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생활에 환멸 느낀 여성들, 가사로 전향해 돈벌이까지 기대
가이아 딜로레토는 한 보험사의 정보기술(IT) 업무지원센터 관리자로 일하는 동안 고맙다는 말 한 마디 듣지 못했다. 결국 2년 전 회사를 나와 ‘바이 브루클린(By Brooklyn)’을 창업했다.
브루클린에서 싹트는 장인 커뮤니티의 수제품을 판매하는 상점이다. 메그 파스카에게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파스카는 자신의 ‘브루클린 도시농부(Brooklyn Homesteader)’ 블로그를 통해 양봉, 자가양조, 뒷마당 양계 탐험을 기록했다.
딜로레토의 매장에선 수제품 장신구, 도자기, 예쁜 8달러짜리 캔디 바, 그리고 건무화과와 시라차 같은 맛의 칵테일 비터스(쓴 맛을 내는 착향제) 등을 판매한다. 딜로레토는 유행을 앞서가는 캐럴 가든스 구역에 자리를 잡았다.
같은 구역에 부동산 업계 퇴직자들이 세운 뜨개방 겸 카페 겸 선술집 라카시타도 있다. 매일 오후 장난스러운 문신을 한 세련된 스타일의 여성들이 카푸치노나 와인 잔을 앞에 두고 뜨개질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딜로레토는 “직장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던 사람들이 이 도시로 몰려들었다”며 “그리고 또 다른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의 판매자 중 다수가 처음에는 수공예품 온라인 쇼핑몰 에치(Etsy) 또는 브루클린 벼룩시장에 물건을 내다 팔았다. 대다수가 여성이다. 딜로레토와 마찬가지로 스트레스 쌓이고 영혼을 좀먹는 직장 일에 대한 대안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 널따란 주말 장터는 최신 유행의 나이트클럽처럼 활기 넘치는 젊은 유행선도자들로 붐빈다. 성공적인 영세사업체 창업이 특히 여성들 사이에 널리 자유분방한 삶을 꿈꾸는 ‘보헤미안 드림’이 됐다. HBO의 인기 드라마 ‘걸스(Girls)’에서도 젊은 독신 캐릭터 중 한 명이 겨자 사업체를 차린다. 시대의 흐름을 앞서가는 젊은 여성상을 부각시켰다. 10년 전에는 선구적인 젊은 여성은 양념보다 칵테일에 더 관심이 많다고 여겨졌다. 그랬던 당시로선 전혀 납득하지 못할 일이다.
그런 변화가 브루클린·포틀랜드·오리건 같은 지역의 유행특구를 지배한다. 그와 같은 예쁘장하고 지역적인 수제품의 미학을 가볍게 웃어넘기기 쉽다. 하지만 그것은 실상 세대간 가치관의 변화를 나타낸다. 그런 가치관 변화는 현대 직장에 대한 깊은 환멸에서 비롯됐다.
경제학자 실비아 앤 휼릿의 조사에 따르면 Y세대 중 62%가 엄마 세대의 장시간 근무하는 ‘극단적인’ 직장생활을 따라하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X세대와 Y세대 남녀 모두 베이비붐 세대 부모보다 더 ‘가족중심적’이고 덜 ‘업무중심적’이라고 자처한다.
다른 직장을 구할 가망성이 없어 수제품 경제로 전향하는 사람들도 있다. 20~24세 청년층의 14% 이상이 실업이거나 불완전고용 상태에 있다. 노스캐롤라이나주 채플힐에서 수제 잼 사업을 시작하려는 한 여성은 “부모는 내가 언제 진짜 직장을 구할 작정인지 계속 묻는다”고 말했다. “내 연령대 사람은 어느 누구도 진정한 일자리를 구할 수 없다. 독창성을 발휘해야 한다. 2개의 석사학위를 가진 한 친구는 영원한 백수였다. 요즘엔 도넛을 만들어 판다.”
딜로레토는 38세이지만 그의 판매자 대다수가 20대 또는 30대 초반이다. 그들은 “일자리가 없어서 또는 직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는 브루클린에서 주마다 열리는 ‘스모가스버그(Smorgasburg)’ 같은 지역 식품 축제와 농산물 시장에 맛 좋은 식품이 더 많아지게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 셰릴 샌드버그가 『뛰어들어라(Lean In)』에서 주장하는 여성 리더십 운동에는 반드시 좋은 전조가 아니다. 조안 윌리엄스는 캘리포니아대 헤이스팅스 로스쿨의 직장생활법 연구소 소장이다. 자신의 저서 『고집스러운 양성문제(Unbending Gender)』에서 자신이 인터뷰한 여성을 묘사한다.
