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5.28.
하루 첫 일과는
밤새 차가 안녕하신지 얼른 살피는 일이다.
그 다음에 창 너머 뷰를 본다.
볼가(Волга)강에 제법 큰 여객선이 지나간다. 그만큼 강이 깊고 수량이 많다.
이 볼가(Волга)강은 카잔(казаиь)을 지나면서 페름(Пермь)에서 내려온 카마(Кама)강과 만난다.... (단어 두개 이상 안면 있으면 우등생)
이후 볼가(Волга)강은 남쪽으로 흘러가서 카스피해에 도착한다. 유럽에서 가장 긴 강이 세계에서 가장 큰 호수에 흘러드는거다.
카스피해는 육지로 둘러싸여 있으니까 호수다. 그런데 카스피해는 바이칼호와 달리 염도가 높아 짜다. 그러니 바다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왜냐 카스피해에서 석유가 왕창 발견됐다. 호수라면 인접국가끼리 나눠가지면 끝이지만, 바다라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바다는 12해리까지만 각국의 영해다. 그러니까 각 나라의 소유권이 축소되는 결과가 생긴다. 게다가 12해리 이상은 공해가 된다. 공해에는 미국도 들어올 수 있으니 러시아의 지배권에 영향이 생긴다. 복잡하고도 재미있다.(남의 일이니까)
그런데. 미송이 열심히 썰을 푸는데... 요숙의 리액션이 없다. 요숙의 관심은 이미 조식에 있다. (이래도 되나 말이다)
...
니즈니 노브고르드(Нижний Новгород).
한 때 이 도시는 고리키(Горький)라고 불렸다.
저명한 작가 막심 고리키(Максим Горький)가 태어난 고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필명인 막심은 <최고의>라는 뜻이고 고르키는 <고통>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도시의 이름으로는 별로 환영받지 못했을 것이다. 1990년에 다시 예전의 니즈니 노브고르드(Нижний Новгород)로 바뀌었다.
이 고리키의 일생을 읽어보면 상당히 흥미롭다. 그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톨스토이, 레닌이 다녔던 카잔(Казань)으로 갔다가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이후 고리키가 도보로 4년간 러시아 전역을 여행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여행이 고리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음은 당연하다.
고리키는 이때 러시아의 광대한 아름다움과 하층민의 고통을 발견했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그의 대표작 `마더`가 알려졌었다.
... 누구나 스스로의 주인이고 저만의 세상에서 왕이며 모든 속박과 구속으로부터 자유롭다. 온 세상을 다 자신의 장소로 여긴다. 왜냐하면 어느 곳도 그들만의 세상은 없기 때문이다(Горький)
고르키 문학박물관으로 갔다. 휴관일이다. 다행이다. 러시아 원고 본다고 아나?
다시 1km 떨어진 고르키가 살던 아파트 박물관으로 갔다. 요숙이 들어가고 나는 차를 사수했다.
왜냐하면 여기 저기 차를 통째로 트럭에 얹어 견인해 가는걸 목격했기 때문이다. 잠시만에 단번에 실어간다. 살살 싣지도 않는다. 박력있다. 내 눈에 벌써 3대 째 열반했다.
< 여행자 Tip >
횡단보도 옆에 거의 소형차 2대분 거리 안에 주차하면 10분내 차 없다. 따라서 횡단보도 옆 주차는 엄금이다.
왠 러시안 남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일러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시베리아를 헤메는 노숙자가 됐을 것이다. (말이라도 통해야 견인된 차 찾아올거 아이가)
...
불법 정차로 불안불안한데 요ㅡ쑤기가 돌아오지 않는다. 아마 이 와중에 아예 표 끊고 관람 중이실 것이 틀림없다. 워메 속 터져~ (확 가뿌까?)
고르키의 서재.
시대별 작품과 사회활동. (나는 모르지)
다음은 니즈니노브고르드(Нижний Новгород)의 크렘린. 길은 안보이는데 성벽에 올라가 보겠다고 혼자 막 간다.
돌아올거 뻔하니까. 나는 쉼.
