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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
내용이 길지만 천천히 끝까지 읽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누가복음 16장 19-24절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음부(陰府)를 구약에서는 히브리어로 "스올"이라고 하고, 신약에서는 헬라어로 "하데스"라고 합니다.
성경에는 부자가 죽어서 음부에 갔다고 말씀합니다. 지옥(地獄)에 갔다고 하지 않고 음부(蔭府)에 갔다고 말씀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천국과 지옥을 가르친다고 믿고 있습니다.
오늘은 음부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음부가 어떤 곳입니까?
많은 사람들은 음부하면 무조건 지옥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음부하면 지옥 대기소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것이 맞습니까? 지옥 가기 전에 대기소일까요? 아니면 지옥일까요?
이 문제가 교회 안에서 분명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낙원과 지옥은 어디인가?
낙원은 어디입니까? 천국가기 전에 있는 대기소입니까? 낙원(樂園)은 천국의 중국 음역(音譯)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이나 낙원은 같은 곳이고, 변역 상의 문제입니다.
“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고후 12:2-4)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계 2:7)
분명히 낙원은 지옥과 함께 있는 천국가기 전의 대기소가 아님은 자명합니다.
그러므로 지옥이 있다면 천국을 마주하고 있어야 합니다.
독자는 지옥이 천국을 볼 수 있는 곳 즉 마주대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음부는 어디인가?
많은 사람들이 음부하면 지옥 가기 전에 있는 대기소나 또는 지옥이라고 생각하는데 성경은 음부를 어디라고 말씀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전9:10)
(전 9:10, 킹흠정) 『무엇이든지 네 손이 해야 할 일을 얻는 대로 네 힘을 다해 할지니 이는 네가 가게 될 무덤 속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기 때문이니라.』
(전 9:10, 한글킹) 『네 손이 찾은 할 일은 무엇이든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이는 네가 가는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라.』
(전 9:10, 새번역) 『네가 어떤 일을 하든지, 네 힘을 다해서 하여라. 네가 들어갈 ㉥무덤 속에는, 일도 계획도 지식도 지혜도 없다. / ㉥히, '스올'』
네가 들어갈 음부(무덤)은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음부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음부라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음부는 지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비유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음부가 어떤 곳인가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 보겠습니다.
(시 6:5, 개정)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시 6:5, 개역)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함이 없사오니 음부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시 6:5, 한글킹)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함이 없사오니, 음부에서 누가 주께 감사드리겠나이까?』
(시 89:48, 개역) 『누가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그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건지리이까(셀라)』
(시 89:48, 한글킹)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아니할 사람이 누구리이까? 그가 자기의 혼을 음부의 손에서 구해 내리이까? 셀라.』
(시 89:48, 새번역) 『산 사람치고 어느 누가 죽지 않고 살 수 있겠습니까? 어느 누가 제 목숨을 ㉣스올의 손아귀에서 건져낼 수 있겠습니까? (셀라) / ㉣또는 '무덤' 또는 '죽음'』
(시 55:15, 개역) 『사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임하며 산 채로 음부에 내려갈지어다 이는 악독이 저희 거처에 있고 저희 가운데 있음이로다』
(시 55:15, 한글킹) 『사망으로 그들을 덮치게 하고, 그들을 급히 지옥으로 내려가게 할지라. 이는 사악함이 그들의 처소에, 또 그들 가운데 있음이라.』
(시 55:15, 킹흠정) 『사망이 그들을 붙들어서 그들로 하여금 산 채로 지옥에 내려가게 할지니 이는 사악함이 그들의 거처에 있으며 그들 가운데에 있기 때문이로다.』
산 채로 지옥이나 지옥가기 저의 대기소로 갈 수가 있는가?
지옥이나 지옥가기 전의 대기소로 알고 있는 스올(음부, 지옥)은 죽음 또는 무덤으로 해석을 해야 한다.
