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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이 막을 내리고 2025년 기사년 뱀의해가 희망을 안고 타오르는 세모의 시간에 김제의 작은 시골마을 죽마고우 세가족이 바깥나들이 목포시티관광을 하고 왔수다.
목포는 조동화가 철도에 첫 발령을 받고 근무하였던 곳으로 김대중대통령의 고향이기도 하다.
목포에 자리잡고 사는 조동화의 친구 안재철님께서 근대역사2관을 답사하고 있는데, 찾아와 점심식사를 대접해주어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바이여.
2024년12월의 내란사태가 걱정이 되야.
내란사태의 핵심인물 충암파라고 하는데 윤석열을 우두머리로 군대를 동원하여 친위쿠테타를 일으켜 하마터면 나라가 피바다가 될뻔 했수다.
북한과 전쟁도 불사하여 쿠테타를 모의한 반역행위는 반드시 단죄해야 하지 않겠는가.
내란사범은 세계역사에서 보면 사형으로 단죄하였지요.
민초들이 국회의사당을 봉쇄하여 세계만방에 대한민국의 위대함을 보여주었다.
감사합시다.
2024-12-19 죽마고우 목포시티관광 나들이
☛목포시티투어버스 관광
▷KTX 405열차 익산 7:51-목포 9:06도착 후
▷출발 시간 및 장소 : 오전 9시 30분 목포역 앞 시티투어 승강장 출발-15:30 종료
▷목포 시티투어 코스
목포역-구 동본원사 목포별원-서산동 시화골목-보리마당-유달산 노적봉-목포근대역사관 1관-목포근대역사관 2관-점심식사-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갓바위(해상보행교)-목포자연사박물관-목포종합수산시장(희망자는 하차 가능)-목포역-목포해상케이블카
▷이용 요금 : 경노 어른 3,000원
죽마고우 데여섯 살 어린애들이 인생의 백전노장이 되어 흐르는 세월을 아쉬워 하며, 세가족이 목포시티관광을 하였다.
유서깊은 목포!
조동화가 철도에 1970년2월20일 입문하여 첫 발령을 받은곳, 유서깊은 남도의 항구도시 목포는 김대중대통령의 고향이기도 하다.
목포역 앞에서 9:30분에 시티버스에 승차, 관광해설사의 해설을 들으며 오전답사 코스는 동본원사 서산동시화골목 유달산노적봉 근대역사1관 근대역사2관으로 일제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었다.
시티관광버스는 첫번째 하차한곳이 목포역에서 100m 거리에 있는 오거리였는데 익산의 영정통처럼 70년대 가장 번화곳으로 부근에 코롬방제과점이 있는데 군산의 유명한 빵집 이성당처럼 빵을 사려는 이용객들이 줄을 선다.
시티버스는 유달산노적봉에 오르기 전 시화골목을 답사하도록 차를 세웠는데, 유달산 자락에 있는 서산동 일대는 산자락을 따라 집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그 사이로 골목이 거미줄처럼 이어져 80년대 주택의 모습이 연상되여 오랜 세월의 흔적이 삶의 애환과 향수가 깃들어 있었다. 서산동은 사람들이 정착해 마을을 이루기 전에는 넓은 보리밭이었다.
서산동시화골목을 답사후 유달산노적봉에서 목포시가지를 조망하도록 멈추어 세우고, 해발 228m의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유달산의 정기를 받도록 해 주었다.
목포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며 푸른 다도해의 경관이 시원스레 펼쳐져 있고 그 사이를 오고 가는 크고 작은 선박들의 모습이 보여 동양의 나폴리처럼 풍광이 아름다웠다.
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근대역사1관과 근대역사2관을 차례로 답사한후 점심식사를 하였다.
점심식사는 친구 안재철님이 조동화가 죽마고우들과 목포시티관광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바쁜와중에도 찾아와 반갑게 상면한후 점심식사를 같이하였는데, 미리 식대를 재철친구가 결재하여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바이여.
근대역사1관은 목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1898년 10월 목포일본영사관이 목포에 설치됨에 따라 영사관으로 지은 것이다.
근대역사2관은 과거 동양척식주식회사로서 식민지 수탈기관으로 1920년 6월에 건립되었으며 일제가 토지관리를 빙자하여 수탈을 자행했던 가슴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일제 침략 사진을 비롯하여 독립을 향한 우리 민족의 치열한 구국 운동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생생한 사진자료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오후의 시티투어 답사중 가장기억에 남는곳은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제15대 대통령이었으며 2000년에는 한반도와 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신장, 햇볕정책을 통한 남북한의 화해∙협력관계 발전 그리고 세계 평화를 위해 헌신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의 생애는 민주주의∙인권∙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삶이었다.
