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면 늘 회자하는 것이 독서다. 한데 최근 대학입시를 앞둔 학생, 학부모 사이에서도 독서가 화두다. 9월이 독서의 계절이어서가 아니다. 서울대가 최근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서울대 지원자들이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기 때문이다.
사실 요즘 대학입시에서도 독서활동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수시모집의 비중이 커지고 그 가운데서도 학생부 비교과 활동이 중시되면서 자연스레 자기주도학습능력을 길러주는 독서활동이 중요한 요소로 여겨지고 있어서다.
물론 진학만을 염두에 둔 독서활동은 권할 만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독서활동이 개인의 성장뿐 아니라 진로를 찾고 대학에 진학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지 않을까. 서울대 지원자들의 독서 이야기, 진학과 연계한 독서활동을 잘하고 있는 학교의 사례를 살펴봤다.
◆서울대가 말하는 독서 이야기
서울대는 다른 대학과 달리 자기소개서 속 자율 문항에 독서활동을 기록하게 한다. 고교 재학 기간 또는 최근 3년간 읽었던 책 가운데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을 3권 이내로 적고 그 이유를 적으라는 것이다.
자기소개서는 학생부, 교사 추천서와 더불어 수시모집 학생부 종합전형에서 중요한 평가 서류다. 독서활동은 지적 호기심뿐 아니라 지원 동기, 학업 능력 등을 드러내는 자료가 될 수 있어 더욱 가치 있는 자료다. 이 때문에 특목고나 자사고에 비해 다양한 비교과 활동 프로그램을 갖추지 못한 일반고로선 독서활동에 좀 더 비중을 둘 필요가 있다.
문제는 어떤 책을 읽고, 자기소개서에 적어야 입시에서 유리한 지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계열이나 모집 단위별로 읽어야 하는 책이 정해져 있는 것인지, 원서로 된 책을 읽어야 하는지, 대학 이상 수준에서 공부할 책을 봐야 하는지 등의 의문이 생길 것이다. 서울대는 최근 홈페이지에 띄우는 웹진 '아로리'를 통해 이 같은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했다.
서울대는 수시모집 지원자들이 자기소개서 독서활동이 기재한 책은 어떤 것인지, 최근 3년간 어떤 책을 가장 많이 적어 냈는지 분석해 공개했다. 이번 자료에 따르면 2014학년도 서울대 수시모집 지원자 1만9천900명이 자신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자기소개서에 기록한 책은 장 지글러가 쓴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였다. 이 책은 저자가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으로 활동하던 시절 겪은 일을 아들에게 들려주는 형식으로 엮은 것이다. 지원자 중 528명이 이 책을 자기소개서에 적었다.
2위는 서울대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400명), 3위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380건)였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302건), 파울루 코엘류의 '연금술사'(279건)가 각각 4, 5위로 뒤를 이었다.
한데 이번 조사에서 특히 눈에 띄는 점이 있다. 1만9천900명의 수시 지원자 중 다른 이들이 적지 않은 책, 즉 지원자 1명만 적어낸 책이 8천731종으로 제출한 도서 목록의 64%나 됐다.
김기영 매일신문 교육문화센터 연구실장은 "무조건 많이 보는 책을 골라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라며 "서울대는 책의 내용을 단순히 요약하기보다 그 책을 읽은 이유와 그에 따른 자신의 변화 과정, 결과를 보여주길 원할 것"이라고 했다.
서울대 또한 이번 조사가 지원자들의 독서 경향을 보려는 의미 이상은 아니라고 했다. 서울대가 강조하는 것은 책을 고르는 안목이 아니라 책을 읽고 무엇을 얻고 깨달았느냐다.
서울대 측은 "독서활동을 통해 얻는 지적 성숙과 정서적 감동은 그 어떤 교육 활동을 통해 얻는 것보다 가치가 있다"며 "독서능력은 대학에서 공부하기 위해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소양이다. 특정한 책을 읽은 학생보다 능숙한 독서능력을 지닌 학생을 원한다"고 했다.
◆고교 독서활동은 이렇게, 김천고`포철고 사례
김천고등학교는 독서활동을 강조하는 학교다. '토마독'은 '토요마라톤독서'의 줄임말로 김천고등학교의 대표적 독서활동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8월 닻을 올린 뒤 김천고에 독서 열기를 불어넣는 데 큰 힘이 되고 있다.
'토마독'은 2010년 시작한 밤샘독서 프로그램에서 유래했다. 밤샘독서 프로그램은 연 1회 도서관에서 1박 2일간 진행하는 것이었다. 바쁜 학교생활 속에서 책 한 권을 지속적으로 읽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한 권이라도 끝까지 읽어보는 기회를 주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밤샘독서 프로그램이 '토마독'으로 진화한 것은 지난해부터다. 김천고 관계자는 "지속적인 독서활동은 학습 능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진로를 탐색하고 대입 관련 서류의 기록을 풍부하게 하는 데도 유용하다"며 "현재 '토마독'은 매월 1, 2회 토요일 오후 1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도서관에서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김천고는 '토마독'에 참가하는 학생들이 반드시 '토마독 독서 기록지'를 작성하도록 한다. 독서활동을 점검하고 쓰기 능력도 키워주기 위해서다. 이 같은 독서 마라톤에서 완주하면 도서관에서 한 번에 대출할 수 있는 책 수를 늘려주고 도서관 행사에도 우선으로 참여할 수 있는 혜택을 준다. 지난달에는 이순신 장군, 추사 김정희 선생과 관련된 책을 읽고 현충사, 추사 고택과 기념관 등을 돌아보는 '토마독 문학 기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2013년 8월부터 지난달까지 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학생은 900여 명에 이른다. 이들은 '토마독' 프로그램 덕분에 책 읽기에 재미를 붙였을 뿐 아니라 진로 탐색에도 도움을 받았다며 반기고 있다.
최형우(3학년) 군은 "몰입해서 책을 읽고 난 뒤 뿌듯함을 느끼는 건 상당히 즐거운 경험이었다"며 "앞으로도 토마독이 '자기 계발의 터', '꿈이 더욱 커지는 자리'로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박동진(3학년) 군은 "친구들과 함께 책을 읽으니 더 몰입하기 쉬웠다"며 "서로 읽은 책을 추천하거나 감상을 공유하면서 새로운 분야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토마독의 장점"이라고 했다.
포항제철고등학교도 독서활동이 활발한 곳이다. 포철고는 매년 권장 도서를 선정하고 독서 경시 대회, 독서 토론대회, 우수 독서 감상문과 다독왕 시상 등 다양한 행사를 열어 독서 의욕을 북돋우고 있다.
덕분에 재학생의 독서량도 상당한 수준이다. 지난 한 해 '국사 시간에 세계사 공부하기'(김정 지음), '소유냐 존재냐'(에리히 프롬), '과학혁명의 구조'(토마스 쿤) 등 교과 내용과 연계한 권장 도서 100권 중 1학년은 평균 59.8권, 2학년은 48.2권, 3학년은 25.3권을 읽은 것으로 집계될 정도다.
포철고 관계자는 "독서는 창의성과 논리적 사고 능력을 키우는 활동이자 대입을 준비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과정"이라며 "대학 진학 후 전공 분야를 학습하는 데도 독서가 큰 힘이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