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 애인의 죽음에 충격 받은 산따띠 장관 187)
잘 갖춰 입었어도 평온하게 살며
고요하고 자제하고 청정범행을 실천하고
모든 존재들에 대한 폭력을 버렸다면
그가 바라문이자 사문이며 비구이다. 188)
187) 산따띠 장관이 국경 지역의 반란을 평정하자 국왕 빠세나디는 많은 하사품을 내리고 화려한 연회를 베풀고 어여쁜 기생들이 그를 이레 동안 모시도록 해주었다. 마지막 날 밤에 춤을 추기로 한 산따띠가 사랑하는 기생은 장관의 마음에 들려고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이레 동안 금식에 가까운 정도의 음식만 먹어서 아주 쇠약해진 몸으로 열심히 춤을 추다가 급사해 버리고 말았다. 사랑하는 여인을 잃어버린 충격을 감당할 수 없었던 장관은 제따와나 정사로 가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 저의 슬픔을 없애시고, 저의 의지처가 되어 주십시오.”
그러자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그대는 이미 슬픔을 없애 줄 수 있는
사람 앞에 와 있으니
안심하여라.
윤회하는 동안
그 여인이 죽었을 때마다
그대가 흘린 눈물이
저 사대양의 물보다 더 많다.”
이어서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의미의 게송으로 법문을 하셨다.
“과거의 번뇌를 생각하지 않고,
미래에 번뇌가 생기지 않고,
현재의 대상에 대해서도 번뇌가 생기지 않도록
위빳사나 관찰을 잘 하면
모든 번뇌가 다 사라질 것이다.”
설법이 끝나자 산따띠 장관은 사무애해를 갖춘 아라한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 제가 지금 반열반에 드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침묵으로써 승낙하시자 산따띠는 하늘 높이 자란 야자나무만큼의 높이로 허공으로 솟아오르더니 결가부좌를 한 채 불(火)의 삼매에 들어 그 자리에서 반열반에 들었다. 그의 몸은 불꽃에 휩싸여 화장되었고, 뼈는 사리가 되어 떨어졌다. 어느 날 비구들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산따띠는 장엄한 장식이 달린 장관의 관복을 입은 채 반열반에 들었습니다.
그를 사문이라고 불러야 하겠습니까? 아니면 바라문이라고 불러야 하겠습니까?”
이에 대해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를 사문이라고 불러도 옳고 바라문이라고 불러도 옳다.”
이어서 부처님께서는 게송을 읊으셨다.
188) 외형적으로 보면 바라문은 태생이 고귀한 바라문 계급에 속하며 제사를 지내는 성직자이다. 사문은 바라문교를 제외한 교단들(불교 포함)로 출가한 자이고, 비구는 불교로 출가한 사문이다. 하지만 이 게송에서 말하는 내면적인 의미를 살펴보면, 구경의 깨달음을 성취한 아라한이 진정으로 고귀한 사람이며, 마음속의 모든 번뇌를 제거하고 청정범행을 완성한 수행자가 진정한 비구이다. (『법구경 이야기 2』, 403쪽)
첫댓글 슬픔을 없애는 방법
과거의 번뇌를 생각하지 않고,
미래에 번뇌가 생기지 않고,
현재의 대상에 대해서도 번뇌가 생기지 않도록
위빳사나 관찰을 잘 하면
모든 번뇌가 다 사라질 것이다.
고맙습니다 ....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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