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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얽히고 묶이는 인생 (잠6:2절)
한자의 사자성어에 ‘자승자박’이란 말이 있습니다. 그 뜻은 자기가 만든 밧줄로 스스로 묶는다는 말입니다. 원수 앞에서 자기를 자기가 묶는다면 고스란히 원수의 밥으로 내어주는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러한 이치를 우리가 잘 알면서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남을 묶는다는 것이 자기가 자기를 묶어 스스로 포로가 되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제목의 시가 있어서 소개합니다.
사람들은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이며 자기중심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사랑하라.
만일 그대가 좋은 일을 하면 사람들은 그대에게 숨은 동기가 있을 것이라. 고 비난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일을 하라.
만일 그대가 성공하면 그대는 가짜 친구들과 진짜 적들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하라.
만일 그대가 정직하고 솔직하면 그대는 상처받기 쉬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직하고 솔직 하라.
오늘 그대가 하는 일이 좋을지라도 내일이면 모든 사람에게서 잊혀 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일을 하라.
가장 위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가장 위대한 사람일지라도 가장 작은 생각을 가기고 있는 가장 작은 사람의 총탄에 쓰러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생각을 하라.
사람들은 약자에게 동정을 베풀면서도 강자만 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약자를 위해 싸우라.
그대가 수년을 걸려 건설한 것이 하룻밤 사이에 파괴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설하라.
그대가 세상을 가지고 있는 최고의 선을 베풀어도 그대는 무자비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다 그대가 가지고 있는 최상의 선을 베풀라.
1930년대 미국이 대공황의 위기에 처했을 때 루스벨트 대통령은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이다.’ 라고 말하면서 국민들을 격려해서 경제공황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생각에서 패배하면 현실에서도 패배한다는 것을 루즈벨트 대통령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국민으로 하여금 좋은 생각,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한 것입니다. 인간은 여러 가지로 자승자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자기를 묶는 데서 승리하고 이겨야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1. 자기 생각으로 스스로를 묶습니다.
인간은 그 생각으로 자승자박 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자기가 죄인이라고 늘 생각하고 있으면 죄의 힘으로 자승자박됩니다. 자기는 세속과 마귀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면 그 생각이 자기 스스로를 묶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된 존재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죄와 사망의 세력은 우리에게 능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롬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늘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해방된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죄에서 해방되고 사망의 세력에서 해방되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죄와 사망의 종으로 죄와 사망에 묶여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그대로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자기가 병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면 그 생각으로 자승자박하여 병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잠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나는 병을 감당할 수 없다. 나는 병의 노예다. 결국에는 병으로 말미암아 죽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 생각이 자기를 묶어 놓고 말기 때문에 병의 노예가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잠18:14 사람의 심령은 그의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
그 마음에 즐거움이 생기면 그 즐거움이 약 공장을 가동해서 온몸에 치료가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생각이 여러분을 자유인으로 만들기도 하고 종으로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렇게 생각하고 난 다음 내 운명이 바로 되기를 고대하면 그것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환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내가 자유인으로 생각할 때 자유가 주어지고, 종이라고 생각할 때 노예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무능력하고 실패자며, 가난하고 패배자라고 생각하면 그대로 자승자박하게 됩니다.
인간의 생각은 그 자체가 운명을 만들어 갑니다. 그러므로 긍정적인 생각 없이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나의 삶속에 늘 ‘나는 패배자다. 나는 실패자다. 성공하지 못한다. 나는 가난하다. 나는 무능력하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나를 완전히 얽어매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자승자박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축복받은 사람이다. 저가 나의 저주를 다 담당하시고 저주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나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이다’라고 축복의 생각으로 마음을 가득히 채우면 축복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잠17:20 마음이 굽은 자는 복을 얻지 못하고 혀가 패역한 자는 재앙에 빠지느니라.
1940년대 에드먼드 힐러리라는 뉴질랜드 청년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 산 정복에 나섰다가 실패하였습니다. 그는 하산하는 길에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산아, 너는 자라나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자라날 것이다. 내 기술도, 내 힘도, 내 경험도, 내 장비도 자라날 것이다. 나는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기어이 네 정상에 설 것이다.’
약 10년 후인 1953년 5월29일, 그는 다른 산악인 2명과 함께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에베레스트 산 정상을 정복했습니다.
꿈이 한두 번 좌절되었다고 그 꿈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꿈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실패는 인생의 가장 보편적인 경험입니다.
그러므로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큰 과제는 어떻게 실패를 딛고 일어서서 승리의 미래를 향해 전진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2. 사람은 입술의 말로 스스로를 묶습니다.
