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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마지막 4.5초
성 석 제
작은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들렀다. 펑, 하는 소리, 아니, 뻥, 아니, 땅굴을 파고 들어간 금고털이 일당이 마지막으로 강철 벽을 뚫는 소리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비행기가 음속을 돌파할 때 나는 소리 같기도 하다. 소리, 소리가 중요한가. 아니다. 그저, 그렇다는 것이다. 듣는 사람이 없으므로 들리지 않는다. 들리지 않으므로 무엇이라고 판별할 수 없다.
자동차 한 대가 떨어지고 있다. 막 떨어지기 시작했다. 자동차는 떨어지기 직전 다리 난간과 격렬하게 에너지를 주고받아 앞부분이 몹시 비틀려 있다. 한쪽이 쭈그러진 우산처럼 들린 보닛에서는 헐떡거리듯 연기가 나고 있다. 그래도 엔진은 돈다. 배기량 육천 씨씨, 사륜 구동 지프의 엔진에서 생성된 에너지는 여전히 바퀴를 힘차게 돌린다. 다만 바퀴는, 평상시에 도로와 마찰하여 그 힘으로 자동차를 달리게 했던 것과는 달리, 공기와 마찰하고 있을 뿐으로 이젠 자동차를 달리게 할 수 없다. 멈추게 할 수도 없다. 공중에 떠 있는 자동차는 가위뛰기를 보여주는 넓이뛰기 선수처럼 보인다. 아니, 보는 사람이 없으므로 보이지 않는다. 그저, 그런 모습이라는 것이다.
바퀴가 공중에 들린 지 0.5초 후. 차 안에 있던 사내가 정신을 차린다. 그는 추락 직전 과속으로 커브를 달려 내려왔다. 다리의 서쪽과 연결된 도로는 심하게 휘어 있고 비탈이 져 있다. 속도 제한 표지가 있고 주의 표시, 위험 표지도 있다. 그러나 사내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고 부의하지도 않았다. 그는 화가 나 있었다. 옆자리의 여자는 그가 화를 내는 동안 내내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그건 충돌하기 전의 일이다. 지금 그녀는 기절해 있다. 차가 다리 난간과 충돌하는 순간 이마를 유리창에 들이받았다. 이마를 들이받은 것은 사내도 마찬가지다. 그 때문에 사내도 잠시 의식을 잃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 초도 되기 전에 정신을 차린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다행이라고?
사내는 정신이 들자마자 화를 낸다. 잠에서 깨면 울기부터 하는 아이들이 있는데 어른 가운데도 화부터 내고 보는 사람이 있다. 버릇이다. 사내 역시 버릇대로 화를 낸다. 그다음에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걸 느낀다. 알게 된다. 느낌에서 아는 데까지 최소한 0.2초 이상이 소요되었다. 그는 자신이, 자동차에 탄 채로, 다리 아래로 추락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알게 흰 것이 다행스러운가. 아니면 정신을 차린 것이 다행스러운가. 그는 날 줄도 모르고 나는 동안에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 비싼 차가 추락하는 데 얼마만 한 시간이 걸릴 것인가를 계산할 수 없다. 어떤 친절한 사람이 천사처럼 날개를 달고 와서 차창 밖에서 설명해줄 수는 없을까. 친사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지만, 하다못해 천사 같은 사람이 있는지도 알 수 없지만, 천사 같은 사람이라고 해서 백주에 날개를 달고 공중을 펄펄 날아다닌다는 보장이 없고, 날개는 달았다고 하더라도 하필 다리에서 떨어지는 자동차 주변을 날고 있다가 떨어지고 있는 사람에게 ‘너, 이제 떨어져 죽기까지 몇 초 남았다’¹ ”고 설명해줄 이유도 없다.
예컨대 지상 팔십 미터의 높이에서 떨어지는 자동차가 있다고 하면 바닥에 닿기까지 약 사 초가 걸릴 것이다. 그러나 자동차에 들어있는 사람이 그걸 계산할 수 있다고 해서 무슨 도움이 되는가. 그런 내용을 가르치는 천사, 또는 천사 같은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버리면 얼마나 허무해? 아는 게 힘이라고? 천사는 떨어지는 당사자가 아니다. 그의 생에서는 천사가 당사자인 적이 없었다. 이제 당사자인 그는 떨어지고 있고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당사자인 그가 아는 게 또 있다. 자동차에는 낙하산이 없다는 것, 지프는 아
l)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을 남긴 갈릴레이 갈릴레오 덕분에 자동차가 공중에서 떨어질 때의 시간을 계산할 수 있게 되었다. 공기의 저항을 무시했을 때 지상으로 낙하하는 물체의 운동을 자유낙하라고 하는데 자유낙하 운동은 물체의 낙하 거리가 지구의 반지름에 비해 작을 경우, 중력가속도 g(9.8미터/초)에 따르는 등속도 운동이 된다. 물체가 지상 h미터의 높이에서 조용히 떨어진다고 하고 t초 후의 낙하 거리를 s미터, 그 순간의 속도를 v미터/초라고 하면. 낙하 거리는 가속도 곱하기 시간의 제곱의 2분의 1 이다. 이는 s=1/2gt², v=gt라는 산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러면 지상 100미터 높이에서 심장마비를 일으켜 아래로 떨어지는 대머리독수리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독수리가 땅에 떨어지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100=l/2 ×9.8 ×t², 고로 t=4. 5175394이다. 또, 최종적으로 땅에 닿은 순간의 속도 v=9.8 ×4.5175394. 이를 시속으로 환산하면 159.37878킬로미터가 된다. 불쌍한 대머리독수리. 머리가 무사할 수 있을까
무리 비싸도 비행기가 아니라는 것, 공수부대도 아니고 장갑차, 수륙양용정*도 아니라는 것. 공수부대 일개 연대나 장갑차 오천 쌍, 천만 대의 수륙양용정인들 이처럼 대책 없이 떨어져 내릴 때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런 건 따질 필요가 없다. 다만 그의 머릿속에 그것이 떠올랐다는 것이다. 그가 알게 된 게 또 있다. 이대로 떨어지면 살지 못하리라는 것. 그건 육감이다. 그의 육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 그걸 존중하자, 그 육감 때문에 그는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겨 왔던 것이다. 그런데 그 남다른, 귀중한 육감이 이번에도 그를 살려줄 것인가. 학교 종처럼 땡땡거리는, 또는 강아지처럼 낑낑대는 육감이 이 상황에서도 그를 구원해줄 수 있을까. 아니다.
그러므로 그는 절망한 사람답게 비명을 지를 수도 있다. 비명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으아아아, 악, 오오, 꽥, 이를 어쩌나 등등. 그중에 하나를 고르고 입을 벌리고 호흡 조정을 한 다음 가슴과 배와 성대와 후두를 울리다 보면, 어쩌면 소리를 내기도 전에 차는 바닥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그런 계산이 세상 어딘가 존재하거나 말거나 간에 그는 비명을 지르지 않기로 한다. 죽더라도 사내답게 죽자는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천길 낭떠러지에 선 소나무 가지에 한 손으로 대롱대롱 매달렸을 때 사내대장부라면 마땅히 그 손을 놓아야 한다. 애초에 그 말을 한 사람은 누구였던가. 그로서는 알 길이 없고 알 것도 없었다. 그는 그저 그 말을 틈만 나면 되풀이했다.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셀 수 없이 많다. 백 명? 이백 명? 오만 명? 결혼식장에서도 그는 하객에게 그렇게 말했다. 바로 그 말을 하기 위해 결혼식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랬다. 그 말 때문이었다.
