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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인생,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면 부모, 아내, 자식, 형제한테 사랑과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2024.9.14일 이경용씀.
1. 딸이 아빠 이경용에게 보낸 카톡 문자(2024.9.12일)이다.
아빠~~~~~생신 축하드려요!!!!!
아빠가 내 아빠인 게 내 인생의 최고의 행운이에요!!!!!
내가 아이를 낳고 길러보니 아빠의 인생이 대단하게 느껴져요.
아빠처럼 좋은 부모가, 좋은 배우자, 좋은 자식이 되고 싶은 게
내 앞으로의 인생의 목표야.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고맙고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사랑해요!!!!!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 오래 같이 살아요!!!
부족한 딸이지만 늘 감싸 안아 주셔서 감사해요!
내가 영원히 잘할게!!!!! 사랑해요!!!!!
♥♥♥♥♥
2. 아빠 이경용이가 딸에게 보낸 카톡 문자이다.
내 딸이어서 행복하고 자랑스럽다.
너무 이쁜 현성(손자)이, 나연(손녀)이를 낳아 줘서 행복하다.
항상 긍정적이고 밝은 생각으로 행복한 나날을 보내기 바란다.
3. 국비 유학을 반대한 아빠의 뜻을 따라준 딸이다.
딸이 다니던 대학교에서 외국의 유명대학교에 국비 유학(석사 박사 과정)을 보내준다는
“딸에게 걸려온 교수님의 전화”를 승용차 안에서 직접 들었다.
이경용은 딸에게 외국 유학을 가게 되면 여자로서의 결혼 문제 등을 이야기 하면서
간판, 출세도 좋지만 유학을 안 갔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딸은 3일 뒤에 아빠의 뜻대로 외국의 국비 유학을 안가겠다고 한 뒤에
고등학교 1학년부터 사귀던 남자친구와 결혼하여, 현재 8살의 손자와 5살의 손녀가 생겼다.
자식 2명을 낳고 기르며, 산모일 때도 공부하더니 누구도 이루지 못할 학문의 성과를
이룬 뒤에 대학교에 강사를 나가고 있는 딸이다.
4. 딸로부터 최고의 찬사를 들은 아빠 이경용이다.
아빠가 내 아빠인 게 내 인생의 최고의 행운이라 한다.
아빠처럼 ♥좋은 부모가, ♥좋은 배우자, ♥좋은 자식이 되고 싶은 게
★내 앞으로의 인생목표란다.
5. 딸이 아빠의 생일날에 보낸 찬사를 받게 된, 이경용의 지나온 삶이다.
①할머니가 세상을 뜨신 100세(2024.3.17일)까지 할머니를 요양원에는 절대로 안 보내면서
쓰러져 몸져누우신 할머니의 대소변 수발까지 하였던 엄마, 아빠의 효도하는 모습을 딸은 봐 왔으며,
②할머니를 33년간 모시면서 명절, 제사 음식을 차려서 수많은 고생을 하신 엄마, 아빠를 지켜본 딸이다.
③딸, 아들 앞에서 ♡부부 싸움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고, ♡아빠의 술 취한 모습을 한 번도
보여 준 적이 없었다. ♡엄마, 아빠의 화목하고 다정한 모습만을 보았을 것이다.
④아빠가 많은 돈을 벌어서, 가난하고 형편이 어려운 형제(형, 누나, 동생)들에게
수많은 도움을 준 것을 딸과 아들은 지켜봤을 것이다.
⑤딸은 대학교에 출근하러 나갈 때, 엄마와 아빠가 딸집에 와서 손자와 손녀를 봐주고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보내주고 도와주는 것을 너무 고마워하고 미안해한다.
6. ★셋째 아들의 학교 뒷바라지와 대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어머님과 넷째아들이었다.
①부자였으나, 1969.4월경에 정미소 공장이 망하여 생계가 어려워지자,
“45세의 어머님은 14살의 어린 넷째 아들과 둘이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게 되었다.
