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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산림 대법회 116강-4-c
十二有支의 相續門(12유지상속문)
12인연을 “12유지”라. 그럽니다.
支자는 ‘갈래’라고 하는 뜻인데요. 그렇게도 표현하지요.
佛子야 此菩薩摩訶薩이
復作是念호대, 다시 이런 생각을 하되,
於第 一義諦에, 第 一義諦! 진리의 입장에서 보면
不了故로,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한 고로,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名 無明이요. 이름이 무명이고,
所作業果가 是行이요,
모르는 입장에서, 모르고 가만히 있으면 좋은데,
하~~ 모르면서 설친다고요. 모르면서 막 설쳐요.
그러면 문제를 일으키는 겁니다. 所作業果가 是行입니다. 업과를 짓는 것이 말하자면 행이다. 행할 行자!
우리 마음은 참~~ 상당히 위대하고ㆍ고맙고ㆍ훌륭한 것이기는 한데요. 그것이 들어서 또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겁니다.
行 依止初心이,
행이 초심을 의지하는 것이 是 識이요.
처음 마음!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처음에 태동할 때 그것이 식이다. 인식작용이 생기는 겁니다.
與識 共生 四取蘊이 4취 온은 뭡니까?
“색ㆍ수ㆍ상ㆍ행ㆍ식.” 그러잖아요.
“識”이라고 하는 것은 근본식이 되어서 밑바탕입니다.
그래서 識이 먼저 온 겁니다.
識이 四取蘊과 共生하는 것, 색ㆍ수ㆍ상ㆍ행. 이것 네 가지 온이 공생하는 것의 爲名色이요. 이름이 명색이다.
그러면 名은 정신적인 문제이고, 色은 물질적인 문제입니다. 수상행식은 명이 되고 색은 색이 되고,
그래 명과 색. 정신과 물질!
처음에 우리가 모태에서 6근이 제대로 분별이 안 되고 뭔가 엉켜서 있잖아요. 그런데 엉켰을 때 벌써 물질의 요소가 있고, 정신의 요소가 있는 겁니다.
물질의 요소라 하더라도 그냥 분별이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名色增長이, 명과 색이 증장하는 것이
爲六處요. 6경이 되고
根과 境 識 三事가 和合한 것이 是觸이요.
6근ㆍ6경ㆍ6식. 벌써 거기에 그런 세 가지가 나타나는 것, 이것은 사실은 이미 태어났을 때입니다.
태어나서 ‘춥다ㆍ덥다.’ 를 감촉.
촉감으로 알 수 있는 상태! 그것이 촉입니다.
觸과 共生해서 有受요. 촉과 공생해서 수가 되고,
그러니까 따뜻한 이것은 좋고, 또 시원한 것은 좋지만 추운 것은 싫고, 따뜻한 것은 좋지만 더운 것은 싫고,
이것이 수의 작용입니다. 그러니까 좋은 것은 받아들이는 겁니다. 有 受, = 수가 있고
於受 染着이 是 愛요.
받아들이는데 내 마음에 드는 것만 받아들이고, 거기에 물들고 집착하게 되는 겁니다.
아~~ 참! 신기한 이치를 이렇게 제대로 밝힌 것입니다.
제대로 거기에 집착이 생기는 겁니다. 물들기 시작하는 겁니다.
어머니는 좋은데 딴 사람은 싫거든요.
그것이 염착입니다. 어머니에게 이미 염착이 된 겁니다.
於受에 染着이, 받아들이는데 염착 된 것이,
싫은 것도 염착이 돼 있고 좋은 것도 염착이 돼 있습니다. 그것이 是 愛요. ‘애착이다.’이 겁니다.
마음에 드는 것만 받아들이고, 받아들이다보면 애착하게 돼 있고요.
愛增長이 是取요. 애가 증장하는 것이 취 입니다.
사랑하다 보면 그것을 내 것으로, 내 소유로 취하고 싶다 말입니다. 取所起 有漏業이 爲 有요.
취가 유루업을 일으키는 것이 그것이 소유가 되고,
從業 起蘊이 爲 生이요.
업을 쫓아서 蘊을 = 쌓임을 일으키는 것이 생이요.
蘊熟이 爲 老요. 온이 익어가는 것이 노요
蘊이 익어가는 것! 5온이 자꾸 익어가는 겁니다.
성숙이 됩니다. 숙성이 됩니다. 그것이 결국은 뭡니까?
감이 익어 가면 홍시가 되지만 홍시는 곧 떨어질 앞날이 남았습니다. 그것이 숙입니다.
蘊熟이라는 것이 그 말입니다.
온이 숙 하는 것이 노가 되고,
‘감 홍시는 참 좋은데 그것이 곧 떨어진다.’ 말입니다.
蘊壞가 爲 死니라. 5온이 결국은 떨어져서,
감 홍시가 결국 빨갛게 맛도 좋지만 빨갛게 익어서 떨어지는 것이 죽음이 된다.
死 時 離別에, 죽을 때에 이별함에,
愚 迷 貪戀(우미탐련)하야,
어리석음 때문에 탐하고 그리워해서,
心胸에 煩悶이 爲愁(심흉번민위수)요.
