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대로 준비를 하였으나 나가기 2주간의 소홀함으로 약간은 걱정되는 첫 마라톤 풀코스 참가였다.
전날부터 가장 신경 쓴 것은 음식과 시간. '담'에서 새알떡국 재료를 사 놓고 새벽 4시 30분 알람을 맞추어 두고 9시경 잠이 들었다. 4시 25분경 알람 소리 직전에 일어나 떡국을 끓이고 전날밤 준비해둔 옷을 입고 거창읍 로터리 5시50분 약속에 늦지 않기 위해 서둘렀다.
거창군청팀이 맞추어 놓은 버스를 타고 함께 가는 것이라 특히 시간에 대한 압박감이 심하였다.
거의 모든 분들이 나와있었다.
전날 함양 하프대회 참가로 대충 몸풀기로 회원들과 함께 가시는 회장님부터 울트라맨 박우갑 훈련부장님과 유재봉 훈련팀장, 그리고 박종성 팀장(이상 풀), 클럽 살림살이 책임지랴, KT 지키랴, 달리기하랴, 장가갈 준비하랴 바쁜 오동헌 사무국장,
비공식이지만 첫 하프 도전하시는 형용범 감사님과 사모님, 그 친구분들 박완묵님, 유수준님, 거기에 세번째 10k 참가하면서 기록갱신의 행진을 계속하고자 하는 허일주 부회장님, 그 페이스메이커를 자청하고 나선 정원길 기획부장,
약간의 농땡이 끼를 보이지만 나름대로 짬짬이 연습하는 백미남 회원과 그 페이스메이커 김선희 회원, 자신들의 10k 최고기록에 도전하는 박덕제 홍보부장과 최순이 팀장 부부, 10k 부문에 남다른 애착을 보이고 있는 껑충껑충 주법의 신정훈 관리부장과 맏언니 박정자 회원님, 오명숙 회원님, 성혜경 회원님, 서옥남 회원님들은 남의 배번호로 또는 배번호 없이 모두들 10k 달리기에 참가할 생각들인 것 같았다.
김종정님은 몇키로를 달릴지 정체불명이었고 오은주님은 오신다고 했었는데 오셨었나...? 거기에 우리 부부하고 아이 둘, 그외 군청 식구들 다수...
버스 한대 꽉 채운 일행은 6시 1분경(1분 늦은 백미남 회원때문에) 로타리를 출발하여 88고속도로 지리산 휴게소에서 식사를 위해 잠시 쉰 후 다시 곡성으로, 8시가 채 안되어 곡성에 도착하였다.
회장님, 특히 첫풀 도전하는 나와 박종성에게 특별히 신경을 쓰서 한마디라도 더 해 주시려고 했고 훈련부장님 어디서 구해왔는지 파워젤을 여럿 사와 풀 코스 달리는 회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파워젤 두개를 양쪽 주머니에 넣으니 일단 맘이 든든하였다.
출발 선상에서 출발 신호를 기다리는데...아! 내가 드디어 마라톤 풀코스 출발선상에 섰구나! 13개월전 손모님의 권유로 달리기 첨 시작한 장면부터 5k 대회 참가, 10k 대회 첫 참가의 감동과 하프 첫 참가..그리고 오늘 풀 코스 출발선상에 선 내 모습까지...갖은 상념이 머리를 스쳤다.
완주 할 수 있기를...나의 가장 큰 욕심은 4시간 안에 완주하는 것이다. 더 이상의 욕심을 내지 말자! 완주만으로 감사하고 sub-4 된다면 찬양하리라~~내 자신에게 최면을 걸었다. 10k나 하프 뛸 때와는 달리 약간 앞부분에서 출발하였다.
많은 주자들이 처음부터 나를 추월해갔다. 운동장을 벗어나면서부터 비포장 도로에서까지...내가 너무 천천히 달리나 생각했지만 내가 생각한 첫 페이스가 분명했다. 아니, 오히려 조금 빠르지 않나 생각했다. 그래서 그냥 그 페이스로 나아갔다. 4-500미터쯤 갔을 때 거창 화이팅! 하면서 외치는 소리에 뒤돌아보니 클럽의 서보리님(서보리님은 버스타고 오지 않고 가족들끼리 왔다) 이었다. 서보리님도 곧 나를 추월해갔다. 갑자기 외로워졌다. 회장님도, 훈련부장, 팀장들도, 그리고 서보리님도 모두 저 앞에서가고 나만 혼자 이렇게 뒤에서 가게 되니...