결혼식에는 그의 동료, 선배, 후배 들이 초청됐다: 그 수가 이백 명은 넘었다. 식장 입구에는 ㄷ시의 ‘큰형님’이 보내온 대형 화환이, ㅇ시에서 보내온 대형 화환이 아치를 이루고 있었다. ㄷ시의 큰형님은 그의 직계 보스였다. ㅇ시는 최근 온천이 개발된 자리에 호텔이 들어서면서 조직이 만들어졌다. 그 역시 ㄷ시와 ㅇ 시를 본받아 조직을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이 지역에는 호텔이 없다. 유원지나 온천이 있는 것도 아니다. ㄷ시의 큰형님은 유능한 행동대장인 그가 조그만 지역에서 골목대장 노릇을 하려는 것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가 원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었다. 그는 다만 한마디 말을 하기 위해 결혼식을 했다.
신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주례도, 부모도, 친척도, 친구도, 그들의 축하 인사도. ㄷ시의 형님은 화환과 함께 식구 스무 명을 보내왔다. 그들은 모두 검은 양복과 검은 양말, 검은 구두, 그리고 눈부시게 흰 와이셔츠에 검은 나비넥타이 차림으로 화환 옆에 도열하고 있었다. 손님이 들어올 때마다 구십 도 각도로 허리를 숙이며 우렁찬 목소리로 “어서 오십시오!” 하고 외쳤다. 손님이 축의금을 내면 “감사합니다!” 하는 원기 왕성한 복창 소리가 식장을 울렸다. 그건 ㅇ 시 형님의 아이디어였다.
손님들은 식이 끝나기 전에는 한 사람도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가려고 하면 “어딜 가십니까” 하고 두 팔을 늘어뜨린 대원들이 작고 낮은 목소리로 물어봤기 때문에. “식당이 어디죠” 하고 물으면 대원들은 큰 비밀을 공짜로 알려주기라도 하는 듯 한 손을 입에 대고, “없습니다. 그러니까 식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시오” 하면서 눈을 부라렸다. 식이 끝난 후, 그는 의례적인 사진 촬영을 생략했다. 하객이나 양가 부모 친척에 대한 인사, 폐백 따위도 생략했다. 그 대신 이례적인 연설을 했다. 그는 주례가 바쁘게 빠져나간 연단 앞에 서서 “천 길 낭떠러지에서 소나무 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을 때 한 손을 놓아버리는 각오로 지역 발전과 동지들의 단합, 결속을 위하여 이 한 몸을 바치겠다”고 역설했다. 그것으로 그의 조직은 완성 됐다.
추락은 이제 포물곡선 단계에 접어들었다. 다리 난간을 부수고 공중으로 날아간 차는 일단은 관성에 따라 직선운동을 한다. 그러나 곧 중력의 느리고 완강한 힘에 의해 직선에서 포물선으로 운동 방향이 바뀌게 된다. 직선운동을 계속한다면, 차는 어쩌면 무사히 맞은편의 다리 동쪽 야산에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직선운동이 계속된다면, 차의 속도는 공기의 저항에 의해 조금씩 느려지게 된다. 직선운동이 계속된다면, 차가 땅과 이루는 각도가 평행하다면, 차는 지구 궤도를 따라 토는 위성처럼 수십 년 동안 땅 위를 날다가 언젠가는 내려앉게 될 것이다.²⁾ 이도 저도 말고 그저 차의 속도만 조금씩 줄어든다면 우주왕복선처럼, 헬리콥터처럼, 슈퍼보드처럼, 오동잎처럼 땅에 내려앉게 된다. 불가능하다. 중력은, 공기나 물이나 사람처럼 흔한 중력은, 그것이 있는지 없는지 상관 않고두 며칠, 몇 달, 몇 년, 어쩌면 일 생을 살 수도 있는 중력은,
2) 돌을 세게 던져 초속 7.9kln가 되면 돌은 땅에 떨어지지 않고 지구를 빙빙 돌게 된다. 조금 더 세게 던져서 11.2km가 되면 돌은 지구를 벗어나게 되고 16.7km를 넘으면 태양계를 벗어날 수 있다. 문제는 이 정도의 속도로 돌괄매질을 할 힘센 팔이 존재하느냐 하는 것이다. 또 차는 돌이 아니므로 힘센 팔보다는 로켓 발사 장치를 쓰는 게 나을 텐데 유사 이래 차를 발사한 사례는 없는 듯
다리 난간을 차고 나간 차가 공중에서 몇 시간이고 재주껏 날도록 버려두지 않는다. 몇 시간 몇 분은커녕 째깍하는 순간 십 미터, 째깍째깍 하는 동안 이십 미터씩 차를 아래쪽으로 잡아끌고 있다. 다리는 남북을 가로지르는 강 양안*을 동서로 연결한다. 길이 사백오십 미터, 완공까지 사 년이 걸렸고 연인원 이만여 명이 투입됐다. 그렇게 해서 준공된 게 한 달 전이다. 준공식에는 이 지방의 기관장과 의원들과 도지사와 지방 유지와 그들의 친지와 친구와 선후배와 다리 건설 관계자, 지방 방송국 중계팀도 참석 했다. 그들은 기념비적인 준공에 걸맞은 거창한 행사를 치렀다. 그 다리에서 최초로 '떨어지는 자동차에 탄 그는 생각한다. 왜 하필 나야? 내가 왜 여기 있지? 느닷없이, 어처구니없이, 터무니없이, 하염없이, 속절없이 그래서 귀중한 일념 (一念)³⁾ 하나만큼의 시간을 소비한다.
여섯 살 때 이웃집 아이의 장화를 빼앗은 것이 그의 기억에 떠오른다. 생애 최초로 남의 물건을 빼앗았던 일이. 그 장화는 바다 건너 멀리 외국에서 그가
3) 일념: 불교에서의 시간 단위. 1주야(24시간)는 30수유(須臾)다 수유는 모호율다(牟呼栗多)이기도 한데 30달찰나(怛刹那)의 길이이구 달찰나는 납박(臘縛) 이다. 납박은 일념(一念)의 120배나 되는 기나긴 시간이다. 일념이란 말 그대로 생각 한 번 할 시간이 아닐까. 생각 한 번 할 시간이 곧 차라(叉拏)이고 차라가 곧 찰나이니 이 길이는 75분의 1초에 해당한다. 이를 알기 쉽게 표시해보자.
1주야=30수유=30모호율다=900달찰나=900납박=108,000일념=108,000차라= 108,000찰나
1일념=1 찰나=1/75초
손오공은 근두운(肋斗婁)을 타면 단숨에 108,000리를 날았다고 하는데 상상력에다 수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단숨’과 일념의 차이와 그에 따르는 속도를 계산할 수 있을 것이다. 내 경험에는 일곱 살 난 아이가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 ‘엄마!’ 하고 부르는 데 약 일흔다섯 일념이 필요하다 ‘아빠!’ 하고 부르는 데는 백 정도.
