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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6월 발렌시와의 리그 마지막 경기. 필자가 꼽는 최고의 오버헤드킥이 나왔다. (Photo credit should read CHRISTOPHE SIMON/AFP/Getty Images) |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필자는 문득 6년 전 바르셀로나서 뛰던 히바우두의 바이시클킥(일명 오버헤드킥)을 떠올렸다. 2000-2001시즌 자칫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도 오르지 못할 수도 있던 위기의 순간에서 바르셀로나를 구원한 히바우두처럼 이번에도 짜릿한 반전이 일어나기를 바랐던 것이다.
하지만 히바우두의 극적인 슛이 100개가 터져나왔다고 해도 이번에는 레알 마드리드의 통산 30번째 우승을 막을 수는 없었다. 승점이 동률일 경우 골득실보다 상대전적을 우선시하는 스페인리그의 규정상 올시즌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1승1무를 거둔 레알 마드리드를 막기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프리미어리그처럼 골득실을 우선했다면 바르셀로나가 우승을 차지했다는 점은 승부의 아이러니다.
2001년 6월 17일 바르셀로나의 홈구장 캄프 누. 4위권에 들어야 챔피언스리그에 나설 수 있었지만 바르셀로나는 승점 3점차로 5위를 달리고 있었다. 이날 바르셀로나는 공교롭게도 4위 발렌시아와 리그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바르셀로나로서는 발렌시아전을 승리한다면 승점 동률을 이루고 상대전적에서 2승으로 4위에 턱걸이할 수 있었다.
후반 막판까지 2-2 동점. 바르셀로나 팬들의 기대가 절망으로 바뀌던 그 순간. 히바우두는 그야말로 축구사에 길이남은 오버 헤드킥으로 골을 뽑아낸다. 네덜란드 출신의 프랑크 데부르가 왼쪽 측면에서 올려준 볼은 포물선을 그어 히바우두의 가슴으로 향했다.
아크 오른쪽에서 골문을 등진 채 가슴으로 트래핑한 히바우두는 망설일 틈도 없이 공중으로 두 발을 올려세운 후 왼발로 오버 헤드킥을 시도했다. 마치 투수가 와인드업 후 강속구가 뿜듯 그의 슛은 골네트를 뒤흔들었고 히바우두는 바르셀로나를 살린 영웅에 올라섰다.
히바우두는 이날 오버헤드킥 뿐 아니라 프리킥과 중거리슛 등 이날 바르셀로나의 3골을 모두 뽑아냈다. 축구는 11명이 하는 스포츠지만 이날 만큼은 히바우두 홀로 뛰는 듯 보였다.
필자가 꼽는 최고의 오버헤드킥이다. 히바우두의 10번을 이어받은 호나우지뉴(27·바르셀로나)는 지난해 11월 25일 비야레알과의 프리메라경기서 환상적인 바이시클킥을 선보였다. 하지만 히바우두에게서 얻은 감동을 얻지는 못했다. 바르셀로나 팬들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당시 스페인 스포츠전문지 '엘 문도 데포르티보'가 '히바우두와 호나우지뉴의 바이시클킥 중 어느 골이 더 멋있느냐'는 주제로 설문조사한 결과 71%를 얻은 히바우두가 29%에 그친 호나우지뉴를 압도적으로 제쳤다.
피터 크리우치. 그는 가볍게 공중으로 뛰어올라 마치 백조가 날개를 펴듯 기다란 다리로 멋진 바이시클킥을 선보였다.(Photo by Alex Livesey/Getty Images) |
바이시클킥은 공중에 뜬 공을 마치 자전거 페달을 밟듯 두 발을 들어올리며 논스톱으로 슈팅하는 것을 말한다. 흔히들 오버헤드킥이라고도 부르는 이 기술은 펠레가 완성시켰다고 해서 '펠레 킥'이라고도 일컫는다.
영어권에서는 바이시클킥이 일반화돼있으며 남미에서는 칠레나(chilena)라고도 부른다. 칠레의 조그만 도시인 탈카우아노의 한 축구 선수가 잘 쓰던 기술이라는 데서 유래한 명칭이다. 이외에도 독일에서는 등을 지고 하는 슛이라는 의미로 팔루크치허(Fallrukzieher)로 표현되며 노르웨이서는 '브라질 사람들의 킥'이라는 뜻의 브라세스파르크(Brassespark)로 부른다.
바이시클 킥의 원산지는 히바우두와 호나우지뉴의 고향 브라질이다. 1934년과 1938년 월드컵에서 브라질 대표로 활약했던 레오디나스가 바이시클킥의 창시자로 기록돼있다. 브라질에서 만들어진 이 슛에 우아함과 수려함을 겸비한 이는 얼마전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으로 한국을 다녀간 마르코 판 바스턴이었다.