(시 30:3, 개역)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음부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나이다』
(시 30:3, 한글킹) 『오 주여, 주께서 내 혼을 음부에서 끌어내셨고 주께서 나를 살아 있게 하시어 나로 구렁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나이다.』
(시 30:3, 현대인) 『여호와여, 주께서는 나를 죽음 직전에서 구출하시고 나를 무덤으로 들어가지 않게 하셨습니다.』
죽은 영혼을 음부(무덤)에서 끌어내어 다시 살렸다는 내용이 아니라 “현대인의 성경”처럼 죽음 직전에서 구원하여 무덤으로 즉 죽지 않게 하셨다는 말이다.
(시 88:3,4, 개역) 『대저 나의 영혼에 곤란이 가득하며 나의 생명은 음부에 가까웠사오니 나는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인정되고 힘이 없는 사람과 같으며』
(시 88:3,4, 한글킹) 『이는 내 혼이 고난으로 가득 찼으며 내 생명이 음부에 가까움이니이다. 내가 구덩이로 내려가는 자들과 함께 헤아린 바 되었고, 기력 없는 사람과 같으며,』
(시 88:3,4, 새번역) 『아, 나는 고난에 휩싸이고, 내 목숨은 ㉠스올의 문턱에 다다랐습니다. / ㉠또는 '무덤' 또는 '죽음' 나는 무덤으로 내려가는 사람과 다름이 없으며, 기력을 다 잃은 사람과 같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음부와 성경에서 그때 사람들이 생각했던 음부와는 전혀 다릅니다.
(왕상 2:6, 개역) 『네 지혜대로 행하여 그 백발로 평안히 음부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
(왕상 2:6, 한글킹) 『그러므로 네 지혜를 따라 행하되, 그의 백발된 머리가 평안히 음부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
(왕상 2:6, 새번역) 『그러므로 너는 지혜롭게 행동을 하여, 그가 백발이 성성하게 살다가 평안히 ㉠스올에 내려가도록 내버려 두지 말아라. / ㉠또는 '무덤' 또는 '죽음'』
다윗이 솔로몬에게 한 말입니다. 이 말은 죽이라는 말입니다. 평안히 지옥가지 못하도록 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당을 지어 모세를 대적하는 자들을 땅이 삼킴
“고라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짓고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에 유명한 어떤 족장 이백 오십 인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리니라”(민 16:1-2)
(민 16:30, 개역) 『만일 여호와께서 새 일을 행하사 땅으로 입을 열어 이 사람들과 그들의 모든 소속을 삼켜 산채로 음부에 빠지게 하시면 이 사람들이 과연 여호와를 멸시한 것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민 16:30, 한글킹) 『그러나 만일 주께서 새로운 일을 행하시어 땅이 그 입을 열어 그들과 그들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삼켜 버리면 그들이 산 채로 구렁으로 내려가리니, 그때는 너희가 이 사람들이 주를 진노케 하였음을 알게 되리라." 하니라.』
(민 16:30, 현대인) 『그러나 만일 여호와께서 새로운 기적으로 땅이 갈라지게 하여 이들과 이들의 모든 소유물을 삼켜 산 채로 깊은 구렁에 빠져 죽게 하시면 여러분은 이 사람들이 정말 여호와를 멸시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민 16:33, 개역) 『그들과 그 모든 소속이 산채로 음부에 빠지며 땅이 그 위에 합하니 그들이 총회 중에서 망하니라』
(민 16:33, 한글킹) 『그들과 그들에게 속한 모든 것이 산 채로 구렁으로 내려가고 땅이 그 위에서 닫아 버리니 그들이 회중 가운데서 멸망하니라.』
(민 16:33, 현대인) 『그들이 산 채로 깊은 구렁에 빠지자 갈라진 땅이 다시 합해지고 그들은 생매장 되어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당을 지어 반역한 무리들을 산채로 땅속에 생매장했다는 얘기입니다.