사는 읍내의 성당으로 보내온 구호물자에 들어 있었다. 그 장화는 이웃집 아이가 신기에는 너무 작고 귀여웠고, 무엇보다 장화라는 이름이 붙은 몰건이었다. 비: 오는 날 신는 장화, 비가 오지 않아도 신을 수 있는 장화. 고무신도 비가 오거나 말거나 신을 수 있다. 그러나 장화라고 부르지 않는다. 장화만이 장화였고 장화라고 불렸다. 그 역시 구호물자를 받으러 성당에 갔지만 그의 아버지가 멀고 가까운 세상 사람이 다 아는 술주정뱅이였던 까닭에, 날이면 날마다 아내의 머리채를 끌고 동네 우물에 집어넣겠다고 을러대면서 온 동네와 신성한 성당까지 시끄럽게 만드는 장본인이었던 까닭에, 그는 빵 한 조각밖에 얻지 못했다. 이웃집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가 신으면 적당한 크기의, 실상 아기에게는 별 볼일 없는, 아기는 업혀 다니면 되니까, 그 장화를, 무엇보다 집 안에 걸음마하는 아기도 없으면서 구호품으로 얻어 왔올 때, 그는 그 장화를 빼앗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걸음마하는 동생에게 신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빼앗아서 찢어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빼앗았고 찢어서 들에 버렸다. 그 과정에서 이웃집 아이의 코피가 터졌다. 그 일로 이웃집 아이의 아버지와 그의 아버지가 싸워 그의 아버지의 코피가 터졌다. 또 그의 아버지에게 코를 얻어맞고 그의 어머니의 코피가 터졌으며 그 역시 어머니에게 맞아 코피가 터졌다. 그래서 그는 그길로 즉시 이웃집 아이의 코피를 터뜨렸다. 그렇게 해서 그 동네에서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내는 동안 그로 인하여 코피가 터진 사람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수백 명이었다.
그는 다시 일념 하나만큼의 시간을 쓴다. 중학교 때까지 그의 영웅은 시골 읍내의 깡패, 우는 아이도 그 이름을 들으면 울음을 그친다는 마사오였다. 마사오는 캐시어스 클레이*의 주먹과 김 일의 박치기와 천규덕의 당수* 실력을 한 몸에 갖춘 싸움 귀신이었다. 마사오는 읍내 모든 사람의 코피를 터뜨릴 수 있었고 모든 술집에서 외상을 할 수 있었고 모든 영화를 공짜로 보았다. 마사오는 읍내 아이들의 영웅이자 어른들의 골칫거리였다. 그는 마사오가 되려고 했다. 그래서 마사오를 흉내 내어 그도 모든 영화를 공짜로 보았다. 마사오가 극장 정문으로 어깨를 펴고. 들어가는 사이, 그는 극장 담을 넘어 다녔다. 마사오가 그랬듯이 그는 돈 많은 친구들에게서 용돈을 타 썼는데, 특히 돈 내고 영화를 보러 온 아이들의 주머니를 자주 털었다. 마사오가 그랬듯이 크는 마당에 있는 대추나무에 새끼줄을 친친 감고 권투연습을 했다. 마사오가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면도칼을 가지고 다니다가 급할 때 상대의 손등을 긋기도 했다. 마사오가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극장 출입을 단속하는 선생에게 들켜 정학을 받았고 그다음에 극장 앞에서 그 선생과 마주치자 이단 옆차기로 길바닥에 선생을 쓰러뜨렸다. 퇴학을 당한 다음, 그는 한층 더 많은 시간을 극
장에서 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열다섯을 막 넘겼을 무렵, 마사오는 고향을 떠났다. 마사오는 코피가 터진 채, 웃통을 벗은 몸에 피 칠갑을 하고 포승에 묶이고 트럭에 실려 황소처럼 울부짖으며 읍내를 빠져나갔다. 그는 그때 트럭의 꽁무니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오래도록 서 있었다. 그는 아무도 모르게 살짝 울었고, 한 가지 맹세를 했다. ‘나는 마사오처럼 되지는 않겠다. 나는 누구도 나를 잡아갈 수 없도록 하겠다.’
그리고 그는 두 명의 아이들과 함께 ㄷ시로 가는 새벽 기차를 탔다. ㄷ시에는 마사오가 갇혀 있는 교도소가 있었고 커다란 역 광장과 역 광장에 사는 건달들과 비둘기가 있었다. 거기서 그는 건달들의 심부름꾼이 되었다.
떨어진다. 차는 포물선 운동 단계에 진입 했다. 차창 바깥으로 아이스크림이 녹아내리는 듯한, 무언지 알 수 없는 희끄무레한 풍경이 지나간다. 막 얼기 시작한 수면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청둥오리들이 앉아 있는 논이거나 눈 쌓인 산, 그가 늘 차에 오르기 전에 침을 뱉던 땅인지도 모른다. 그의 머릿속에 펄럭펄럭, 수십 년치의 달력이 넘어가듯이 아우성과 같은 소리들이, 그 아니면 뜻을 알 수 없는 장면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치고 물러가고 다시 들이닥친다.
ㄷ시에서 여섯 해를 보낸 다음, 그는 돌아왔다. 그의 어머니가 죽었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는 그 두 해 전에 죽었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을 몰랐다. 알았다 하더라도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러 돌아왔을지는 불확실하다. 그는 그즈음 ㄷ시에서 가장 큰 조직의 행동대원으로 일주일에 서너 번씩 전쟁을 치르는 중이었다. 그는 체구에 맞지않는 발길질과 주먹질이나 박치기보다는 칼질을 배웠다. 칼은 신식이고 깨끗하고 무자비하다. 그는 칼을 누구보다도 능숙하게, 눈도 깜박하지 않고 소리도 눈물도 웃음도 없이 쓰는 것으로 이름을 얻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바빴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해도 몸을 빼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보다는 생전에 수백 번 어머니의 코피를 터뜨렸던 아버지의 장례식 에 올 생각이 없었다. 그에게는 아버지 때문에 돌아온다는 생각은 조금치도 없었다.
어머니의 장례식에는 그와 함께 새벽 기차로 고향을 떠났던 두 소년들도 왔다. 소년들은 세월의 우유를 먹고 청년으로 자랐다. 한 청년은 청조끼를 입고 있었는데 보통 사람의 두 배쯤 되는 주먹과 한 배 반쯤 되는 덩치를 자랑했다. 한 청년은 레미콘 트럭을 몰고 있었다. 그와 두 청년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아니, 그는 술을 마시지 못했으므로 다른 두 청년만 마셨다. 청조끼를 입은 청년은 헤어져 있는 동안 자신이 겪은 우여곡절과 파란만장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동안 자신의 근육과 의지가 얼마나 우람해지고 단단해졌는지를 과시했다. 레미콘을 모는 청년은 이따금씩 고개를 끄덕이든가 소리 내어 감탄하든가 웃든가 해가면서 엄청난 양의 술과 음식을 먹고 마셨다. 그에게 그런 이야기는 너무 빈약하고 우스웠으며 한심했다. 그는 너절한 사연을 늘어놓기보다, 또 위의 크기를 과시 하는 것보다, 함축적으로, 상징적으로, 멋지게 무슨 말이든 해주고 싶었다.
“사나이는 천 길 낭떠러지에서 소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렸을 때 그 손을 놔버리는 거야.”
그 말을 들은 청년들은 어리둥절해하다가 약속이나 한 듯이 말했다.
“웃기고 자빠졌네.”
청년들은 헤어진 사이 그가 어떻게 변했는지 잘 모르고 있었다. 그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고 아직 아무 말도 해서는 안 되었다. 청년들이 알고 있는 것은 그가 ㄷ시에서 가장 큰 술집에 근무한다는 것 정도였다. 그의 몸은 다른 청년들보다 작은 편이었고 얼굴은 희였으며 검은 양복을 입은 것이 썩 잘 어울렸다. 요컨대 그는 말쑥한 제비나 웨이터로 보였다. 그래서 사나이는 어쩌고저쩌고 하는 말에 웃긴다고 반응한 것은, 논평한 것은 당연했다.
