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독서 사도 3,13-15.17-19
2독서 1요한 2,1-5ㄱ
복음 루카 24, 35-48
(실제 강론 때에는 지난 토요일 있었던 주일학교 중고등부 소풍 얘기를 덧붙였습니다.)
오늘 저희들은 부활 3주일 미사를 함께 봉헌합니다. 부활시기도 벌써 3주차가 되었는데 여기 계신 많은 분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만나뵈었는지, 아니면 그분의 무덤 앞에서 울다가 예수님을 만난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그분을 만났는지, 아니면 그저 삶이 두려운 가운데 예수님께서 불쑥 나타나셔서 만나뵈었는지, 여러분들은 어떻게 각자 예수님을 만나뵈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 각자에게 서로 다른 모습, 서로 다른 영성으로 다가오실 수 있는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는 시선을 가질 수 있길 바랍니다.
오늘 제1독서와 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은 공통적으로 한가지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바로 ‘죄의 용서’와 관련된 가르침입니다. 부활시기이고, 또 독서 말씀에서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해 증언하는 베드로 사도의 가르침을 듣고, 그리고 복음 말씀에서는 예수님 스스로가 당신께서 부활하신 일은 성경에 기록된 일이었음을 밝혀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과 베드로 사도의 가르침은 ‘부활은 이러한 것이다’ ‘부활하면 사람의 몸은 어떻게 된다’ ‘부활한 뒤에는 문도 막 통과하고 그런다’ 하는 이런 내용의 가르침이 아니라, ‘죄의 용서가 이루어진다’라는 사실을 많은 이들에게 선포해야한다는 하나의 요청, 이 부활에 대한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해야만 하는 의무를 전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의무는 ‘부활이 어떻다 저떻다’ 배우는 것이 아니라 ‘죄를 용서하고 죄를 용서받음을’ 깨닫고 그를 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실생활에서 부활을 체험하고 느껴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하고 한동안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여러 책자도 읽어보았는데, 봄에 죽은듯이 있던 나무에서 싹이 돋아나고 꽃이 피어나는 모습, 흐르지 않는 것처럼 보이던 강물이 그 아래에서는 계속 흐르고 있다가 마침내 완전히 녹아 콸콸 흐르는 모습, 그러한 것들에서 부활에 대한 하나의 이미지를 찾아내고 묵상해보시는 관상가들의 글도 있었지만 사실 뭐 저에게는 이러한 것들은 크게 감명이 없었고, 저희들 가운데 누구라 할지라도 한번정도는 겪어봤을 ‘용서’와 ‘고백’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여기 계신 많은 분들이 살면서 한번도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신 분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잘못을 감추고 싶은 마음도 계셨을 것입니다. 무언가 부모님이 아끼는 것을 깨트리고 숨기고 싶고, 무언가 친구만 가지고 있는 것을 몰래 가져가버리고, 내 삶을 살아가는데 눈에 거슬리는 일을 하는 이웃을 모함하고 욕하고 싶고, 그러한 마음들이 마음들만 있을 때도 있지만, 실제로 그러한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들을 하게 되면, 여러분들의 마음이 후련해지셨습니까? 결코 그러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내가 화를 내고, 내가 혼을 내고, 내가 분을 풀기 위해 그런 일들을 하면, 후련하고 자유롭고 상쾌할 줄 알았는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내가 무엇을 한 것인지, 이 잘못을 어떻게 되돌릴 수 있을지 생각해보시게 되었을 것입니다. 죄라는 것은 이렇듯이 우리에게 ‘야, 지금 눈 딱 감고 잘못을 저지르면 너 너무 후련해져, 너 너무 자유스러워, 네가 인정받고 우수해질수있어’하는 말들을 속삭이지만 그 결과는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역시도 그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잠시동안 찾아오는 우월감, 해방감 때문에 죄를 저지르고는 금새 후회하며 죄 때문에 작아지고 자신을 숨기고 싶어지는 그러한 시기를 거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가 그 죄를 극복하였을 때, 어떤 감정을 느끼셨는지, 어떤 자유를 누리셨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모님 물건을 깨고, 친구와 싸우고, 이웃과 갈등을 겪고, 가족과 다투고, 동료를 증오하게 되고, 그러한 일들을 겪지만 그 마음들을 고백하고 용서받고, 그리고 또 우리가 그런 마음을 용서하게 되었을 때, 여러분들의 마음은 죄를 지었을때와는 다르게 큰 해방감과 자유와 행복을 누리셨을 것입니다. 죄를 지을 때 그리고 그 죄 안에 갇힐 때, 죄는 우리에게 그때 자유와 행복을 누릴 것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실상 우리는 죽은 것만 같은 마음을 누리게 됩니다. 하지만 그 죄에서 벗어나려 노력할 때, 죄를 지었음을 받아들이고 죄 때문에 깨어진 모든 관계를 회복하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물론 힘든 시간을 보내지만, 그 시간이 끝난 뒤, 여러분은 죄가 우리들에게 줄 수 없는 자유를 느끼고 해방감을 얻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이 우리를 새로운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부활의 신비를 이 세상에서 체험하는 하나의 방법일 것입니다.
오늘 베드로 사도와 예수님께서는 부활의 삶에 대해 증언하시며, 그 부활을 위한 첫 가르침을 전해주십니다. 바로 무엇보다도 ‘죄의 용서’가 가능하다는 믿음을 전하며, 사람이 하느님께 죄를 용서받고, 또 사람이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주는 삶이 그 부활을 위한 첫단계임을 전해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평소에 우리가 읽는 복음 말씀과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아시기 힘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회개와, 또 하느님께서 주시는 죄의 용서에 대해서 가르쳐 오셨습니다. 하지만 오늘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부활로써 참으로 사람의 죄가 용서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된 때에 이루어졌기에, 참으로 많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새로운 모습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입니다.
오늘 다시 여러분들 앞에서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선포되었습니다. 이 죄의 용서, 다른 이들을 용서해주고 하느님께 우리의 죄에 대한 용서를 청하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은, 여러분들에게 어떤 의무를 지우기 위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미워하는 누군가에 대한 용서를 예수님께서 강요하시는 것만 같은 때에, 우리가 용서를 이뤄냈을 때 느꼈던 그 자유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들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 그리고 그 자유의 마지막인 부활을 증언하십니다. 예수님과 함께, 이 세상 안에서 먼저 부활의 삶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 시작은 많은 이들을 용서하는 데에서 시작됩니다.
첫댓글 아멘
신부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