188㎝의 큰 키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볍게 공중으로 뛰어올라 마치 백조가 날개를 펴듯 기다란 다리로 멋진 바이시클킥을 선보였다. 아약스 시절과 AC 밀란에서 뛰던 1992-1993시즌 예테보리와의 UEFA챔피언스리그 경기서 보여준 바이시클킥은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그의 후계자로 꼽히는 판 니스텔로이를 두고 네덜란드 언론은 "판 니는 판 바스턴을 빼닮았지만 우아함만은 닮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판 니스텔로이는 유로 20004 독일전에서 환상적인 바이시클킥을 뽑아냈지만 판 바스턴을 넘어서지는 못한 모양이다.
리버풀의 장신 공격수 피터 크라우치는 지난해 9월 28일 홈구장인 안필드서 열린 갈라타사라이와의 2006-2007 UEFA 챔피언스 리그 C조 2차전 경기에서 후반 7분 그림같은 바이시클킥을 성공시키며 3-2의 승리를 이끌었다.
감격에 겨운 그는 "내 리버풀 경력에서 최고의 순간이며 최고의 골이다"고 자평했다. 단신이 아닌 198㎝의 장신이 뿜어내는 바이시클킥은 웅장함을 맛볼 수 있다.
독일월드컵 결승전서 지네딘 지단으로부터 박치기를 당했던 마르코 마테라치(인터 밀란) 역시 193㎝의 큰 키로 지난해 12월 17일 메시나전서 벼락같은 바이시클킥을 보여주며 이탈리아 스포츠전문지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로부터 '후세에 구전될 골'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2004년 K리그 최고의 골로 꼽힌 황연석의 오른발 바이시클킥 역시 192㎝에서 나온 것이다.
국내에서 기억나는 바이시클킥 중 최고작은 김도훈이다. 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우크라이나전서 김도훈은 예측불허의 바이시클킥을 선보였다. 오른쪽 측면에서 이영진이 뒤로 빼준 볼을 한정국이 크로스한 볼을 그는 벼락치듯 자신의 A매치 데뷔골을 만들어냈다. 김도훈은 이 골에 대해 "내 인생을 바꿔놓은 골"이라고 평가한다.
판 니스텔로이는 유로 20004 독일전에서 환상적인 바이시클킥을 뽑아냈지만 판 바스턴을 넘어서지는 못한 모양이다. (Photo by Laurence Griffiths/Getty Images) |
이외에도 2003년 8월 10일 빅버드(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수원 삼성과 안양 LG의 '지지대 더비'서 터져나온 서정원의 바이시클킥도 잊을 수 없다. 그의 슈팅 자세는 어정쩡하기는 했지만 라이벌전이라는 절박감 속에서 뿜어진 골이었기에 그만큼 값졌다. 청소년대표인 신영록(수원)이 2005년 10월 우즈베키스탄과의 아시아청소년선수권 8강전서 기록한 바이시클킥도 뇌리에 선명하다.
바이시클킥은 그야말로 축구의 카타르시스다. 펠레가 축구황제로 등극할 수 있었던 데는 완벽하게 바이시클킥을 구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바이시클킥에 생소했던 유럽 사람들은 펠레의 묘기를 지켜본 후 그를 '한 마리의 새'로 불렀고, 그는 '바이시클 킥 마스터'라는 별칭을 부여했다.
볼에 발을 갖다대기도 힘든 상황에서 갑자기 두 발을 솟구쳐 슈팅까지 이어가는 이 기술은 펠레의 전매특허였고 축구를 세계 최고의 스포츠로 올려놓는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펠레는 바이시클킥의 비효율성을 지적한다.
그는 "오늘날 거의 모든 브라질 선수들이 이 바이시클킥에 익숙해있지만 실제로 이 킥은 골을 넣는데 효율적이지 않다. 내가 현역시절 1280골을 터트렸지만 그 중 바이시클킥은 몇개 되지 않는다"며 "오히려 나는 헤딩골을 즐겼다. 헤딩슛은 아버지 돈디뇨의 특기였기 때문이다"고 밝힌 바 있다.
펠레의 말처럼 바이시클킥은 역설적이다. 중력의 법칙에 반역을 꾀해야 하는 데다 몸을 골문을 향하고 디딤발을 딛고 킥을 한다는 슈팅의 일반 법칙에도 거스른다. 그런 의미에서 바이시클킥은 역설에서 얻어낸 최고의 묘기다.
또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슈팅이지만 가장 부정확하며 비효율적이라는 점이 이 슛의 묘미다. 멋지고 화려하지만 숱하게 많이 터져나오는 농구의 덩크슛과는 다른 희소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첫댓글 바이시클 킥의 대명사 우고 산체스.. 팀훈련이 끝나고 따로 바이시클 킥만 연습했다고 하죠..
;;크라우치 ...바람개비니....?
차두리 얘기도 한번 나올줄 알았는데 ㅋㅋ
히바우도 진짜 지금의 호나우딩요는 그의 명성에 미치지 못하죠
유로 20004...;;
일본한테 먹었던 오버헤드킥도 생각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