사실, 그의 몸이 작은 것은 가혹한 훈련과 실전으로 불필요한 살이 없어서였다. 사실, 그의 얼굴이 유난히 휜 것은 낮에 얼굴을 보일 일이 없어서였다. 사실, 그에게 검은 양복이 어울리는 것은 그가 늘 검은 양복을 입는 조직원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것을 조금 암시하는 것도 괜찮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양복 속주머니 옆에 달린 고동색 가죽 주머니를 꺼냈다. 가축 주머니에서 칼을 끄집어냈고 남들이 뭐라고 말하기 전에 식탁에 그것을 꽂았다. 그 칼은 미국의 식칼 제조 전문회사에서 만든 것으로 손잡이 옆의 스위치를 누르면 자동으로 날이 튀어 나가게 되어 있었다. ㄷ시 큰형님 조직의 행동대원들 가운데 열 명 미만이 그 칼을 가지고 다닐 수 있었는데 그건 큰형님이 직접 하사한 칼이었기 때문이다. 그 칼은 손톱소제에도, 우는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하거나 울지 않는 어른을 협박하는 데도, 심지어 개구리나 인체 해부에도 쓸 수 있는 다묵적 칼이었다. 그는 거두절미하고 한마디로 그 칼의 용드를 설명 했다.
“내가 웃긴다고 다시 말할 놈이 있으면 먼저 이 칼한테 물어봐.”
그때부터 일 분간, 또 일 분간 그들 세 사람과 그들 주변에 있던 사람들 모두 침묵을 지켰다. 그가 거두절미한, 칼의 다른 용도에 대해 생각했고, 그렇게 복잡한 용도의 칼이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러 고향에 돌아온 청년의 품에서 나온 이유를 생각했다. 온 세상이 생각에 빠진 사람들로 조용했다. 마침내 먹고 마실 시간에 생각하는 걸 무엇보다 싫어하는 레미콘 트럭을 모는 청년이 팔뚝을 걷으며 말했다.
“그래서 뭐냐 이거야. 이 칼 마음에 드는데 우리 내기나 할까.”
그는 조그만 입을 있는 대로 크게 벌리고 소리 없이 웃었다.
“어떻게?”
레미콘을 모는 청년, 절벽의 소나무 가지에서 대롱대롱 매달린 손을 놓는 일 빼고는 모든 면에서 사나이로 인정받고 있는 이 청년은 번쩍이는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 칼로 각자 팔목을 긋는 거야. 못 긋는 사람이 지는 거다.”
“간단하게 하자고 내가 네 팔을 그어주지. 참으면 네가 이기고 네가 아야, 하거나 그만하라면 내가 이기고.”
“됐어. 좋아.”
두 사람은 마주 앉았다.
“참아라, 참아.”
청조끼를 입은 청년이 참다못해 두 사람을 말렸다. 그러나 입만 놀렸을 뿐이었다. 수십 명의 문상객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착하거나 나이가 많거나 무서움을 많이 타거나 구경거리를 좋아하거나 하는 사람들이어서 말릴 생각은 하지 않았다.
레미콘 트럭 운전사, 제비처럼 보이는 상주,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를 노려보았다. 이윽고 레미콘 트럭을 모는 청년이 팔뚝을 걷어 앞으로 내밀었다. 상주는 칼을 뽑아 들었다. 레미콘 트럭을 모는 청년은 입을 꾹 다물고 팔뚝에 힘을 주었다. 적갈색의 굵은 팔뚝에 실뱀 같은 푸른 핏줄이 꿈틀거렸다. 그는 미국 식 칼 제조 전문회사에서 만든 칼, 무수한 인간의 피 맛을 본 그 칼로 벗의 팔뚝을 그었다. 그들은 한때 ㄷ시로 가는 기차를 함께 탔었다. 측백나무 울타리를 뚫고 들어가 새벽 안개 속에서 달리는 차에 뛰어올랐다. 힘을 준 팔뚝에 칼끝이 먹어들어가자 마치 단층이 벌어지듯, 상처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칼끝은 차츰 팔꿈치 쪽으로 뻗어갔다.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들여 다보면서 웃으려고 안간힘 을 썼다. 웃으려고.
한때 새벽 기차를 함께 탔던 세 사람은 함께 단층처럼 갈라져 솟아오르는 인간의 팔뚝 근육 내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숨을 죽이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속삭임도 곁눈질도 없었다. 조용했다. 이윽고 팔뚝은 배가 갈라진 검붉은 물고기처럼 변했다. 비린내가 났고 청조끼를 입은 청년이 구역 질을 했다.
“졌다.”
그는 칼을 내던졌다. 친구의 상가에서, 우연히 팔뚝을 다친 사나이는 병원으로 갔고 거기서 수십 바늘을 꿰맸다. 그로부터 오 년 동안 그는 지상에서 가장 용기 있는 사나이로 존경을 받으며 레미콘 트럭을 몰다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 절벽에서 차가 굴렀다. 음주 운전을 했다, 과로로 졸음운전을 했다 등등, 여러 가지 이야기가 돌았지만 어느 것도 사실이 아니다. 크게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아는 사람은 죽은 사람을 빼고 둘뿐이다. 이제 그중 한 사람도 떨어지고 있다. 숨을 부 번 몰아쉴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지상에 단 한 명만 남을 것이다. 이런 기억은 그에게 유쾌하지 않다. 그리운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 기억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제 그에게 남은 시간이 일 초이고 그 기억이 차지하는 시간이 일초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어쩔 수가 없다. 살아오면서 어쩔 수 없었던 때가 있었듯이―펴오르는 기억을 어쩔 수 없는 때도 있는 것이다.
떨어지고 있다. 떨어지는 차 속에서 여자는 기절해 있다. 차라리 그게 행복한지도 모른다. 죽음에 임박해서 사람들은 대개 의식을 잃는다. 그게 행복한가? 최소한 의식을 잃기 전보다는 행복해 보인다. 생애 처음으로 그 여인의 뇌세포들은 죽음의 황홀한 화학작용⁴⁾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여자는 깨어난다. 행복으로부터. 곧 그는 여자가 깨어났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제 여자는 순식간에 불행해진다. 일념 하나, 또 하나.
떨어지는 차에서, 입과 눈을 있는 대로 벌리고 귀를 멍멍하게 만드는 비명을 지르는 이 여자는 누구인가. 그는 안다. 이 여자는 ‘청카바와 청바지’의 청바지다. 내가 왜 얘와 한 차에 같이 타고 있었지? 그에게는 여자가 많다. 천 길 낭떠러지에서 소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리 는 사람처럼, 그에게 대롱대롱 매달리는
4) 2차 대전이 끝난 다음 일본에 진주한 미군 병사들 가운데 지프를 몰고 가다 충돌 사고로 죽은 예가 있다. 죽고 난 다음 솩펴보니 그들은 어쩐 일인지 대단히 행복한 표정,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고 한다. 의문을 가지게 된 어떤 의사가 그들을 해부하고 표정을 연구하고 행복의 의미를, 편안함의 의미를 궁구한 다음 한 가지 가설을 만들었다. 충돌 직전, 충돌하면 죽는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면 사람의 뇌에서는 강력한 진통, 진정 물질이 분비된다. 인간의 인색한 뇌는 한 인간의 일생 동안 그 물질―후에 엔도르핀(Endorphine)이라고 이름 붙여진 것 ―을 이쑤시개 끝으로 찍어 맛볼 정도밖에 내보내지 않는다. 백 명째의 연적을 물리쳤을 때. 첫아이를 낳았을 때, 이십 년 동안 잊어버렸던 일 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이삿짐을 싸면서 장릉 밑에서 발견했을 때, 먼 친척이 죽으면서 막대한 유산을 남겼을 때에도 아주 극미량만 흘려보낼 뿐이다. 그런데 죽음에 임박하면 사람의 뇌에 마지막 축복처럼 엔도르핀의 샤워가 뿌려지는 것이다. 사람은 죽음에 임박해서 황홀경에 빠진다는 속설이 있는데 이것이 엔두르핀의 작용이 아닌가 생각해볼 수 있다.
