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간
오전 11시 20분
지수는 첨으로 담배가 피고 싶다.
술은 원래 못 마시지만 담배라도 배워둘껄............
넉잔째 마시는 커피잔 잡은 손이 아직도 가늘게 떨리고 있다.
"엄마 아빠가 이상해요."
"응? 뭐가?"
"어...내컴이 바이러스 먹어서,아빠 서재 컴을 쓸라구 켰는데....로그인이 안되잖아"
"아빤 맨날 아래한글만 쓰시면서 뭔 비밀번호를 걸어 노셨지?"
"글구.......어젠... 민주야 사랑한다......이러시는거야"
"그다가 30분도 못돼서 야 임마!!!! 거실에 이게 뭐냐? 이 너저분한 책들 안치울래!!! 하시는거야"
"엄마? 아빠랑 싸웠어?"
몇일전 큰애가 한 말이 아니더라도 요새 민주아빠가 이상하다.
매일 낮 두시 전후면 외국 출장 갔을때 아니면 전화해서 점심 뭐 먹었어? 하던 남편 이었는데..........
엊그제 피곤 하다며 돌아 눕는 남편 등에 난 긁힌 자국을 보구도 아무 의심 안했는데.............
어제는 메리야스를 바꿔 입고 왔다.
언니네가 쌍방울 대리점을 해서 우리 식구 내의는 다 쌍방울푠데.............
월급 들어 오는 돈도 몇달째 줄고............
무심코 쳐다본 화장대 거울에는 27년전 보화여대 5월의 여왕 대신 곱슬 파머한 왠 낯선 여자가 보인다.
"김영호"
갓 제대한 그를 만난건 5월의 여왕 비키니 테스트 하던날.......
"어이 꼭두각시 아가씨......이쁜 얼굴에 죽이는 몸매지만 오헨리의 본명이 뭔지나 알어?"
"윌리엄 시드니 포터........이 못생기고 시커먼 아짜씨야"
안티 미녀선발대회 간사로 일하던 그이.우린 그렇게 만났지.
경주김씨 양반의 자손 이라구 우기는때 아니면 농담도 잘 못하는 변치 않는 사람............내 남편 "김영호"
옆집 영희엄마가 요실금 치료 기구라며 보여준 망칙한걸 나도 살껄 그랬나?
지수는 울지 않으려 다 식은 커피를 입에 가져 대보지만......꼽슬머리 여자가 뿌예진다.
이제 어떻하나......매달려 사정을 해볼까?
아냐 깨끗이 물러 서 주는거야.
오후 3시30분
"어이.....이씨!!! 새참 먹고 하지"
"예......갑니다"
"근데 이씬 아무래도 이런 노가다일 할 사람 같지 않은데........"
"뭐 이런일이 아무나 하나요.저 처럼 힘세고 눈 좋구 귀 밝은 사람이나 하죠 ㅎㅎㅎㅎ"
"사람 참 싱겁기는.......글구 주민등록 등본 냈어?
간조 받을래면 그게 필요한데.......설마 무슨 죄 짖고 쫒기는 사람은 아니지? "
"죄요? 죄 많이 졌죠....후후후"
오후 4시 50분
"언니........나......."
"응 뭐 할말 있어? 이시간에 니가 여길 다 오구...."
"................"
"왜?"
"나도 이런 가게 하나 할까?"
"왠 뚱단지 같은 소리야 우리 신랑이야 변변치 못하니까 내가 이 궁상이지 너야 동화건설 이사님 사모님이........언니를 놀려 지지배"
"흑............"
"아니 지수야!!"
"너 뭔일있어?"
..............................................
"아냐 아닐꺼야.김서방이 그럴 사람이니?"
"아냐 언니 나 각오 했어"
"그사람 퇴직후에 화실 하나 꾸며 줄라구 계 들어서 모아둔 돈두 있구...치사하게 맘 떠난 사람 안잡을래."
저녁 8시 40분
"아니 형님이 왠일 이세요.......절 다 술 사준다시구"
"아니 이사람 동서 끼리 술 한잔 하자는데 왜 그렇게 전화가 않돼?"
"회사로 전화 했더니 자네 비서 아가씨가 뭔 프로잭트 진행 중이라며 안 바꿔 주던데"
"핸폰은 또 왜 그렇게 안받구........ㅉㅉㅉ"
"후후......"
"자네 바람 났나?"
"예? 바람요?"
"그래 우리 집사람 걱정이 대단해.......처제가 왔다 갔데"
IMF때 영일만 공사 수주한 공로로 뒤늦게 이사 진급한 김영호
그때 첨으로 건교부 동창생이 억지로 떠 맡기다 시피해서 만년 부장을 면했지.
그후로 박상무는 여간 채근을 하는게 아녔어.......
"아 이사람 그 동창생이 언제 까지 그 자리 있을 줄 알어"
"좀 융통성이 있어야지 원 사람이 고지식 한건지......."
"담 달이면 이사 재선임 때야 알아서 하라구........"
"아니 그렇다구 노가다를 해 이사람아 ㅉㅉㅉ"
"하하 제 전공이 원래 건설...노가다 잖아요"
회사 이사 재선임에 밀려난 김영호는 서재를 잠그고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 수십장을 쳤다.
김영호는 자신의 경력이 너무 좋아 어떤회사도 안 받아 주는줄 도 모르고..........
첨엔 출근 한다고 나와,트렁크에 감춰둔 등산복을 갈아 입고,수락산도 가 보고,낚시도 가 보구..........
이사 진급 할때 정산한 퇴직금은 집 지을때 받은 융자금 일부 갚구 딸애 시집갈 밑천으로 아내에게 맡겨 놨는데..........
"허 이사람........근데 그 메리야스는 왜 바꿔 입구 다녀?"
"예? ㅎㅎㅎ몰랐어요....노가다 끝나구 간이 샤워장에서 샤워하구 바꿨겠죠......."
"에이 못난 사람.........."
밤 11시19분
"여보 미안해"
"아니예요 잠시라도 당신 의심한 내가 바보예요"
"나 모아둔 돈 몇천은 돼요. 우리 그걸루 떡볶기 장사라도 해요"
따르릉.............
"김 이사님 댁이죠......여기 동화건설 회장 비서실 인데요...좀전에 회장님 지시가 있었습니다.
김정현 게이트에 관련된 박상무 후임으로 건설사업 본부장 맡아 달라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