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05시 40분경 눈을 떳다. 드뎌 지리산국의 순방일.. 몇 일간 온전한 치장을 못할 것이며 또 단정한(?) 모습으로 방문을 하기 위하여 샤워를 하고 간단하게 우유 한잔으로 순대를 채운 후 출국장인 부산 서부터미널로 향하였다. 그곳에서 출동대기 중이던 07시발 시외버스에 몸 싣고 세 시간여를 내달려서 지리산국의 화엄사에 당도했다.
'지리산도 식후경'
여유 있게 산행일정을 계획하였으므로 시간에 쫓겨 허둥댈 필요가 없는 탓에 화엄사 출입국사무소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간단히 아점을 때우고 식수를 보충하고 다시 한번 괘나리 봇짐을 최종적으로 점검하고 출입국사무소로 향하였다.
지리산국의 출입국검사원들이 방랑객이 제시한 여권에 입국도장을 찍어 주었고, 곧 이어 컨베이어 세관검사대에 등산배낭을 올려 놓고 엑스레이 검사를 마친 후에야 지리산국의 영토에 발을 내디딜 수가 있었다.
출입국사무소의 입국검사를 마치니 곧바로 지리산국 華嚴寺市의 대문이 나를 반긴다. ‘그려 내가 왔도다!’
대문을 지나 아스팔트변 목조길을 걸어 화엄사 시청사에 도착하여 대웅전에 들러 부처님의 옹화한 미소 앞에 지리산국을 방문하는 모든 이들의 건강과 안전산행을 기원하며 108배를 올렸다.
천년의 영기를 머금은 화엄사의 샘물로 목을 추긴 후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였다. 노고단 7Km, 연기암 2.3Km, 천왕봉 32.5Km 이정표를 보며 시간을 확인하니 13시 23분 오늘은 노고단대피소에서 유할 것이므로 충분한 여유가 있다.
노고단으로 향하는 산길 양 옆은 가막살나무, 조록싸리, 철쭉나무, 국수나무 같은 키 작은 관목들이 겨울바람에 흔들렸고, 토종대나무라고 할 수 있는 조릿대가 파란 잎을 내밀고 파르르 몸을 떨었다.
이들과 말없는 대화를 나누며 오르기를 1시간 30분여 연기암과 노고단의 갈림길이다. 십수년전의 사건이 생각나 연기암은 들리지 않기로 하고 중재로 향하였다.
중재에 도착하니 15시 57분 앞으로 가야할 길이 3Km... 너무 여유를 부렸나?
밀감 한 개와 자유시간, 한모금의 물로 원기를 회복하고 발길을 재촉한다.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하니 17시 42분, 오늘 누울 자리를 배정받고 취사장으로 향하였다.
“안녕하세요”. “수고하셨습니다!” 인사를 건네고 저녁을 해결한 후 酒님을 배알하였다.
맛난 홍어를 건네주신 설악으로 예정하셨다가 지리산으로 방향을 수정하신 서울 불광동의 네분님들 고맙습니다.
종주의 끝밤이라며 스팸 한통을 건네주신 의정부의 어르신 고맙습니다.
20일 06시 10분여 주변의 부서럭임에 눈을 떳다.
연하천에서 유할 것이므로 여유가 있다.
아침식사를 하고 08시 30분 노고단으로 향하였다.
노도단에 올라서니 발 아래로 펼쳐진 운해!! 적지 않게 이곳에 올랐지만 처음 접하는 운해였다. 그 어떠한 필설로도 설명할 수 없는 그 풍광에 그냥 입만 벌리고 있을 수 밖에...
그 동안의 지리산국 방문은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앞으로! 앞으로!!’ 만 하였기에 지리산국의 곳곳을 눈에 담을 시간이 없었지만 금번 방문길은 천천히 모든 것을 눈에 담을 수 있기에 좋기만 하였다.
돼지평전을 지나 지리산에서 가장 수량이 풍부하고 물맛이 좋은 임걸령 샘터에 도착하니 바로 눈앞으로 반야봉이 나를 반긴다.
노루목을 지나 반야봉에 올라서니 11시 50분여, 노고단과 천왕봉이 좌우로 한 눈에 들어온다. 노고단과 천왕봉, 그리고 서북능선의 고리봉, 만복대 등등을 디카에 담았다. 그러나 홀로 올라선 탓에 나를 확인하기엔 수 차례의 쇼를 연출하여야 하였다.
(자동셔터를 하고는 위치에 달려가기를 수 차례 하였음)
삼도봉을 거쳐 화개재에 도착하니 13시 10분여 앞서 도착하신 불광동의 네분과 아침에 노고단대피소에서 인사를 나눈 안성의 부부가 나를 반긴다. 미리 준비한 점심식사를 하고 후식으로 사과를 나누었다.
오늘 음정으로 하산하신다는 불광동의 네분은 서둘러 출발하시고 안성의 부부도 먼저 출발을 한다.
