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적
송영혜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분은 도량이 몹시 좁구나, 그런데 우리에게 어째서 이렇게 친절할
까......'
이때 대군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노선배님께서도 한 잔 드세요."
대군은 마음속으로 조심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강호에는 속임수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을 전부터 알고 있었다.
청의의 노인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내력도 잘 알지 못하는
터였고 오늘 처음 대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무턱 대고 믿을 처지가 못된
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여러 가지로 행동을 조심성있게 하지 않으면 안되
겠다고 생각했다.
대군의 이런 내심을 환히 알고 있기라도 한 듯 청의의 노인은 한바탕 껄
껄 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노부도 손님과 함께 마셔야지."
그러자 수궁이 한 잔의 향차를 청의의 노인 앞에 내놓았다.
그러자 청의의 노인은 향차를 단숨에 훌훌 들이키고는 빙그레 미소를 지
었다.
"수궁, 수야. 너희들은 가서 해청자(海靑子)를 도와 술과 안주를 준비해
라."
두 명의 청의의 여동들은 허리를 굽혀서 인사를 드린 후 성급하게 그 자
리를 물러 나갔다.
청의의 노인은 자리에 앉은 후 다시금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노부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 반 년 전부터 이곳에 와서 살고 있는 터라
하인을 세 명밖에 데려 오지 않아 집이 몹시 쓸쓸해 보이지?"
마침 송영혜와 대군도 그것에 대해서 이상히 생각을 했기 때문에 물어보
려고 했었는데 청의의 노인은 자신이 먼저 말을 해버린 것이다.
상대의 마음을 환히 들여다보는 청의의 노인이 흡사 귀신 같은 생각도 들
었다.
대군의 청의의 노인에 대한 의심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청의의 노인의 이런 태도를 보자 그것이 더욱 의심을 갖게 만들었다.
대군은 웃음띤 얼굴을 하고 물었다.
"노선배님, 지금도 존함을 알려주기가 싫으세요?"
청의의 노인은 너털웃음을 웃고는 대답했다.
"너희들은 매우 궁금한 모양인데 조만간 노부가 누구라는 것도 밝혀질 것
이다.
이때 한 줄기 가는다란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몽천악이 지른 신음 소리였다.
그와 함께 몽천악은 갑자기 정신이 회복된 듯 벌떡 일어나 앉았다.
한참 동안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피던 그는 어리둥절한 듯 눈을 크게 떴
다.
마침 송영혜가 바로 옆에 앉아 있다가 큰 소리로 그를 불렀다.
"여보, 나예요."
기쁜 나머지 송영혜는 몽천악을 품속에 꼬옥 끌어안았다.
몽천악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잠에서 깨어나는 듯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
다.
"영혜, 너로구나, 이건 꿈이 아닌가?"
대군이 가까이 다가앉으며 말했다.
"악오빠 이건, 꿈이 아니에요. 송언니께서 하산을 하여 상처를 입은 당신
을 구해 주었어요."
그제야 몽천악은 대청 안의 사람들을 똑똑히 바라보았다.
'나의 기억이 틀림없다면 송영혜는 무공을 조금도 못하는 약한 여자에 불
과한데 어떻게 나를 치료했을까?'
그는 곰곰이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화상들의 봉미침 인화탄 염주를 맞고 쓰러진 기억은 되살아났으나 그 뒤
의 일들은 하나도 생각되지 않았다.
몽천악은 송영혜의 아랫배가 보름달처럼 불러 있음을 보자 몹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그녀의 불룩한 배를 가만히 쓰다듬으며 더듬더듬 말했다.
"당..... 당신은 임신을 했구려?"
송영혜는 수줍고 기쁜 나머지 고개를 아래로 떨어뜨리고는 조용히 흐느끼
기 시작했다 .
그것은 오랜 긴장에서 벗어난 여인의 울음이기도 했다.
그녀는 몽천악의 차가운 태도를 보자 더욱 어쩔 줄 몰랐다.
한편으론 밉기도 했다.
몽천악은 고조된 음성으로 그녀의 말을 받았다.
"나쁜 뜻으로 한 말이 아니야,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아기가 있었으면 좋
겠소."
말소리가 너무나 컸던 모양이었다.
송영혜는 가만히 귓속말로 몽천악에게 주의를 주었다.
"여기는 우리집이 아니니 너무 큰 소리로 말하지 마세요."
몽천악은 주위를 자세히 살펴본 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지금까지 자기가 앉아 있는 곳이 어딘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여긴 어디요? 그리고 당신은 왜 하산을 했는지 그 동안의 모든 경과를
내게 들려주오."
청의의 노인이 이때 잠자코 옆에서 그들의 하는 행동을 물끄러미 바라보
고 있다가 별안간 대소를 터트리며 말을 받았다.
"송낭자와 몽노제는 헤어진 지가 오래되어 자연 할 얘기들도 태산처럼 많
을 테니 노부는 잠시 자리를 피하겠네."
그제야 몽천악은 청의의 노인을 똑똑히 바라보았다.
몽천악은 안색이 약간 변하더니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저분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누굴까?'
한동안 몽천악은 넋을 잃은 사람처럼 말을 않고 앉아있기만 했다.
