예수님을 집으로 모신 마르타는 깊은 애정으로
지극히 거룩하신 분과 그분의 제자들을 위해 음식을 장만하며, 몹시 분주하였다.
그런데 그의 동생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39절)
이것은 무엇을 하였다는 것인가?
주님의 발치에서 시장한 마리아는 바로 이 샘에서 정의의 곳간에서 먹고 마시고 있다.
자기가 귀 기울여 듣고 있는 그분의 진리를 먹고 있었다.
주님은 “나는 진리다.”(요한 14,6)라고 하신 분이시다.
그분은 생명의 빵인 당신을 마리아에게 먹이고 계셨다.
그분은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요한 6,41)라고 하셨다.
그 빵은 사람을 먹여 기르되 절대 줄어들지 않는 빵이다.
마르타와 마리아의 모습에서 보듯이 덕은 한 가지의 모습이 아니다.
한쪽에는 분주한 섬김이 있고, 다른 쪽에는 하느님 말씀에 대한 경청이 있다.
그런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일이 분주하게 일하는 것보다 우선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42절) 하신다.
시중드는 일로 바빠서 거룩한 말씀에 관한 지식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
마르타가 열심히 시중을 들어 책망을 들은 것이 아니다.
다만 더 좋은 몫을 택한 마리아가 인정을 받은 것이다.
복음에서 보면 마르타는 마리아보다 더 뜨겁게 사랑했다.
주님께서 도착하시기 전부터 시중들 준비를 했고,
라자로를 살리시려고 주님께서 오셨을 때도 먼저 달려 나가 그분을 맞이하였다.
마르타는 주님과 그분의 제자들을 위해 시중드는 매우 거룩한 봉사를 하였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 발치에 앉아 그분의 영적 가르침에 모든 주의를 기울였다.
그렇다고 마르타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지만, 비판하지도 않으셨다.
다만 마리아가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42절) 하심으로써
마르타의 몫은 남에게 빼앗길 수 있는 것이라고 하신다.
육신을 시중드는 일은 섬김을 받는 사람이 그곳에 있는 동안에만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마리아의 영원하신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실천하는 모습은 끝날 수 없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프란치스코의 그 가난, 그 겸손, 그 단순함의 영성이 교회를 살릴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하느님은 작고 가난하고 겸손한 사람을 더욱 애지중지하신다는 진리가
오늘 기념일을 맞이하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통해서 확연히 드러났습니다.
오직 작음과 가난과 겸손만은 찾았던 프란치스코였습니다.
한평생 가난한 자, 작은 자, 겸손한 자가 되기 위해 그리도 기를 썼던 프란치스코였습니다.
프란치스코는 후배 프란치스칸들이 모두 순례자, 여행자,
다시 말해서 노숙인처럼 생활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다양한 형태의 정착에서 해방되는 것이 순례자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던 프란치스코였기에,
추종자들이 고정적인 거주지를 소유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형제들을 위해 지은 성당이나 초라한 집이나 다른 건물들이 프란치스칸 회칙에 따라
거룩한 가난에 어울리지 않으면 형제들은 절대로 받아들이지 말 것을 명심하십시오.
그리고 거기서 항상 나그네나 순례자같이 거주하십시오.”
뿐만 아니라 프란치스코는
자유로운 순례자의 길을 가로막는 가장 위험한 요소가 ‘돈’임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래서 형제들에게 자주 강조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버린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것 때문에 하늘나라를 잃지 않도록 조심합시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겸손은 여러 문헌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자신에 대한 ‘지칭’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자신을 ‘본인은...’이라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이라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랫사람’, ‘보잘것없고 약한 사람’, ‘천한 사람’, ‘모든 사람의 종’,
‘다른 형제들의 발아래 있는 사람’, ‘주 하느님의 부당한 종’ 등으로 자신을 칭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길을 가다가도 자신보다 더 가난한 사람을 만나면
자신이 입고 있던 외투를 서슴없이 내어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들이여, 우리는 이 외투를 본래의 주인인 저 가난한 사람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이 외투는 우리보다 더 가난한 사람을 만날 때까지만 우리가 잠시 빌린 것입니다.