5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불의에 항거하며 한국 현대사 격동기의 중심에서 '행동하는 양심'의 삶을 실천했다.
또한 자신을 탄압하고 모함했던 이들과 화해하고 용서 함으로서 진정으로 용기 있는 자의 면모를 보였다.
김대중노벨평화상 기념관을 목포 삼학도에 건립하게 된 것은 김대중 대통령이 유년시절부터 정계에 입문하기 까지 활동한 곳이 목포이며 그의 철학과 신념은 목포에서 활동하며 태동되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삼학도는 목포의 역사와 전설이 살아 숨 쉬고 있으며 목포시민들의 꿈과 희망이 함께하는 곳이다.
김대중노벨평화상 기념관은 김대중 대통령의 생애를 통해 민주주의∙인권∙평화의 의미와 가치를 전하며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시티관광버스는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을 답사후 목포 갓바위로 이동하였다.
목포 갓바위는 천연기념물 제500호로 지정되었다.
목포갓바위는 해수와 담수가 만나는 영산강 하구에 위치해 풍화작용과 해식작용의 결과로 형성된 풍화혈(風化穴 tafoni)로 그 특이한 형상은 마치 삿갓을 쓴 사람과 같다.
큰 갓의 형태를 하고 있는 입암산 바위에 석양의 마지막 빛을 바위에 쏟는 정경으로 슬픈 전설의 중바위와 그 뒤를 포근히 감싸고 있는 입암산 그리고 영산강의 풍경이 한데 어우러져 아름다운 노을빛을 연출한다.
독특한 형태가 형성된 이유는 해수와 담수가 만나는 곳에 위치하여 암석 표면에 파도가 치거나 안개가 끼면 염분을 함유한 물에 젖었다가 마르기를 수없이 되풀이 하고 수분에 녹아있던 실리카성분이 침전 되면서 용해된 부분은 조직이 이완되고 강도가 낮아져 모자모양의 경질부와 아래쪽이 움푹 패인 벌집 모양의 풍화혈이 형성되었다.
또한 삿갓이 동남쪽을 향한 것은 햇볕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고 한다.
죽마고우 일행은 목포종합수산시장에서 하차하여 수산시장을 구경후 목포역으로 이동 목포역부근 1920년대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코롬방제과점에 들러 시티투어 기념으로 빵을 구입후 목포역으로 이동, ktx를 타고 익산역에 도착, 태백칼국수에서 칼국수로 저녁을 해결하고 집으로 향하였다.
죽마고우들아!
황혼의 시간에 더욱 더 건강관리 잘하시고, 여명이 밝아오는 2025년 기사년 뱀의해를 맞아 가정의 평안과 행복이 깃들기를 염원하나이다.
목포시 현황
전라남도 남서단 영산강 하구에 위치하여 동쪽과 남쪽은 영산호 (榮山湖)에 면해 영암군을 마주하고 있으며, 서쪽은 많은 도서들로 이루어진 신안군, 북쪽은 무안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6°17′∼126°26′, 북위 34°44′∼34°49′에 위치하며, 면적 51.67㎢, 인구 220,447명이다. 무안반도 남단에 위치한 목포시는 동쪽에 입암산(笠巖山, 121m), 서쪽에 유달산(儒達山, 228m), 북쪽에 양을산(陽乙山, 156m)·대박산(大朴山, 156m)·지적봉(芝積峰, 189m) 등으로 둘러 있고 남쪽은 영산강 하구에 면해 있다. 또한, 그 주위에 13개의 도서가 넓게 펼쳐져 있어 경치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자연적으로 방파제 구실을 하여 천연적인 양항의 조건을 보인다.
시가지의 서남쪽에 병풍을 둘러놓은 듯 기암절벽이 펼쳐진 유달산은 고려시대인 1351년(충정왕 3)에 봉수대가 설치된 곳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때 군량미가 쌓여 있는 것처럼 위장했다는 일명 노적봉 (露積峰)이 있으며, 영산강· 삼학도 (三鶴島)와 함께 이곳 사람들의 시정(詩情)을 돋우는 아름다운 경관을 갖추고 있다. 시가지 주변의 영산강 하구에는 연변·북항·대반동·백련동·갓바위해안 등의 간석지가 있다. 이들 간석지는 육상으로부터의 계속적인 퇴적과 바닷물의 유입횟수가 줄면서 정착하게 된 염생식물 덕분에 퇴적물의 집적과 간척이 용이해져 농경지·주택지·공장부지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 밖에도 고하도 (高下島)· 눌도 (訥島)· 달리도 (達里島) 등 6개의 유인도와 5개의 무인도를 포함하고 있다.