심장과 가슴 속에서 번민하는 것이 愁 = 근심이 되고,
涕 泗 咨嗟가 爲 歎(체사자차위탄)이요.
눈물ㆍ콧물 흘리고ㆍ슬퍼하고 하는 것이 탄식이 되고,
在五根이 爲 苦요, 5근에 있는 것이 고가 되고,
在意地가 爲 憂요, 마음의 땅에 있는 것이 우가 된고.
근심 憂자입니다. 그것을 낱낱이 그렇게 분별을 해 놨습니다.
憂苦 轉多가 爲 惱니,
근심의 고통이 더욱 더 많아지는 것이 뇌가 되고,
번뇌 惱자입니다. 아주 푹푹 한숨을 쉬는 정도입니다.
그것이 뇌가 됨이니
如是 但 有 苦樹 增長(여시단유고수증장)이언정,
이와 같이 다만 苦樹가. 고통의 나무가 增長.
자꾸 자라고 자랄지언정,
無我 無 我所하며, 그렇지만 거기에 나라고 하는 실체를 찾아보면 아무 것도 없어요. 아~~ 그렇게 애지중지 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것이라고 하는 것도 실체가 하나도 없어요. 我도 없고, 나의 것 = 我所도 없으며,
無作 無 受者하나니,
그것을 그렇게 되도록 하는 사람도 없고, 그것을 그렇게 받는 주인공도 또 없어요.
실컷 그렇게 울고불고 고통스러워하고 그런 과정을 참~~ 누구 없이 다 겪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실체를 찾아보면 그렇게 되도록 하는 자도 없습니다. 무작입니다.
그것을 또 받는, 그것만 받아들이는 사람도 또한 없습니다. 불은 활활 탔지만 불이 꺼지고 나면 실체가 없습니다.
촛불이 탔는데요. 촛불이 활활 탔는데 초도 주인이 아니고 심지도 주인이 아닙니다.
거기에, 불꽃도 임시로 잠깐 있었을 뿐입니다.
불꽃도 주인이 아니고 초도 심지도 아무 것도 주인이 없습니다. 無作 無 受者입니다. 그러한 것을 보살은 환하게 생각해서 꿰뚫고 아는 겁니다. 그래서 인생이 왔다 가는 것이 구름에 달 가듯이 시원하게 그렇게 왔다 가는 겁니다.
復作是念호대
若有作者인댄,→ 작잔댄, 만약에 짓는 사람이,
그렇게 되도록 조작하는 사람이 있을진댄
則 有作事요. 곧 짓는 일이 있을 것이고,
짓는 일이 있으면 ‘짓는 사람도 있을 것’이란 말입니다.
若無作者인댄,
짓는 일이 없으니까 짓는 사람도 없다. 그럴진댄
亦無作事어니와, 또한 짓는 일도 없거니와
第 一義中에는 俱 不可得이니라.
텅 빈 진리의 가운데는,
진리 중에는 함께 다 얻을 수 없나니라.
짓는 사람도, 짓는 일도 지음도,
고통을 받는 사람도 고통을 괴로워하는 사람도,
그렇게 되도록 하는 어떤 주인공도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야~~! 이것 잘 관찰하면요? 어지간히 고통은 면할 것 같네요. 이 가르침이 아주 참 뛰어난 가르침입니다.
(3) 十二有支의 一心所攝門
佛子야 此菩薩摩訶薩이 復作是念호대
三界所有가 唯是一心이라
如來於此에 分別演說하사대
十二有支가 皆依一心하야 如是而立이라하시니
何以故오 隨事貪欲이 與心共生하나니 心是識이요
事是行이라 於行迷惑이 是無明이요
與無明及心共生이 是名色이요 名色增長이 是六處요
六處三分合이 爲觸이요 觸共生이 是受요
受無厭足이 是愛요 愛攝不捨가 是取요
彼諸有支生이 是有요 有所起가 名生이요
生熟이 爲老요 老壞가 爲死니라
十二有支의 一心所攝門(12유지일심소섭문)이라.
이것이 아주 중요한 대목입니다. 우리 대승불교 공부하는 사람들은 또 이 이치를 알아야 됩니다.
앞에 금방 한 이야기는 정말 아주 참 너무 시원하게 실체를 아주 명확히 밝혔습니다. 명확히 밝혔어요.
十二有支의 一心所攝門이라.
‘일심에 다 攝한다.’ 이 말입니다. ‘전부 한마음의 문제다.’
佛子야
此菩薩摩訶薩은, 이 보살마하살은
復作是念호대, 또 이런 생각을 해야 됩니다.
三界所有가 唯是一心이라.
욕계ㆍ색계ㆍ무색계에 있다고 하는 모든 것들,
사람이나 짐승이나 무슨 기세간이나 중생세간이나 그 무엇도 唯是一心이라! 오직 한마음뿐이다!
如來於此에 分別演說하사대,
여래가 유심소작을 바탕으로 깔고 이런 연설을 한다.
十二有支가 皆依一心하야,
12인연이 다 일심으로 의지해서
如是而立
이와 같이 그것이 한마음에서 생긴 것이다.