인간의 살고 죽는 권세가 혀에 있기 때문에 사람은 혀의 사용을 통해서 자승자박하는 것입니다.
*잠18:20-21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얼마나 강한 말입니까. 죽고 사는 권세가 혀에 달렸다. 혀를 사용하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는다. 우리는 너무나 무작정하고 혀를 움직여 마음대로 말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말로 자신의 미래를 망친 대표적인 사람을 들라하면 1984년 올림픽에 출전했던 매리 데커를 꼽을 수 있습니다.
그녀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육상 선수로 미국의 위대한 희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올림픽 경기가 열리기 전에 출연한 한 TV 토크쇼에서 ‘난 운이 따라 주질 않아요. 난 늘 운이 없는 사람이에요.’ 라고 그렇게 부정적으로 말을 하고 탄식을 했습니다.
그 후에 그녀는 큰 압박감에 시달렸고, 올림픽 육상 경주에서도 패배하고 만 것입니다.
‘천사의 말을 하면 천사가 찾아오지만 악마의 말을 하면 악마가 찾아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와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무명의 젊은 권투선수였던 케시어스 클레이라는 흑인 청년은 큰 시합을 앞두고 기자에게 ‘난 세계 최고다.’ 라고 계속해서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이 신문에 떠들썩하게 보도되었습니다.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이 이번 시합에서 일방적으로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에 찬 말을 했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았습니다. ‘나는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쏠 것이다.’ 결국 그는 시합에서 이겼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으며 이후의 경기에서도 대부분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어떤 말을 만 번 이상 되풀이하면 반드시 미래에 그 일이 이루어진다.’고 말한 격언이 있습니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하는 말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늘 못한다고 말하면 그 말의 그물에 걸려 결국 실패하게 됩니다. 죽고 사는 권세가 혀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계속해서 반복해서 말을 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습관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정적인 말을 계속해서 반복해서 말하면 습관이 되어서 그 말을 자주 하게 되고 부정적인 말로써 자승자박합니다. 사망으로 얽히고 패배로 얽히고 질병으로 잡히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일본의 에모또 마사루 박사가 물에 대해 연구한 내용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박사님은 물에 말이나 글을 들려주거나 보여준 뒤 물의 반응을 연구했습니다.
한 컵의 물에는 ‘감사합니다.’ 를, 다른 한 컵에는 ‘짜증나네, 죽여 버릴 거야’ 를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그 물을 영하 20도에서 3시간 정도 얼린 다음 그 물의 결정체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감사합니다.’를 보여준 본 물은 아름다운 육각수의 결정체를 하고 있었지만, ‘짜증난다.’ 는 말을 보여주었던 물은 완전히 어지럽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에모또 마사루 박사는 실험을 통해 ‘사랑’과 ‘감사’라는 말을 들었을 때 물의 결정체가 가장 아름답고 안정적이며 치밀한 구조를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몸은 60%가 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몸속에 있는 물이 아름다워야 몸도 건강하고 아름다워 지는 것입니다.
물이 깨어지고 흐트러지면 온몸에 건강도 깨어지고 흐트러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몸에 있는 물에게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아름답습니다.’ 하고 말하면 온몸이 육각수로 아름답게 되어서 심신이 건강해 집니다.
그러나 물에게 ‘밉다. 저주한다. 절망적이다. 나는 소망이 없다.’ 이렇게 부정적인 말을 하면 물이 악마처럼 어그러집니다. 몸속에 60%의 물이 악마가 되어서 여러분을 물고 찢는 것입니다.
당장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로 우리 몸에 있는 물이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하고 천사가 되게도 하고 악마가 되게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입에서 나가는 말이 다른 사람을 욕하기 위해서, 저주하기 위해서, 멸하기 위해서 하는 말 같지만 다른 사람에게 하기 전에 자기의 몸을 망처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 입의 말로 네가 묶였으며 네 입의 말로 네가 사로잡힌다고 한 것입니다.
사람은 남을 해하고자 하기 전에 그것이 먼저 자기에게 해로움을 가져온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남에게 흙칠을 하려면 내손에 흙을 먼저 묻혀야 되는 것과 똑같은 이치인 것입니다.
우리의 언어 하나하나가 이처럼 생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죄와 세속의 말을 하면 죄와 세속에 우리가 묶이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엡5:4-5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말을 잘못하면 사탄의 권세에 잡히게 된다는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골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우리가 늘 못산다고 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를 다 떠나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축복의 사자들이 떠나가 버리고 못산다고 하면 못살게 하는 귀신들이 여기 내 친구 있다고 다 모여드는 것입니다.