엔도르핀은 동물의 뇌에서 추출되는 모르핀과 같은 진통 효과를 가지고 있는 물질의 총칭이다. 내인성의 모르핀과 같은 물질인 ‘endogeneous morphine' 에서 연유한 용어다. 1976년 동물 대뇌의 시상하부, 뇌하수체 후엽에서 잇달아 추출된 모르핀과 같은 폡티드로서 뇌하수체에 존재하여 호르몬과 같은 활동을 하고 있다고 여겨지지만 생리적 의의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남자대백과』 보유편 2에서 인용),
여자들이. 그중에 하나인가. 아니다. 이 여자는 감히 그럴 생각도 하지 못한다. 자격도 의지도 없다. 그럼 왜 이 여자와 하필이면 떨어지는 차에 타고 있는가. 특별한 이유라도 있어야 한다.
일단 이 여자가 특별한 것은 늘 청바지를 입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여자에게 청바지를 입게했다. 청바지를 입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죽인다면 세상 사람들이 죽을 이유는 너무도 많은 것이다. 다만 ‘넌 앞으로 청바지만 입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단 한 번이다. 그때부터 여자는 청바지만 입었다. 청바지는 재수가 없는 여자였다. 사람들은 그렇게 알고 있었다. 재수 없는 청바지와 그가 함께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나중에 사람들이, 청바지와 나란히 죽어 있는 그를 보며 뭐라고 할 것인가. 청바지하고 어딜 갔다오다 그랬대? 역시 청바지는 재수가 없어.
청바지는 청카바의 여자였다. 청카바는 그와 새벽 기차를 같이 탔던 소년이 자라서 얻은 별명이다. 청바지가 청카바의 여자였을 때 청바지만 입은 것은 아니다. 청카바도 그전에는 청조끼만 입지는 않았다. 청카바가 되기 전에, 청조끼 말구 노란 점퍼를 입은 청카바에게 결투 신청이 들어왔다.. 결투를 신청한 자는 청바지와 보리밭에서 한 번 잤다. 한 번 잤으면 자기 여자니까 그 여자에게 다른 남자가 있다는 것은 어색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그 다른 남자에게 결투를 해서 이기는 사람이 청바지를 독차지 하자고 제의했다. 청카바는 승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청카바가 승낙하고 난 다음, 상대는 청카바가 구 유명한 ‘작두’, 지서 순경의 팔을 작두로 자른 장본인임을 알게 됐다. 그걸 알게 된 건 좋지 않았다. 결투가 벌어지는 날까지 상대는 치가 떨리도록 청카바의 영응담을 듣고 또 들었다. 한때 지서 순경과 싸워 작두로 팔을 잘랐고, 한때 씨름 선수의 허리를 분질러놓았고, 한때 마사오의 수제자였던 청카바와 결투를 하게 된 건 불운이었다. 그게 전부 다 사실은 아니더라도, 사실이라면 읍내를 활보하고 다니기는커녕 진작 끌려갔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사실일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외팔이 순경이 지서에 없을 것이며 지금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씨름 선수가 가만히 있겠는가, 어쨌든 그게 다 헛소문이더라도 이길 수 없다는 게 공통된 결론이었다. 그 덩치와 주먹과 소문, 어느 하나만 가지고도 막강한데 그 셋을 합쳐놓으면 그게 청카바였다.
그러나 결투 신청이 대로상에서 공공연히 이루어졌고 각자가 탄 오토바이 주변에 여러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이미 신청한 결투를 철회할 도리가 없었다. 상대는 청카바와 어느 다리 아래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심판은 그 지역의 건달이면서 청카바의 친구인 황포가 맡았다. 다리 주변은 황포의 구역이었으니까.
결투 당사자, 심판, 그리고 청바지를 입은 청바지가 자리한 가운데 벌어진 결투는, 그러나 너무 싱거워서 싸움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상대는 몇 번 청카바의 무릎 아래위로 헛발길질을 하다가 청카바의 정권 한 방에 안면을 맞고 나가떨어졌다. 한 방에 나가떨어지는 편이 여러 대 맞는 것보다는 나았을 테니까. 상대는 즉시 꿇어앉았다. 항복했다. “형님,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하고 빌었다. 청카바는 지역의 오랜 전통에 따라 상대의 머리를 두어 번 쥐어박고 남 두 배는 되는 주먹으로 힘껏 뺨을 갈긴 다음, “꺼져”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날 밤, 청카바와 청바지가 그 다리 아래서 잔 그날 밤,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아이들이 두 사람을 에워쌌다. 청카바는 누군가 배에 발을 얹는 바람에 잠에서 깼다. 깨는 순간, 청바지의 청바지가 이미 벗겨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첫 번째 아이가 청바지를 올라타고 있었다.
청카바는 청바지의 비명을 들어가며 영웅적으로 싸웠다고 했다. 일 대 십이었으나 세 명의 안면을 부숴놓았고 최소한 세 대의 갈빗대를 부러뜨렸다는 것이다. 청카바를 잘 아는 그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았다. 청카바에게서 허풍을 빼면 물살과 솜주먹밖에 남는 게 없었으니까. 덩칫값을 하느라 세 명 분만큼 맞고 남들 세 배쯤 되는 굵기의 갈빗대가 부러지기는 했겠지. 그건 그렇다 치고 아마 오백 대쯤? 그 정도 맞는 데 두세 시간이 걸렸다. 그건 어느 정도 사실일 것이다. 서른 관*이 넘는 청카바는 맞을 데도 많다. 청바지는 두 번째로 올라탄 아이의 얼굴을 할퀴고 네 번째 아이의 혀끝을 물어뜯었다고 했지만, 그건 사실이었지만, 후에 그것이 재수 없는 짓임이 판명되었다. 당할 바에 곱게 당할 것이지. 피맛을 본 아이들이 본전을 뽑으려고 더 길길이 뛰었으니까. 청카바는 한 아이의 주먹에 눈을 맞아 오른쪽 눈이 손가락 한 마디만큼은 안으로 밀려 들어갔고 몽둥이에 뒤통수를 맞아 도로 두 마디쯤 튀어나왔는데, 그 순간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아이고, 내 눈알! 눈 빠졌네!”
