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수대첩 당시의 역사적 상황으로 옳은 것은? 답2번
1.백제는 일본에 칠지도를 보내 친선을 강화하였다.
2.신라는 한강유역을 차지하고 수나라와 우호정책을 폈다.
3.고구려의 연개소문은 서북 국경지대에 천리장성을 쌓았다.
4.고구려 유민들은 동모산을 근거로 발해를 건국하였다.
해설 : 1. 372년
3. 647년 당의 침략에 대비하여 축조
4. 698냔 빌해 건국
*살수대첩(612)
영양왕 23년에 고구려가 수나라 양제의 침공을 격퇴하고 대승리를 거둔 싸움으로 고구려는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 수는 멸망
질문 : 보기 2번은 6세기 상황아닌가요? 살수대첩은 7세기..그래서 전 3번으로 찍었는데...3번도 7세기...설명좀 부탁드립니다.~~~^^*...
첫댓글 살수대첩은 수나라와 관련된 거죠. 1)백제와 칠지도 근초고왕때 시절 중국은 5호16국. 2)수나라와 우호정책. 신라가 원광법사에게 걸사표를 지어 수나라에 보내게 한 일을 생각해 보시면 될 거고요, 3)연개소문은 당나라시절 4)발해건국 또한 당나라 그나마 가장 연관성이 있는 건 2번이네요.
6세기 중엽에 진흥왕이 한강유역을 차지합니다 그때 차지한게 7세기로 쭉 이어지면서 계속 한강유역을 차지하고있고 수나라와도 우호정책을 펴는거죠. 그리고 문제는 살수대첩 당시의 역사적 상황입니다. 이시기에는 연개소문이 아직 두각을 나타내지 않고있을시기입니다
을지문덕은 수나라하고 싸웠지요? 그런데 3번 천리장성 상황에서는 이미 수나라 망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답은 2번이지요.
6세기다, 7세기다, 이런 식으로만 외우시면.. 1세기는 100년인데, 수나라같은 나라는 겨우 30년짜리.. 아닌가? 15년인가요? 헷갈리네요-_-
약간이상하긴 하네요^^ 근데 천리장성 쌓을때는 당이 성립했고 쳐들어올 기세였기에 천리장성을 쌓은것이고 그나마 가까운게 2번.. 문제 상당히 까다롭네요!
이런문제는 까다로운게 아닙니다 당연히 2번입니다. 살수대첩일어날시기에도 한강유역은 신라가 차지하고있었구요. 질문자분이 헷갈리신건 한강유역차지했다 이말만 보시고 진흥왕때인대 이상하네 이렇게 생각하시니까 혼돈되신거구요.
흠.. 아마 진흥왕이 이때 한강유역을 점령했다 이 말이 아니라, 한강유역을 점유하고 있었다. 이렇게 해석을 해야 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