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30 - 서영남
민들레국수집 9주년!
민들레국수집은 국수가 없습니다. 손님들께 국수를 대접하고 싶어도 국수 말고 밥을 달라고 합니다. 참 희한한 국수집입니다. 그래서 9주년 감사미사를 드리는 2012년 4월 1일(일)에는 손님들께 쌀밥에 고깃국을 대접 대접하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희망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우리 손님들이 이제는 다이어트를 해야 하니까 밥 말고 국수 달라고 할 날이 분명 올 것입니다. 동천홍에서 매 주일마다 선물해 주시는 맛있는 짜장은 밥에 엊어먹어도 맛있지만 면을 삶아서 짜장면으로 먹어도 참 맛있습니다.
2003년 4월 1일 만우절에 10㎡(3평) 겨우 되는 곳에서 식탁 하나 놓고 여섯 사람이 앉으면 꽉 차는 아주 작은 식당인 민들레국수집을 시작했습니다. 국수 6상자 사 놓고 민들레국수집을 시작했습니다. 첫날은 손님들이 한 분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공쳤습니다. 다음 날에는 거리로 나가 손님을 모셔왔습니다. 그렇게 민들레국수집을 겨자씨보다도 더 작게 민들레국수집을 시작했습니다.
쌀이 떨어질까 걱정했습니다. 쌀이 달랑거리면 간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그래서 도자기 쌀통을 가져다 놓았습니다. 쌀이 요즘은 쌀이 한 달에 20Kg으로 150-160포 정도 들어갑니다. 이제는 손님들이 접시 가득 두세 번 드셔도 간이 철렁 내려앉지 않습니다. 아낌없이 나눠주시는 은인들 덕택에 우리 손님들만 배불리 드시는 것이 아니라 동네의 어려운 분들과 쌀이 필요한 곳에 충분히 나눠드릴 수 있을 정도입니다.
지나간 세월이 은총의 세월이었습니다. 꿈같기만 합니다. 좁은 국수집이 이제는 민들레국수집이 60㎡(18평)으로 넓혀졌습니다. 한꺼번에 스물네 분이나 식사를 하실 수 있습니다. 얼마 전부터는 손님들이 자리가 없어서 밖에서 기다리기도 하지만 가슴 아플 정도는 아닙니다. 요즘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많이 찾아오시는 것이 안쓰럽습니다. 얼마 전에 할아버지들을 한 분씩 면담을 해 봤습니다. 남구와 중구 그리고 부평구와 북구 멀리 계양구에서 오시는 할아버지들이 많습니다. 어떤 분은 실비를 받더라도 여기서 먹을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멀리 서울과 수원에서 식사하러 오시는 할아버지도 계십니다. 그리고 국수집 근처인 화수동에서 오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경로식당이 문을 열지 않는 일요일이나 월요일에는 식사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부탁을 하십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거의 삼백 분이 넘게 국수집을 찾아오십니다. 사회복지가 지방분권으로 바뀌면서 경로식당 운영에 지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있는 모양입니다. 동구 사람만 이용할 수 있게 하기 때문에 할아버지들께 경로식당을 이용하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처음 민들레국수집이던 곳은 이젠 주방이 되었습니다. 주방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온종일 음식을 만들어 뷔페식 반찬통에 담기 바쁩니다. 손님들이 드시는 음식량이 대단합니다. 계란 프라이를 하나씩만 드리려고 해도 계란 10판에서 15판이나 필요합니다. 계란 프라이를 온종일 하신 자매님께서는 팔에 파스를 붙여야 할 정도입니다. 콩나물 반찬도 전에는 4Kg 한 상자면 충분했습니다. 이제는 콩나물 다섯 상자를 나물로 무쳐야 겨우 충당이 됩니다. 국도 엄청나게 많은 양이 필요합니다. 멸치볶음을 해 놓으면 어떤 손님들은 밥만큼 담아 드시기도 합니다. 김치도 얼마나 잘 드시는지요! 상추쌈을 참 잘 드십니다. 소고기 국도 좋아하시고, 김치 돼지고기 볶음도 좋아하십니다. 돼지불고기를 충분히 드시게 하려면 60Kg에서 80Kg 정도가 필요합니다. 얼마나 맛있게 드시는지 모든 음식이 참 먹음직하게 보입니다.