*고후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사람은 부요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영적으로 부요하고 심적으로 부요하고 생활적으로 부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가장 부요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3. 사람은 심성으로 스스로를 묶습니다.
우리는 자기의 육체적인 모습을 항상 거울을 통해 봅니다. 자기가 누구인가를 몰라보면 큰일이지요. 오늘도 교회 나오시기 전에 모두 다 거울을 들여다보았을 것입니다. 저도 여러 번 거울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사람은 자기의 모습을 거울을 통해 돌아보고 머리가 흐트러지지 않았는지 얼굴을 더럽지 않은지 옷매무새가 바른지를 늘 찾아보는 것입니다. 잘못 되었으면 거울을 보고 자기를 교정하는 것입니다.
1900년도 원산에서 케이트 쿠퍼(Kate Cooper) 선교사가 선교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선교사 집에 놀러온 촌부가 벽에 걸린 거울 앞에 서서 놀라 고함을 치고 선교사님을 불렀습니다. ‘선교사님 누가 벽 속에 숨어 있어요. 저분이 누구예요.’
생전 처음 보는 자기를 몰라 본 것입니다. 그 때만해도 우리 한국에 거울이 없었습니다. 선교사님이 와서 전신을 볼 수 있는 큰 거울을 벽에 걸어 놓으니까 촌부가 그 집에 와서 자기 모습을 보고 놀라 까무라쳤습니다.
누가 벽속에 들어있는 것을 보고 놀랐던 것입니다. 자기의 모습을 모르면 자기의 모습을 보고도 기절초풍을 하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모습을 거울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듯이 우리의 내적인 모습은 우리가 예수님을 보면서 잘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모습이 부정적이면 결코 성공적인 삶을 살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내적인 모습이 자기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를 잘못 보면 패배적인 것으로 자승자박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은 우리에게 삼대재앙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에덴에서 쫓겨나올 때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었고, 자기의 사는 환경은 가시와 엉겅퀴가 나서 저주받아 이마에 땅을 흘려 고생해야 살게 되었고, 육체는 병들고 늙고 영원한 고통을 받게 되는 삼대재앙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아담의 자손들은 태어날 때부터 마음속에 삼대재앙의 자화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죄인이다. 저주받고 고통스럽고 낭패당하고 실패하며 산다. 나는 병들고 노약해지고 결국은 죽는다.’는 3대재앙의 자화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구주로 믿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서 새로운 자화상을 마음속에 그려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용서받은 의인이 된 자화상 그려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저주가 다 사라지고 아브라함의 복이 주어지는 자기를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시고 우리를 건강하게 하신 자화상을 마음속에 그려서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고 난 다음 마음에 자기를 보는 눈을 바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거울을 통하여 새로운 자화상을 바라보고 자기의 새로운 모습을 마음속에 깊이 아로 새겨야만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죄와 세속과 마귀의 종으로 보지 말아야 됩니다. 바라보는 것을 그대로 우리가 갖게 되기 때문에 바라봄의 법칙의 무서운 힘을 인식해야 되는 것입니다.
*갈5: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십자가를 통하여 종의 멍에에서 해방된 자신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죄의 멍에가 꺾인 자기를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병의 멍에에서 해방된 자기를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저주에서 자유와 해방을 얻은 자기의 모습을 마음속에 그리고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병자라고 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병자라고 바라보고 늘 자기의 병약함을 생각하면 그는 병자인 것입니다.
자기의 모습이 병약하다고 늘 마음속에 상상하고 그렇게 보는 사람은 어떠한 의사도 어떠한 약도 어떠한 환경도 그를 건강하게 만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비록 병들고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자기의 보는 모습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거울을 통하여 고침 받은 자기 모습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는 치료받고 건강하고 활달하게 되었다는 모습을 마음속에 상상하고 그를 바라볼 때 그대로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해 주는 것입니다.
피터 모펫은 말하기를 ‘우물을 청소하는데 주의를 기울이기 보다는 차라리 그대의 마음을 청소하는 데 주의를 기울이라. 그대의 양떼보다는 그대의 마음을 살찌게 하라. 그대의 집을 방어하기보다는 그대의 마음 지키기를 더욱 힘쓰라. 그대의 돈을 지키기보다도 그대의 마음을 지키기에 더욱 힘쓰라’ 고 하였습니다.
청교도인 존 훼블은 ‘어떠한 조건 하에서도 마음을 지키고 바르게 관리하는 일은 기독교인의 생활에 있어서 위대한 사명에 속한다.’ 고 말했습니다.