아이들은 그 소리를 듣고 잠시 주먹질을 멈췄다. 청카바는 그 틈을 타 눈알을 집어넣을 시간을 달라, 그다음에 죽여도 좋다고 엉엉 울며 사정을 했고 착한 아이 둘이 그것을 허락했다. 청카바는 냇물에 눈을 씻고 얼굴을 씻으면서 정신을 차렸고 눈알을 안으로 집어넣는 체하면서 주변을 살폈다. 또 한 아이가 청바지를 올라타고 있었고 그의 뒤에 두 명, 앞에 한 명이 몽둥이를 들고 지키고 있었다. 청카바는 냇물 속에 평소 그 동네 아낙들이 빨래할 때 쓰는 넓적한 돌이 있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일어서는 척하며 돌을 집어 들어 있는 힘을 다해 한 아이를 향해 집어 던졌다. 이어서 냇물로 뛰어들어 도망갔다. 냇물이 깊었다면 풍덩풍덩 소리를 냈을 것이고 더 깊었다면 빠져 죽었겠지만, 수영을 못했으니까, 하여간 그런 소리를 내며 도망갔다. 아이들이 곧 그를 따라왔다. 벙첨벙첨벙첨벙첨벙첨. 그는 줄줄 물을 흘리며 방죽을 기어올라 냇가에 있는 외딴집으로 뛰었다. 그 집은 바깥주인이 바람을 피우느라 몹시 바빠, 한 달에 한두 번 들어올까 말까 하는 집이었는데 그 바깥주인이 마침 집에 있었다. 청카바는 대문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문이 잠겨 있었다. 문을 두드리려고 했으나 시간이 없었다. 청카바는 담을 넘었다. 넘기 전에 청카바를 따라잡은 아이들이 그의 무릎을 잡아당겼다. 청카바는 “아이고, 사람 살려라!” 하면서 몸을 굴린 다음, 담을 넘어 마당으로 떨어진 다음, 팬티 바람으로 튀어나온 집주인에게 황포를 불러달라고 말한 다음, 기절했다. 황포가 달려왔다.
“야 임마, 그러니까 다리 밑에서 자지 말라고 했잖어.”
황포는 동이 트기도 전에 제 아이들을 불러 모아 주변을 이 잡듯이 뒤졌다. 근처 정자에서 떼로 잠이 들어 있는 아이들을 발견한 잠 덜 잔 아이들은 잠 깬 아이들을 줄레줄레 묶어 그들이 사는 동네, 청카바와 초저녁에 결투를 한 친구가 사는 바로 그 동네, 이장 집으로 끌고 갔다. 그 과정에서 세 명의 안면이 부서졌는지, 세 대의 갈빗대가 나갔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황포는 이장 집의 마이크와 앰프를 빌려 방송을 했다.
“주민 여러분. 여러분의 아이들이 지금 이장 집에 잡혀 왔어요. 낫으로 목을 끊기 전에 빨리 나오시오.”
나중에 그는 심심할 때마다 청카바에게서 그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청카바가 이야기의 끝을 교묘하게 흐리기가 일쑤여서 여러 사람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는 이렇게 묻곤 했다.
“그다음이 있잖아. 그 이야긴 왜 안 해?”
그러면 청카바는 계면쩍어하면서 후일담을 이야기했다. 청카바는 병원으로 실려 갔고 청바지도 같은 앰불런스에 실려 갔다. 황포가 아이들의 목을 자르지 않는 대신 위자료로 아이들의 부모로부터 걷은 돈 이십만 원을 가져왔는데 치료비로 쓰고 남은 돈으로 두 사람은 청조끼와 청바지를 사 입었다. 그때부터 한 사람은 청카바, 한 사람은 청바지로 불리게 되었다. 그 청바지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청바지가 비명을 지르고 있는 동안에도 차는 떨어진다. 그때 그에게 생각지도 않은 일념이 다가온다.
그로서는 지상에서 가장 완벽한 사나이, 벼랑에서 떨어져도 눈 하나 깜빡 않는 용기를 가진 레미콘 운전수가 있는 한 이 지역에 발을 디딜 수 없었다. 레미콘 기사는 음주 운전 때문에, 과로로 세상을 떠났다. 절벽에서 떨어전 레미콘 트럭은 두 동강이 났고 레미콘 기사는 수십 미터 떨어진 곳에서 유리 닦는 걸레와 함께 발견되었다: 그다음에 그는 이 지역에 들어왔다. 술집을 냈고 ㄷ시에서 여자들을 데려다 놓았고 영업을 시작했다. 황포가 화를 냈다.
“아무개가 왔다며?”
“그 아무개가 팔뚝 굵은 아무개에게 박살난 그 아무개지? 그런데 이 아무개가 죽으니까 그 아무개가 제 세상 만났다고 술집을 낸다?”
“벌써 냈다는데?”
“형님들한테는 인사도 없이? 겁 대가리는 뒷주머니에 넣어뒀나?”
황포가 떠벌리고 다닌다는 소문을 들은 그는 아이들에게 황포를 모시고 오라고 했다. 황포는 청카바와 함께 왔다.
“어서 오십시오.”
“사장 안 계셔?”
“사장님, ㄷ시에 가셨습니다.”
제비처럼 생긴 웨이터가 그들을 안내해서 자리에 앉혔다. 공주처럼 차려입은 여자아이가 시중을 들었다. 두 사람은 처음에는 체면을 차렸지만 술에는 장사가 없다. 덩칫값을 하느라고 남들 두 배 분을 부어라 마셔라 하다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곤드레만드레*가 되었다. 웨이터가 계산서를 가지고 왔다.
“나 사장 친구야. 그러니까 외상이야.”
“그러시죠. 성함이?”
“나, 황포야.”
“난 청카바.”
청카바는 그때부터 가끔 황포와 술집에 들르다 단골이 됐다. 그러면서 어른을 알아 모신다, 봉사하는 정신이 됐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 청카바는 마침내 혼자 몸으로 보무당당하게 와서는 마음놓고 마실 정도가 됐다. 또 곤드레가 된 다음, 웨이터가 계산서를 가져 왔다.
“계산서 가져 왔습니다.”
“사장 어디 갔어? 오라고 해.”
“사장님, ㄷ시에 가셨습니다.”
“그럼, 외상이야.”
“그렇게는 안 되겠습니다. 사장님이 앞으로 외상은 절대 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나 때문에 이 가게가 얼마나 장사 잘되는지 알아?”
“모르는데요.”
“나, 청카바야. 몰라?”
“알아. 지난번 것까지 계산해줘.”
“이 자식, 사람을 놀려?”
“이게 술 취하니까 보이는 게 없나? 내가 왜 네 자식이니? 맞기 전에 빨리 내.”
청카바는 스무 살이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도 모르는 웨이터에게서 온몸이 노골노골해지도록 얻어터졌다. 한창 맞고 있는 청카바를 그가 구원해주었다. ㄷ시에서 막 돌아온 것처럼 가게에 나타나 아이들을 제지했다.
“그만 됐어. 일들 봐.”
청카바는 그의 얼굴을 보고는 그만 울어버렸다.
“아이고, 나 죽네.”
그는 청카바에게 자기 밑에서 일을 보면 더 이상 맞지 않게 해주겠다고 말했다. 또 원한다면 청바지를 그 집의 공주로 취직시켜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때부터 청카바는 더욱 부지런히 소문을 펴뜨리고 다녔다. 그래서 공짜 좋아하는 주먹과 어깨와 건달들이 떼를 지어 그의 가게로 왔다. 그들은 곤드레만드레 마신 다음, 외상을 했다. 그러면서 한두 명씩 그에게 항복했다. 그러나 그가 기다리던 마사오는 오지 않았다.
“마사오는 요새 뭘 하고 있나?”