한참 후에 돌아왔다. (그럴 줄 알았다)
돌아와서는 어디어디로 가면 성벽에 올라갈 수 있단다. 우에 알았냐고? 한국 아줌마의 힘이다.
일단. "이즈비니제~ "로 불러세운다.
( Извините~ 실례합니다~)
이단... 영어를 시작한다.(영어가 안되는 러시안 살짝 당황함.)
삼단... 요때 바로 번역기를 들이댄다. 99% 성공.
...
크렘린에 올라서니 볼가(Волга)강 너머 광대한 평원의 지평선이 드러난다.
이런 풍광은 지금까지 본적이 없다. 뭐라고 묘사할 것인가. 한 동안 가슴에 담았다.
...
블라디미르를 향해 출발해서 약 두시간 쯤 가니 처음으로 모스크바(МОСКВА) 라고 적힌 이정표가 보인다.
러시아에 들어선지 한달. 9,300km를 달렸다.
2019.5.29
오늘 오전은 블라디미르(Владимир)를 둘러보고, 오후에는 러시아 황금고리 중의 하나인 수즈달(Суздаль)로 간다.
황금고리(Золотое кольцо)라는 것은
중세 러시아의 모습이 남아있는 작은 도시를 말하는데 이 도시들이 모스크바 주변에 고리 모양으로 위치하고 있다.
모두 13개 도시인데 블라디미르(Владимир),
수즈달(Суздаль)이 거기에 속한다. 오늘 갈 수즈달은 블라디미르에서 30km 밖에 안된다. 껌이다.
...
아침밥 먹는데 꼬마가 날 보고 말을 건다.
걷지도 잘 못하는 놈이 러시아 말은 나보다 낫네. 그 노무시키~♡
우리의 경주 쯤되나? 천년이 넘는 도시이니 곳곳에 세월의 흔적이 보인다.
날씨가 30°c 까지 오르니 아가씨들의 어깨가 드러난 홑옷이 바람에 나부끼고. 아이들은 분수에서 홀딱 젖는다.
우리는 한 겨울 외투를 입고 눈총을 모은다.
숙소 인근의 드미트리 성당(Дмитриевский собор)이다.
성당 외벽에 천개가 넘는 부조들이 사면으로 대칭을 이루고, 각 부조에는 기독교 성인과 여러 가지 동식물이 새겨져 있다.
내부 모습이다. 원래는 돔의 꼭대기에 있던 것이란다. 12세기의 십자가 모습이다.
이 성당은 블라디미르 귀족의 개인 예배당으로 자기 집 안뜰에 지은 것이라 한다.
건축적인 의의는 모르겠으나 많은 사람들이 가난으로 허덕일 때 개인 예배당?
영화 대부에서 사람을 죽이고 성당에 돌아와 주일 미사에 빠진 죄를 고백하던 장면이 생각났다.
그러나 유산은 선악과 별개로 그 자체로서 귀하다. 이것은 성모승천대성당, 골든게이트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성당 뒤에는 드넓은 대평원이 펼쳐져 있다.
어쩌면 이 자연의 들판이 그 보다 훨씬 더 값진,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귀한 유산일 것이다.
블라디미르의 성모 승천 대성당이다. 모스크바 크렘린에 성당을 지을 때 이 성당을 모델로 했다고 한다.
확대.
거리에는 곳곳에 조각상이 있다. 단순한 길이 문화적으로 훨씬 풍요로운 장소가 된다.
내 집앞 골목길에 만화같은 벤치가 놓여 있어 오가는 이들에게 미소가 번진다면 그것도 세상을 이쁘게 만드는 값진 일일것이다.
블라디미르(Владимир)의 황금문(Золотые ворота)이 멀리 보인다. 러시아에 유일하게 남은 중세시대의 도시 문(city gate)이다.
요놈이? 요래 이뻐도 되나?
원고 마감시간이 다가오는데 폰의 인터넷이 고장이다. МТС에 가서 수리했다. 100руб.