나는 결코 도둑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보다 훨씬 더 필요한 사람에게 우리 것을 나누지 않는다면
우리는 도둑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원했던 프란치스코였지만,
역설적이게도 지금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의 생애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일컬어
‘제2의 그리스도’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인’이라 칭하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프란치스코의 그 가난, 그 겸손, 그 단순함의 영성이
오늘 다시 한번 우리 교회를 쇄신시키는 지렛대가 되길 바랍니다.
복음적 가난으로 방향을 되돌리는 길만이 우리 교회가 사는 길이며,
교회를 자유롭게 하는 길이며, 구원되는 길임을 알게 되길 바랍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명확히 인지하고 계셨기에,
교황명을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로 정하셨으며,
그가 선택한 노선을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굳건히 추종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기도에 응답이 없을 때 그것은 긍정일까, 부정일까?
전삼용 요셉 신부
디저트 브랜드 라라브레드의 ‘강호동’ 대표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15년 동안 기초생활 수급자였고 학력은 중졸입니다.
그리고 피가 나면 멈추지 않는 혈우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혈우병을 치료하기 위해 한 달에 150만 원이 필요했지만,
어머니는 분식집 일로 90만 원밖에 벌어오시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선생님도 “너 혈우병 있다며? 1년 동안 가만히 있어”,
친구들도 “넌 우리랑 다른 괴물이야”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아무도 그를 이끌어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는 살아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고 죽을 생각만 했습니다.
그를 절망에서 구해준 것은 바로 ‘책’이었습니다.
나의 앞길을 밝혀줄 책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절망이라고 생각했던 인생에서 『헬렌 켈러』라는 책을 읽은 뒤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이후 길은 책에 있다라는 생각으로 2,000권의 책을 더 읽고 100억 자산가가 되었습니다.
그가 17세 되었을 때 정주영 회장의 책을 읽습니다.
정주영 회장이 집에서 소를 판 돈을 훔쳐서 서울로 상경한 이야기를 읽고는
그도 집에 있는 돈을 훔쳐서 서울로 상경하였습니다.
어머니가 재혼하였지만, 이복형제들이 매일 구타하여 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미성년자가 일할 곳이 많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노숙 생활을 하며 접시를 닦아야 했습니다.
악착같이 일하며 돈을 모으면서도 책을 읽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길을 찾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물으면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해. 그냥 다 이렇게 살다가 죽는 거야!”라며 길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강 대표는 8년 동안 1억 이상을 모은 후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광주로 내려가 호프집을 열었습니다.
물론 잘 안되었습니다. 아무리 전단을 뿌려도 안 되었습니다. 그는 또 책에서 길을 찾았습니다.
당시 인터넷 블로그가 활성화될 때라 그것을 통해 홍보하기로 한 것입니다.
책을 읽으며 인터넷 홍보 방법을 터득하고 이웃 가게를 먼저 무료로 홍보해주고
거기서 생긴 비법으로 그는 직원이 20명이 넘는 홍보회사를 만듭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사업이 잘되어갈 때
아내와 함께 홍콩에서 먹었던 에그타르트 맛이 계속 생각이 났습니다.
역시 책에서 해답을 얻습니다.
당시 디저트 사업이 매년 25%씩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디저트 사업에 투자하였고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챙기는 것 같아서
자신이 건물을 사들여 그곳에 자기 가게를 차렸습니다. 그러자 부동산 수입이 더해졌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책에서 길을 찾은 덕분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책이 아니면 나는 성공 못하고 가난은 평생 대물림되고 죽거나,
결혼도 못 하고 행복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강호동 대표는 누구에게도 자기 앞길을 물어볼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일하기 바쁘셨고
선생님은 환자 취급했고 친구들은 괴물 취급하였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그에게 길을 알려준 것은 책입니다.