야곱이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까? 믿음 없는 사람입니까? 당연히 구원받을 사람입니다.
음부에 들어갈 사람이 아닙니다. 즉 지옥 갈 사람이 아닙니다.
만약 음부가 지옥이라면 야곱의 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창 37:35, 개역) 『그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슬퍼하며 음부에 내려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 아비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창 37:35, 한글킹) 『그러자 그의 모든 아들들과 그의 모든 딸들이 일어나서 그를 위로하나 그가 위로 받기를 거절하고 말하기를 "내가 내 아들을 애도하며 음부로 내려가리라." 하며 그의 아비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창 37:35, 현대인) 『그의 모든 자녀들이 그를 위로하였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는 `내가 슬퍼하다가 저 세상에 있는 내 아들에게 가겠다' 하고 계속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었다.』
미디안 사람 장사꾼인 이스마엘 사람에게 요셉을 팝니다. 그대신 요셉의 채색옷을 벗기고 찢은 다음 수염소를 잡아 피를 적셔서 아버지 야곱에게 가서 요셉이 짐승에게 물려 죽었다고 말할 때에 이삭이 한 말입니다.
지옥 가겠다는 말입니까? 지옥 간다는 말이 아닙니다.
만약 음부가 지옥이라면 요셉이 지옥 갔으니까 나도 지옥 가겠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요셉이 죽었으니까 나도 같이 죽겠다고 하는 말입니다. 보통 사람들도 그런 말을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나도 같이 죽고 싶다고 말합니다. 바로 그런 표현입니다.
(창 42:38, 개역) 『야곱이 가로되 내 아들은 너희와 함께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의 형은 죽고 그만 남았음이라 만일 너희 행하는 길에서 재난이 그 몸에 미치면 너희가 나의 흰 머리로 슬피 음부로 내려가게 함이 되리라』
(창 42:38, 한글킹) 『야곱이 말하기를 "내 아들은 너희와 함께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의 형은 죽고 그만 홀로 남았는데 만일 너희가 가는 길에서 화가 그에게 미치면, 그때는 너희가 나의 백발로 슬픔과 더불어 음부로 내려가게 하는 것이라." 하더라.』
(창 42:38, 현대인) 『그러나 야곱이 `내 아들은 너희와 함께 내려가지 못한다. 그의 형은 죽었고 그만 남았는데 만일 너희가 그를 데리고 가는 도중에 그에게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다면 너희는 백발이 된 나를 슬픔 가운데서 무덤으로 내려보내는 자들이 될 것이다' 하였다.』
야곱의 아들들이 애굽에 갔다 와서 베냐민을 데려가려 합니다.
요셉이 동생을 데려오라 하니까 그 형제들이 야곱 앞에 와서 베냐민을 데려가겠다고 하니까
"요셉도 죽었는데 작은 아들 베냐민도 데려가서 죽으면 나는 죽을 때까지 슬픔 가운데 살게될 것이다."고 말 한 것입니다.
'작은 아들 하나를 보고 사는데 이 아들마저 죽으면 나를 죽게 만드는 것이다' 라는 말입니다.
