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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은혜 (엡 2:8-10)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로마 카톨릭의 타락과 부패에 맞서, 종교개혁자들은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예수”,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외쳤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이 간절하게 원했던 것은 “초대 교회로 돌아가자”는 것이었습니다.
“때 묻지 않는 거룩하고 순수한 신앙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외침이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처럼, 종교개혁자들처럼, 우리의 신앙은 이것저것 온갖 잡스러운 것으로 뒤범벅된, 혼한된 그런 신앙이 아닌 단순하고, 순결한, “오직 십자가”만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신앙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신앙생활, 교회생활을 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입니다. 그 어느 보물보다도, 그 어떤 귀한 보석보다도,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중요하게 여겨야 할까요? 성경 안에서, 우리는 참된 진리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가까이 함으로, 하나님에 대하여, 예수님에 대하여, 성령님에 대하여,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을, 놓치지 않고, 열심히 배워나가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요 5:3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성경은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붙잡아야 될 십자가에 대하여, 거짓없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참된 진리에 대하여, 감추지 않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알면 알수록, 영생의 참된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진리를 알게 됨으로, 참된 자유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 곁에 계실 때, 그 당시의 사람들은 아주 가까이에서, 예수님을 직접 보고,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보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놀라운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지 못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예수님께서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요 5:4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보면서, 그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귀한 말씀을 들으면서도, 구원자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믿지 못한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곁을 떠나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참된 진리를 알고, 자유와 평안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그들에게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모든 것들을 붙잡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들입니까?
그런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말씀하셨을 때, 시몬 베드로가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요 6:69-70)라고 대답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임을 믿었습니다.
베드로는 영생의 말씀이 예수님께 있음을 알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들으면 들을수록, 영생의 말씀이 오직 예수님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다른 데에 있지 않습니다.
성경을 듣고 읽음으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믿음이 더욱더 굳건하게 세워져 나가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딤전 4:15)고 말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고 성숙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숙한 믿음을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전심 전력으로 읽어야 할 것입니다.
사도행전 17:1절을 보면,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라고 말했습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들었던 그 말씀이 과연 진실한 것인가를 알기 위하여, 날마다 성경을 연구했습니다.
그들은 설교자를 비롯한 누군가로부터 들은 성경 말씀과, 성경 안에 기록된 말씀이 일치한가를 연구했습니다. 무조건 믿지 않았습니다. 맹신하지 않았습니다.
잘못된 성경 지식으로, 이단과 사이비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요즘 “유월절을 아십니까?”라고 전단지를 돌리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들은 진정 유월절의 참된 의미를 알고, 전단지를 돌리는 것일까요?
중세 시대, 로마 카톨릭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보다 교황의 말을 위에 두었습니다.
성경보다 교황의 말이 더 힘이 있었습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성경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가를 찾기 보다는 교황이 어떤 말을 했는가가 중요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는 우리는, 그 어떤 말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잠언 2:4-5절을 보면, 솔로몬은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라고 말했습니다.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구하고, 감추인 보배를 찾는 것 같이, 찾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게 되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호 6:3)라고 말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힘써 알고자 애쓸 때, 우리 삶 속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종교개혁자들은 “면죄부를 사면 죄가 사해진다”고 하는 교황의 말을 믿기 보다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는 어떤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까?
주님의 사자가, 마리아의 남편인 요셉에게 나타나,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1)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예수님을 우리의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할 자이심을 믿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목숨을 우리의 대속물로 주려고오셨습니다.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죄로 인하여 죽어가는 우리를 살리시고, 영생을 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새생명을 얻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이 복음 안에, 우리는 항상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갈 1:6-7)라고 말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통하여,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예수님을 생명의 구원자로 믿었지만, 세월이 지난 다음, 교회 안에 살며시 들어온 다른 사람들을 통하여, 그럴싸한 다른 말을 듣게 되고, 그들의 말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율법을 행하여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예수를 믿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할례를 행하여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한 마디로, “하나님 나라는 믿음으로 가는 나라가 아니라, 행위로 가는 나라”라고 말하는 이들의 그럴싸한 말에 넘어가 버린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믿음의 길에서 벗어난 그들을 향하여, 아주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다른 복음은 없다.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7,8)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다른 믿음은 없습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여러분! 오직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나를 위하여 죽으셨음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용서해 주셨음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율법을 완벽하게 행하여만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다른 복음입니다.