민들레국수집은 일반 복지시설의 무료 급식소와 비슷한 풍경이지만 다른 점도 많습니다. 우선 이곳은 정해진 식사시간이 없습니다. 문 여는 시간(오전 10시~오후 5시)에만 오면 언제든 마음껏 먹을 수 있습니다. 식권도 없고, 줄을 설 필요도 없고, 신분 확인도 없습니다. 문 닫을 시간이 됐다고 매정하게 문을 닫지도 않습니다.
아침에 문 여는 시간이 오전 열 시입니다. 손님들이 일찍 오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식사 준비가 되면 문 여는 시간보다 일찍 드실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손님들께 “배가 고파서 그러는데 좀 일찍 먹어도 될까요?” 물어보도록 합니다. 손님들이 다시 따라서 물어보시면 “그럼요. 드세요.” 대답을 합니다. 음식을 남기지만 않는다면 몇 번을 드셔도 괜찮습니다. 하루에 다섯 번을 오셔도 괜찮습니다.
2011년 1월에 고마운 분의 도움으로 민들레국수집 근처에 “민들레 가게”를 열게 되었습니다. 33㎡(11평) 정도의 아담한 옷가게를 만들었습니다. 지나가던 동네 분들이 옷을 사기 위해서 가게로 들어옵니다. “죄송합니다. 이곳은 파는 곳이 아닙니다.” 돌려보내고 있습니다.
손님이 바지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민들레 가게에 모시고 가서 바지를 고르라고 합니다. 대다수 손님들이 바지만 고르는 것이 아니라, 허리 벨트도 필요하고, 셔츠도 필요하고, 잠바도 필요하고, 양말도 필요하고, 운동화도 필요하다면서 노끈으로 맨 허리를 보여줍니다. 고무줄로 동여맨 신발을 보여줍니다. 그러면 아주 욕심 부리는 것이 아니라면 맘껏 쇼핑하실 수 있도록 해 드립니다. 참 행복해 합니다. 민들레 가게를 이용하는 손님들도 약 천삼백 여명 정도 됩니다. 그리고 필리핀 빠야따스(쓰레기산)에 사는 아이들을 위해 아이들 여름옷을 모아서 화물로 보냅니다.
민들레국수집을 이용하는 사람은 하루 평균 300~500여명이나 됩니다. 서울이나 수원 그리고 의정부에서도 소문을 듣고 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다른 무료급식소에 가면 사람들이 줄 서서 서로 먼저 먹겠다고 싸우고, 먹는 시간도 정해져 있는데 여기는 그런 게 없다며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호텔이라고도 합니다.
민들레국수집은 2003년 4월 1일에 문을 열었습니다. 수중에 있던 300만원으로 이 식당을 차렸습니다.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오는 손님을 하느님이 보내주시는 사람으로 대접했습니다. 그렇게 했더니 희한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거짓말 같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민들레국수집에서는 손님들을 줄 세우지 않습니다. 가장 배고프고 힘없는 분들부터 먼저 대접을 합니다. 선착순으로 줄을 세우면 사람들이 익명성이 보장되면서 난폭해집니다. 서로 배고픈 사람에게 양보하고 서로 배려합니다.
쌀이 떨어질까 아슬아슬했었는데 국수집 소문이 퍼지면서 여기저기서 이름 없는 후원자들이 나타나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침이면 문도 열지 않은 식당 앞에 누가 보냈는지도 모르는 쌀 포대나 반찬, 과자 몇 봉지에 음료수가 놓여 있고, 택배로 소포로 멀리 강원도며 전라도, 제주도에서까지 생선이며 쇠고기며 사과며 귤이 올라옵니다. 손님들이 참 행복해 합니다. 정말 맛있게 식사를 하십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밥은 당연히 필요한 것입니다.
