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 둘레길 2구간을 걷다
아늑한 사색의 숲길, 삼성산 성지 특히 인상적
제주도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북한산∙도봉산 둘레길 등이 큰 인기를 얻게 되면서 전국 어디에서든 이제 둘레길은 국민 모두의 친근한 산책로요 마을길이 된지 오래다. 둘레길을 걸으며 건강도 챙기고, 살아 숨 쉬는 자연과 역사, 문화를 느낄 수 있다. 수도권 남부에 위치한 관악산 둘레길 역시 예외가 아니다.
관악산(冠岳山)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서울특별시 관악구와 금천구, 경기도 안양시와 과천시에 걸쳐 있는 명산이다. 한남정맥이 수원 광교산에서 북서쪽으로 갈라져 한강 남쪽에 이르러 마지막으로 우뚝 솟아 있다. 관악이란 이름은 산의 모양이 마치 '삿갓(冠)'처럼 생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산의 최고봉은 기상관측소옆 연주대 불꽃바위(632m)이다. 산 중에 ‘악(岳)’자가 붙어 있는 산들이 대개 그렇듯이 관악산 역시 바위가 많고 산세가 거친 산이다. 그러나 산 허리를 도는 둘레길은 완만한 경사나 평지 수준의 숲길이라 남녀노소가 별 부담없이 걸을 수 있는 코스이다.
관악산 둘레길은 보통 3구간으로 나뉘며, 총길이는 15km이다.
제1구간은 ‘애국의 숲길’로, 사당역부근 까치산 생태육교-무당골-낙성대 입구-서울대 입구 코스로 6.2km, 약 2시간 40분 정도 소요되며, 제2구간은 ‘체험의 숲길’로, 서울대 정문-보덕사 입구-삼성산 성지-호압사-국제산장아파트 코스로 4.7km, 2시간 정도 걸린다. 제3구간은 ‘사색의 숲길’이라 이름붙여졌으며, 국제산장아파트-건우봉-난우공원-신림근린공원 코스로 4.1km, 약 1시간 50분 소요된다. 제1구간을 ‘애국의 숲길’로 이름붙인 것은 강감찬 장군의 사당인 낙성대를 지나기 때문이며, 제2구간을 ‘체험의 숲길’로 한 건 다른 구간에 비해 특히 숲이 깊고 아늑하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서울시에서는 이와는 별도로 ‘서울둘레길’을 조성, 관리하고 있다. 서울둘레길은 서울의 외곽 157km를 따라 걷는 코스로, 이중 관악산 코스는 사당역-석수역까지 총 12.7km 구간이다.
관악산둘레길 대부분의 구간은 서울둘레길과 겹쳐진다. 산책로 중간중간에 관악산둘레길과 서울둘레길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서울둘레길 관악산코스는 관악산둘레길 1-2구간에 호압사-석수역 구간 3.5km(약 1시간 40분)가 추가된 코스로 보면 된다.
어쨌든 필자는 관악산둘레길 세구간 중 1-2구간을 걸어봤는데 이번호에서는 특히 제2구간 및 서울둘레길 일부인 호압사-석수역 3.5km를 추가하여 소개해보고자 한다.
서울대 입구 관악산공원 정문을 지나 8분 정도 가면 우측으로 서울둘레길 안내판과 함께 ‘도란도란 걷는 길’이라는 이정표를 만난다. 이 길은 관악산 둘레길 2구간과 거의 같은 코스로, 서울시가 ‘도란도란 걷는 길’이라는 테마산책길로 조성해놓은 코스이다. 즉, 서울둘레길 중 관악산 관문부터 호압사까지 총 3.5km 구간이다. 소나무가 울창한 숲길 계단을 오르다가 잠깐 쉬면서 서울대 전망을 한 눈에 감상할 수도 있고, 보덕사에서 삼성산 성지를 지나 호압사에 이르는 구간은 동행들과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면서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아늑한 숲길이다.
이정표를 따라 몇분 만 가면 장승이 늘어서 있는 장승길을 지나고, 숲속에 아기자기하게 만들어진 계단을 오르기도 한다.
또, 서울대와 관악산 정상과 능선이 한 눈에 바라보이는 전망바위도 만난다. 이곳에서 삼성산 성지까지는 약 1.5km. 숲이 깊고 아늑하여 발길 옮기는 기분이 상쾌하다. 서울대 들머리에서 40분쯤 왔을까? 보덕사 입구에 이른다. 잠시 보덕사 경내를 둘러본다. 삼성산에 위치한 조그만 절이다.