②셋째 아들의 하숙비, 학비 등으로 사채 빚(일수 돈 등)이 늘어가자
넷째 아들 이경용은 식당을 뛰쳐나와 3년 동안, 막걸리 자전거 배달을 해야 하였다.
7. 고위공직자가 되게끔 학교 뒷바라지를 해준 어머님과 동생에게 엄청난 악행을 저질렀다.
①집안이 망하여도 ★셋째 아들만 학업(광주서중2학년~광주일고 3학년)을 중단하지 않았고
★계속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님과 넷째 아들 이경용의 피눈물 나는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②명문중고등학교의 하숙비, 학비를 보내주면 셋째 아들이 보낸 편지(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부모님의 은혜~~~, 훗날 꼭 효도하겠습니다. 등 등)를
③넷째 아들(학교를 못 다니고 식당에서 일함)이 읽어주면 크게 기뻐하고 좋아하시던 어머님, 아버님이셨다.
④훗날 고위공직자로 출세한 셋째 아들은 ★늙으신 어머님에게 엄청난 불효(구안와사 병, 요양원 사건 등)를
저지르고 ★동생 이경용에게 큰 고통을 줄 뿐이었다.
⑤어머님을 28년간, 모셨던 넷째에게 고위공직을 정년퇴직하면 어머님을 모셔주겠다는 약속으로
”셋째 아들은 어머님을 4년간 모시면서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⑥입과 눈이 한쪽으로 삐뚤어지는 구안와사 병(차가움에서 옴)에 걸리신 94세 어머님의
전기온돌 흙침대의 돌판 바닥이 너무 차가워서 살펴보니 전기 코드가 빠져 있었다.
⑦옆에 있던 셋째 형수가 고장이 났다고 하였는데 무슨 놈의 고장이 아니었고
94세 어머님이 차디찬 돌판 바닥에서 ☆추워 죽든지 ☆병에 걸리든지 관심도 없던 셋째아들 부부였다.
⑧어머님을 모시고 함께 사는 것은 자기 가족(셋째+처자식)의 삶이 피폐해진다는 말을
다섯째 동생한테 전해 들었는데 이경용한테는 정말, 충격이었다.
⑨어머님 생일날(2017년)의 잔치(창동 식당 사건)에서 넷째 동생에게 막말하는 분란을 일으켰고
⑩입과 눈이 삐뚤어져서 얼굴이 흉할 정도로 병세가 심하였던
어머님의 구안와사 병(입과 눈이 한쪽으로 삐뚤어짐)에 대하여 전화(2018.10월)로 물어 보자마자,
28년간을 모셨던 넷째 동생에게
”☆내가 무슨 잘못을 해서 어머님을 모시냐,
☆어머님 모시기가 얼마나 힘든 줄 아냐,
★너(이경용)는 어머님이 건강하고 젊을 때 모셨다.
★구안와사 병은 1년이 지나도 안 나을 것이다 등“으로 온갖 막말(구안와사 사건)을 퍼부었다.
⑪2달 뒤인 2019.1.1일날, 어머님이 넘어져서 엉덩이 고관절이 부러지자
수술후에는 요양원만을 고집하였던 셋째형은 넷째 부부가 모셔준다는 것도 반대하였다.
⑫어머님을 모시고 사는 고통(가족의 삶이 피폐해진다 함)이 싫었던 셋째는 어머님이 ★요양원에 가지
않으면 자기 집에서는 ★단 하루도 어머님을 모실 수 없다고 주장하였고 ★걷는 재활치료도 반대하였다.
⑬셋째는 ★넷째 집을 떠나지 않겠다는 ★어머님께 최선을 다해 모시겠다.
★요양원에는 절대로 보내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모시기 싫어서 악행을 부렸다.
⑭재활병원에서 7개월 동안의 걷는 재활치료를 거친 후에
28년을 모셨던 넷째 아들 이경용 부부 집에서 5년간(95세~100세)을 더 사시다가 세상을 떠나셨다.