중심가의 건물이 통째로 KFC와 맥도날드다. 가게 안을 오가는 밝은 청춘들의 어디에도 옛 소련의 흔적은 찾기 어렵다.
KFC 치킨. 고향의 맛이다.
먹다가 밖을 보는데 저만치 넋놓고 앉아 있는 나이든 여인의 모습이 가슴을 찌른다.
어떤 고통보다 가난의 고통이 가장 슬프다... 이렇게 짧은 생인 것을.
...
오후들어 수즈달(Суздаль)에 도착했다.
집 떠난지 한달. 투어를 다음 날로 미루고 그동안 무성해진 머리를 정리하러 갔다.
구글에 미장원을 검색해서 뷰티살롱으로 갔다. 들어가니 꽃이 한가득이다. 머리깎자고 찾아간 곳이 꽃집이다. 친절한 꽃집 아줌마는 집 밖까지 따라나와 미장원가는 길을 가르켜 주었다.
미장원 문을 잡으니 눈 앞에 왠 십자가다.
에구 이건 Dental Clinic 이다. 멀리서 꽃집 아줌마가 그때까지도 지켜보고 있다가 소리질러 주었다. ... 그기 아이고 왼쪽! (maybe.)
마침내 미장원 문을 들어서니 여자들이 한방 가득이다. 우에 깎는지 묻지도 않길래 `베리 쇼트`라고 했더니, 다(Да)한다. yes라는 말이다.
눈을 감고 있으니 지구가 핑 돈다. 와이러노?
여기는 미용사가 돌아가면서 자르는게 아니고 손님을 빙 돌린다.
경북 상주에 가면 감이 특산이다. 거기 감을 깎을 때 칼은 가만히 있고 감이 뱅 돌아간다. 이리저리 돌아가니 왜 그런지 상주 감이 생각난다.
어쨌든 기록이다. 대한민국 남자 중에 러시아 미장원에서 머리 깎아 본 사람 몇 명 되겠노.
번역기를 좀 소개하자면 요숙이 머라머라하면 폰에서는 러시아말이 되어 나온다. 상대방과 소통하자니 볼륨을 키울 수 밖에 없다.
요숙과 미장원 보스가 번역기로 떠드니 미장원 안의 모든 사람이 다 듣는다. 눈치를 보니 모두 보기드문 장면에 재미가 가득하다. 구경 났다.
미장원 보스가 요숙을 가마이 보더니 요숙도 눈썹 정리를 하란다.
한참만에 돌아온 요숙의 눈썹 주위가 붉으스레하다. 한국에서는 눈썹을 밀어서 정리하는데 여기는 박력있다. 싹 뽑아버린다.
웃겨 죽는 줄 알았다.
모든 작업이 끝나고 계산할 차례다.
보스가 요숙에게 손짓으로 번역기를 내란다.
머라머라... 볼륨이 크니까 나에게까지 큰 소리로 들린다.
" 당신의 남자가 다른 놈이 되었다"
...
이것도 여행이라예. 오늘은 고만할랍니다.
다 스비다냐...до свидания~~
(안녕히 계세요~~)
5/28 블라디미르 가는 길
첫댓글 원래 그넘이 그넘인데...
하여간 (미송님 간 + 요숙님 간) = 곰 간 보다 더 커져 못하는게 없네. 사고는 치지 마소.
어제 오늘 여행이 풍성하네. 감사하요.
미송님 글솜씨는 익히 알고 있지만
군더더기없는 간결체에 유머와 위트까지~♡
정말 미송님 글을 읽으면 감칠 맛이 납니다~♡
문학은, 인생은 체험이 바탕이 된다고 했는데 미송과 요숙은 그 바탕이 바위라서,.... 걸작을 기대해도 좋을 듯. 그리고 밥상 앞의, 거리의 탁자 위의 ? 과일을, 그리고 ?, ?, 건물 앞에 소녀처럼 다소곳이 포즈를 치한 요숙을 보면서 여행은 여행객을 선남선녀로 만드는군요.
Finland 입성을 앞두고 계시니, 베토벤만 듣지 마시고 Sibelius를 들으심은 어떨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