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열네이비 사령관이 된 토머스 샐리스버리. 평범한 능력이지만 강력한 로열네이비를 잘 이끌었다. - 대영제국 역사 中

1369년 11월 11일 금요일.
이 날 잉글랜드왕국에서 대규모 귀족회의가 열렸다. 열은 주체는 물론 왕.
[짐이 경들을 부른것은 다름이 아니라... 지난 동맹때 감히 우리 잉글랜드왕국과의 동맹을 지키지 않은 부르군디 왕국에 대한 선전포고에 대해 지원을 요구하는 바이오.]
[저...전하! 하오나 그들은 신성로마제국의 제후국이며 현 신성로마제국 황제국인 오스트리아는 아국과 동맹관계이옵니다. 만약에 이 관계가 뒤틀려버린다면.... 새롭게 얻은 노르망디를 잃을 수도 있사옵니다!]
[여러분 이거 다~~~~~~~~~거짓말인거 아시죠? 어서 찬성하세요 안하면?]
스릉.
왕의 옆에 있던 근위병이 칼을 뽑았다.
귀족들은 아 슈발 ㅠㅠ 를 외치면서 찬성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예상대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국인 오스트리아에서는 이 잉글랜드의 배신행위에 대해 강력히 규탄하며 자신의 동맹 제후국과 함께 잉글랜드 공격에 직접 참가했다.
허나 떠오르는 스타잉 잉글랜드편에 서서 이미 신성도 로마도 제국도 아닌 제국을 박살내보겠다!라는 이름 하에 신성로마제국의 제후국인 사보이와 이베리아의 지배자인 카스티야를 포함, 여러 국가들이 잉글랜드편으로 참전했다.

전투가 이루어질 무렵, 나의 돈줄 조폐관 출신 조언자가 죽었다.
국가의 재정에 큰 무리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국이 참전했기에 이 전쟁은 최대한 빨리 많은 피해를 부르군디 왕국에게 줘야만 했다.
잉글랜드왕국의 에드워드3세는 이에 따라 직접 군대를 이끌고 주력군을 격파, 전멸시키는데 성공한다.

신성로마제국은 신성도 로마도 제국도 아니었다. 전황을 보던 오스트리아편 국가들이 계속 잉글랜드와 화평을 요구하고 있었다.

[저...전하! 소신은 죄가 없사옵니다!]
[닥치거라! 저놈을 매우 쳐라!]
밀란의 사절은 움직일 정도로만 맞아서 잉글랜드 왕궁을 빠져나갔다.

누가 보아도 신성로마제국에서 벗어나보겠다는 사보이의 꿈은 허황 그 자체였다.
오스트리아 연합군 대군이 들이닥치고 주력군이 격파당하자 사보이는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오스트리아의 왕인 루돌프4세가 이끄는 주력군과 잉글랜드 주력군이 맞부딪혔다.
수적으로는 잉글랜드가 우세였지만 저들의 전력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잉글랜드 왕세자. 처음 나올때 찍는걸 깜빡.
전투는 치열했다.
[위대한 잉글랜드 군이여! 부르군디 와인!....아니 사악한 저 자칭 신성한 로마제국군을 부셔버려라! Ypa!(우라!)아니 Chaaaarge!!!!]
[훗, 잘도 오는군. 얘들아, 우리의 목적은 지원군이 올때까지 버티는거다. 그거만 하면 이길 수 있다!]
전투중에 지원군이 도착하자 어쩔 수 없이 잉글랜드군은 뒤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전황은 그러나 결코 신성로마제국에게 우세하지 않았다.
계속 동맹국들이 전선에서 이탈해가기 시작했다.

카스티야군이 브리타니를 정복하는데 성공했다. 허나 동맹의 종주국으로써 잉글랜드의 종주국이 될것을 요청하고 이것이 성사되자, 카스티야의 왕은 분노했다.
이에 잉글랜드는 보상금을 보내주면서 전쟁에서 이기면 보상을 해줄것이라 이르렀다.

몇차례 피튀기는 전투 끝에 결국 오스트리아군은 와인에 미친 에드워드3세에게 전멸을 당하고 말았다.
즉시 잉글랜드군은 부르고뉴 공략에 돌입했다.


이때, 본국에서 다시 한번 특권을 요구하는 소수 귀족층의 반란이 일어나 다시금 국가의 정세가 조금 어지러워졌다.

브리타니 국경에서 군사적 충돌이 있었던듯 하다. 브리타니 '공작'은 이에 대해 직접 친서를 보내 시과를 하였다. 지금은 전시이다. 그런게 중요한게 아니다.