8. 용서받지 못할 셋째의 악행들.
①초등학교 6학년때 과외 재수까지 시켜 명문중학교에 입학시켜주었고,
집안이 망한 뒤에도 서울 상계동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여 밥. 술. 안주를 팔아서
②멀리 전남 광주의 명문 중고등학교를 다니게끔 하숙비, 학비 등을 보내준 어머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늙으신 어머님의 눈에서 피눈물을 쏟게 만든 죄(요양원 사건 등)는 용서를 받기 힘들다.
③재활치료를 받아서 건강이 좋아지신 95세의 어머님은 넷째 아들집에 모셔졌고
”추석(2019.9월)과 설날(2020.2월)에 어머님을 찾아보지도 않은 셋째 아들이었다.
④자신의 악행(불효 등)이
☆잘못인지를 잘 알면서 저지르고,
☆욕을 먹을 것을 알면서도 저지르고,
☆훗날 잘못을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저지른 셋째였고,
★요양원 사건 전에도 동생 이경용한테 악행을 저질러서 장문의 글을 보내기도 하였다.
동생한테 잘못에 대하여 용서를 빌었으나 악행은 계속 반복되었다.
⑤인생철학이 없고, 삶의 지혜가 없어서 오로지 부모, 형제, 친척들의 단 한사람한테도
칭찬, 존경,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인생을 헛살아 온 것이었다.
⑥100세로 세상을 뜨신 어머님의 장례식장 안에서 넷째 동생한테 무례하게 큰소리로
화를 벌컥 내는 셋째 형을 보고 개과천선하기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9. 이경용은 주경야독하여 검정고시, 국세청 시험에 합격하는 기적을 이루었다.
①14살부터 7년 동안, 식당. 공장. 자전거 배달을 하느라, 정식 중고등학교를 다닐 수 없었지만
자전거 배달하면서 ☆주경야독하여♡검정고시(1975년)에 합격하였고,
②독서실에서 1달 공부(몸무게 10킬로 빠짐)하여 ♡국세청 공무원 시험(1976년)에 합격하는 기적을 이루었다.
셋째는 동생 이경용의 처지(초등학교만 졸업함)에서 이런 기적을 이룰 수 있는가? 묻고 싶다.
③막걸리 배달의 노동일을 그만두고 1달 공부(수학2권을 7일 만에 마스터함)하여 국세청 시험에 합격한 후,
④ 1년만 공부한다면 고려대, 연세대는 합격할 자신감이 생겼으나 대가족(외할머니, 어머니, 동생3명)의
생계를 책임질 형들이 없어서 공부를 포기하였다.
10. 넷째 동생의 은혜(중고등학교 뒷바라지)를 배신하는 셋째의 이기적이고 탐욕한 행위들..
①넷째 동생의 도움(식당일, 자전거 배달일)이 없었다면 셋째는 ★명문 중고등학교를 다닐 수 없었고 훗날,
★고위공직자도 될 수 없었다.
②셋째는 ☆명문중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불합격, ☆서울시 공무원 9급 합격,
☆건국대 야간 입학. 졸업, ☆외무직 7급 공무원에 합격하여 훗날, 고위공직자가 되었다고
★검정고시 출신의 동생 이경용에게 막말하고 함부로 무시하였다.
③이런 셋째형이 잘 살라고 ☆안산 주택지 분양(1986년 취득후, 큰 이득 챙김),
☆묵동 이수아파트(2001년 취득후, 2억8천만원 이득 챙김),
☆하남 미사아파트(2016년 취득후, 2억4천만원 이득 챙김)로 큰돈을 벌게 해준 동생 이경용이었다.
④구리 조합아파트 보상금과 관련된 소송 글을 동생 이경용한테 부탁하여 수없이 많은 글을 써주었으나,
너무 힘들어서 그만 쓴다하니 막말(소송 글을 안 써주면 앞으로 보지 말고 살자함)을 퍼부은 셋째였다.