영국의 시인 밀턴은 ‘마음은 천국도 만들고 지옥도 만든다.’ 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마음을 지켜 자기를 바로 보아야 합니다. 인간은 그 자화상으로 자승자박하는데 자기를 죄와 세속과 마귀의 종으로 보면 죄와 마귀와 세속의 인간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용서와 의와 영광을 받은 사람이요, 거룩하고 성령 충만한 사람이요, 치료받은 사람, 축복받은 사람, 천국 영생복락을 받은 사람으로 상상하고 바라보면 ‘네 믿음대로 될 찌어다.’ 라는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4. 사람은 믿음으로 스스로를 묶습니다.
인간은 믿음으로 자승자박합니다.
*마8:13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죄와 마귀와 세상이 너무 강하다고 믿지 마십시오. 믿음은 스스로를 묶는 밧줄이 됩니다. 죄가 너무 강하다. 마귀가 너무 힘세다. 세상이 너무나 무시무시하다. 나는 도저히 마귀와 죄와 세상을 이길 수 없다. 자기 마음속에 자기가 무능력하다고 믿고 있으면 그는 세상과 마귀가 자승자박합니다. 무엇이든지 여러분 믿는 데로 되는 것입니다.
*요일4: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아무리 죄가 크게 다가와도 내속에 있는 예수님의 은혜는 저 죄보다 크다. 아무리 마귀가 공격해 와도 우리 속에 계시는 예수님은 마귀보다 크시다. 아무리 세상이 파도처럼 다가와도 내안에 계신 예수님은 세속을 이미 이긴 분이다. 이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죄와 마귀와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시고 있다고 믿고 예수님을 의지하고 나가면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권세로 어떠한 죄도 이기고 어떠한 마귀도 짓밟고 어떠한 세속도 극복하고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우리는 우리 인간 혼자 살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사나 죽으나 주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람처럼 오셨고 사람을 위해서 죽으셨고 사람을 위해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이제는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살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를 이기고 세속을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질병을 이기고 죽음을 이기고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병으로 고통당하거나 불구가 되거나 죽을 것이라고 믿어서는 안 됩니다.
부정적인 믿음은 아예 마음속에 발도 들여놓지 못하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믿음은 그를 따라서 마귀가 들어와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우리의 병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2천 년 전에 벗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이 친히 등을 내밀어서 채찍으로 때리도록 허락한 것은 여러분과 나의 질병을 청산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과 더불어 살기 때문에 환경을 바라보고, 감각이나 느낌을 바라보고, 좌절하고 절망하면 안 됩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여러분이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로 여러분을 살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이름 안에서 나는 성공할 수 있다. 나는 승리한다. 나는 축복받는다. 나는 은혜를 입는다고 믿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귀에 들리는 것으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손으로 만져보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을 보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환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느끼는 것도 아니고 감각하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이란 사나 죽으나 말씀에 서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 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통하여 나는 저주에서 해방된 사람이다. 나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이다. 나는 형통한 사람이라고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대로 될 것입니다.
*신28:12-14 야훼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야훼께서 너를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네 하나님 야훼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헬라 속담에는 ‘혀는 뼈 하나 없이 아주 약하고 작으나 많은 사람을 찌르고 죽인다.’ 는 말이 있습니다.
아라비아에도 ‘네 혀가 네 목을 베지 못하게 하라. 칼은 쓸수록 더 무디어 가지만 혀는 쓸수록 더욱 날카로워진다.’ 고 말했습니다.
페르시아인들의 속담에는 ‘혀는 길어지면 생명이 짧아진다.’ 고 말했습니다.
중국 고사에는 ‘세 치의 혓바닥으로 다섯 자의 몸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영국에는 ‘현명한 자는 긴 귀와 짧은 혀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다.’ 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각 나라마다 인간의 언어생활에 대해 격언이나 속담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인간의 살고 죽을 권세가 혀에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많은 경우에 운명이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그 운명은 스스로 만드는 것입니다. 즉 자승자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으로, 자화상으로, 믿음으로, 입술의 고백으로 자승자박합니다. 내가 나를 묶어놓고 난 다음 누구에게 탄식하고 누구에게 책임을 돌릴 수 있는 것입니까.
여러분의 생각을 통해서 여러분을 묶거나 풀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자화상을 통해서 묶거나 풀어 놓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을 통해서 여러분을 묶거나 풀어 놓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입술의 말로 여러분을 묶거나 풀어 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통하여 여러분을 해방시켰습니다.
*마16: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라 하시고..
그러므로 우리가 매든지 풀든지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말이 결국 여러분의 환경과 운명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스스로 부정적인 말을 하여 실패자가 되지 마시고 말할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서 긍정적이고 희망적으로 말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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