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낙원 보라카이
최 용 규
대학을 졸업하고 갓 취직을 한 아들이 우리 내외의 결혼 30주년 기념으로 선물을 하겠다며 짧은 여행을 주선하였다. 목적지는 요즘 신혼여행지로 뜨고 있다는 필리핀의 보라카이였다. 출발하는 날짜가 바캉스 계절이 끝난 뒤이고 보니 경비도 매우 싼 것은 물론이오, 피서철의 혼잡을 피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보라카이의 ‘보라’는 현지어로 바람을 뜻하고 ‘카이’는 벽을 뜻하는 말이란다. 두 단어를 합성한 보라카이는 바람을 막아주는 섬이란 뜻이 된다. 아마도 인생의 첫걸음을 떼는 신혼부부들에게 보라카이라는 이름이 인생 풍파를 막아준다는 뜻으로 새겨질 수도 있을것 같았다.
여행안내 책자에는 이 섬을 ‘지상 최후의 낙원’이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하늘의 천국은 가볼 수 없으나, 지상의 ‘낙원’은 가 볼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에 괜시리 마음이 설레었다. 나의 가족을 포함한 낙원 순례객들을 태운 필리핀 항공의 여객기는 매우 작은 체구를 지니고 있었다. 해외 여행에 나서는 마음에는 언제나 설레임과 긴장감이 교차했으나, 낙원을 찾아 나서는 이번 여행길엔 어쩐지 겸손해져야할 것 같았다. 그래서 작디 작은 비행기가 그런 심정과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4시간 여의 밤 비행 끝에 마닐라 공항에 도착했다. 필리핀 시간은 우리나라보다 1시간이 늦었다. 9월 중순인데도 마닐라 공항 밖의 거리는 밤의 열기로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진짜 열대야를 실감하며 호텔에 도착한 일행은 여행지에서의 첫날을 짐풀기와 눈 부치는 일로 시작했다. 다음날 아니 이날 아침 일찍 모닝콜에 깬 뒤, 서둘러 식사를 마친 일행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반바지와 맨발에 슬리퍼 차림을 하고 보라카이행 비행기에 올랐다. 보라카이 섬으로 우리를 실어다 줄 비행기는 첫날의 그것보다 더욱 작은 25인승 쌍발 프로펠러기였다. 낙원을 찾는 방문객이라면 어느 정도 여유를 즐길 수도 있어야 되는게 아닐까? 좁디좁은 좌석에 몸을 맞추면서 “얼마나 더 겸손해야만 되는거지”하는 불편의 말이 한숨과 함께 섞여 나왔다.
까띠끌란 공항에 도착한 순례객들은 부두로 나아가 작은 배로 갈아탄 후, 약 20분쯤 배를 타고 들어가서야 보라카이 섬에 다다랐다. 섬에는 부두가 따로 없어 승객들은 백사장이 눈앞에 보이는 바다에서 하선해야 했다. 무릎 높이까지 바닷물에 몸을 적시고 해변 모래사장에 올라서고 나서야 왜 맨발에 슬리퍼 차림으로 비행기에 올라야 했는지를 알게 된 것이다.
뭍에 오른 순례객들을 낙원의 중심부로 안내하기 위해 대기한 차량은 0.5톤 트럭의 뒷부분을 개조한 것인데 좌석이 매우 협소해서 머리를 숙이고 올라타야 했고, 이동하는 동안 내내 심한 매연을 내뿜었다. 우리가 지금 낙원의 중심부를 향해 바르게 가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허술하게 취급당한다는 생각에 여행의 시작부터 슬슬 불편한 심기가 일었다.
그러나 낙원에서의 순례 각본은 이미 짜여 있고, 순례객들은 최대한 즐거워하는 것이 맡은 바 역할이었기에, 가이드가 이끄는 대로 우리일행은 한국인이 운영한다는 리조텔에 짐을 내려놓았다. 그리곤 낙원에서의 첫 오찬이 기다리는 곳을 향해 약 1km 정도쯤 걸었을 때 저만치 앞에 ‘서울 식당’이란 간판이 보였다. 지상 최후의 낙원에 웬 서울 식당? 하고 의아해 하는데 가이드가 이곳이 목적지임을 알려주었다. 베일에 가려졌던 낙원에서의 첫 식사 메뉴는 바로, ‘김치찌개’였다. 열대 과일과 해산물이 가득한 향기롭고 품격 있는 식사는 어디에 있냐고 따져 묻고 싶었으나, 아침 일찍부터 육·해·공의 갖가지 교통수단을 타고 이동하다보니 꽤나 시장했던 터라 순례객들은 서울 식당의 김치찌개가 낙원의 풍성한 식사로 부족함이 없는 양 맛있게 먹기 시작하였다. 게다가 안주인이 직접 담갔다는 파김치 맛도 일품이었던 것이 우리 일행을 한껏 관대해지게 만들었다.