14시 20분 토끼봉에 올라 갑갑해 할 발의 위하여 맨발로 쉬고 있노라니 한 분이 숨찬 얼굴로 올라오신다. 07시 차로 부산에서 오셨다는 님께서는 지도 한 장에 의지하고서 초행이시란다. 연하천 대피소에서 유하실 예정이라기에 천천히 가셔도 된다고 하니 지도상에 4시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되어 있기에 빨리 가셔야 된다네?
◉◉; 오잉!!! 4시간....?
지도를 확인하니 분명 4시간으로 표기가 되어 있다. 여름에도 다녀갔는데 연하천 대피소가 그 사이 어디로 이사를 하였나? 지도제작이 잘못된 것이었다!
「지도를 제작하시는 분들께서는 정확한 거리와 시간을 표기하여 주시오!!」
그러나 그 님께서는 내말보다는 지도를 더 믿으시는 것 같기에 더 이상 말씀드리지 않고 먼저 출발 하시고 안전산행하실 것을 당부드리고 밀감을 하나 건네드렸다.
명선봉을 지나 발길을 재촉하니 드디어 나타난 목제계단!! 이것을 내려서면 연하천!!
연하천 대피소에 도착하니 안성의 부부와 토끼봉에서 만난 부산 분께서 나를 반긴다.
시원하다 못해 뼈속까지 시리는 연하천의 샘물로 목을 추기고 잠시 쉬노라니 멎진 분이 지리산카페에 있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니 반갑다며 손을 내민다. 지게꾼님이시다.
좀 있으니 또 한분이 대피소로 들오신다. 산타님이시다.
이른 술시를 가졌다. 안성의 부부, 지게꾼님, 산타님, 그리고 연하천산장의 식구들 모두 9명이 시작한 자리는 양이 부족한 탓에 내일 사용할 분량까지 모두 소진하였다.
급히 부산에 전활한다. 보급대를 호출하기 위하여...
그렇게 둘째날의 밤은 저물고 이었다.
21일 잠자리에서 일어나기는 제일 먼저였지만 출발은 가장 늦게 08시 10분에 연하천을 출발하였다. 지게꾼님께 인사를 못하고 와서 맘에 걸린다.
-지게꾼님 반가웠고요 항상 건강하세요-
벽소령과 덕평봉을 거쳐 칠선봉에 도착하니 서울에서 왔다는 젊은이들이 나를 반긴다.
방송관련학과에 다닌다는 이들은 ‘지리산의 사람들’이라는 다큐를 제작하고 있다며 인터뷰를 부탁한다. 간단한 질문에 답하고서는 먼저 일어선다.
오늘은 조금 서둘러야 한다. 백무동에서 보급대가 혼자 올라오기 때문에 마중을 나가야 하므로..
12시 50분여 세석에 도착하니 산타님 일행이 나를 반긴다(새로운 두분은 아침에 한신계곡으로 올라오셨단다). 라면에 아침에 준비한 밥을 같이하여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출발 16시에 장터목에 도착하였다.
잠시 쉬고는 백무동방향으로 내려서기를 30분여 보급대를 만났다. 그곳까지 동행을 하여준 울산의 엔진산악회분들게 감사드립니다.
1.8ℓ 두병, 노란액체 1병, 석화, 닭발..등을 그 무거운 것을 지고 올라온 나의 보급대!!
오늘밤은 부러운 것이 없을 것이다.
산타님과 그 일행, 칠선봉에서의 젊은이들, 울산 엔진산악회의 산행대장님과 회장님 등 산행중에 만난 모든 이들과 지리산 굴, 닭발을 안주로 나눈 한잔의 술잔속에 세상의 모든 근심과 불행을 담아 삼키고 내일부터 모두에게 좋은일들만을 있기를 바램하였다.
☆ 장터목에서 백무동 방향의 모처에 1.8ℓ 한병을 감춰두었으니 눈 밝은 분은 찾아서 드시와요..^^
22일 05시 30분 보급대로 합류한 나의 반려자를 깨워 배낭을 추서린 후 06시 20분 천왕봉을 향하였다.
정상이 가까워지자 나무로서의 삶을 다하고 몸을 눕힌 고사목들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잔 가지를 모두 떨구어 내고 커다란 기둥 하나로 삶을 눕힌 고사목들은 마치 눈을 이불 삼아 깊히 잠 든 것 처럼 평화롭게 보였다. 나무는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는데 저렇게 아름다운 자연 속에 누워있는 나무는 얼마라 편안할까. 나무의 삶과 죽음이 모두 행복하게 느껴졌다.