1k 지점을 지나면서 시계를 보니 6분 10초...km당 5분 44초로 달려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약간 늦은 감은 있었다. 하지만 처음이니...거의 같은 속도로 3km 정도 달렸다. 17분 50초 정도...옆에 화장실이 있어 볼일을 보고 나오니 바로 앞에 4시간 페메 풍선들이 달리고 있었다. 일단 저들을 따라 가자!
5k 지점에 왔을 때 28분 10여초...아무리 계산해봐도 이 속도가 맞다. 그때부턴가 약간의 긴장이 풀리면서 주위의 경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끝없는 코스모스와 어느쪽에서 어느쪽으로 흐르는지 모를 정도의 완만한 섬진강변. 내가 달리고 있는 코스가 바로 그곳이었다.
7k쯤 왔을까? 뒤에서 오른쪽으로 붙어라는 소리가 들린다. 하프 선두 그룹들이 오고 있단다. 오동헌 사무국장이 몇등으로 지나가는지 궁금하였다. 6등주자의 등에는 '百五里'라고 써 있었는데 달리는 폼이 이상했다. 주위 누군가가 '저 분은 장애인이다. 대단하지?'라고 말했다. 10명 정도 세었는데 오동헌 국장은 오지 않아...숫자를 놓쳤는데 그때쯤 오동헌 사무국장이 내 옆을 지나갔다.
하프의 반환점 지점 왔는데 56분 30초이다. 그때부터 4시간 페메 풍선을 뒤로 두고 달려나갔다. 아마 하프 주자들과 독립되어 내가 처음 밟아보는 코스(하프 반환점을 넘어가본게 처음이니^^)라 기분이 상기되었나 보다. 천천히 천천히를 마음속으로 외치면서 달리는데 저 멀리서 송대관의 '네박자'에서부터 시작해서 이정현의 '와'에 이르기까지 각종 노래가 마을회관 앰프를 통해 울려퍼진다. 길가에 나와 서있는 할머니들의 '화이팅' 외침이 정겹다.
매산마을인가...마을을 지나는데 '6.25 참전용사비'가 마을 입구에 우뚝 서있고 커다란 창고에 희미한 '반공 방첩'의 글씨가 조화롭다.
그 비석과 글씨 아래 박수치고 계시는 노인분들을 보면서, 곡성이라는 지리적 위치와 그분들이 살아오셨던 이데올로기의 격랑을 생각 하면서,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아오신 그분들의 박수소리에 어찌 힘을 내지 않을 수 있을까? 힘을 내어 외쳐드렸다. "고맙습니다!"
17킬로정도에서인가? 돌아오는 풀 선두 주자가 보였다. 저 멀리 뒤에도 3시간 페이스메이크는 보이지 않는데...풀 선두 주자 뒤에 2위, 3위... 이거 도대체 몇명이야? 3시간 페이스메이커 앞에 대략 20명 이상 주자들이 지나간 것 같았고 3시간 페이스메이커 바로 뒤에도
10여명의 주자들이 보였다. 와~~무슨 sub-3 주자들이 이렇게 많대? 놀라면서 회장님을 찾아 보았지만...역시 전날 레이스 때문인지 보이지 않았다.
18-9킬로미터 지점에선가 의외로 회장님은 보이지 않는데 유재봉 팀장이 지나갔다. 역시 대단해! 그 뒤 3-400미터 정도 박우갑 부장님! 우와~~~그런데 회장님은 어디가셨지? 그리고 종성이는? 서보리님은? 풀 반환점까지 가도 종성이는 보이지 않고 반환점 3-400미터 지점에서 서보리님을 만났다. 화이팅을 외치고 나는 파워젤 하나를 뜯어 입에 물었다.
반환점을 돈 시간은 1시간 52분 54초. 같은 속도로 가면 3시간 46분? 온만큼만 달리면 된다는 생각이 들면서 남은 거리가 얼마 안된다는 착각에 빠졌다. 이제 뛰면 되는 거리는 겨우(?) 하프!