보덕사에서 10분 쯤 더 가면 약수암 위 헬기장을 지나 곧 거대한 마당바위를 만난다. 필자 일행은 이곳에서 배낭을 풀고 점심식사시간을 갖는다.
이곳에서 호압사까지는 1.4km 정도. 계속 울창하고 아늑한 숲길이 이어진다.
마당바위에서 약 20분쯤 가면 삼성산 성지. 규모가 꽤 넓고 잘 정비되어 있다. 깊은 숲속에 이런 카톨릭성지가 있다니 우선 놀랍다.
이곳 삼성산 성지는 1839년 기해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한 조선 제2대 교구장 성 라우렌시오 앵베르 범(范) 주교와 성 베드로 모방 나(羅) 신부, 성 야고보 샤스탕 정(鄭) 신부의 유해가 안장된 곳이다. 이 중 모방 신부는 당시 소년이었던 김대건 안드레아, 최양업 토마, 최방제 프란치스코 등을 선발하여 마카오로 유학을 보내 최초의 조선인 신부를 양성함으로써 조선 천주교사에 큰 업적을 세우기도 했다. 1839년 기해박해(己亥迫害)가 일어나자 세 성직자는 교우들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 스스로 관가에 나아가 자수하여 신앙을 고백하고 새남터에서 사형을 당하였다. 이 때 앵베르주교 주교의 나이 43세, 모방신부와 샤스탕 신부는 35세였으며, 이들의 유해는 20여 일간 새남터 모래사장에 버려져 있다가 후에 교우들의 노력으로 노고산(지금의 서강대 뒷산)에 안장되었고, 1843년에 박 바오로 등에 의해 다시 발굴되어 이곳 삼성산에 안장되었다.
그로부터 58년 후인 1901년 세 성직자의 유해는 다시 명동성당 지하묘지로 옮겨졌으며, 한국 천주교 200주년인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세 성직자가 시성(諡聖)의 영광을 오르자 이를 기념하여 서울대교구에서 묘지 부근의 땅 1만 6천평을 매입, 1989년 명동성당에서 성인 유해를 일부 옮겨와 안치하고 축성식을 가졌다.
이 성지는 관할본당인 삼성산 성당에 의해 관리되고 있으며, 세 성인을 기념하기 위한 월례 미사는 이들의 순교일인 매월 21일, 주일 미사는 부활 제2주일부터 연중 제 34주일까지 봉헌되고 있다고 한다. 이곳 성지에는 넓은 계단식 미사장소와 함께 세 성인 묘, 성모상, 예수 십자가상, 구상 시인 시비 등이 세워져 있다. 마치 숲속의 야외성당 같다.
삼성성 성지를 둘러본 후 숙연한 마음으로 다시 산행길을 이어간다. 둘레길이 거의 평지수준이어서인지 산악자전거팀도 만난다. 삼성산 성지에서 몇 분 더 가면 삼거리 갈림길, 좌측은 호압사 가는 방향, 우측은 둘레길 2구간 날머리인 국제산장 아파트 쪽이다. 둘레길 2구간 종점이 얼마 남지않은 것 같다. 우리일행은 서울둘레길을 따라 석수역까지 가기로 하고 좌측으로 방향을 잡아 비탈길을 오른 후 곧 호압사에 이른다.
호압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1407년(태종 7) 왕명으로 창건되었다. 당시 삼성산의 산세가 호랑이 형국을 하고 있어서 과천과 한양에 호환(虎患)이 많다는 점술가의 말을 듣고 산세를 누르기 위해 창건하였다고 한다. 호갑사(虎岬寺) 또는 호암사(虎巖寺)라고도 하였다. 조선 후기까지의 연혁은 거의 전하지 않고, 다만 1841년(헌종 7) 4월에 의민(義旻)이 상궁 남(南)씨와 유(兪)씨의 시주를 받아서 법당을 중창한 기록이 있다. 1935년 만월(滿月)이 약사전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건물로는 약사전과 요사가 있고, 약사전 내에 약사불과 신중탱화가 모셔져 있다. 현재 문화재 8호인 석약사여래부처님이 모셔져 있고 경내에 수령 500여 년의 두그루 느티나무도 서 있다.