보라카이에서의 이틀간 휴식과 호핑투어는 주로 보라카이의 자연경관, 그 중에서도 바다의 아름다움을 관찰하고 또 즐기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보라카이에서의 첫날 오후는 자유 시간으로 각자의 선택 관광이 이루어졌다. 나와 아내는 스쿠버 다이빙 체험을 원하는 아들을 따라나선 김에 해변 모래사장에서 코코넛 오일 마사지를 받아보기로 했다. 모래사장 위에 깔아놓은 얇은 천에 몸을 눕힌 후, 보라카이 아줌마의 “누워”, “엎어” 소리를 들어가며 팔다리와 등, 배에 코코넛 오일을 바르는 동안 내내 면구스러움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마사지라고 하여 당연히 부드러운 손길을 기대했으나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손에 묻은 모래를 털어가며 팔다리를 마사지하는 손길은 껄끄러웠고 나와 아내를 엎어 놓은 체 두 아줌마들이 현지어인 따갈로그어로 나누는 수다는 귀를 따갑게 하였다.
보라카이 낙원의 손님대접은 상상과는 너무 거리가 멀었다. 깨어진 환상과 기대 밖의 체험에서 오는 아쉬움은 계속 부딪치는 잡상인 때문에 거의 실망감으로 이어졌다. 도대체 지상낙원에 잡상인들이 이다지도 많단 말인가. “싸요”, “깎아줘”하는 한마디 한국어로 다가서는 잡상인들을 끊임없이 상대하다가, 결국 “돛단배”, “낙하산”을 연호하는 보라카이 청년들의 끈질긴 상혼에 손을 들고 말았다. 스쿠버 다이빙을 끝내고 돌아온 아들과 우리 내외는 지상 낙원의 저녁놀에 마지막 기대를 걸어보기로 했고, 마침내 돛단배타기 즉, 세일링을 선택했다.
우리가 탄 배는 필리핀 원주민의 전통적인 배인 ‘방카’를 현대식으로 개조한 배였다. 선체는 좁고 긴 형태로 만들어져 있고, 앞쪽으로 3분지 1쯤 되는 곳에 두 폭의 돛을 단 돛대가 세워져있고 선체의 중간에서 후미 쪽 방향에 장방형의 가로 구조물이 선체의 양 날개처럼 펴져 있는데 그 구조물에 그물망이 씌워져 있다. 나와 선원 한사람이 그 왼쪽 그물망 위에 앉고 아내와 아들이 오른쪽 그물망 위에 앉아 좌우 균형을 맞추고 다른 선원 한사람은 돛대 앞에 서고 나머지 선원 한사람은 선체 후미에서 키를 잡았다. 선원 세 명에 승객 세 명을 태운 방카는 뒤편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받으면서 열대의 바다를 얼마동안 달려 나갔다. 뒤를 돌아보니 보라카이 섬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그도 잠깐, 덜컥 소리를 내며 돛의 방향이 바뀌더니 배는 역풍을 이용해 가며 출발지점으로 되돌아왔다. 세일링에는 약 1시간이 소요되었다. 구름이 짙게 낀 날씨 때문에 열대 바다의 석양에 마음을 붉게 물들일 기회를 아쉽게도 갖지 못했다. 그러나 단순함 속에 뜻밖의 귀중함이 숨어 있는 법, 말로만 전하면 그저 그럴 것 같은 세일링 체험 속엔 독특한 묘미가 숨어 있었다. 세일링의 핵심은 원주민의 해양 문화 체험과 그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스릴이었다. 선체의 좌우로 날개처럼 튀어나온 구조물 위의 그물망을 꽉 잡은 채 온몸으로 바람을 받아내면서, 발밑으로 파도가 부딪칠 때마다 열대 바다의 온기와 짠 내음이 머리끝까지 번지는 것을 느꼈다. 세일링 체험을 통해 해양민족인 필리핀 사람들의 문명 이전의 삶을 어렴풋이나마 상상할 수 있었는데, 이것이 보라카이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진기한 기억으로 남게 될 것 같았다.