(욥 14:12-13, 개역) 『사람이 누우면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하늘이 없어지기까지 눈을 뜨지 못하며 잠을 깨지 못하느니라 주는 나를 음부에 감추시며 주의 진노가 쉴 때까지 나를 숨기시고 나를 위하여 기한을 정하시고 나를 기억하옵소서』
(욥 14:12-13, 한글킹) 『사람은 누우면 일어나지 못하고, 하늘들이 없어질 때까지 그들은 그들의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일어나지 못하는도다. 주께서는 나를 음부에 감추시고 주의 진노가 지날 때까지 나를 숨기시며 나에게 때를 정하시고 나를 기억하소서!』
(욥 14:12-13, 현대인) 『사람이 죽어 누우면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하늘이 없어지기까지 눈을 뜨지 못하며 잠에서 깨어나지 못합니다. 주여, 나를 죽은 자들과 함께 감추어 주시고 주의 분노가 그칠 때까지 나를 숨겨 주시며 시간을 정하시고 나를 다시 기억하소서.』
욥기에는 음부가 나쁜 곳이 아니라 좋은 곳으로 표현을 합니다. 욥은 고난 중에 음부를 좋은 곳으로 말합니다.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우니까 병이 들면 사람이 그렇습니다. "죽고 싶다 차라리 죽고 싶다"고 말을 합니다. 정말 고통 중에 있는 사람은 그런 말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암 9:2-3, 개역) 『저희가 파고 음부로 들어갈지라도 내 손이 거기서 취하여 낼 것이요 하늘로 올라갈지라도 내가 거기서 취하여 내리울 것이며 갈멜 산 꼭대기에 숨을지라도 내가 거기서 찾아낼 것이요 내 눈을 피하여 바다 밑에 숨을지라도 내가 거기서 뱀을 명하여 물게 할 것이요』
(암 9:2-3, 한글킹) 『그들이 지옥으로 파고 들어간다 할지라도 내 손이 거기서 그들을 끌어낼 것이요, 그들이 하늘까지 올라간다 할지라도 내가 거기서 그들을 끌어낼 것이라. 그들이 칼멜 산 꼭대기에 숨을지라도 내가 거기서 그들을 찾아 꺼낼 것이요, 그들이 내 눈을 피해 바다 밑에 숨을지라도 내가 거기서 뱀에게 명하리니 뱀이 그들을 물 것이며,』
(암 9:2-3, 현대인) 『그들이 지하의 깊숙한 곳으로 파고 들어가도 내가 거기까지 가서 그들을 끄집어낼 것이며 그들이 하늘로 올라가도 내가 그들을 거기서 끌어내릴 것이요 그들이 갈멜산 꼭대기에 숨어도 내가 그들을 찿아낼 것이다. 그들이 내 눈을 피하여 바다 밑에 숨을지라도 내가 거기서 바다뱀에게 명령하여 그들을 물게 할 것이며』
음부를 어떤 곳으로 말씀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반역하는 백성들에게 내리는 형벌을 어디에 숨어도 피할 곳이 없다는 말입니다.
땅을 파고 들어가도 하나님은 거기서 찾으시고 하늘에 올라가도 거기서 찾아내고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가도 거기서 찾아내고 바다 속에 숨을지라도 거기서 찾아내고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은 찾아내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어느 사람이 음부가 지옥이라면 파고 들어갈 사람이 어디 있겠으며, 그 음부인 지옥이 어디에 있는 줄 알고 파고 들어갈 수가 있습니까?
낙원이 천국가는 대기소다 음부가 지옥가는 대기소라고 한다면 천주교의 연옥설과 틀린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천주교의 연옥은 천국가기 전에 있는 곳이지만 기독교에서는 연옥설을 부정합니다.
연옥설을 부정하면서 낙원을 천국가는 대기소 음부를 지옥가는 대기소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모순된 것입니다.
차라리 천주교처럼 연옥이 있다고 하든지 없다고 하려면 대기소라는 말은 없애 버려야 합니다.
▶ 다윗이 가졌던 부활의 소망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하데스)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하데스)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행 2:27-32)
“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스올)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시 16:10)
여기서 사용된 구약의 시16:10절의 음부는 "스올"이고, 신약에 사용된 행2:27절의 음부는 "하데스"입니다. 두 의미는 지옥이 아니라 죽음 또는 무덤을 말합니다. 만약 지옥이라면 다윗도 예수님도 지옥에 갔다는 말이 됩니다.
동일한 단어인 "스올"과 "하데스"가 천국과 지옥에 동시에 적용할 수 없다는 사실은 너무나 자명한 일입니다.