---목포시청홈페이지---
조동화 초년인생 목포의 추억
1970년 鐵道에 入門하여 40여년을 철도에 젊음을 불사르고, 무엇하나 만족스럽게 이룩 한 것 하나 없이 흘러간 歲月!
1970년2월20일 목포기관차사무소 기관조사 초임발령으로 사회 초년생이 되어 목포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당시 철도는 증기기관차(영국의 조지스티븐슨 1829년발명)의 운행에서 디젤전기기관차로 동력이 바뀌어가는 과정에 있었으며, 목포-광주간을 운행하는 몇 개열차는 증기기관차사업이 있었으므로 신규발령된 기관조사에게는 증기기관차승무로 지정되어 기관사1인 본무기관조사1인 보조기관조사1인 3명이서 하는 근무형태로 기관사는 운전만담당하고 기관조사는 교대하여 석탄을 투척하여 증기를 가열시켜 증기기관차가 움직이므로 석탄을 투척하는 작업이 기술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힘을 쓰는 작업이었기에 어려운 작업이었다.
증기기관차의 어려운 점은 기관차 사무소에서 가마가리(타고 남은 석탄 정리)가 가장 어려운데, 화상안(가마솥)에 있는 타고 남은 불덩어리 찌꺼기를 포카(쇠코쟁이)로 정리작업 하는 것이여.
당시 내 나이 20살 홍안의 나이였수다.
당시 세상물정은 연료가 귀하던 시절이라 삼학도 측선에서 배에 선적된 물품을 철도로 수송 하는 길목에서 석탄을 얻기 위해 자루를 들고 나온 분들이 생각이 난다.(당시 연료 사정이 안 좋아 땔감으로 쓰기 위함)
그러고 목포의 추억속에 이발소가 생각이 난다. 목포기관차사무소부근 산정동의 그 이발소는 한 달 2천원에 월부센타 이발소로서, 한 달에 수십 번을 가도 2천원으로 이발을 할수 있는곳이였지.
순천철도국 목포기관차사무소 기관조사의 사회초년생은 2년6개월의 반복되는 근무후 1972.8.29. 군에 입대, 전주 35사단에서 6주간 훈련을 마치고 후방기 교육을 춘천에서 2주간의 훈련후 강원도 인제 현리 공병부대 의무실 위생병으로 자대 배치되었다.
세월(歲月)
세월은 인생의 희,노,애,락을 가득 싣고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달렸다. 한여름 가뭄이 심하면 물대는 도랑이 깊어지듯 눈가엔 깊은 도랑이 파였으며, 눈 덮인 들판에 삐쭉 내민 빛바랜 풀잎이 되어버린 머리카락은 살짝 스치는 바람에도 낙엽처럼 떨어지고, 탐스런 복숭아를 닮아 터질 것 같던 살갗은 나무껍질이 되어가면서 소도 때려잡을 것 같던 몸과 마음은 능수버들이 바람에 흔들거리듯이 낙조로 떨어져 내리는 저녁 해를 닮아간다
사람들은 흐르는 세월을 멈춰 세우고 싶어 한다. 그러나 세월은 그 누구도 멈춰 세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세월을 멈추고 싶어 하는 욕망은 흐르는 세월만큼 따라 자란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만은 예외가 있기를 바라는 욕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람이다. 사람의 마음에는 무엇이 자라고 있을까,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멈춰 세울 수 있는 자동차처럼 세월을 멈춰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망상이 있을 것 같다. 망상은 허무함을 잉태하여 절망을 가져올 뿐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저 멀리 보이는 세상에 아버지가 앞서 걸어가신다. 철없던 어린시절 언제쯤이면 아버지처럼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아버지가 계신 그곳이 왜 그리 멀게만 느껴졌는지, 왜 그리도 가고 싶었는지 모른다. 문득 내가 어디쯤 있는지 돌아본다. 난 제자리에 멈춰 있었던 것 같은데 아버지가 걷던 그 곳을 내가 걷고 있었다. 세월은 쏜살같이 달려 나를 아버지가 있던 자리로 데리고 왔지만, 아버지는 그 곳에 계시지 않았다. 아버지는 어린시절 그때만큼이나 저 멀리 떨어져 걸어가고 계실 거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게 서러워 슬픔에 빠져 든다. 바람처럼 스쳐지나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살아있는 그날까지 깨닫고 후회하며 사는 것이 사람인가,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가는데 강물에 떠있는 사람들은 그 자리에 멈춰 있고 싶어 아우성이다. 그 것이 일장춘몽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멈추려 하지 않는 욕심이 애처롭기 그지없다.
