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저성장·고령화 여파로 집값 하향 안정될 것
상가임대 호황기 지나…월세 등 현금흐름 살펴야
도심 소형 아파트 등 환금성 높은 곳이 돈 되는 부동산
부동산 경기가 좀처럼 바닥을 드러내지 못하며 불안한 전조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정부에서는 '부동산 불씨 살리기'에 한창이다.
최근 들어 정부는 의욕적으로 연 1%대 저금리로 주택구입자금을 빌려주는 수익·손익 공유형 모기지 상품을 내놔 1시간도 안돼 은행 창구에서 '완판'을 이뤄내는 신기원을 이뤘지만 이를 부동산 경기회복의 본격적인 청신호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드물다.
국내 부동산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 중 한명으로 꼽히는 박원갑 국민은행 WM사업부 부동산전문위원은 거침없는 화법으로 "부동산불패 신화는 끝났다"고 말한다.
적어도 빚을 얻어 부동산에 무리하게 투자하는 '빚테크'의 시대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월세수입 등 현금흐름을 가지고 부동산을 재평가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만큼 부동산에 끼여 있는 불필요한 거품을 재빨리 걷어 내야 한다는 주문이다.
세계일보, 문화일보, 중앙일보 조인스랜드 등 언론에서 부동산 담당 기자로 활동했고 부동산학 박사 출신으로 금융권 최고의 부동산 전문가로 꼽히는 그에게서 100세 시대 '실패하지 않는 부동산 전략'에 대해 들어 봤다.
■억척 할머니의 부동산 불패신화는 잊어라 = "50~60대가 부동산 침체기에 직격탄을 맞으며 믿었던 아파트로부터 배신을 당했다."
박원갑 전문위원은 "이른바 베이비부머 세대로 불리우는 50~60대 중장년층이 자신의 모든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아파트 등 부동산 가격의 붕괴를 보며 아노미 상태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과거에는 시장 바닥에서 할머니들이 억척스럽게 음식 장사를 해 돈을 모아 부동산에 투자해 기적과도 같은 성공 신화를 쓰는 일을 종종 있었지만 지금은 본격적으로 노후대비를 해야 하는 50~60대들이 부동산 가격의 붕괴를 보며 눈물이 마를 날이 없게 됐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아파트로 대변되는 부동산 자산이 노후를 보장해 주는 방패막이가 됐다. 아파트 가격은 은행이자를 웃돌며 무섭게 치솟아 올랐고, 노후에 아파트를 담보로 잡아 대출을 받을 수도 있었으니 일종의 노후 안전망으로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상황은 달라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만 해도 인구감소, 저출산, 고령화 등으로 인해 주택의 공급과 수요가 어긋나기 시작하면서 장기적으로도 봤을 때도 주택가격은 하향 안정될 것이라는 게 박 전문위원의 관측이다.
그는 "2000년대 초 부동산 광풍이 불었던 것은 긴 인류 역사에서 '봄날 햇살'과 같은 정도로 극히 짧은 시기였으며 정상은 아니었다"며 "오히려 최근의 모습이 정상으로 가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과거 재건축을 앞두고 1억4000만원을 호가하던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85㎡ 기준)의 매매가가 2006년말 14억원까지 치솟았다가 현재 9억원선까지 급락했는데 이는 광풍과도 같은 아파트 개발 붐이 성숙기로 접어들고 있는 증거라는 것이다.
박 전문위원은 "앞으로 부동산은 가격의 노예가 되지 말고 가치를 중시해 장기적인 안목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며 "저성장의 시대에 부동산 가격이 오르기를 무작정 바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며 더구나 빚을 내 부동산에 투자하는 '빚테크'는 어리석은 일이다"고 강조했다.
■상가 투자, 후유증 심각…현금흐름에 눈 떠라 = 박 전문위원은 노후생활의 로망으로 불렸던 상가 투자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던졌다.
그는 "상가시장이 죽을 쑤고 있는데 공급과잉에 인터넷 쇼핑몰과 할인점 확산, 소비침체라는 악재 때문"이라며 "안정적 투자의 대명사였던 아파트 내 상가도 예전 같지 않은데 많은 사람들이 상가를 노후생활의 로망으로 생각하며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복합상가 분양시 단골 손님으로 등장하는 홍보가 바로 '샤워효과'나 '분수효과'와 같은 시너지 부분이다.