그는 책에서 주는 영감으로 움직였습니다. 만약 그전에 움직였다면 어땠을까요?
실패만 계속 연속으로 거듭하다 안 좋은 결과를 맞았을 것입니다.
책은 많은 사람이 인생을 살아보고
이렇게 하면 좋고 저렇게 하면 나쁘다는 것을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그러니 책 속에서 영감을 받는다면 그 길이 대부분은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내 생각으로 행동하는 것보다는 백배 낫습니다. 이것이 겸손함입니다.
우리 앞길을 밝혀주는 책은 무엇일까요?
바로 우리가 성체로 우리 안에 모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안에서 우리에게 가장 완전한 길을 알려주려 하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묻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갈 곳을 모르면서도 책을 읽지 않는 사람과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이러한 모습으로 마르타가 나옵니다.
마르타는 예수님을 자기 집에 초대하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이 주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묻지 않습니다.
반면 마리아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십니다. 자기 집을 봉헌한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분의 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성체를 영하는 우리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응답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응답이 없으면 긍정으로 보아야 할까요?
어떤 종이 그렇게 행동할까요? 종은 주인의 명령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때는 내가 주인 없는 집이 되어 강도들에게 약탈당하고 맙니다.
1사무 13,1-14에 ‘사울의 제사’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사울이 왕이 된 지 얼마 안 되어 사울의 아들 요나탄이 필리스티아 군대를 건듭니다.
그래서 필리스티아 군대가 엄청난 군대를 이끌고 사울 앞으로 옵니다.
예언자 사무엘은 자신이 7일 내로 와서 제사를 지내고 주님의 뜻을 묻겠다고 전갈을 보냅니다.
하지만 사울의 군사들은 적수가 되지 않는 자신들의 모습을 보며 두려움에 떱니다.
바위 뒤에 숨거나 뒤로 물러나거나 심지어 탈영하는 군사까지 생깁니다.
마지막 일곱째 날 사울은 자신이 제사를 지내고 하느님의 뜻을 묻습니다.
제사가 끝났을 때 사무엘이 옵니다.
그리고 이 일 때문에 주님께서 사울의 왕권을 무너뜨리고
다른 이에게 왕권을 주겠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사울의 잘못은 무엇일까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줄 사무엘을 끝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한 것입니다.
응답이 없다면 그냥 있어야 합니다.
“적군이 쳐들어오는데 아무것도 안 해야 합니까?”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승리를 주십니다.
주님은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참을 수 있는지.
끝까지 참고 주님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인다면 주님께서 승리하게 해 주십니다.
이 좋은 사례가 판관기 6장에 나옵니다. 바로 기드온 판관에 관한 내용입니다.
기드온은 이스라엘의 가장 작은 가문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느님은 그를 통해 이스라엘을 미디안 압제로부터 구원하시려고 합니다.
하지만 기드온은 믿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뜻을 시험합니다.
하루는 양털에만 이슬이 내리게 해 달라고 하고
다른 날은 양털에만 이슬이 내리지 않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이렇게 명확하게 하느님의 뜻을 묻는 기도온에게 하느님은 화를 내지 않으십니다.
어차피 하느님 뜻은 아주 명확하게 오는 일은 거의 드뭅니다.
어떤 확신이 오면 행동해야 합니다.
다만 그 확신이 찰 때까지 주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필요한 것입니다.
저도 ‘신학교에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할 때가 있었습니다.
차라리 자녀를 낳아 신학교에 보내겠다고 말씀드리기도 하였습니다.
바로 그때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를 원한다!”
어쩔 수 없이 본당 신부님께 사제가 되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빨리 예비신학생에 등록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때가 5월이었습니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1년을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적어도 1년은 예비신학생을 해야 하는 것인데 저는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확신이 올 때까지 기다려도 늦지 않습니다.
내가 원하는 뜻에 주님 목소리를 묻히게 하지 맙시다.
마리아처럼 항상 듣는 마음으로 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러면 인생에 있어서 후회할 일이 없습니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