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因緣
<제4편 입산기>
④ 찔레꽃 필 무렵-15
그리고 옥희는 여승이 오늘 우중이라 떠나지는 않으리라 믿었다. 아니, 떠난다고 나서더라도, 발길을 돌리게 잡아들여야하였다.
이태 동안이나 남편을 숙식하게 하면서 조용히 공부할 수 있게 도와준 은혜로운 스님을 찾아가서라도, 고맙다는 인사를 여쭈어야하는데, 이렇듯 찾아왔을 때는 반드시 온 정성을 다하여 있는 동안 하룻밤이라도 편안히 묵어가게 보답해야한다는 생각을 곱씹었다.
그래서 그녀는 조급하게 서두르지 아니하고, 마냥 스님의 속곳을 솥뚜껑 위에다 뒤치락거리어서 정성들이어 말리었다.
밖에는 빗줄기가 그치지 않고 있었다. 두터운 구름장이 하늘을 덥고, 어둑어둑한 날씨이어서 해가 어디쯤에 있는지조차 가늠하기가 어려웠지만, 느낌으로는 해질녘인 듯 짐작되었다.
이제야 빨래도 다 마르고 벌거벗고 방안에 있을 스님에게 말린 옷가지를 입으라고 주어야한다는 생각을 추슬렀다.
그러나 간헐적으로 들리어오는 남자의 거친 숨소리와 여자의 거센 신음소리는 그치지 아니하였다.
그 소리를 마냥 듣고 있던 옥희는 마음이 적이 울적함을 감출 수가 없었지만, 저러는 것도 남편이 그 은혜에 보답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지금 스님의 옷가지를 갖다준다면, 곧바로 떠난다고 일어설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차라리 저녁을 일찌감치 지어놓은 뒤에 옷가지를 건네주어야겠다고 다잡았다.
그래서 그녀는 쌀을 바가지에 떠다가 물을 붓고, 조리로 떠서 뉘를 골라내고, 돌을 가라앉히어서 쌀을 씻은 뒤에는 솥에 밥을 안치었다. 그러한 뒤는 시금치국을 끓이고, 고기찌개와 비듬을 넣은 된장찌개를 따로 끓이었다.
이렇게 저녁을 차리던 그녀는 신음소리가 스러지던 참에 스님의 옷가지를 비를 안 맞히려고 앞가슴에 끌이어 들고서 마당을 질러갔다.
그런데 이제는 남녀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주고받는 거였다.
“음!”
그녀는 인기척을 한 뒤에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천복과 보덕은 천연덕스럽게도 알몸인 채 마주앉아 무슨 이야기인가를 나누고 있었다. 보덕도 아까 그녀에게 몸을 가리라고 장롱에서 꺼내어준 홑이불을 한쪽으로 밀어붙인 채 이제껏 육신의 희락에 빠지어있었던 모양이었다.
이제 빨아서 물기를 보송보송하게 말린 가사는 입지 않더라도, 속곳은 입어야 해서 가사는 횃대에 걸어놓고, 속곳을 들고 보덕에게로 다가갔다.
“스님, 속곳을 입으셔유. 다 말랐어유.”
그녀가 보덕의 앞으로 다가가 손으로 속곳의 다리와 허리를 꿸 구멍을 터주자, 그녀는 싱긋 웃음을 흘리고는 두 다리를 그리로 끼우는 거였다.
“스님, 적삼도 아주 벗으셔유.”
옥희가 말하자, 보덕은 멈칫하면서 되레 눈을 주는 거였다.
그러자 옥희가 말하였다.
“우리 친정어머니께서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어유.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근디 내 남편을 사랑하고, 먼 길 달려오셨는디, 내게도 보답할 길은 이런 일밖에 더 있겠어유.”
“어쩜! 처자는 부처님도 감동시킬 분이군요!”
보덕이 말하고, 위에 걸치었던 모시적삼을 벗어주는 거였다. 그러자 앞가슴이 다 드러나 보이었다. 그러는 동안 천복은 옷을 챙기어 입고 있었다. 옥희는 한쪽으로 밀어붙이어진 홑이불을 다시 끌어다 보덕에게 주고는 밖으로 나아갔다.
천복은 보덕을 경산에게 인사를 시키고 싶었지만, 그럴 틈이 없었다. 들어오자 가사와 속곳을 벗어 빨고, 이제는 적삼마저 빤다면서 가지고 나갔으니, 벌거숭이가 옴짝달싹 못하는 동안 남녀가 쾌락에만 빠지었던 거였다.
옥희는 하는 수 없이 점심 때처럼 밥상을 둘을 차리고, 저녁을 먼저 먹은 뒤 설거지를 마치고, 우물로 가서 보덕의 모시적삼을 또 빨았다.
저녁을 일찍 먹었으므로, 긴 해는 아직 남아있었던지, 아궁이에 빨은 적삼을 말리는 데도 밖은 아직 환하였다.
그때 정읍댁이 비를 맞고, 처마 밑으로 달리어들더니, 후줄근히 젖은 옷을 털어내고 있었다.
“네 방에 뉘기가 왔냐?”
“예, 스님 한 분 오셨어유. 어머님, 저녁은 잡수셨어유?”
정읍댁이 묻자, 옥희가 대답하고는 저녁도 잡수었는지 물었다.
“난, 은지나 허고, 먹고 들어오잖냐.”
이렇게 대꾸한 정읍댁은 안방으로 들어가고, 옥희는 부엌의 거적대기를 내리고, 다 마른 스님의 모시적삼을 들고서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보덕은 웬일인지, 그녀가 아까 앞가슴을 가리라고 끌어다준 홑이불을 그대로 품에 안고 있어 앞가슴이 내다보이지는 아니하였다.
“스님, 옷이 다 말랐어유.”
옥희가 모시적삼을 두 손으로 펼치어보이고는 아까처럼 보덕에게 다가가 옷을 입히어주었다.
그러자 보덕은 얼굴에 웃음을 가득 싣고, 팔을 하나씩 들고는 꿰어 입었다.
“아주 개운해요. 날도 궂은데 어쩜, 내 옷을 다 빨아서 말렸어요?”
첫댓글 옥희같은 여인이 실제 있을까요???
지금은 언감생심에 없겠지만 예전엔 있을라나?
남편이 좋아하고 남편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는 여자!
그런 여자가 없으면 만들어야겠지요.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