사람은 생존에 위협을 받으면 다른 생각을 할 틈조차 없습니다. 우선은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손님들이 다시 살아갈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민들레희망지원센터를 2009년 7월에 열었습니다. 센터는 1층에는 책을 읽고 컴퓨터를 할 수 있고, 상담과 영화도 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2층에는 샤워와 빨래 그리고 낮잠을 자고 쉴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술을 마시지만 않았다면 우리 손님들이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등록 회원이 거의 천삼백 여명이 넘습니다. 보통 하루 100-130여명의 손님들이 이용합니다. 매달 두 번 무료진료가 있고 이발도 합니다. 지난 해에는 치과도 열었습니다. 결핵검진도 자주 합니다. 안타깝게도 결핵에 걸린 노숙 손님이 발견되면 방을 얻어드리고 약을 잘 드시고 나으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기도 합니다. 매일 책 읽는 손님들을 위해 독서장려금 지급도 합니다. 책을 읽고 독후감을 간단하게 발표하면 독서장려금 삼천 원을 드립니다. 손님들이 감기 몸살에 걸렸거나 날씨가 아주 사나워지면 손님들께 긴급 짐질방 티켓을 나눠드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오랜 노숙생활을 하다가 이제 그만 하려는 분들을 위해 방을 얻어드리기도 하고 직장 상담을 해 드리기도 합니다.
조금만 도와드리면 노숙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분들에게 작은 단칸방 하나 얻어드리고 민들레국수집 근처에서 자유롭게 지내시도록 합니다. 자립할 때까지 도와드립니다. 민들레 식구들이 40여명에 달합니다.
민들레 꿈 어린이 밥집과 민들레 책들레, 민들레 꿈 공부방도 예쁘게 커가고 있습니다. 밥집을 찾아오는 아기들이 100여명이 넘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예쁘게들 살아납니다. 아이들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습관을 가지도록 문화상품권을 선물로 내 놓기도 합니다.
연말정산을 위한 후원 영수증도 발급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고마운 분들이 도와주십니다. 그 도움으로 민들레국수집과 민들레희망지원센터, 민들레의 집, 민들레 꿈 공부방과 민들레 책들레 어린이 도서관, 민들레 꿈 어린이 밥집, 민들레 가게를 운영하고, 재소자 영치금 넣어주는 데도 쓰입니다.
민들레국수집은 후원회 조직도, 명단도 없어 저도 후원자가 몇 분이나 되는지 모릅니다. 하느님이 아실 것입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은 하나도 받지 않고 오로지 후원자들 도움으로 꾸려가고 있습니다. 자원봉사자들도 서로 알아서 봉사를 오고, 어쩌다 사람이 부족하면 밥을 먹던 손님들이 스스로 자원봉사에 나섭니다. 희한한 일입니다. 고맙습니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고마운 은인들 덕분에 민들레국수집 10년째도 잘 될 것입니다.고맙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을 도와주시는 모든 은인들께 하느님의 축복이 풍성하게 내리옵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우리 VIP손님들께서도 복을 많이 받으십시오. 고맙습니다.
첫댓글 감동! 감동! 민들레 국수집 풍경은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시간을 나에게 가져다줍니다. '나눔'은 이토록 아름답습니다. 사랑의 힘은 실로 위대합니다. 기적의 연속이네요~
민들레 국수집 10년 시작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필리핀의 아이들에게 따뜻한 온정을 전하시려는 민들레수사님의
마음 정말 감동이에요.
민들레국수집을 진심으로 응원해요~!
절망인 이웃들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고 정성스럽게 돌봐주는 민들레 수사님께 감사드립니다. 민들레 국수집 일상을 읽으며 깨달은 바가 많습니다. 저도 이제 착해지나 봅니다.
민들레 국수집 9년의 기적 위대합니다!
서영남선생님과 베로니카님의 아름다운 나눔을 보며 우리사회가
아직은 희망이 있다는 것을 느껴요.
두분이 계시기에 너무나 큰 기쁨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