약간의 속도를 내어보았다. 갑자기 속력을 내면 안된다...약간씩 약간씩 속력을 내어보자...이렇게 생각하면서 속도를 내었는데 25k 지점에 오니 2시간 11분 40초. 대략 보니 k당 5분 속도로 달리는것 같았다. 이정도면 적당하겠지? 27-8키로쯤 오니 1시간 45분 페메 1명이 보인다. 500미터 정도 함께 달리다 약간의 속도를 더 내어 보았다.(이게 실수였을까?)
30k 지점에 오니 2시간 35분 20초. 회장님이 다리에게 물어보고 괜찮다고 하면 더 달려라고 한 거리는 골인 5k 지점, 이제 12k 정도 남았다! 7k 정도만 이 페이스로 달리고 마지막 5k 함, 신나게 달려보자...이렇게 혼자 흐뭇하게 생각하고 있는데...갑자기 오른쪽 무릎, 그중의 오른쪽 부분에 통증이 느껴졌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할 때부터 나에게 부담으로 다가온 부위가 오른무릎이었었는데 나중에 달리다 보니 차차 잊혀졌었다. 그리고 오른 쪽 무릎이 아플 때도 보통 오른무릎 중간부분이 아팠었는데...이때는 오른쪽 부분이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짜릿짜릿하게.......처음 신호올 때 그저 약간의 고통이 올때도 되었다고 생각하며 무시하려고 했었는데...10k 남겨두고...이게 아니다! 고통이 장난이 아니다. 여기서 서야하나...생각이 들 정도의 심한 고통이었다. 허탈한 심정이 밀려 들었지만...일단 멈추자...아니야 한번 멈추면 다시는 뛸 수 없어! 갈등에 갈등을 거듭하였다.
35k 지점, 시간은 3시간 1분 18초...아! 골인점을 굴러가도 갈 수 있다고 생각한 7킬로미터 앞에다 두고...설 수 밖에 없었던 심정이란...발바닥이 아픈 것도, 호흡이 가쁜 것도, 다리에 힘이 빠진 것도 아닌데...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무릎의 통증으로...멈추어 걸을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걷다가 괜찮아지면 다시 달리겠다는 마음으로 걷기 시작했는데 점점 걸을수록 걷기도 힘들어졌다. 거의 한다리를 끌다시피해서 강변 덩쿨나무와 나무벤치로 설치해 놓은 쉼터로 갔다. 오른 무릎이 아파 왼 다리에만 힘을 주어 달려서 그런지 왼발바닥이 불이 붙은 듯 화끈거렸지만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른 무릎의 오른쪽 부분은 앉아서 오른 발을 땅에 닿고 있는 것 조차도 아프게 하였다.
벤치에 누워 덩쿨 사이로 비치는 따스한 햇살을 즐겼다. 출발할 때에는 햇볕이 전연 없어 드없이 좋은 달리기 조건이었는데...그래서 출전 직전 모자를 압수(? ㅋㅋ) 당해도 전화위복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반환점을 돌고 돌아올 즈음 햇살이 제법 따갑게 비추었다. 벤치에 누워 오른 다리를 쭉 뻗어 나름대로 스트레칭도 해보았지만 스트레칭으로 좋아질 것 같진 않았다.
누운 채로 혼자 계산하였다. 남은 거리 7k, km당 7분 속도로 달린다면 49분, 4시간 안에 들어가려면 여기서 3시간 11분이 되어서는 출발해야된다. 그럼 쉴 수 있는 시간은 약 10분...10분 정도 쉬고 나면 설마 키로당 7분으로야 못달리겠나...
또 생각해 보았다. 첫 풀 도전, 4시간 안에 못들어가면 또 어떠리~~내 무릎 잘못되는거보다 천천히 걸어가든지 아니면 차를 타고 가는게 더 나은 것 아닐까?