⑤동생 이경용에게 ☆도와주거나 배려하기는커녕 ☆함부로 막말하고 ☆이익만을 채우는 대상으로
★이용해먹는 셋째였다.
⑥지난날, 큰돈을 벌게 해준 것을 후회하지 않지만, 어머님과 동생에게 엄청난 악행을 저지를
사람인줄 미리 알았더라면 절대로 도와주지 않았을 것이다.
11. 넷째 아들은 어머님의 12년간의 식당일을 그만두게 하였다.
①대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12년 동안 초라한 식당을 하셨던 훌륭하신 고 이길순 어머님이셨다.
②공무원 직업을 가진 26살의 넷째 아들은 57세의 어머님이 하시던 작은 식당(상계 시장. 약3평)일을
그만두게 하였고 넷째 며느리와 함께 33년간을 살게 되었다.
12. 부모님의 시골 빚을 갚아주고 어머님의 불치병을 낫게 해드렸다.
①넷째 아들부부가 정미소 공장이 망할 때의 빚을 이자를 붙여서 전부 갚아드렸더니,
어머님은 고맙다고 눈물을 흘리셨다.
②12년 동안, 험한 식당일(밥, 국, 안주, 설거지 등)을 하면서 생긴 불치병인 ☆발가락 무좀병과
☆무릎 관절병으로 너무나 큰 고통을 당하시는 어머님께 수술을 권했으나, 무섭다고 수술을 반대하셨다.
③넷째 아들은 쑥뜸을 깊이 연구하여 어머님이 84세일때 13개월간 매일
쑥뜸(발가락 12개 혈자리+ 무릅 6개 혈자리)을 떠드렸더니 완치가 되어서 100세까지 아프지 않고 지내셨다.
13. 부모, 형제한테 불효 등의 악행을 많이 저지르면 행복할 수가 없다.
①부모, 형제 등에게 악행을 많이 저질렀던 사람은 훗날 지난날의
악행이 떠올라서 행복할 수가 없으며 고통을 당한 사람들로부터 욕까지 먹어서 더 불행해진다.
②부모, 형제 등의 많은 사람들에게 선행을 했던 사람은
지난날의 선행했던 일들이 좋은 추억이 되어서 마음을 기쁘게 하여 더 행복해질 수가 있다.
③가까운 혈육(부모, 형제, 자식)이여도, “큰 악행은 덮어 주고 숨길 일이 아니다.
용서 받기 위해서는 혹독하게 참회하면서 선행을 많이 쌓아야 한다”.
14. 넷째 아들을 높이 평가해주신 어머님의 말씀.
①이경용은 안산의 주택지 분양, 건축(상가, 창고, 주택), 토지개발 등으로 큰돈을 벌어서
자신만의 부를 쌓지 않았다.
②카페에서 아내와 지난날의 돈을 벌었던 사례들을 이야기하다가 형제들에게 주지 않고
투자만 하였다면 강남에 빌딩이 있을 것이라고 웃으며 이야기 하였다.
③조선팔도에 우리 넷째 아들처럼 형제를 많이 도와준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자식을 높이 평가해준 90대의 늙으신 어머님이셨다.
④아들 3명(첫째, 둘째, 셋째)은 어머님께 큰 고통을 안겨준 엄청난 불효를 저질렀으나,
어머님을 편히 모셔준 “넷째 아들 부부에게 너무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⑤정미소 공장이 부도가 나서, 혹독한 가난에 빠지자 1969년부터
“14살의 넷째 아들과 둘이서 작은 식당으로 대가족을 먹여 살리신 장하신 어머님”이셨다.
15. 형3명을 놔두고 넷째 아들에게만 유언을 남기신 아버님.
①아들 중에서 혼자 돈을 벌어서 형, 동생들의 학교 뒷바라지와 대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막걸리 자전거 배달을 하던 19살(만17세)의 넷째 아들 이경용에게만 유언을 하신 아버님이셨다.