베드로의 논증은 명확하다. 다윗이 죽어 그 묘가 지금까지 우리 중에 있지만(무덤 속에서 잠자고 있지만) 기쁨이 충만하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죽어 음부(무덤)에 버림이 되지 않고 부활하심으로 장차 있을 영광스런 생명의 부활을 미리 보기에 기쁨이 충만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베드로가 사람이 죽은 후에 하늘로 올라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었다는 분명한 증거이다
▶ 언제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가 주님을 만나 천국에 갈까?
예수께서는 믿는 자들이 그의 주와 재 연합할 때를 임종할 때가 아닌 재림의 때로 가리키셨다.
“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1-3)
그렇지 않았다면 예수께서는, 곧 죽음이 닥쳐오며 그들을 즉시 천국으로 데리고 가서 그분과 함께 있을 것이라는 말씀으로 슬퍼하는 제자들을 위로했을 것이다.
바울은 사랑하는 자들을 쉬도록 무덤에 뉘였던 자들에게 위로의 말을 하면서, 순서적으로는죽은 자들이 먼저이지만 살아있는 자들과 함께 모두가 동시에 주님과 재결합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선언을 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①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②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17)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눅 16:1)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 16:13)
◆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
이 비유를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를 들었다.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하시고자 한 것은 비유의 끝에서 하신 말씀 즉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말을 하기 위함이다.
이 말씀을 들은 바리새인들이 비웃는데 이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고 말한다.
“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눅 16:14)
헬라어 필라르귀로이(philarguroi). 문자적으로는 “돈을 사랑하는 자들.” 신약 가운데서 이 단어는 이곳과 딤후 3:2에만 나온다.
예수님은 그들이 소유한 재물에 대하여 논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하늘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부의 소유가 아니라, 오히려 재물에 대한 과도한 사랑과 남용이다.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이 돈을 좋아하는 것도 막을 길이 없다.
바리새인들의 생활 철학에 의하면, 부는 하나님의 축복의 증거라고 생각하였다.
이 비유의 거지와 부자도 이와 같은 환경 가운데 있었다. 나사로는 도움이 크게 필요 되었다. 그는 친구도 없고, 집도 없고, 돈도 없고, 먹을 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매일같이 이러한 처지에 있도록 내버려진 반면에 그 부자는 부족한 것이 없이 호화롭게 살았다. 자기 동포들의 곤란한 사정을 넉넉히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오늘날에도 이 부자처럼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살고 있다.
오늘날에도 바로 우리 주위에는 굶주리고 헐벗고 집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궁핍하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재물을 나눠주기를 등한히 한다. 모든 탐심은 우상을 숭배한 죄로 선고된다. 모든 이기적 방종은 하나님 앞에 죄가 된다.
하나님께서 부자를 당신의 재물을 맡은 청지기로 삼았으므로 거지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 부자의 의무이다.
다음과 같은 명령이 주어졌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레 19:18).
부자는 유대인이었으므로 하나님의 명령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맡은 재물과 재능에 대해 회계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렸다.(달란트의 비유)
주의 축복이 그에게 풍성히 임했으나 그는 그 축복으로 자기의 창조주를 높이는 대신에 자기 자신을 높이는 일에 사용하였다. 그는 축복을 받은 만큼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그 선물을 사용할 의무가 있었다.
나사로는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고생당하는 가난한 사람을 대표한다. 나팔 소리가 나고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나올 때에 그들은 상급을 받게 될 것인데 이는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믿음이 이론에 그치지 않고 실제적이기 때문이다.
그분은 자기가 모든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알리고 싶어하신 사상 즉 사람이 소유한 모든 것은 주께서 그에게 빌려주신 것이므로 그분의 소유이며,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가치를 재물로 헤아려서는 안 된다는 사상을 가르쳐주시기 위하여 그 당시에 일반적으로 떠돌던 이야기를 이용하셨다.