“할례를 행하여만 한다. 세례를 다시 받아야 한다. 구약의 안식일을 지금도 지켜야 한다. 유월절을 지켜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우리 공동체에 들어와야 구원이 있다.”
우리의 행위로, 우리의 선행이나 공로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 예수님만을 믿고, 따라갈 때,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들어가게 됨을, 우리는 항상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는 한마음교회에 속해 있습니다. 혹시 제가 잘못된 말씀을 전하고 있는가를 알려고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더욱더 가까이 해야 할 것입니다.
“누군가의 말에 의하면”이라는 말로, 설교자를 비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내가 다니는 교회의 지도자의 말에 의하면, 내가 알고 있는 믿음 좋은 선교사가 있는데”라고 하면서, 접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정사정없이 물리쳐야 합니다. 정에 끌려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것만을 말하고,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것만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알고,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알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구원자이신 예수님께로 나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성령님께로 인도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찾아오셨습니다. 나를 만나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입니다.
내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춘 사람이었기에, 하나님께서 나를 만나주셨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완벽하지 않았는데, 죄가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를 찾아오셨고, 만나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우리는 “오직 은혜”를 잊지 않아야 합니다.
8-9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창세기 6:8절을 보면,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습니다. 방주를 만들기 전입니까? 아니면, 방주를 만든 후입니까? 노아가 방주를 만들었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입니까? 아닙니다. 방주를 만들기 전입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악했습니다. 노아도 그 중의 한 사람입니다. 노아가 선하다거나, 노아가 하나님을 위하여 뭔가 좋은 일을 행하였다고 하는 기록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중 노아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노아를 살리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노아를 살리시려고, 하나님께서는 노아가 120년 동안 방주를 만드는 동안, 기다리고 기다리셨습니다.
참고 참으신 하나님, 기다리고 기다리신 하나님,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갈대아 우르에 살고 있는 아브라함을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서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을 향하여 오던 중, 하란에 멈추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다시 찾아와 다시 말씀해 주셨습니다. 가나안 땅에 도착한 아브라함은 기근과 같은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가나안을 떠나려고 했습니다. 애굽으로 내려가려고 했습니다. 예전의 삶으로 다시 되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때그때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찾아와, 가나안 땅에 살아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든든히 설 때까지,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항상 함께 하셨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셨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갈 수 있도록 붙들어 주십니다. 기다려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완벽한 인간이기에 부르신 것이 아님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심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기다려 주심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매순간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만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옳은 길로 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심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 바울 사도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스스로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딤전 1:13)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런 바울이 예수님을 전하는 복음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9-10)라고 말했습니다.
노예선의 선장이었던 존 뉴턴은 폭풍을 만나 다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만남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입게 되었습니다. 훗날,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생각하면서,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을 핍박했던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 새사람이 된 후,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노예선의 선장이었던 존 뉴턴이 예수님을 만나 새 사람이 된 후,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가 놀랍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바울 사도의 고백, 존 뉴턴의 고백이 바로 우리의 고백이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음을 믿는 것이 바로, 올바른 믿음입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이 시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납니까? 그런 일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 숨쉬며 살아갈 수 있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늘 감사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더 놀라운 은혜와 복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며 살아감으로,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예비해놓으신 은혜와 복을 풍성하게 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크신 은총을 베풀어 주옵소서.
날마다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시고, 우리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 험한 세상에서, 주님 품 안에서, 참된 기쁨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붙들어 주옵소서.
우리 한마음교회를 붙들어 주셔서, 은혜의 장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