법조계를 떠나 파트타임으로 퀼트 사업을 시작한 여성이다. 그런 경력전환으로 인해 “엄마뿐 아니라 자녀까지 경제적인 불안정이 계속될 게 뻔하다. 분명 엄마들을 실력자 자리로 이끌지는 않는다”고 그는 썼다.
여성들이 직장에서의 성공에 쏟아 붓던 에너지를 가사와 가내수공업으로 돌릴수록 요리·가사·자녀양육의 전반적인 수준은 더 높아진다. 따라서 가정과 잘 나가는 직업 간의 균형을 잡기는 그만큼 더 어려워지는 듯하다. 퇴사 움직임은 새롭지 않다. 하지만 유기농 이유식을 직접 만드는 등의 일을 해야 한다는 압박이 여성들에게 가중되는 현상은 최근의 변화라고 윌리엄스는 말한다.
“아마도 A형 행동양식(잘 놀고 열심히 일하고 경쟁적인 유형의 인간)의 성취욕 강한 여성이 직장 업무에 요구되던 기준을 가사에 적용한다고 해석하는 편이 가장 적절한 듯하다.”
그러나 가사로 전향하는 사람 중 적어도 일부의 경우 기준을 높게 유지하려 애를 쓰는 이유가 따로 있다. 특별히 성취감을 얻지 못하던 직장의 퇴사 결정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29세 여성 켈리 폴러스의 블로그는 ‘앞서가는 가정주부(Hipster Homemaker)’로 불린다.
아들의 출산을 준비하던 시점에 소믈리에 일자리에서 밀려났다. 그는 갈수록 애착 양육에 끌렸다. 아기를 포대기로 안고, 모유 수유를 하고, 옆에 끼고 잠을 잤다. 그 사이 “원하는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부부의 상근직 맞벌이 소득 없이 사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블로그 세계가 가정생활에 전념하기로 한 그의 선택을 정당화하는 데 도움을 줬다. “블로그를 운영하는 여성은 인지도가 높다”고 그가 말했다. “‘혁신적인 가정주부’나 ‘개척자 여성’ 같은 블로그가 그것을 더 쿨해 보이게 만든다.”
가사 블로거들은 때때로 퇴사를 찬양한다. 마치 의도적으로 2세대 페미니스트(second-wave feminists, 여성의 사회활동을 강조)들을 화나게 하려는 듯하다. 가장 인기 있는 가사 블로그 중 하나는 레베카 울프의 ‘아이에게로 간 여자(Girl’s Gone Child)’다.
그러나 놀랍도록 솔직한 한 게시물에서 울프는 고백한다. 자신이 아이들과의 시간을 시적으로 꾸밀 여유가 있는 건 블로그 작업을 하는 동안 아이들을 돌봐주는 풀타임 보모가 있기 때문이라고. 결국 블로그 ‘아이에게로 간 여자’는 울프에게 라이프스타일인 동시에 일인 셈이다.
그는 책을 한 권 써내고 재야의 마사 스튜어트로서 HGTV의 온라인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그리고 그것은 많은 여성에게 새로운 가사활동의 진정한 꿈이다. “페미니스트들은 오래 전부터 여성의 가사활동에 보수를 줘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고 『여성이 가정생활로 돌아가는 이유』의 저자 에밀리 매트차는 말한다. “지금은 적어도 때때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여기서 ‘때때로’라는 단어가 중요하다. 이들 여성 중 다수가 깨닫듯이 블로그 활동, 컵케이크 또는 공예품 만들기로 먹고 살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온라인 수제품 시장 에치는 분명 칡뿌리처럼 뻗어나가고 있다. 매트차의 발표에 따르면 개설 첫 해인 2005년 17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2011년에는 그 규모가 5억2560만 달러로 불어났다. 하지만 에치에 가판을 벌인 어느 한 판매자의 성공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그리고 판매자의 최대 97%가 여성이다.
가장 성공적인 에치 판매자도 “자신이 운영하는 노동착취 공장의 피고용자로 전락한다”고 매트차가 말했다. “전직 변호사가 지금은 자택 거실에 앉아 하루 13시간 동안 뜨개질을 한다. 밤낮 없이 제품을 만들던 텍사스의 도예가는 아기를 낳은 뒤 빡빡한 작업 일정을 맞추지 못해 일을 포기한다.
하지만 소규모 가내 수제품 생산의 꿈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꿈이 아름다울 수 있으며 또 한 편으론 대안이 종종 너무 비참한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의 평균적인 직장인, 특히 자녀가 생긴 뒤 짧은 출산휴가, 장시간 근무, 일주일 내내 밤낮없이 이메일로 업무연락이 가능하리라는 기대에 응해야 하는 사람들의 경우 에너지가 소진될 위험이 대단히 크다고 생각한다”고 매트차가 말했다. “직장에서 지쳤다고 느낄수록 가사 업무가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