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여파로 잠시 주춤했던 공주 시낭송모임을 다시 재개한다는 단체 카 톡을 받았다. 1월 달에 첫 만남이 불발이 되고 어느덧 훌쩍 5개월이 지났다. 문화원에서 시낭송강의를 들을 때만 해도 의욕이 용광로처럼 과하게 타올랐으나 무심하게 몇 개월을 보내고 나니 제일 간사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불씨는 사라지고 귀찮은 핑계만 잿더미로 남았다.
그래서 참석여부를 묻는 시낭송총무님께 처음엔 참석한다 했다 당일 몇 시간을 앞두고 불참여부를 카 톡으로 보냈다. 그리고 한 선생님으로부터 내 참석여부를 묻는 카톡이 날아왔다. 그분과의 첫 인연은 나태주님의 풀꽃문화원에서 개최한 풀꽃시낭송 대회장에서다. 나보다 먼저 시낭송강의를 들었고 대회에 출전하는 회원을 응원하기 위해 참석했다. 그분의 첫 인상은 온화한 미소에 말씨 또한 잔잔하고 내뱉는 말속에 국화 향기가 났다. 마음이 단번에 그분한테 흘렀다.
그 뒤로 가끔 카 톡을 하며 우린 서로의 공통점을 찾아냈고 나는 그분의 고운성향을 닮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꽃이 꽃을 향하여 피어나듯이 우린 서로를 바라보며 그렇게 서로를 알아가고 있었다.
그분은 나의 불참을 무척 아쉬워했다. 선생님도 시낭송협회 참석은 신입으로 참석하는 거여서, 낯선 그 자리에 함께 하면 훨씬 따뜻한 시간이 될 거라 말씀하셨다. 그분의 한마디에 기필코 그 자리에 가야만 하는 책임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다시 불참이 참석이라는 열매를 달았다.
공주의 젖줄 금강의 물줄기를 따라 발맞추어 걷다보면 왕촌 가기 전 언덕으로 모임장소인 작은 카페가 손을 흔들며 반긴다. 그곳에서 시낭송회원과 첫 대면을 했다. 돈가스와 카레로 식사를 하고 코로나이후로 지내온 소소한 삶을 한분씩 무대로 나와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시낭송모임하면 웬 지 산골농부의 삶과 동떨어진 세계로 생각되어 사실 마음에 부담감이 내 가슴을 눌렀었다.
주춤거리는 발걸음을 선생님이 끌어주면서 이 자리에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으로 인해 고립된 농촌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문화생활을 즐기게 된 내가 더 따뜻한 시간이 되었음을. 들여다보면 그분들의 생활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알고난후 자신감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또한 유계자샘의 칭찬이 주눅 들어 숨을 곳을 찾는 나한테 자존감을 단번에 잡아 끌어올려주셨다. 여럿사람덕분에 두 어 시간 동안 지루하기는커녕 돌아가는 뒷모습에서 아쉬움이 놓였다.
모임을 다녀오고 잿더미가 되었던 의욕에 장작을 넣고 불씨를 당겼다. 웬 지 회원님 사이에서 내 몫은 해내야 할 거 같은 무언의 계시가 다른 지역에 사는 아들한테 전화를 넣게 만들었다. 연습도 실전처럼 해야 한다며 마이크를 사달라고 했다. 손수 인터넷에 들어가 살 수 있지만 기능면이나 가격대비는 아무래도 젊은 아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좋을 거 같아서였다. 절대 공짜로 아들한테 빈대 붙으려는 건 아니었지만, 결국 아들한테 엄마의 의지와 상관없이 빈대 붙은 꼴이 돼버렸다.
어떤 제의를 하던 아들은 늘 엄마 편에서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말 꺼내기가 무섭게 두 밤을 자고 난 후 손에는 따끈따끈한 신상 무선 마이크가 들려졌다. 활활 타오르는 의욕에 아들이 기름을 끼얹고 틈만 나면 마이크를 잡고 동영상을 보며 낭송 가들의 목소리를 빙의했다. 그랬더니 머리도 아프고 목도 아프고 평소에 쓰지 않던 근육들이 핏발을 세우며 아우성이다.
