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는 날
부모님께 큰절하고 대문 밖을 나설 때
가슴 속엔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지만
풀 한 포기 친구 얼굴 모든 것이 새롭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
다 아시다시피 김광석이 부른 ‘이등병의 편지’ 가사입니다.
군대 가는 젊은이의 심정을 이렇게 절절히 표현한 노래가 있을까요?
저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는데, 다음 글은 그 군대 생활에 대한 비망록입니다.
# 1.
1976년 2월 어느 날, 저는 육군 논산훈련소에 입영을 합니다.
입대하는 날 오후 4시쯤 머리를 빡빡 깎은 젊은이들과 함께
입영 열차를 타고 손을 흔들며 논산훈련소로 향했습니다.
그때 인상 깊었던 장면 하나는, 플랫폼에 서서 떠나는 기차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짓던 어느 아가씨의 모습이었습니다.
애인인지 부부사이인지 모르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려니 마음이 아팠겠지요.
장병들을 태운 기차가 연무대 역에 도착한 시각은 저녁 7시쯤.
겨울이라서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습니다.
연무대 역에서 내려 행렬을 지어 걷는데, 길옆에 등불을 든 어린 애들이 보였어요.
왜 저렇게 서 있나 했더니 지나는 장병들이 건네주는 건빵을 얻기 위해서랍니다.
열차 안에서 배급받은 건빵이 입대 장병들의 입맛에 맞지 않아서인지,
매번 이 길을 지나는 장병들이 아이들에게 건빵을 건네주는 모양입니다.
우리를 인솔하던 기간병들은 건빵을 주지 말라고 했지만.
# 2.
어둠 속을 지나서 마침내 우리가 도착한 곳은 어느 막사 건물이었지요.
그곳은 훈련소에 입소하기 전 장병들이 대기하는 수용대대라는 곳이었는데,
그날 저녁 우리는 처음으로 칼잠이라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보통 군대에서 한 장의 모포로 3명이 덮고 잘 수 있게 되어 있었지만,
우리는 한 장의 모포 속에서 다섯 명이 옆으로 누워 잠자리에 들어야 했습니다.
군대라는 생소한 환경이 주는 두려움과 선임 병사들의 고압적인 태도,
그리고 서로가 누구인지 모르는 장병들과 비좁은 막사에서 7~80명이 누워있는
그런 상황이었으니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있었을까요?
그렇게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이 밝았을 때,
제 눈에 비친 주변 모습은 말 그대로 포로수용소의 분위기였습니다.
그 날 아침에 처음 경험했던 군대에서의 아침 식사시간,
둥그런 양은 식판에 시커먼 보리밥과 콩나물국, 그리고 반합에 담겨있는 염적무 한쪽이
식사 메뉴의 전부였답니다.
올려진 염적무 (소금에 절인 무)는 소금이나 마찬가지여서 먹을 수가 없었고...
한 번은 식사 배식 당번이 되어서 그 염적무를 퍼오는 현장을 볼 수 있었는데
야외 콘크리트 시설의 저장고에 염적무가 가득 차 있었고, 기간 사병이 장화를 신고
들어가 농사용 긴 포크로 찍어서 퍼 주던 장면이 잊혀지지 않네요.
우리가 먹는 반찬을 발로 밟고 있었으니~ㅎㅎ
# 3.
수용대대에서의 생활은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막연하기만 했습니다.
당시 장병들은 하루라도 빨리 훈련소에 들어가야 군번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훈련소 들어가는 날만을 기다리는 분위기였지요.
언제일지 모르는 그 날을 기다리며 낮이면 가끔 부대 바깥으로 사역을 나가기도
했는데 그때 밖에 나가면 길거리를 지나치는 여자들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더군요.
가끔은 이곳의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담을 넘다 걸려서 혼이 나는 장병들도 있었고...
그렇게 지루했던 수용대대 생활을 끝내고 2주가 지나서 드디어 훈련소로 들어갑니다.
첫댓글 군대 이야기가 나오니
머리 빡빡 깎고 충남 조치원(현 세종시) 32사단 신병교육대로 입대하던 그 날이 어제 같습니다.
이제는 추억속에 남은 그 시절,
지병으로 6개월 군 생활하다가 병원으로 후송, 18개월을 병원 전전하다
국군대구통합병원에서 의병 전역한 저입니다.
지금도 지병으로 고생하며 살지만
유명장수라고 한 가지 병 잘 관리하면 오래 산다더니 여기까지(만 67세) 왔습니다.
힘드셨겠네요. 18개월을 병원에서 고생하셨으니...
부대 생활을 하는 것도 힘들지만,
지병으로 인한 고통은 겪어본 사람만이 알지요.
옛날군대 갔다오셨군요
저는 박통 시해시. 논산떠나 구포. 공병대. 학교에서. 비상대기 하고있었죠
시간이 무심히도. 흘러버렸네요.
그래요, 그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그렇게 흘러갔네요. ^^
ㅎㅎ눈에 선하네요 수용연대생활 저도 15일 머물렀으니 ㅎ
훈련소 생활은 그래도 훈련 일정이 있으니까 괜찮았는데
수용 연대에서는 어떻게 될지 몰라 참 막막했던 것 같습니다. ㅎ
군입대 하기전 설서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어서 그런지 안동훈련소는 저에게 지상낙원 이었답니다
꽁짜로 잠재워주지 밥주지 사람대라고 때려주지 너무나 즐거운 나날들 이었답니다
사회주특기라 후반기교육도 없이 바로 자대 배치 받았 습니다
영천 1205건공단 705중대에서 특명받으니 그렇게 사회 나오기가 서운해서 군복을 벗고 예비군복 입기가 싫었답니다
내인생의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31개월15일 이었답니다
지제님은 군대 생활을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셨군요.
대부분 남정네들 군대서 고생했다고, 다시는 안 간다고 그러잖아요?
군대 체질이셨나 보네요~ㅎㅎ
지제 ! 반갑습니다. 오랫만에 오셨어요.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서울에 사시는거요?
흠... 여자들 시집살이 보다 더 했으까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 봉사 3년 9년씩이나 납작 업드려 살았으니
남정네 들은 처가 살이 해보고,
여성들은 군대 생활을 해 봐야 서로를 이해할까요?
운선님 댓글 감사합니다~ㅎㅎ
네~~
댓글 감솨~ㅎ
그날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합네다
저는 3일만에
수용연대에서 훈련소 23연대로 간는데ㅎ
저도 23연대로~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