3시간 10분 시점에 일어났다. 천천히 걸어보았다. 그러다 천천히 달렸다. 10k 반환점, 그러니까 5k 남겨둔 지점에 오니 3시간 21분 40초...또 통증이 왔다. 아! 여기서 나는 내 힘껏 달리기로 작정하였던 곳 아닌가!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고시 공부 합네 하면서 명산대천을 찾다 지리산 화개골 목압 마을에서 공부하던 시절, 그곳 고시생 중 모씨는 집단헌팅(남자 여러명 나가서 여자들끼리 온 관광객들을 꼬셔 같이 노는 청춘사업)의 자타가 공인하는 전문가였다. 그의 지론 중 하나! 집단 헌팅할 때, 상대 여자들 중 폭탄(가장 별볼일 없이 보이는 여자)을 잡아라! 폭탄의 발언권이 가장 세고 가장 강력하게 발언한다. 고로 폭탄이 그 헌팅의 승패를 좌우한다!
나는 5k를 남겨둔 시점에서 다른 모든 부분이 최상의 컨디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오른 무릎이라는 폭탄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달릴 수가 없는 것이다. 나의 모든 행동과 달림은 그 시점 나의 신체 중 가장 취약한 부분이 결정하는 것이다. 평소 약하다고 생각하였던 부분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부족한 것을 새삼 느꼈다.
그전부터 자주 나의 오른쪽 무릎은 나에게 자신이 폭탄임을 알려왔음에도 나는 헬쓰클럽가서 허벅지, 종아리 근력운동 대신 런닝머신에서 달렸지 않은가? 그것이 더 재미있다는 이유로. 폭탄관리를 하지 않은 보복을 톡톡히 받고 있는 것이다.
뛰다 걷다 반복하고 반복하다 1km 지점에서 박덕제 부장과 이영태 친구를 만나 겨우겨우 운동장까지 왔다. 최순이 팀장의 권유로 아들 영조가 마지막 트랙을 같이 돌았다. 시간은 3시간 58분을 지나고 있었다. 절룩거리는 다리를 끌고 나의 운동화에 매여 있던 참피온칲이 전자라인을 통과한 시간은 3시간 58분 50초.
내가 애초 목표하고 꿈꾸던 첫 출전 sub-4를 기록하는 순간이었고 '폭탄이 기록을 정한다'는 중요한 교훈을 얻는 순간이었다.
통과 직전 처 송민선과 딸 영인이가 오른 쪽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마라톤 그 긴 거리를 뛸 수 있게 해 준 우리 클럽 회원님들과의 연습과 함께 긴긴밤 집을 비우고 달리기 연습하러 가도록 해 준 식구들, 그 완주의 모습을 고맙고 감동스럽게 지켜보고 있는 클럽가족과 나의 식구들이 무척 고맙게 생각되었다.
기념품, 첫 풀 완주메달을 받아 쥐고 그 메달이 풀코스 완주메달인 것을 확실하게 확인한 후 나는 그 메달을 목에 걸고 국밥 먹으러 갔다. 꾸역꾸역 밥을 먹고 회원들이 기다리고 있는 장소로 가서 한껏 뽐내었다. 완주 성공하였다고...^^
투덜거리며 버스 기다리다 가조온천에 도착한 시각이 오후 5시, 저녁 7시의 클럽창립 1주년 행사와 마춘다고 오랫동안 목욕하고 1주년 행사후 11시쯤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역시 오른쪽 무릎의 통증은 심했고 왼쪽 발바닥도 제법 아팠다.
황정형외과에 가서 치료를 받았는데 그곳 물리치료실 영 엉망이었다. 시설이 엉망이 아니라 그곳의 물리치료사인지...아니면 직원인지...두 여자 분의 태도가...
의사의 처방 같은게 올라 갔을게 분명한데 대뜸 허리 아파서 왔냐고 허리에 뭘 감쌀려고 하더니 무릎이라고 하니 무릎에 뭘 찍찍 바르고(그것도 무릎 중간하고 왼쪽부분만) 어쨋든 이리저리 하는게 수의사가 동물에게 하는 것 비슷하게 처리한다...^_^ 또 느꼈다! 이래서 아프면 안되는거야...
이래저래 느끼고 배운게 많은 첫 풀 도전이었다.
첫댓글 대단하십니다.그리고 완주를 축하합니다. 건강하십시오 주~~~욱.
나이 40에 시작한 마라톤이니 어차피 sub-3은 불가능한 것이라 볼수 있을 것이고 처음의 완주에 sub-4에 도달한 것도 대단하잖아!
달빛님..대단한도전의 성공을 ㅈ;ㄴㅅ;ㅁ으로 축하축하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