②초등학교를 다니던 ★어린 동생 3명이 불쌍하다고 하셨으며, ★죽는 날(1974.5.6.일)을 미리 알려주시고,
★공동묘지에 나무 비석을 세워 줄 것 등을 상세히 알려 주신 뒤에 세상을 떠나신 병든 아버님이셨다.
16. 어머님을 100세까지 33년간 행복하게 모셔준 아내를 존경합니다.
①외환은행을 다녔던 아내가 “외할머님, 어머님, 동생3명”과 함께 살아갈 집에 시집을 와서
33년 동안 명절, 제사 음식을 장만하며 온갖 고생을 하였다.
②요양원에 보내려던 셋째 아들집에서 4년(2014.12월~2018.12월)을 보내신 후,
28년을 살았던 넷째 아들 부부집에서 또다시 5년을 살게끔 허락해준 아내에게 존경과 고마움을 표합니다.
③어머님이 원하시면 ♡고스톱을 아내와 같이 매일 쳐드렸으며, 어머님이 찾으시면
♥소고기 육회(매주 2번), ♥토종닭, ♥산낙지 등의 음식을 해드린 아내가 있었기에
어머님과 함께 33년을 행복하게 웃으며 살았던 과거가 좋은 추억이 되었다.
④어머님이 100세의 임종을 앞두고 ♡아내에게 고맙다, 이쁘다. 반짝반짝 이쁘다 등을 말씀하셨고,
아내는 ♡오랜세월 참 좋게 잘 살았어요! 어머님!하였다.
⑤넷째 아들 부부 집에서 “노환으로 2달 누워계시다가 100세의 천수를 누리시고
아름다운 세상 이별(2024.3.17일)을 하신 고 이길순 어머님”이시다.
⑥어머님을 100세까지, 33년 동안, 행복하게 모셔준 아내를 높이 존경합니다.
17. 동생 이경용에게 “존경한다”는 말씀을 하신 외가 형님들.
①외가의 이상석, 이상용 형님께서 이경용에게 “동생이지만 존경한다”고 하셨다.
②누나, 동생들, 외사촌 누나는 잘살게 도와 준 것에 대하여 진정하게 고마워한다.
③누나는 동생 이경용에게 자식(4명)들을 학교에 보내고 살 수 있게 도와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하였다.
18. 아들이 아빠를 사랑하고 존경한다고 한다.
①이경용은 아들이 시켜준 제주도 여행(2021.2월)을 가서, 아들과 둘이서 2일 밤을 술도 먹으며
재미있게 보냈다. 식당 아줌마가 옆에서 말하길...아빠와 아들 둘이서 여행을 온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하였다.
②인천에 살았던 아들은 아빠, 엄마와 같이 경기도 하남에서 점심만 먹고서는 먼 거리의
인천으로 금방 돌아가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아들의 심성이다.
③아들이 용돈을 주면 고맙게 받았으며 자식의 진정한 효도를 뿌리치면 안된다.
아들은 시간이 되면 아빠랑 술을 같이 먹어주니 고맙기 그지없다.
19. 행복한 인생,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면 부모, 아내, 자식, 형제한테 사랑과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①부모, 아내, 자식, 형제한테 사랑과 존경을 받는 사람은 사회에서도 좋은 일을 많이 하고 베풀며 살게 되어 있다.
②결혼한 30대의 딸, 아들이 ☆엄마, 아빠를 존경하고 사랑한다 하고,
☆아들은 결혼할 때에 부모님의 경제적 도움을 전혀 안 받겠다고 하였다.
③아빠가 ♡내 아빠인 게 내 인생의 최고의 행운이라 하고,
♡아빠처럼 좋은 부모가 ♡좋은 배우자가 ♡좋은 자식이 되겠다고 하는,
딸의 찬사를 들으니 너무나 기분이 좋은 아빠 69세의 이경용이다.
2024. 9. 14일 이경용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