어느 날 그는 이제 그의 왼팔이 된 청카바에게 물었다. 청카바는 마사오가 이제 싸움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무서운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마사오는 평소에 자기가 다치거나 앓아 누우면 자신이 갈 병원을 정해두었다. 그런데 몇 달 전에 혈압 때문에 쓰러졌을 때 가족이 입원시킨 병원은 그 병원이 아니었다. 마사오는 병원 정문에서 들어가지 않겠다고 뻗대다가 병원에 도착하자 눈을 감아버렸다. 마사오가 입원하자 제일 좋아한 사람은 병원의 원무과장이었다. 마사오가 그때까지 병원비 외상한 게 기천만 원은 되었기 때문이다. 자기가 팬 사람 치료비도 외상으로 하고 자기 동생들 치료비도 외상으로 했다. 다만 자신의 치료비는 외상하지 않았는데, 치료를 할 만큼 다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사오가 입원해 있는 동안 원무과장은 의사보다 훨씬 자주 병실을 드나들었다. 그때마다 마사오는 괴로운 표정으로 돌아누웠다. 마사오가 이제 힘을 못 쑤는 것은 원무과장 때문이다.
그가 껄껄거리자 청카바는 냉장고에서 달걀을 꺼내듯이 또 하나의 신화를 끄집어냈다. 레미콘 운전수의 장례식 때는 굉장했다. 병원에서 부원장하고 원무과장을 포함, 여섯 사람이나 문상을 왔다. 그 친구는 외상이 절대 없는 가장 큰 고객이었으니까. 또 장례식에 문상 온 사람들 대부분이 병원의 단골 고객이자 장래에 새로운 고객이 될 것이었으므로.
그때 그는 청카바를 조금 진정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세계를 끌고 나가는 힘의 반은 소문이다. 소문이 무슨 상관인가, 증거와 사실이 중요하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은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니다. 그건 다른, 좋은 세상 사람들 이야기다. 청카바는 소문의 진원지다.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도 그의 입에서는 그럴듯한 전설과 신화로 탈바꿈한다. 전설과 신화로 무장하면 싸우지 않고도 이길 수 있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친구, 왜 죽은 줄 알아, 레미콘?”
청카바는 백 길 낭떠러지에서 레미콘 트럭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내 앞에서 까불다가 그렇게 된 거야.”
청카바는 잠자코 있었다.
“세상에는 우연한 사고라는 게 없어. 천 길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더라도, 떨어지는 이유가 있는 거야.”
그리고 그는 청카바에게 마사오를 모시고 오라고 지시했다.
떨어진다. 차가 기울면서 그도 청바지도 아래를 향해 기운다. 그는 푸른 기둥처럼 일어선 강물을 본다. 기둥과 차와의 거리는 반에서 반으로, 다시 반에서 반으로 좁혀 든다. 반의반이 다시 반의반이 되고있나. 그에게는 반의반의 반이 남는다.⁵⁾ 그의 머릿속에서는 반딧불치럼 희미한 대화들이 마지막 심광을 발하고 소멸한다.
5) 희랍의 철학자 제논은 이렇게 말했다. 아킬레우스와 거북이 경주를 한다고 하자. 아킬레우스보다 거북이 느리므로 거북이 먼저 출발한다. 아킬레우스는 결코 거북을 앞지르지 못한다. 왜냐? 아킬레우스는 먼저 거북이 출발한 지점에 도달해야 한다. 거북은 그때 이미 제2의 지점에 도달해 있다. 그가 그 지점에 도달하면? 거북은 이미 제3의 지점에 다다라 있다. 아킬레우스가 제3의 지점에 가면 거북은 제4의 지점에 가 있고 그곳에 가면 거북은 이미 없다. 제5의 지점에 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아킬레우스는 영원히 거북을 앞지르지 못한다. 또 날아가는 화살은 과녁을 맞히지 못한다. 처음 과녁을 향해 날기 시작한 화살과 과녁 사이에는 일정한 거리가 있고 그것을 반으로 나눌 수 있다. 그 반으로 나눈 지점과 날아가는 화살 사이에 다시 반으로 나늘 수 있는 지점이 있다. 그 지점과 화살 사이에는 다시 반으로 나놀 수 있는 지점이 있는데……화살은 그 반으로 나눈 지점을 모조리 통과해야 한다…… 그러나 나눌 수 있는 지점은 무한하다. 화살은 무한한 반을 통과할 수 없다. 이 역설을 논파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있겠지만, 가장 간명하고 확실한 방법은 그것에 대해 생각도 말고 걱정도 않는 것이다. 라이프니츠(Gottfried W. Leibniz, 1646∼1716)를 참조할 것.
’넌 데려오기만 해. 넌 이 술집 지배인이 될 수 있어. 청바지도 다시 네 여자로 만들어주지. 청바지가 싫으면 다른 애들을 주고.’
’데려오면…… 뭐 할 건데.’
‘그냥 술 한잔 대접하려는 거야. 데려올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이잖아. 네 사부라면서.’
‘아니, 심부름 몇 번 해준 것밖에 없어.’
’네가 옛날부터 얼마나 자랑을 했냐. 그때는 삼촌이라고 하더니.’
‘사실은…….’
‘그래, 너는 내가 잘 알지. 그러니까 데려오기만 하라고.’
청카바는 결정적으로 그의 오른팔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그래서 마사오를 찾아갔다. 지금 새로운 인물이 왔다. 나를 도와준다. 사업을 하고 있다. 실력이 있다. 의리도 있다. 뒤를 봐주는 사람이 많다. 국회의원과는 형님, 동생 사이고 경찰서장의 친척 이며 시장의 후배다. 지역 군 부대장과 하루 안 보고는 못 사는 사이다. 무엇보다 사업가다. 엄청난 돈을 투자할 계획이다. 호텔을 세울 것이다. 카지노도 만들고 온천도 개발하고 유원지도 만들겠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일에는 이 지역에 오랫동안 뿌리를 내려온 사람, 즉 고문이 필요하다. 그래서 한번 뵙고 싶어 한다.
청카바의 공작으로 드디어 마사오가 그의 술집 에 나타났다.
“어서 오십시오.”
“사장 있어?”
“안 계십니다. ㄷ시에 가셨습니다.”
“술 좀 가져와.”
늙은 마사오는 술을 마셨다. 그때 그는 술집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실상 그는 술집을 차린 이후 한 번도 ㄷ시에 가지 않았다. 다만 마사오를 기다렸다. 어두운 차 안에서 마사오가 오기를 기다렸다. 이 지역 논두렁 건달들의 영원한 형님, 마사오. 그의 신화인 마사오, 그가 건너뛰어야 할 절벽.
이제 차는 완전히 수직으로 땅을 향하고 있다. 그 역시 기울었으며 여자 역시 기울었다. 머리에 피가 몰린다. 이제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이 온다. 시간이 없다. 아주 짧은 반이 남았다. 무한의 반. 위액이 식도로 쏟아진다.⁶⁾ 동시에 그의 종말을 행복하게 하려는 배려, 엔도르핀도 분출한다. 그는 느낀다. 행복
6) 위산의 분비는 공포의 소산이다. 정면충돌 사고를 당한 운전자의 대부분은 갑작스러운 위산의 분비를 경험한다고 한다.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위산은 위벽을 녹일 정도로 강력해서 평소에 궤양 등이 있는 경우에 그 자체로써 위천공(胃穿孔)을 유발할 수 있다 위천공이 일어나면 위의 내용물이 복강에 유출하여 급성 복막염을 병발하고 구투를 되풀이하게 하며 쇼크 상태에 빠지는 일이 많다. 긴급 수술을 하지 않으면 생명 이 위험하다
과 고통의 이중주를.