절대 마이크 전원은 마을의 안녕을 위해 켜지 않았다. 지금까지 마이크는 익숙해지기 위한 소품일 뿐이다.
그러면서 낭송의 매력에 빠져 살고 있는데 친구남편의 음악실에 놀러간 것이 또 화근이 되었다. 친구남편이 색스폰 연습을 하면서 ‘더원에 사랑아’를 부를 수 있냐고 물었다. 완전 노래하고는 철벽을 쌓은 음치한테 전혀 생뚱맞은 질문이었다.
그걸 흘려보내어야 했는데 단발머리 실눈개구리는 그걸 또 파리 낚아채듯 낼 름 하고 말았다. 그저 친구남편의 의미 없이 던진 작은 돌맹이가 실눈개구리의 머리를 정통으로 맞힌 것이다. 그 후 시낭송은 집어치우고 더원의 ‘사랑아’에 빠져 살고 있다. 무슨 책임감이 또 동해서 나는 허구한 날 사랑아를 연습한다. 그래서 지금 잘 부르냐고 묻는다면, 내가 무언가에 열중하면 남편은 분위 따윈 고려하지 않고 독불장군으로 내 방에 들어와 심부름을 시킨다. 목욕 후 등의 물기를 수건으로 닦아 달라. 하물며 노래연습하고 있는데도 뭘 하냐고 까지 묻는다. 눈으로 딱 봐도 돼지 잡고 있구만 그 소리를 내 입을 통해 들어야 하나.
“노래 부르고 있어.”
그리고 다시 마이크를 잡아본들 분위기에 급물살을 탔던 노래는 절벽을 만나 처참하게 추락하고 난 뒤다. 한 달이 넘어가지만 아직까지 사랑아의 가사를 끝까지 마무리를 못 짓고 있다. 바램이라면 한 해를 보내기 전 목청껏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끝까지 불러보는 것이다.
오늘도 단발머리 실눈개구리는 전원이 꺼진 마이크를 잡고 폼을 잡는다.
“바다가 내게/문병란
내 생애 고독한 오후에~ .... 사랑아 ~ 그리운 내 사랑아~”
“참~ 피곤하게 산다.”
남편의 한마디가 거실을 한 바퀴 돌더니 내 방문을 노크한다.
2020년 5월31일 일요일 햇살이 부서지는 산촌마을, 자전거를 타고 고샅의 바람 곁을 가를 틈도 없이 나는 오늘 내방 책상 앞에서 노트북의 자판을 두둘인다.
첫댓글 열심히 사시는 모습 아름답습니다^^
무엇보다 이곳에 와서 말이샘을 다시 만나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말이 선생님은 언제나 안방에 좌정하시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계신답니다. 제가 매일 뵙는데 언제나 그 모습이십니다.
행전선생님은 개량한복을 입으시고 사랑방 서재에서 늘 서책을 읽으시니 그 모습이 귀향하신 고고한 학자가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수연님의 부지런하고 즐겁게 사시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靜岩 유제범 우째~ 두분의 행적을 다 꿰고 계시는군요. 그건 그 만큼 함께 한 세월이 있기에 제가 감히 더듬을 수 없는 부분이군요.
@靜岩 유제범 고운 눈길감사합니다.
부지런한 사람은 피곤하지 않을 수 없지요. 그러나 그게 보람이지요. 박수를 보냅니다.
감사합니다.
제목만큼 글도 좋습니다.
제가 좀 남의 말에 휘둘리는 편입니다. 참, 힘들게 살죠.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정적인 생활로 팥죽을 끊이는 모습이 소녀 같습니다
단발머리 실눈개구리 머리를 친구 남편이 "더원의 사랑아"로 정통으로 맞혀 변덕이
또 팥죽을 끊이니 산촌 마을의 햇살이 아주 밝고 화사 합니다
어디에 꽂이면 오로지 그것에만 집중을해서 저도 디친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