신성로마제국의 패배가 확실해지자 프랑스는 영국과 달리 단독으로 부르군디왕국에 재정복명분으로 전쟁을 선언했고 부르군디는 양면전선을 버티지 못하고 결국 항복을 선언하고 프랑스의 요구대로 영토를 내어준다.
[흐하하하하하! 역시 신성로마제국은 신성도 로마인도 제국도 아니야! 흐하핳하!]

1373년 2월 14일 수요일.
전선의 붕괴를 복구하지 못한 부르군디는 결국 잉글랜드의 사절의 요구에 따라 다음을 서약했다.
[부르군디는 피카르디에와 아르토이에 대한 영유권을 포기하며 이를 잉글랜드 왕에게 넘긴다.
향후 5년간 상호간 적대행위를 금지한다.]
이 사건으로 인해 전 세계는 경악에 빠지게 된다.
일게 섬나라아 신성로마제국을 이겼다!
물론, 그 뒤에는 더럽게 맛없는 잉글랜드 음식의 위력이 있었다.
[아싸! 부르군디 와인 공수 실 ㅋ 시 ㅋ]
[전하, 아직 와인이 나는 지방을 공략치 못했사옵니다.]
[으아니! 챠!]
그렇다. 부르군디 와인은 부르군디 지역에서 나는것이었다.
여전히 피시앤 칩스와 스테이크와 기네스 맥주만이 날라왔다.
[...전하, 노르망디에서 특산품을 보내왔습니다.]
[호옹이?! 죠...죻아! 어서 뜯어봐 뭐해! 쌀거가트니까 빨랑 뜯어 하앍하앍]
노르망디 특산품인 시드르 http://blog.naver.com/tnrlfksp86?Redirect=Log&logNo=10046576962<<설명
이 나왔다. 이 맛있는 사과주에 왕은 잠시 미쳐 팬티를 3번이나 갈아입었다고 한다.

이따위 미션이라니 ㄱ-;

전통적 우호국이었던 포르투갈에서 이쁜 처자를 보내 왕세자와 결혼을 시키고 싶어했다.
[이쁜애는 내꺼라는거! 내꺼임!]
[....전하, 돼지목에 진주목걸이를 끼시면 아니되옵니다.]
[네 이놈! 저놈을 매우 쳐라!]
라고 한 왕이었지만 그래도 결국 귀족의 반발에 왕세자에게 이쁜 처자를 보내버리고 만다.

1373년 2월 26일.
최종적으로 신성로마제국 황제 루돌프4세는 패배를 시인했다.
이에 따라 오스트리아는 배상금으로 50듀캇을 내며 향후 5년간 잉글랜드를 향한 어떠한 적개행동도 금지되었다.
황제가 패함에 따라 많은 신성로마제국 제후국들이 자신도 부르고뉴의 희생양이 될지 몰라 불안해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제국 전체의 불안으로 이어져갔다.

속국인 스코틀랜드와 인적으로도 서로간에 가까워 지기 위해 공주를 시집보냈다.

잉글랜드 내부에서 발전은 또한 계속되었다.

1373년 11월 20일, 잉글랜드 출신 추기경이 교황권을 장악했다. 맘에 안드는 나라가 있으면 이제 맘껏 파문령을 내릴 수 있으리라.
참고로 왕이 죽고 섭정통치기인데, 모르고 왕이 죽은걸 찍지 못했습니다.
그의 유언은 이러합니다.
[쓰레기 말고 먹을만한 음식...음식!......]

잉글랜드 왕국의 다음 목표가 정해졌다.
바로 오를레앙의 정복이었다.
허나 섭정기인 만큼 내정에 힘써야 한다...

오스트리아에서 다시 한번 동맹을 요청해왔다.
그들도 어쩔 수 없는 입장이었다. 제국의 불안속에서 자신을 지키려면 강력한 동맹이 필요했던 것이다.

한편, 오늘의 적이 내일의 동지,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라고, 계속되는 전쟁통에 왕가의 손이 끊기자 카스티야는 결혼한 공주의 아이를 근거로 들어서 사보이왕국에게 후계자 지목을 요구했다.
끝. 으악! 잉여분이 없다!으헣헣
첫댓글 이제 잉글랜드 파리 점령 미션 안나오나요?
해당 미션은 프랑스와 영길리가 전쟁중일 때, 파리가 프랑스 수도일때 일어납니다. 지금은....
카스티야가 승천하구나
영국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이유가 자국의 음식이 멋없어 였군요.
음식음식! 하던왕이 죽엇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