이러한 재물의 선물을 잘못 사용함으로 인하여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가장 가난하고 고통 당하는 사람들보다 더 못한 처지에 자신을 두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천국과 지옥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라 사람이 죽은 후에 다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한다는 것을 청중들에게 이해시키고자 하셨다.
영원한 운명은 저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부자는 자기 자신을 기쁘게 하는 일에 그의 일생을 허비했으며 너무 늦게서야 자기 자신이 영생을 위해 아무 준비도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자기의 어리석음을 깨닫는 한편 자기가 살아온 것처럼 자기 자신만을 기쁘게 하는 생애를 살고 있는 자기 형제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이렇게 간청하였다.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그러나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나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 하리이다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그 부자가 자기 형제들에게 믿을 만한 좀더 큰 증거를 보여 달라고 간청했을 때에 그는 비록 그런 증거를 보인다 할지라도 그들이 권함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이 요청에 대한 아브라함의 대답은 이러한 뜻이었다. 너희 형제들도 충분히 경고를 받았다. 빛(모세와 선지자들 즉 구약성경)을 그들에게 주었으나 그들은 그것을 보려 하지 않았다. 진리를 그들에게 소개해 주었으나 그들은 그것을 들으려 하지 아니하였다.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눅 16:31)
유대인의 역사를 보아 우리는 이 말씀이 사실임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의 마지막 이적이면서도 가장 큰 이적은 이미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베다니의 나사로를 살리신 일이다.
유대인들은 구주의 신성에 대한 이러한 매우 놀라운 증거를 보았으나 저희는 그것을 배척하였다. 나사로가 죽음으로부터 살아나 그들에게 그 사실을 증거했으나 그들은 이 모든 증거에 대하여 그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고 나사로를 죽이려고까지 했다(요 12:9-11).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는 부정한 수단으로 재물을 얻지 않았다면 부자가 되는 것은 죄가 아니다. 재물이 많기 때문에 부자가 정죄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자기에게 맡겨진 재물을 이기적으로 사용하게 되면 정죄함을 받는다. 사람이 그의 재물을 선을 행하는 데 사용함으로 그의 재물을 하나님의 보좌 옆에 쌓을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자신을 위하여 재물을 쌓는 사람은 그 중의 아무것도 천국으로 가져갈 수 없다. 그는 자기 자신이 불충실한 청지기임을 실증했다. 그는 한평생 재물을 풍부히 가지고 살아왔으나 하나님께 대한 자기의 의무를 등한히 했다. 그는 하늘의 보물을 얻는 일에 실패했다.
그리스도께서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로써, 사람의 영원한 운명은 저희가 이 세상에서 하는데 따라 결정되는 것임을 보여 주셨다. 은혜의 기간 동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각 사람에게 제공된다. 그러나 사람이 만일 자기 만족을 위하여 저희의 기회를 헛되이 보내면 저희는 스스로 저희 자신을 영생에서 끊어버리는 것이 된다. 소위 죽은 후에 유예기간을 얻지 못할 것이다. 저희는 저희 자신의 선택으로 저희와 하나님 사이에 건너 갈 수 없는 큰 구렁으로 한계를 그어 놓는다.
첫댓글 음부가 지옥이다 형제여
낙원이 천국 이다
비유 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고라 자손이 어디 갔겠는가 산채로 음부에 빠진 것이다
구약에서 음부는 간단히 말해서
1. 무덤, 죽음
2. 지옥
3. 사람이 범접할 수 없는 장소(중립)
이렇게 요약하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부자와 나사로가 이것들 중
어느 것에 해당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같은 제목으로 쓴
제 글도 한 번 보셨으면 합니다.
<부자와 나사로를 통해 본 구원론 이해>
http://blog.daum.net/oible/68
님의 글 잘 보았습니다.
님께서 바로 이해를 하고 계신듯 합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는 천국과 지옥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구원론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1의 후자와 2와 3은 같다 즉 구약의 인물들도 이해가 부족 했을 뿐 다 같은 곳을 가리 키고 있다
스올= 죽음= 지옥 =음부
삭제된 댓글 입니다.