그것을 보자 대군은 몽천악이 송영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을 짐작하고는
갑자기 차갑게 내쏘았다.
"몽사형, 송언니는 이미 당신의 자식을 임신했어요. 알고 보니 당신은 매
우 무정한 분이었군요. 약한 여자를 홀로 깊은 산중에 내버려두고 이제는
또 당신의 목숨까지 구출해 주었는데 왜 이렇게 냉담하기만 해요?"
몽천악은 송영혜가 나직이 흐느끼고 있는 것을 보고 또한 대군의 말을 듣
자 그제야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드는 듯했다.
몽천악은 송영혜의 어깨를 쓸어안고 다정하게 말했다.
"영혜, 정말 우리들의 아이를 임신한 게 틀림없어? 아! 정말 반가운 소리
로군......"
사실 몽천악은 송영혜가 자기의 아이를 임신하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
던 것이다.
"그 동안 혼자 고생했을 테지? 미안하오."
송영혜는 그 말을 듣자 몽천악의 넓은 가슴에 얼굴을 파묻으며 몸부림쳤
다.
송영혜가 한참만에 물었다.
"당신은 정말 아이를 좋아하세요? 저는 너무 이르지 않을까 염려했어요."
"대군낭자는 어딜 가려하지?"
대군은 쓸쓸하게 웃었다.
"몽사형이 이제 완쾌되었으니 나는 이곳을 떠나겠어요."
그러자 송영혜는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낭자, 가지 말아요. 네가 가면 나도 곧 산으로 돌아갈 테야."
몽천악도 두 여자의 말소리를 듣고는 탄식하며 외쳤다.
"대군, 가지 마라. 설사 가더라도 이렇게 조급히 서둘 건 없어."
그리고는 무엇이 생각나기라도 한 듯 깊은 수묵(水墨)빛의 눈동자를 굴리
더니
"참, 이곳은 어디냐, 그리고 방금 그 노인은 누구지?"
하고 성급하게 물었다.
대군은 조금 전에 청의의 노인을 발견한 몽천악의 안색이 갑자기 창백하
게 변하는 것을 놓치지 않고 보았었다.
단순히 낯선 사람을 갑자기 보았기 때문이었을까?
그러나 몽천악의 놀람에는 그보다 더 중요한 내력이 있는 듯했다.
대군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언뜻 짚이는 것이 없었다.
다만 오래도록 사귀어온 친구의 얼굴처럼 낯익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어디서 보았을까?'
몽천악은 청의의 노인이 방금 걸어나간 쪽을 바라보았으나, 청의의 노인
은 이미 휘적휘적 후청이 짙은 어둠 속에 묻혀버렸다.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던 대군은 몽천악과 송영혜가 귓속말로 다정스
럽게 속삭이고 있는 모습을 보자 은근히 질투심이 솟아올랐다.
대군은 죽림 속에 몽천악이 상처를 입고 누워 있을 때의 일이 눈앞에 선
하게 나타남을 느꼈다.
그때 몽천악은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고 고백을 했었다.
대군도 그 말을 듣고 자기의 심정을 고백했다.
그러나 지금은 한 가닥 희망이 좌절되어 버렸고 마침내는 처참하게 산산
이 부서져버린 것이 아닌가 !
대군은 두 사람의 모습을 보기가 괴로워 묵묵히 대청 밖으로 걸어나갔다.
대군은 좀전의 몽천악이 청의의 노인을 바라보던 시선에 대해서 깊이 생
각해 보았다.
'설마 철천지 원수는 아니겠지?'
그녀는 고개를 절래절래 좌우로 흔들어댔다.
그러한 생각을 하는 스스로를 깨닫고 소스라쳐 놀랐다.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을 것이다.'
대군은 이 한밤중에, 더욱이 몽천악은 몸도 불편한데 이런 곳에서 원수를
만났다고 가정을 한다면 얼마나 무서운 사건이 또 벌어질지에 대하여 생
각을 아니할 수가 없었기에 더럭 소름이 끼쳤던 것이었다.
그녀는 다시 대청안으로 들어오며 침중히 말했다.
대군은 몽천악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몽사형은 전에 그분을 만난 적이 있으세요? 그분은 이 집의 주인이에요.
그리고 이곳은 낙양성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교외이고 주위는 인가라고
는 한 채도 없는 황량한 벌판이에요."
몽천악은 더욱 의아스러운 눈빛으로 대군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대군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녀는 대문 쪽으로 총총히 발을 옮기다가 문득 그 자리에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이대로 떠나기엔 풀지 못한 감정이 너무나 많이 남아 있는 것이다.
더욱이 송영혜의 출현으로 인하여 물러나는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씁쓸한 패배심이 먼지처럼 쌓여있는 것이었다.
대군은 남자 때문에 이토록 심한 갈등을 겪는 것은 처음이었다.
대군은 와락 울음이라도 터트리고픈 심정이었다.
야반(夜半)은 차츰 이슥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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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즐감하고 갑니다
즐감~1
즐독했습니다~~감사합니다.
ㅈㄷ
감사해요~~~^~
감사합니다
부인
ㅈㄷㄳ
잘읽었습니다
ㅎㅎㅎ
즐독!!!!!!!!!!!!1
ㅈㄷㄱ~~~~~~``````````````````
즐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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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독
즐독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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