이제는 아버지가 걸어가는 그 길에 가지 않을 수는 없을까, 지금 이 자리에 머물 수는 없을까, 지금 이대로라도 멈춰있고 싶은 욕망이 세상을 덮어보지만, 자석에 끌려가는 쇠붙이가 되어 아버지의 뒤를 따라 가고 있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버지가 있던 자리에 와 있는 것을, 무슨 시샘으로 흐르는 세월을 훔쳐내려 했는지, 알다가도 모르는 것이 ‘인생’인 것 같다. 세월은 잠시 쉬어갈 틈도 없이 세상사를 만들고, 새로운 세상사는 以前의 세상사를 밀어간다. 밀려가지 않으려는 어리석음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알면서도 잠시라도 쉬어 가고 싶은 것이 人之常情이다. 흐르는 세월이 무심하다는 말이 귀전을 맴 돌때쯤에는 이미 늦어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세월은 그 누구도 기다려 주지 않는다.
내가 어릴 때 서있던 자리는 이제 자식의 차지가 되었다. 내 자식들도 내가 어렸을 때 그랬던 것처럼 내가 서 있는 이곳을 동경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나도 무작정 가고 싶어 했으니 당연하리라, 내 자식들은 아마 지금 내가 있는 이 곳이 그 냥 가만히 있어도, 가기 싫어도 가야한다는 것을 아직은 모르리라.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내 자식들은 나보다 더 현명한 판단을 가지고 세월과 함께 친구처럼 살면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가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세월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시간을 주고, 누구에게나 낮 가림이 없이 공평하며,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주지 않는 다는 것을, 좀더 일찍 깨우쳐 현명한 삶을 살아 주었으면, 세월은 주인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늪이 되기도, 무지개 꽃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
아버지의 자식이, 자식의 자손이 수레바퀴처럼 굴러가는 것이 순리라면, 세월은 그 순리를 지켜가는 것이다. 어떤 일을 하든지, 어느 자리에 있든지 아무런 상관없이 공평하게 대해주는 세월을 사람들이 닮았으면 좋겠다. 어렵고 슬픈 일이 있더라도 세월을 소중하게 여기고 아껴주면 희망이 된다는 것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 세상을 살면서 사람들은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세월을 잊고 사는 것 같아 안타깝다. 우리가 정녕 잊어 버려야 할 것은 세월을 탓하는 이기심이 아닐까, 세상일이 지나고 나면 후회만 남는다는 말이 있지만, 그 것은 세월을 아끼지 않은 탓일 것이다. 시간이 ‘금’이라고 하지 않는가, 시간이 흘러 세월이 되는 만큼 ‘금’보다 더 소중하게 아끼면서 최선을 다해 가꾸고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하늘을 품에 안고 세상을 내달리면
뉘라서 그 앞에서 세상사 탓을 할까
내 허물 감추려고 뜬눈을 감지마세
오늘이 슬프다고 꿈마저 버린다면
내일의 희망 또한 물거품 되고 마니
언제나 꿈을 찾아 인생을 걸어보세
세월이 흐르면 누구나 할 것 없이 흙으로 돌아가리라, 결국에는 흙이 되고 마는 삶을 살면서도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자. 세월을 시간으로 쪼개 쓰는 사람들아, 부른 배를 채우려고 남의 것을 탐하는, 남이야 죽든 말든 나만 살려는, 남 잘되면 삿대질 해대는 더럽고 추한 마음을 버리자.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날 울면서 후회한 들 이미 때는 늦으리라. 세월을 탓하며 시간을 허비하기보다는 미래를 꿈꾸며 살자, 꿈을 위해 노력하다보면 꿈은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세월은 지금 이 순간에도 쉬지 않고 흐른다.
《삶의 보람과 즐거움》
두 눈이 있어
아름다움을 볼 수 있고
두 귀가 있어
감미로운 음악을 들을 수 있고
두 손이 있어
부드러움을 만질 수 있으며
두발이 있어
자유스럽게 가고픈 곳 어디든 갈수 있고
가슴이 있어
기쁨과 슬픔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일이 있으면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날 필요로 하는 곳이 있고
내가 갈 곳이 있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하루하루 삶의 여정에서
돌아오면 내 한 몸
쉴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을
날 반겨주는
소중한 이들이 기다린 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내가 누리는 것을 생각합니다
아침에 보는
햇살에 기분을 맑게 하며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에서 마음이 밝아질 수 있으니
길을 걷다가도
향기로운 꽃들에게 내 눈 반짝이네
한 줄의 글귀에 감명 받으며
우연히 듣는 음악에
지난 추억을 회상 할 수 있으며
위로의 한마디에
우울한 기분을 가벼히 할 수 있으며
보여 주는 마음에
내 마음도 설레 일수 있다는 것을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누리는 행복을 생각합니다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건강한 모습으로 뜨거운 가슴으로
이 아름다운 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오늘도 감사 하다는 것을…..
오늘이라는 좋은 날에…
좋은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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