맞습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는 구원론을 설명한 것입니다.
저의 글도 잘 보시면 구원론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눅 16장의 음부는 지옥으로 보아야 겠지만
창 37: 35 스올에 야곱이 내려가겠다는 것은 <개역개정>
여기에서 스올을 지옥으로 보기보다는 "무덤"으로 보아야 정당하더고 봅니다
* 개역개정의 "스올"에 간다는 표현은 히브리어를 음역한 것으로서
구약의 "지옥" 을 기술적으로 사라지게 한 결과가 됩니다
시 9: 17에도 악인이 스올로 들어간다고 표현했는데<개역개정>
지옥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잠언 9: 18 오직 그 어리석은 자는 죽은 자가 그의 곳에 있는 것과 그의 객들이 음부 깊은 곳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생명과님 혹시 여호와의 증인 인가요? 지옥이 없다라고 사람들을 미혹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선행으로 천국에 갈수없다란 말은 재정신으로 하신 말씀이신가요, 자기 재물로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는 선행은 천국과 상관없지만 나의 재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행을 하면 천국갑니다,
부자는 절대 천국갈수없습니다, 부정한 방법이 아닌 개미같은 방법으로 재물을 얻었어도 부자가 된 이유는 가난한자를 안도왔기 때문입니다, 약4:17 사람이 선을 행할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음부가 지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없다와 아니다는 다릅니다.
그리고 제가 어디에 선행으로 천국에 갈수 없다라고 했습니까
이런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님께서 다시 한번 잘 읽어보세요
그리고 예수이름으로 선행을 하면 천국간다는 말은 보충설명이 없으면 오해합니다.
“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롬 14:23)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약 4:17)
무슨말을 하고 싶은건지 이해가 안가는군요.. 하시고 싶은말을 요약정리 하심이 좋을듯합니다...
그리고 부자와 나사로 예기가 천국예기가 아니라니요? 그리고 구원론 예기라니요,,,듣던중 처음입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악의 뿌리라고 했습니다.
돈 자체는 아무런 나쁜것이 아니지만 그 돈에 대한 인간의 욕망 잘못된 사용들이 문제가 됩니다.
돈이 많아 불편함이 없으면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떨어집니다.
돈을 더 신뢰하게 되지요
그렇다고 부자가 천국에 갈 수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만큼 돈에 대한 애착을 버리기가 어렵고 예수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그래서 부자보다는 가난한 자가, 현실적으로 평안한 사람보다는 고난중에 있는 자가 더 천국가기가 쉽습니다.
주님을 더 신뢰,구원은 오직 믿음,
부자는 절대 천국가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하신말씀이지요 부자가 천국가는건 하나님만 하실수 있다라고 말씀햊죠
가르쳐 드리지요, 부자가 망해서 거지 나사로가 되면 됩니다,
구원은 선물인 동시에 매매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모두 주님께 바친자에게만 구원은 선물입니다.
육신적인 가나함으론 천국가지 못합니다
님이 말한구원이 무슨 구원인가요 믿음으로써 영생(천국)인가요 아님 믿음으로써 죄에서 구원인가요?
그말이 그말 아닌가요
@생명과 믿음으로써 죄와 영생으로 구원 받씁니다, 그 믿음이 어떻한 믿음이냐 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예수님 피로써 죄에서 구원 받았습니다, 그다음 아직 영생을 얻지는 못했죠 아직 살아있으니까, 그럼 앞으로 살면서 어떻게 살아야하나 예수님 입에서 나온 말씀대로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믿음으로써 죄에서 구원은 얻었으나 예수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지옥갑니다, 그럼 믿음으로써 죄에서 구원이지 영생은 아직 아니란 말이 되겠지요, 믿음으로 은혜로 무조건 죄와 영생으로 구원 받았다 하는 말보다, 구원은 첫째는 믿음으로 죄에서 구원받고 둘째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는 믿음이 옳바른 믿음입니다.
