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미사일의 90%가 일본산 부품… 도쿄 중심에 ‘스파이 기지’ / 7월 19일(일) / 중앙일보 일본어판
5월,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한 여성이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으로 파괴된 건물 옆을 걷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 뉴스]
5월에 우크라이나 키예프에 있는 고층 빌딩을 공격해 최소 24명을 사망시킨 러시아의 Kh101 순항 미사일. 우크라이나 군이 미사일 잔해를 조사한 결과, 유도 기능을 탑재한 일본산 컴퓨터 모듈이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국제 사회의 제재로 러시아로의 수출이 금지된 물품이다.
이유가 있었다. 뉴욕 타임즈는 최근 ‘푸틴이 어떻게 일본을 스파이의 온상으로 만들었는가’라는 기사와 함께, 러시아가 일본에 스파이 거점을 마련해 전쟁에 필요한 군사 부품과 기술을 조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동지에 따르면, 이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것은 러시아 정찰총국(GRU) 산하 비밀 정보 조직 ‘제20국’이다. 일본에 위치한 이 조직은 GRU 소속 베테랑 장교 막심·블라디미로비치·필첸코프가 이끌고 있다.
2024년 2월에 일본에 입국한 필첸코프는 러시아 국영 항공사 아에로플로트 직원으로 신분을 위장해 활동하고 있다. 제20국의 거점도 역시 도쿄에 있는 에어로플롯 사무실이다. 일본 경찰청 본부에서 도보로 단 10분 거리에 있는 건물 22층에 위치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군사 물품을 러시아에 수출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필첸코프는 제20국이 일본에 구축한 불법 반출망을 통해 군사용으로 전용 가능한 첨단 기술 부품을 일본에서 확보한 뒤, 스리랑카, 우즈베키스탄, 베트남 등 제3국을 거쳐 러시아에 보내고 있다. 대부분은 러시아 군 무기에 필요한 최첨단 장비, 공작 기계, 기타 부품 등이다.
현재 아에로플로트의 활동은 중단된 상태이지만, 일본 협력사인 프로코에아가 3월에 운송장에 ‘의료 장비’라고 기재된 물품을 러시아 제약회사 R팜으로 우회 수출하는 등 역할을 대행하고 있다. 프로코에어는 ‘제재 대상자에게 운송을 의뢰한 적은 없다’고 주장했지만, R팜은 푸틴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영국·호주·캐나다 등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 대통령실 관련 기업이라고 해당 신문은 전했다.
러시아가 2022년 2월에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서방 국가들은 자국에 있던 수백 명의 러시아 정보 요원을 추방하고, 러시아 대통령실과 연관된 기업들을 제재했다. 그 후 러시아는 일본에 힘을 쏟았다. 서쪽에서 쫓겨난 러시아 정보 요원 중 수십 명이 일본에서 적발됐다고 해당 신문은 전했다.
러시아에 밀수된 일본산 부품과 기술은 그대로 우크라이나 공격을 위한 러시아의 드론·미사일 등 첨단 무기 생산에 투입되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의 드론 및 미사일 90%에 일본산 부품이 포함돼 있다고 추정한다. NEC, 파나소닉, 동지 등 주요 제조사가 생산한 부품도 포함되었다.
서방 당국은 일본에 러시아 정보 요원의 밀수 활동을 알리고, 여러 차례 경고를 보냈다.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4월 한 달 동안 8차례에 걸쳐 일본 외무성에 외교 서한을 보냈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일본의 스파이 관련 법 체계 결함이 일본을 러시아 스파이의 온상으로 만든 것이 해당 신문의 지적이다. 스파이 활동을 포괄적으로 처벌하는 법이 없으며, 1월에 경찰청이 러시아 위장 인력에게 영업 비밀을 유출한 전 작업기계 제조업체 직원을 수사할 때도 스파이죄가 아니라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이라는 오명 속에서도 중앙정보기관이 없다는 점이 일본이 스파이 천국으로 취급받는 이유 중 하나다.
문제점을 인식한 일본은 5월에 일본판 중앙정보국(CIA)이라 불리는 국가정보국 설립 법안을 통과시켰다. 정보 관리와 처벌 강화를 포함한 스파이 방지법 제정도 추진 중이다.
키하라 미네 관방장관은 13일, “변화가 급격한 안보 환경 속에서 우리나라 안보를 위협하는 외국의 정보 활동에 대응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더욱 엄정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