한마음에서 생긴 것이다 이라하시니.
何以故오?
隨事 貪欲이, 일을 따라서 탐욕 하는 것이
與心 共生하나니, 어떤 사건,
돈벌이라든지 명예라든지 지식이라든지 뭐든지 사람들은 거기에 탐욕하게 되어 있다.
여심공생이다. 그것은 전부 마음으로 더불어 공생하는 것이다. 같이 생긴 것이다.
心是 識이요 事是 行이라.
우리의 근본 마음은 식이다. ‘인식하는 것이다.’ 말입니다. 사시행이다. 사건. 뭘 탐욕 한다든지, 돈을 탐욕 한다.
명예를 탐욕 한다. 사람을 탐욕 한다. 이것은 전부 ‘행이다.’ 말입니다. 사시행입니다.
於行 迷惑이,
그런 행에 대해서 미혹한 것이 是 無明이다.
거기에 대해서, 아무런 실체가 없는데 실체가 있는 줄 알고, 실체가 없다는 사실을 금 방 알게 될 텐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미혹해서 쫓아가는 겁니다.
허겁지겁 쫓아가는 것이, 그것이 무명이다. 是 無明이다.
與 無明及 心共生이 是 名色이다.
캄캄한 무명과 또 근본 바탕의 마음이 공생하는 것이 명색이다. 말입니다. 정신적인 면과 물질적인 면이 거기서 공생하는 겁니다. 우리가 어머니 뱃속에서 정신과 물질이 합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것을 名色이라 한다.
名色增長이 是 六處요.
명색이 증장하면 이것이 6처다.
명색이 처음에는 정신 문제와 물질 문제, 두 종류뿐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시간이 가면...
12인연을 전부 분석하고 잘 파악해놓은데 보면 날짜도 다 명확하게 기록이 되어있지요. 며칠 걸리고ㆍ며칠 걸리고, 부모에게서 태어날 때 얼마까지이고, 태중에서 얼마까지 있을 때 어떻게 되고, 그래 6처 6근이 생기는 겁니다.
여기서는 六處라는 것이 그 겁니다.
六處 三分合이 爲 觸(촉)이요.
6근이 세 가지로써 나누어서 합해요.
根ㆍ境ㆍ識. ←이것이 합하게 됩니다. 그래 거기에 觸이 생기는 겁니다. 눈이 어떤 사람을 보고 ‘아 저 사람은 내가 잘 아는 사람이다.’ 라고 이렇게 세 가지 작용이 있잖아요.
눈ㆍ사람ㆍ인식작용! = 근경식인데요. 그것이 觸이 되는 겁니다.
그것이 感觸이 됩니다.
‘아 저 보기 싫은 놈 왔다.’ 아니면,
‘아 저 내가 좋아하는 놈! 빨리 가서 만나야지.’ 이것이 촉입니다.
觸 共生이 是 受요.
아 그 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받아들이고,
受 無厭足이 是 愛요.
받아들이고ㆍ받아들이고, 친하고ㆍ친하고,
한 번 보고ㆍ두 번 보고, 자꾸 보고 그래서 염족이.
싫어함이 없습니다. 만족함이 없습니다. 그것이 애입니다. 애착입니다. 사랑입니다.
愛攝不捨가 是 取요.
애착해서 자꾸 攝. 받아들여요. 그래서 버릴 생각이 없어요. 不捨. 버리지 않는 이것이 ‘취하는 것이다.’ 말입니다.
彼 諸 有支生이,
저 모든 유지가 = 12유지가 생하는 것이 是 有요.
있다. 有所起가, 12유지가 생기하는 것이 名 生이요.
그리고 生熟(생숙)이, 생이 익어지면 爲 老요.
그것을 늙음이라고 보고, 生이 熟하는 것이다.
늙은 것 싫어할 것 없습니다. 성숙한 겁니다.
익은 겁니다. 홍시가 아주 잘 익어갑니다.
홍시가 잘 익어가는 그것이 늙음입니다. 하하하ㅎㅎㅎㅎㅎㅎㅎ 홍시가 너무 익으면 조금 기침만 해도 그것이 깨지려고 합니다. 기침만 해도 깨집니다.
떨어뜨리면 큰일 나고요. 그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바람만 약간 불어도 그 홍시는 깨지려고 그럽니다.
老 壞가 爲 死니라. 노 괴가 죽음이다.
이렇게 보고 나니까 이것은 아주 지극히 정상적인 어떤 생의 과정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과정을 통해서 이렇게 여기까지 왔는데요. 참 평이하게, 객관적으로 이렇게 보니까 남의 일 같잖아요. 꼭 남의 ㅎㅎㅎㅎㅎㅎ 일같은 겁니다.
우리가 남의 일 보듯이 나를 봐야 됩니다.
남의 일 보듯이... 그것이 중요합니다.
남의 일 보듯이 나의 삶을 보는 것! 전부 우리의 이야기인데,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뭐 남의 이야기하는 것 같잖아요. 그렇습니다. 이 교리가 근본불교의 교리이지만 또 이런 부분들도 한편 또 재미있잖아요.
오늘 공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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