보라카이에서의 둘째 날, 호핑투어는 줄낚시와 스노클링, 바나나보트 타기와 씨푸드 식사의 일정으로 이어졌다. 처음 시도해 보는 선상 낚시는 나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체험이었다. 번번히 새우미끼만을 떼이면서 오기를 부려 보았으나 내 손끝의 줄에서는 끝내 물고기를 잡아 올리는 감격의 파장을 맛보지는 못했다. 가이드가 눈치 빠르게 다가와 고추장에 찍은 생선회 한 점을 입에 넣어주며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유일한 손님의 무색함을 달래 주었다. 섬 가까이 이르러서 스노쿨링을 하게 되었는데 매사 의욕이 넘치는 아내가 몇 사람 안 되는 도전자 틈에 끼었다. 그러나 몸과 마음이 따로 놀았는지, 아내는 몇분도 견디지 못하고 아들에게 건져지다시피하여 배에 올려졌다. 그런 와중에도 아내는 딱 1초간이지만 바다 밑 세계를 들여다보았노라고 자랑하기를 잊지 않는다. 그런 점이 내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아내의 매력이다.
호핑투어의 마지막 코스는 씨푸드였다. 그러나 무늬만 씨푸드여서 바닷게와 새우가 식단의 전부였다. 식탁에 앉은 모든 이에게 엄지손가락 굵기의 한 뼘 크기 막대기가 주어졌는데 게의 하얀 속살을 만나려면 이 막대기를 게의 다리에 잘 조준해서 타격을 가해야 했다. 한 마리씩 배당된 게를 해치운 우리 일행은 닭꼬치와 고구마로 씨푸드의 미진함을 달래야 했다.
보라카이의 마지막 스케줄은 서울 식당 건너편 모래사장에 간이로 마련된 식탁에서의 만찬이었다. 낙원에서의 최상의 메뉴로 준비된 듯한데, 그것은 바로 돼지 삼겹살이었다. 필리핀에서는 매우 비싸다는 상추도 나왔다. 소주가 몇 순배 돌면서 비로소 낙원 순례자들은 통성명을 하고 모처럼 편안한 ‘한국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보라카이에서의 ‘낙원 순례’는 여행사의 스케줄에 따라 막을 내렸다. 이틀 동안 내가 보고 느낀 모든 것을 종합하여 생각해보니 보라카이는 꿈속에 그려왔던 낙원, 여행홍보 책자에서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묘사한 낙원과는 너무 거리가 멀었다. 혹시라도 바다 밑 세상을 적극적으로 체험했더라면 사정은 좀 달랐을지 모르겠으나, 그래도 보라카이에 대한 나의 근본적인 관점을 바꾸지는 못했을 것이다. 원주민 청년들이 작살과 그물을 들고나가 고기를 잡는 대신 과일봉지나 값싼 공예품을 들고 관광객들을 뒤쫓는 풍경이나 섬의 여인들이 물질을 하여 전복을 따고 진주를 찾았던 손으로 관광객의 팔 다리에 코코넛 오일을 바르는 것이 그들의 삶이고 생업이 되어버린 한, 보라카이는 그들에게도, 또 낙원을 상상하며 찾아온 관광객들에게도 결코 낙원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산호가 부서져 설탕같이 고운 모래로 다시 태어난 화이트비치와 에메랄드빛 바닷물이 어깨를 마주하며 춤추고, 야자수 숲과 푸른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원주민들의 자연친화적 삶과 문화, 그들의 생업이 함께 공존하는 섬, 그리고 그 섬을 방문하기 위해 한껏 겸손해진 손님들이 원주민들의 따뜻한 환대를 받으며 함께 어울리고, 공감할 수 있는 섬이 될 때, 비로소 보라카이는 그들의 낙원이자 방문객의 낙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보라카이의 낙원을 보지도 느끼지도 못한 채 작별해야 하는 순간 뒤를 돌아보고 주춤거리는 나의 모습은, 마치 밤새워 그리운 님을 기다리다가 끝내 만나지 못하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서는 연인의 안타까운 모습과 닮아 있었다.
첫댓글 보라카이에 제가 다녀온 듯 섬세한 필치의 글 잘 읽었습니다. 밤새워 그리운 님을 기다리다 돌아서는 무거운 발걸음이 눈에 선합니다.
글을 읽다보니 제가 그곳을 다녀온 듯 가보고 싶은 곳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수업시간에 감상했지만, 다시 잘 읽고 갑니다.
보라카이의 여행지가 눈앞에 그려집니다. 구경 잘 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