호압사에서 잠시 쉰 후 석수역을 향해 발길을 옮긴다. 석수역은 호압사에서 약 3.5km. 이제까지 지나온 둘레길 2구간 3.4km를 넘는 거리이다. 필자 일행 예정코스의 반 정도를 온 셈이다.
호압사에서 조금 내려가면 ‘호암늘솔길’이라고 쓰여진 표지목이 보인다. 길이름은 ‘언제나 솔바람이 부는 길’이라는 뜻으로 시민공모에 의해 선정된 이름이라 한다. 호압사 입구에서 잣나무 산림욕장을 지나 호암산 폭포까지 약 1km에 이르는 숲속 데크길이다.
이곳 잣나무 산림욕장은 5ha에 이르는 규모로 쭉쭉 뻗어오른 잣나무숲이 장관이다. 숲속에는 여기저기 벤치 및 평상 등을 배치하여 산림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쉴 장소로 이용할 수 있게 했다. 데크길도 잣나무 사이사이로 곡선을 이루게 하여 조형미가 괜찮다. 필자 일행은 중간 쯤 부터는 데크길을 벗어나 산허리 흙길을 따라간다.
호압사에서 20여 분 가면 늘솔길 끝머리인 폭포쉼터에 이른다. 이 폭포는 2011년 산사태가 발생한 호암1터널 인근에 높이 75m, 폭 2m에 길이가 175m, 경사도 20-70도로 조성된 인공폭포이다. 수원은 인근 지하수를 사용한다고 한다. 또, 폭포 위쪽으로 거대한 칼바위도 보인다. 바위가 칼처럼 뾰족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쟁기바위, 보습바위라고도 부른다. 마치 칼자루를 옆으로 뉘어놓은 듯한 모양이다.
이곳에서 석수역까지는 아직 2.3km 정도 더 가야 한다. 바로 인근 50m거리에는 시흥동 벽산아파트가 보인다. 다시 계단길을 오르면 생태통로도 만난다. 생태통로는 2000년 관악구 신림동과 경기 안양을 연결하는 산복도로가 개설되면서 호암산 자락이 단절되어 터널형 생태통로(Eco-corridor)로 연결하여 복원한 것이다. 길이 110m, 너비 90m로 야생동물의 이동과 관악산 등산객들의 등산로로 이용되고 있다.
생태통로를 조금 지나면 숲길가에 약수터가 보이고 주위에 여러개의 돌탑들이 눈에 띈다. 약수터에는 대낮인데도 촛불이 켜져 있다. 주변 안내판을 보니 이곳이 바로 ‘신선길’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신선길은 시흥동 지역의 토템신앙으로 기도를 올리던 장소로 유명하며, 토템신앙은 하늘의 해와 달, 별자리, 땅위의 산과 들, 바다와 계곡, 동네의 우물, 바위와 고목, 가택의 대들보와 부뚜막, 심지어 화장실과 굴뚝까지도 우주만물을 신으로 모시는 형태이다. 이곳 신선길에는 150m의 돌 계단과 주변에 많은 돌탑이 쌓여 있는 게 특색이다.
신선길에서 몇분 더 가면 시흥계곡에 이르고 연리지도 만난다. 이 연리지는 떼죽나무 중간가지가 붙어 한 가지로 이어진 형태인데 마치 가지 사이 다리를 놓은 듯 뚜렷하다.
이후 숲길은 약간의 오르내림이 있지만 숲이 깊어 더욱 호젓함을 느끼게 한다. 불로천약수터를 지나 계속 아기자기한 숲길이 한참 이어진다.
현재시간 15시 46분. 드디어 숲길이 끝나고 주택가가 보이기 시작한다. 산행 날머리는 덕수소공원. 관악산 둘레길 2구간 및 서울둘레길 호압사-석수역 구간이 모두 마무리되는 순간이다. 서울대 입구에서 이곳까지 점심시간 포함 약 4시간 10분 정도 걸린 셈이다. 이곳에서 석수역까지는 주택가 큰 도로로 350m정도 더 가야 한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미지의 길을 가본다는 것은 호기심과 도전감으로 마음을 설레게 한다. 정상 코스로만 자주 오르던 관악산에서 가볍게 산책할 수 있는 아기자기한 둘레길을 또 하나 알게 되어 가슴 뿌듯하기도 하다. 관악산 둘레길 2구간은 사계절 언제 와도 멋진 트레킹 코스일 것 같다. (글,사진/임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