정상에 이르는 마지막 능선길에 커다란 바위 몇 점이 시야에 들어왔다. 여명에 흐릿하게 보이던 바위에 가까이 다가가자 암석의 표면에 하얀 겨울눈꽃이 옹기종기 엉겨 붙어 있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자세히 관찰하자 누군가가 눈에서 물기를 빼내고 눈결정체만 모아서 양면테이프로 바위살결에 붙여놓은 것처럼 단단하게 밀착되어 있었다.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형용사들을 죄다 동원해 봐도 나는 이런 아름다움을 어떻게 표현해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황홀경
그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천왕봉!
지리산국의 최정상에 이르자 바람이 너무 강해서 나는 그만 몸을 추르리지 못하고 기우뚱했다. 얼굴에 와 닿는 칼바람은 마치 얼음을 맨살에 댄 듯 차가웠고, 콧속으로 스미는 겨울의 냄새는 맑고 향긋했다. 영겁의 세월을 한 자리에 서서 온갖 풍상을 견뎌내며 세월의 더께가 켜켜이 쌓인 천왕봉은 듬직하고도 신비로웠다.
07시 50분 세월의 바닥을 아래로 깔고서 해가 오른다.
누가 그 해오름을 설명할 수 있을까?
가만히 태양의 밝힘을 바라다보면서 저 깊은 속 어디에선가 울컥 오르는 그 무엇이 눈물을 비치게 한다. 옆에서 두 손 모아 기원하던 마눌의 눈가에도 이슬이 비쳐진다. 그리곤 가만히 속삭인다. “생일 축하해요!”
그렇다. 생일날 바라단 본 장엄한 일출을 난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윙윙윙 휭휭
천왕봉이라고 쓰여진 푯말 옆으로 다가서자 바위를 훑으면서 지나가는 칼바람이 고막을 후볐고, 세찬 바람에 잔설에서 퉁겨나온 눈꽃이 얼굴을 때렸다. 눈송이는 살갗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뼛속가지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저 멀리로 반야봉과 노고단이 보인다. 너무나 좋은 일기로 축복받은 금번 산행은 한눈에 지리산국의 주 능선을 바라다 볼 수 있었기에 더욱 기억될 것이다.
주변에 다른 등산객들이 북적거렸다.
다들 추워서 그런지, 겨울산에서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더 따뜻하게 대해주는 것 같았다.
천왕봉의 장엄한 일출을 보겠다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이곳까지 힘겹게 올라온 겨울남자여
돈 몇 푼 벌겠다고 아날로그 시계 부속처럼 분주하게 살아온 도시의 방랑객이여
아수라 물결에 이리저리 휩쓸리며 살아야 했던 도시의 외로운 나그네여
여기 지리산국 천왕봉에서 지친 날개를 접고 술 한 잔 들이키시오
놀면 뭐 해?
보급대가 정성스레 준비해 온 양주 한 병을 꺼냈다
고산지대에서 목격한 술병은 예쁘면서도 귀여웠다
육포 한 토막에
양주 한 잔
술맛은 달콤했고
몸 속에 들어간 알코올 성분은 가슴을 따뜻하게 데웠다
너무도 행복했다
그 순간 겨울나무가 내게 물었다
'넌 누구랑 함께 왔니?'
나는 대답 했다
'묻지마, 다쳐'
또 다시 육포 한 토막에
양주 한 잔
'크아악 조오타'
'크아악 타타타'
한 잔 먹세그려
또 한 잔 먹세그려
눈꽃 꺽어 주안상에 올려 놓고
무진무진 먹세그려
그 때 차운 칼바람이 겨울나무를 흔들었다 --- 윙윙윙 흔들
나는 내말을 하고 겨울나무는 제말을 하고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기는 겨울나무가 취한다 --- 윙윙윙 흔들
석잔의 술로 속을 데운 우린 중봉을 향하였다.
중봉에서 바라다 본 천왕봉은 또 다른 감흥을 주었고. 써리봉에서 바라본 중봉과 천왕봉을 뒤로 하고 치밭목에 도착하니 10시 10분여 간단하게 라면으로 곡기를 때우곤 민대장님과 한참의 대화를 나누고 11시 30분에 다시 길을 나섰다.
그 기나긴 길... 얼마를 왔을까 눈앞에 나타난 유평 출입국사무소!
안경낀 직원이 출국확인서를 교부해 준다. 시간을 확인 하니 16시 40분
생애 7번째이자 사십?회 생일을 자축하는 지리산종주는 그렇게 끝을 맺었다.
첫댓글 너무 멋진 생일종주산행이셨겠네요...사진도 함께 올려주셨으면 감동이 더했을텐데...여태 읽어본 산행기 중에서 가장 감동적입니다. 멋지세요..생신 축하드립니다...
재있네요~~ㅋㅋ^^* 잘 읽었어요~~ㅎㅎ
부러워요 ~~~~~~ 저도 곧 지리산행 시작 할려고 시동 전이라서.....많은 도움 되업읍니다
이코스 그대로 도전해보고싶어요..준비물알려주세요..귀찮으시더라도..소상히 ㅋㅋㅋ 출발지는 울산입니다 날짜상관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