대형 영화관이 맨 윗층에 있거나 아래층에 대형 할인점이 있을 경우 '샤워효과'나 '분수효과'를 통해 인근 층의 점포의 매출액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인데 실상은 용무를 본 고객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장 건물을 빠져 나가며 이 같은 홍보를 무색케 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그는 "상가는 부동산 호황기가 낳은 사생아다"며 "최근 상가 공급이 넘쳐나고 대체쇼핑 공간이 등장하면서 수익률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지난 2009년 서울과 6대 광역시 상가(매장용) 빌딩의 평균 투자수익률은 연 5.19%였으며, 이는 지난 2003년 연 14.09%에 비하면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또 그는 우리나라의 자영업자 비중이 선진국에 비해 높은데다가 베이비부머의 은퇴 등으로 신규 창업자들이 늘어날 경우 점포 간 경쟁이 더 심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동네 통닭집이 몇 년 전에 비해 얼마나 늘어났는지 주위를 한번 우선 둘러보라는 것이 그의 직언이기도 하다.
그는 "상가임대는 임대료를 내며 장사를 하는 사람들과 공동창업을 하는 것과 같은데 경기가 바닥인 상황에서 장사가 안 될 경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며 "상가투자는 월세수입 등 좋은 현금흐름이 나오는 곳이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당장 정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 전문위원은 "부가가치 생산의 중심 공간인 도심에서 멀어지는 부동산일수록 인구쇼크의 충격을 더 받는다"며 "이 때문에 부동산 자산은 도심에 두어야 하는데 교외나 시골로 꼭 가고 싶다면 집을 사서 이주하기보다는 전세를 얻어 이전하는 것이 '내 부동산 자산'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다"고 귀띔했다.
■'빚' 되는 부동산, '돈' 되는 부동산 = 박 전문위원은 "나이 들어서 과도한 부동산 비중을 낮추고 금융자산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논리는 대체로 옳다"면서도 "단순히 부동산 자산을 위험자산으로 금융자산을 안전자산으로 분류하는 이분법적인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고령으로 돈 벌이가 시원치 않은 상황에서 당장 유용할 현금이 없으면 아무리 부동산 부자라도 속빈 강정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의 진단.
그는 "극단적으로 노후에 수술비 마련을 위해 부동산을 내놓았는데 죽고 나서 매수자가 나타날 수도 있다"며 "부동산 보유자산이 과도한 경우 50% 안팎으로 비중을 낮추되 부동산 내에서도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다만 금융자산은 곧 안전자산이고 부동산은 위험자산이라는 편견은 잘못됐다는 것이 그의 충고다.
박 전문위원은 "예금과 적금, 채권은 안전자산에 속하지만 펀드나 주식은 대표적인 위험자산인데 이를 단순하게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은 어리석다"며 "자산을 구성할 때 부동산자산과 금융자산의 방식이 아닌 안전자산과 위험자산으로 분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부동산 자산의 경우 월세수입 등 현금흐름 확보에 유리한 도심 소형 아파트가 좋다.
소형 아파트는 거래가 많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매각할 수 있는 환금성이 높고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수 있어 노후에 연금식으로 지급받을 수 있는 장기주택저당대출 역모기지론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것.
또 그는 "부동산 자산을 모두 팔아 주식형 펀드에 가입하라는 주문은 위험한 발상이다"고 단언했다.
과거 일본 부동산버블이 붕괴될 당시 주식도 함께 폭락했는데 실제 일본 니케이 225 주가지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지난 2009년 3월 6일 7173포인트(종가)를 기록하며 역사적 고점이었던 1989년 12월 29일 3만8916포인트에서 82%나 급락한 전철이 있다.
박 전문위원은 "현재 부동산 시장은 대세상승기의 블루오션이 아니라 침체기의 레드 오션으로 봐야 하며 제한된 수익을 놓고 피 흘리면서 싸우는 시장이다"면서도 "무조건적인 부동산 매도에 이은 묻지마식 금융상품 가입은 또 다른 위험을 부를 수도 있다"고 충고했다.
그는 "노후에 대비한 자산관리에 있어 마음이 불편한 자산은 더 이상 안전자산이 아니며 마음이 불편하다면 아파트건 주식이건 모두 팔아야 한다"며 "이들 자산은 노후 행복을 위한 수단이지 결코 목적이 아니며 지나친 재(財)테크는 재(災)테크로 바뀔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