마사오를 추락시키는 일은 그에게는 고통스럽고도 행복한 일이었다. 해야 할 일이다. 그는 마사오를 정리하는 것으로 한꺼번에 마무리 지으려고 했다. 이제 마사오의 시대가 간다. 주먹과 박치기와 발길질로 술값이나 우려내는 건달들의 시대는 가고 있다. 사업과 조직, 관리의 시대가 온다. 마사오는 늘어진 근육과 눈꺼풀, 혈압 때문에 술은 조금만 마셨다. 그리고 기분을 풀기 위해 밴드를 불렀다. 그는 마사오의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어두운 차 안에서 가느다랗고 흰 수
입 담배를 피웠다. 밴드 소리가 멎었다. 노랫소리도 멎었다. 청카바가 술집에서 나왔다. 담뱃불을 붙이고 골목 밖으로 사라졌다.
그가 술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달려와서 마사오가 들어 있는 방을 가리켰다. 그는 시무룩해 있는 밴드 마스터에게 물었다.
“너희들 왜 그래?”
“손님이 마이크를 던졌습니다. 반주를 제대로 못한다고요.”
그는 마사오에게 들리도록 목소리를 높였다.
“어떤 새끼야? 어디 있어?”
“일 호실입니다.”
밴드는 원래 반주를 잘 못하게 되어 있었다. 그 아이들은 노래 반주를 전문으로 하는 아이들이 아니었으니까. 그는 일 호실의 문으로 다가갔다. 마사오, 불쌍한 마사오는 아무것도 몰랐다. 다만 타고난 육감으로 문을 잠갔다. 창문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그 창문은 마사오의 비대한 몸이 나가기에는 너무도 작았다. 그 방 역시 마사오를 위해 준비되고 설계되었다.
“문 열어.”
“잠겼습니다.”
“도끼 가져 와.”
밴드에게서 등산용 도끼를 건네받은 그는 문을 부쉈다. 마사오는 문고리를 잡고 있었다. 아니다. 청카바를 불렀다. 아니다. 창문을 깨고 나가려고 했다. 아니다. 탁자를 뒤집어 다리 하나를 떼어내려구 했다. 아니다. 소파 뒤에 숨으려고 했다. 아니다. 늙은 임금처럼 위엄 있게 앉아 있었다. 문이 열리자 밴드들이 민첩하게 안으로 뛰어들었다.
“잡아!”
밴드는 네 명 이었고 마사오의 팔은 둘, 다리도 둘이었다. 밴드들은 사지를 하나씩 붙잡았다. 그게 그들의 전문 분야였다. 마사오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바닥에 눕혀진 채 버둥거리는 마사오의 오른괄, 왕년의 철권*이 달린, 피스톤 펀치를 자랑했던, 기관차를 뒤로 물리는 괴력을 지녔던, 전설과 신화 속의 위대한 오른팔을 등산용 도끼의 등으로 부수었다. 부러뜨린 게 아니다. 잘게 부수었다.
마사오는 떠났다. 그는 다른 곳에 가서 자리를 잡을 것이다. 늙은 외팔이로서, 왜 그렇게 당해야 했는지도 모르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상처를 지닌 늙은이로서 여생을 마치게 되었다. 이제 모두가 알게 될 것이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인물이 왔고 그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거의 다 왔다. 반의반, 반의반이 점점 빠르게 다가든다. 그의 머릿 속의 일념들도 빠르게 소진된다.
ㄷ시의 큰형님이 다녀갔다. 큰형님은 이제 도박장을 하나쯤 세울 때가 되었다고 했다.
벽돌회사를 하나 접수했다. 잘될 것이다. 독점이나 마찬가지였다. 지역에서 그의 허락 없이 벽돌집을 지을 사람은 없었다.
창고에 도박장을 열었다. 돈을 빌려주었고 이자를 받았고 돈이 떨어진 사람들에게서는 집문서나 논문서도 받아주였다.
경찰은 알아서 해주었다. 그도 섭섭지 않게 해주었다.
그의 아내는 그에게 맞아 이가 부러진 다음, 근 일 년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
여러모로 바빴다.
그렇게 바쁜데도 청카바가 보이지 않았다. 마사오가 술집에 다녀간 그날 밤부터. 그 일도 빨리 소문내야 하고 새봄에 분위기도 새롭게 해야 하고, 건달들을 몽땅 네발로 기어오게 만들어야 할 이때에.
술집도 바쁘고 회사도 바쁘고 창고도 바쁘고 아이들 싸움시키기도 바쁘고, 도저히 혼자 힘으로는 일이 안 되는 이때에.
그러다 엉뚱하게도 세상에는 우연한 사고란 없다는 소문이 퍼졌다. 마침내 그가 비겁하게, 마사오를 해치웠다는 소문이 돌았다. 마사오를 해치웠다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비겁하다는 게 핵심이다. 위기였다. 그냥 둘 수 없었다.
소문을 퍼뜨린 자가 누구인가. 그는 알고 있다. 모를 리가 없다. 그의 왼팔이었다. 왼팔은 겁이 많았다. 그건 마음에 든다. 형님을 겁내지 않으면 형님의 왼팔이 될 수 없다. 죽으라면 죽는 시늉을 했다. 그것도 마음에 든다. 그러나 정말 죽지는 않는다. 그것도 마음에 든다. 형님의 왼팔이, 형님이 죽는 시늉을 하라고 했는데 정말로 죽어버리면 그건 곤란하다. 형님은 자신의 왼팔을 왼팔에게 맡겼다. 왼팔이 할 수 있는 일의 대부분, 콧구멍이나 귀를 후비는 일을 제외한 대부분의 일을. 그런데 배신했다. 왜? 사라친 게 배신이다. 배신하고 사라지고 배신했다. 찾아내야 한다. 그 입을 닥치게 해야 한다. 이젠 시간이 없다. 이미 시간이 없다.
청바지를 끌고 청카바를 찾아 나선 길이었다. 다리 건너 청카바의 집에 다녀오는 길이였다. 그 집 근처 들판에서 그는 한 사내가 청가바블 입고 천천히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죽이겠다고 다짐 했다.
그가 부르자 청카바를 입은 비대한 사내, 마사오가 돌아보았다. 텅 빈 눈이었다. 바람에 빈 소매가 흔들렸다. 그 소매가 그를 향했다. 그는 생애 최초로 등을 보이며 도망쳤다. 그 속에 총이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가만, 무서운 것은 총이 아니었다. 팔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총을 쏘지? 무서워한 게 아니지, 그럼? 그 눈이 바로 등 뒤에 붙어 있는 것 같아서 내내 좌석에 등을 비볐다.
길은 굽어 있었다.
과속을 했다.
다리 위에서 미끄러졌다.
그는 마지막으로 무슨 말이든 해보려고 한다. 그 말은 발음되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없다. 정녕 시간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살아남은 청바지의 입을 빌린 나는 기록하지 않을 노리가 없다.
“엄마, 무서워.”
그리고 그는 물에 빠져 죽었다.
『문학동네』 3호(1995년 여름);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 (강 2003)
성석제(成碩濟)
1 60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1986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시로 등단한 뒤 1994년 짧은 소설 모음집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를 내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날렵한 비유와 의뭉스러운 유머, 생의 이면을 들춰내는 섬세한 관찰력.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뛰어난 언어 감각으로 기성의 통념과 가치를 뒤집는 흥미로운 작품 세계를 펼쳐왔다.
소설집 『새가 되었네』 『재미나는 인생』 『홀림』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어머님이 돌려주시던 노래』, 중편소설 「호랑이를 봤다」, 장편소설 『왕물 찾아서』 『순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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