@두증인 육신적인 가난함으로 구원 받지 못한다구요, 예수님께서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세례요한의 제자가 가라사대 오실그이가 당신이오니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난한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하라, 약2:5 내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찌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천국)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 하셨느냐
별도로 살을 더붙히자면... 가난한자가 왜 가난한지 아십니까? 왜 하나님께서는 가난한자를 택하셨을까요,
@두증인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가난한 자는 육신적인 가난이 아니라 심령이 가난한 자 즉 영적인 가난한 자입니다
병자가 의사를 찾듯이 자신이 영적인 병자(죄인)임을 깨닫는 자가 예수님을 필요로 하지요
부자보다는 가난한 자, 편안한 자보다는 고난중에 있는 자가 더 구원받기가 쉬운것은 사실입니다.
주님을 더 찾을 테니까요
그렇다고 가난이 구원의 보증수표는 아닙니다.
@생명과 눅6:20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자신이 죄인임을 알지 못하는자가 얼마나 될까요 누구나 다 자신이 죄인임을 압니다, 그러나 회개하기 싫어하지요, 악한자는 자신의 죄를 정당화 시키지요
심령이 가난하단 말은 마음의 욕심이 없다란 말입니다, 가진것으로 먹을것과 입을것이 있은즉 족하다 입니다,
더가질려고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입니다, 심령이 가난한자가 부자일까요 심령이 가난한자는 욕심을 내지 않씁니다, 자기의 부가 넘치면 가난한자에게 나눠주고 선을 행하면서 살겠지요, 그러나 심령이 부자인자는 자신의 욕심때문에 절대 나눠주는 삶이 없습니다,
@두증인 생명과님 님이 예수님께서 부자는 절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지요 기록된 말씀이지요, 부자와 가난한자의 차이가 무엇인줄 아십니까? 부자는 하루 일용할 양식 세끼가 있고 더 넘치는자를 부자라 하고 가난한자는 하루일용할 양식 3끼를 못먹는 자를 가난한자라 합니다, 부자란 넘치다 입니다, 이 말씀을 깨달으려면 선을 행하십시요, 가난한자를 돌아보며 복음을 전해 보십시요, 그럼 하나님께서 깨달음을 주실것입니다,
이세상의 공중권세는 마귀가 잡았죠 그래서 이세상에서 잘먹고 잘살려면 사기치고 빼앗고 남을 형제를 죽여 피를 흘려야 합니다, 이와같이 마귀의 짖거리를 해야 이세상에서 잘먹고 잘사는 것이죠 그럼 이세상에서 잘먹고 잘사고 부자와 권세를 잡은자는 마귀의 백성이 됩니다, 또 하나님의 백성은 누굴까요 하나님의 백성은 남을 속이지 못하며 마음이 선해서 빼앗기고 속아서 가난하게 살수밖에 없씁니다, 마음이 선해서 가난한자와 게흘러서 가난한 자가 있지요, 게흘러서 가난한자는 쉽게 돈을 벌려하는 욕심이 가득한 악한자의 속합니다, 이와 같이 육신적인 가난함과 육신적인 고통을 당하는사람은 거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많지요,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과 마귀의 백성을 알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난과 육신적인 고통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부르며 찾고 하나님을 찾게 만듭니다, 그러나 잘먹고 잘살고 고통이 없는자는 하나님께서 버린자식이며 악한자의 속합니다,
돈이 하나님이며 잘먹고 잘살기에 하나님을 찾을리가 없지요, 성경을 자세히 보시면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 누구인지 깨닫게 됩니다, 또 전도하면 더 빨리 깨닫게 되지요, 교회안에 부자와 가난한자가 하나님을 믿고 찾고 기도합니다, 그럼 부자가 하나님을 더 찾을 까요 가난한 백성이 하나님을 더 의지 할까요, 잘 한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