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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5. 10. 11. 토요일.
어제는 비가 내렸고, 오늘 오전에는 흐리더니만 오후 들어와 햇볕이 점점 밝아진다.
날씨가 깔끔하며 환해지면 나도 덩달아 기운이 난다.
나는 아무래도 태생이 햇빛을 바라보는 식물본성을 지녔나 보다.
그러나 저녁무렵에는 하늘이 다시 우중충 흐려졌다. 곧 비 퍼울 듯....
나는 지금 집나이 일흔여덟살, 만76살이다.
나날이 자꾸만 지치고, 힘들어 한다.
오늘도 배가 더부룩하더니만 오후에 세 차레나 화장실에 들락거렸다.
첫번째는 심각한 변비증세로 힘들어 하면서 억지로 염소똥 같은 형태로 방울 방울 누었고, 두번째 세번째는 설사를 줄줄 했다.
퇴직한 지도 오래되었고, 서울에서는 무기력한 무능력자이기에 날마다 컴퓨터를 켜서 화면을 들여다 본다. 오늘도 역시 ... .
<한국국보문학> '월간지 2025년 11월호'에 게재 예정인 원고상태의 글을 미리 읽었다.
11월호 원고 (일본에서 만난 사람)
조 미 경
일본을 여행/관광한 뒤에 쓴 수필이다.
내가 이제껏 한 번도 방문하지 못한 일본이다.
감성 좋은 수필을 쓰는 조미경 여류작가님이 마냥 부럽다.
내가 댓글 달고는 퍼서 '세상사는 이야기방'에 올려서 내 글감으로 삼는다.
내 댓글 :
거듭 읽었습니다.
외국어인 일본어, 영어를 공부했고, 한국에 온 외국인과도 일본어 영어로 대화를 시도했군요.
더 나아가 최근에는 일본에도 직접 관광여행을 다녀왔군요.
나는 중학교시절에는 영어를, 고교시절에는 영어와 독일어를, 대학교 시절에는 영어, 일본어, 독일어를 더 공부했고, 직장 다니면서 영어를 더 익혔지요.
한 때에는 정부기관에서 수출허가담당자였기에 영어에 더 치중했지요. 퇴직한 지 오래된 지금에는 그저 우리말이나 제대로 하자면서 국보문학카페에서 거의 날마다 산문일기를 쓰지요.
어제는 추석날, 외국인 인도사람이 제 집에 왔지요. 한국기업에 다니는 인도사람에게 나는 '국보문학 동인지 39호'를 주면서 말했지요.
"한국말을 더욱 익혀서 인도로 귀국하거든 한국문화를 인도어로 번역해서, 책으로 홍보하시요"라고요.
이제는 우리나라말, 우리글자인 한글이 세계로 더욱 번졌으면 합니다.
저는 지금은 영어, 일본어, 독일어 등을 거의 다 잊었지요.
우리 토박이말에 관심을 가졌지요.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다'라는 신념으로 우리말, 우리글자, 우리문화를 세계로 퍼뜨렸으면 합니다.
우리나라가 일본 식민지로부터 벗어난 지 몇 해 뒤인 1949년 1월 말에 나는 충남 보령군 웅천면 구룡리 화망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서해바다 무창포해수욕장 뒷편의 산골 아래 작은 마을.
내가 태어나서 자라나던 1950년대의 산골 아래 마을사람들은 해안지대의 충남사투리(방언)를 무척이나 많이 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학교조차도 다니지 못한 무학자였기에 한글로 된 글자 하나조차도 읽지도 쓰지도 못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얼마 안 된 탓으로 촌사람들의 입말에는 일본말 단어가 무척이나 많았다.
예컨대 와로바시, 이빠이, 시마이, 벤토, 구사리, 바가야로(바보야), 쓰루메, 간쓰메, 욧시, 와리깡, 야마시, 겐죠, 와다꾸씨와 간고꾸진데스(나는 한국인입니다), 뼁끼, 나라시, 니쿠사쿠 등 ....
호적신고를 늦게 한 탓으로 나는 집나이 아홉살부터 국민학교(지금은 소학교라고 함)에 입학해서 가가겨겨로 시작하는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나는 국민학교 학생일 때 어머니와 헤어져서 대전으로 전학갔다. 고향집이 그리울 때마다 대전 은행동 중교 근처의 만화방에서 만화책을 빌려보면서 고향을 그리워했다. 쌍둥이었던 나와 동생은 만화책, 아동용 책을 읽기 좋아했다. 그때부터 나는 글자벌레', '책벌레'가 되어서 일흔여덟살인 지금껏 한글로 일기와 산문 글을 쓰고, 책 읽기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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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로 외국으로 나가 출장업무를 수행하고, 삶의 여유를 즐기려고 외국으로 여행하는 사람들이 부럽다.
그만한 직책과 언어 능력이 있어야 하고, 그만한 건강을 지녀야만 가능한 일이다.
오래 전 서울 용산구 삼각지 정부기관에 다닐 때 수출허가담당관이기에 영어에 치중했고, 공무출장으로 미국 워싱턴, 뉴욬, 태평양에 있는 하와이에 다녀와야 했다. 서툰 영어로 쏼라 쏼라거리면서 .....
퇴직한 직후에 고향에 내려가서 그때까지도 혼자서 살던 어머니와 함께 둘이서 살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몇 년 뒤 노환으로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그후부터 내가 시골집에서 벗어난 지도 만10년이 더 넘었다.
지금은 너무나 늙어서 해외여행은 꿈도 꾸기 싫다.
그간 많은 세월이 흐르고, ......
지금은 서울 송파구 잠실에서만 산다. 너무나 늙었고, 주머니/지갑 사정도 자꾸만 빈약해져서 해외여행은 커녕 원거리 국내여행과 가까운 수도권 여행조차도 극구로 거부한다.
위 수필을 부러워하면서 이쯤에서 접는다.
나도 글 하나를 골라서 위 문학지 발간에 참여해야겠다.
2025. 10. 11. 토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