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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올인하는 국정원에 파문 일으킨 기조실장 사퇴 사건
-문재인이 칭찬한 국정원 홀연히 버리고 떠난 신현수 기조실장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국가안보실과 국정원․통일부․대통령 비서실 등이 움직이고 있다. 이중 가장 바빠진 곳은 방대한 대북 조직을 가진 국정원이다. 서열로 보면 국가안보실과 대통령 비서실이 높겠지만, 둘은 손발이 없다. 따라서 한반도 문제는 서훈 국정원장이 일구고, 조명균 통일부장관이 씨를 뿌리려는 구도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을 실현하는 ‘최대의 엔진’ 국정원에서 ‘핵심 부품’이 빠져 나가는 일이 있었다. 국정원의 2인자인 신현수 기조실장이 중차대한 시국인 8월 말 자진 사퇴한 것. 물론 새 부품(신임 기조실장에 이석수 변호사)을 끼우면 언제 그랬냐는 듯 엔진은 돌아가겠지만, 핵심이 ‘스스로 빠져나간’ 것은 가벼이 볼 일이 아니다.
전직 국정원장 투옥 부른 기조실장 증언
검사 출신인 그는 노무현 정부 시절 문재인 민정수석을 보필하는 사정비서관을 지냈다. 19대 대선에서는 문재인 후보 선대위 법률지원단장을 했다. 따라서 문 정부 출범기 안경환 법무장관 후보자가 낙마하자 법무장관 후보와 민정수석 후보로 거론되다가, 국정원 기조실장에 임명됐다. 기조실장은 두 자리보다는 낮지만, 국정원이 대통령 직속기관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만만찮은 요직이다.
그런 자리를 사퇴했으니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어 사방으로 알아보았다. 그가 기조실장으로 있을 때 박근혜 정부에서 국정원장을 한 세 사람(남재준․이병기․이병호)이 국정원 특수활동비(특활비)의 청와대 상납 등으로 투옥됐다. 3인 기소의 단초가 된 특활비 상납은 그의 전임자인 이헌수씨의 진술에서 나왔다. 정권이 바뀌면 전직 국정원장은 더러 기소됐지만 기조실장은 그런 경우가 없었었는데, 이씨는 우연찮게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유일한 예외가 김영삼 정부 시절 김현철씨의 정치자금을 숨겨주고 세탁한 혐의로 투옥된 김기섭 전 안기부 기조실장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때의 검찰은 그를 상대로 안기부 본연의 임무와 관련된 돈 흐름은 조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씨는 국정원이 오랫동안 해온 돈의 용처와 관련해 투옥됐다. 최순실씨 사건 불똥이 ‘쓰리 큐션’으로 그에게 튄 것이 화근이었다.
최씨 사건을 조사한 검찰은 장충기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사장급)을 뇌물 공여혐의로 조사했는데, 이 과정에서 그가 이헌수 기조실장을 만난 것을 알았다. 2015년 국회 메르스 특위는 메르스사태 대처에 미흡했던 삼성서울병원을 조사한 후 감사원에 정부와 삼성서울병원을 감사해 달라는 청구를 했는데, 그때 장 차장이 이 실장을 만난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 주고받은 문자를 확보했는데, 거기에 이 실장이 장 차장에게 좌파단체 시위에 맞서는 보수단체에 대한 지원을 부탁한다는 것이 많았다. 그로 인해 박근혜 정부가 보수단체들을 지원했다는 이른바 ‘화이트 리스트 사건’이 만들어졌다. 때문에 이 전실장도 조사받게 됐는데, 검찰은 그로부터 청와대 실세인 3인방에게 국정원 특활비를 전달했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상당수의 국정원 관계자들은 이 특활비를 ‘청와대 돈’으로 지목한다. 청와대는 격려금이나 금일봉처럼 영수증 없이 집행해야 하는 돈을 많이 필요로 하는데, 그러한 돈을 국정감사까지 받아야 하는 청와대 예산으로 편성해 둘 수가 없다. 따라서 대통령 직속기관인 국정원에 영수증 제출을 필요로 하지 않는 특활비 중에 넣어두고 필요시 가져다 쓴다는 것이다. 청와대의 요청이 있으면 국정원장과 기조실장은 ‘무조건’ 지출을 승인한다.
이헌수, 2014년 사퇴했다면…
이러한 관례는 이 전실장을 조사한 검찰도 하고 있다. 법무부도 국정감사를 받기에 영수증 없이 써야 하는 돈을 편성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수사와 정보활동을 하는 검찰은 영수증 없이 쓸 수 있는 특활비를 제법 편성할 수 있다. 때문에 법무부는 필요한 자금의 일부를 검찰 특활비로 묻어놓고 필요시 가져다 쓰고 있다.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국회도 특활비를 만들어 사용해왔다. 그렇다면 검찰은 국정원의 특활비의 성격을 알만도 한데, 이를 국정원장이 청와대에 제공한 뇌물로 보고 그와 전직 국정원장 3인을 기소해 버렸다.
이 전실장과 관련해 가장 안타까운 일은 2014년 그가 사퇴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이 전실장은 공채로 들어온 정통 국정원맨이다. 강원지부장을 끝으로 퇴직한 그는 ‘앨스앤스톤’이란 기업의 대표를 하고 있다가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자 기조실장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만 61세가 된 2014년 ‘법적 정년을 넘겼으니 그만하겠다’는 뜻을 표시했는데 청와대의 만류로 주저앉았다가, 박근혜 정부와 운명을 같이 하게 되었다.
문재인 정부는 서울중앙지검을 고검급에서 지검급으로 낮춰가며 윤석열씨를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한 데서 알 수 있듯이, 검찰을 통해 기관을 장악해 갔다. 국정원은 기밀누설 방지를 중요한 일로 여기기에, 감찰실의 힘이 매우 강력하다. 감찰실을 잡으면 국정원을 잡을 수 있다고 할 정도다. 문 정부는 국정원 감찰실장에 학생운동 경력이 있는 조남관 서울고검 검사를 파견했다. 조 감찰실장의 동생은 전교조에서 활동해왔다.
그리고 남북대화 경험이 많은 서훈씨를 원장에 임명해 국정원을 개혁하게 했다. 서 원장은 국정원 공채 출신인지라 국정원 사정을 잘 안다. 그는 기물 누설을 막기 위해 국정원장이 위원장, 민정수석이 부위원장, 그리고 국정원 간부를 위원으로 한 개혁위를 만들어 3주 정도 운영한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청와대가 단호히 거부해 버렸다. 청와대는 외부인을 위원장으로 한 국정원개혁발전위(국개발)를 만들라고 요구했다.
그래서 서 원장이 요청하는 형식으로 ‘한국 반공주의 부침의 역사’ 등 현대한국정치사를 연구해온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를 위원장으로 하고 민변 출신인 이석봉 변호사 등을 위원으로 한 13명의 자문기구인 국개발을 만들었다. 서 원장은 국개발에 참여하지 못하고 신현수 기조실장과 김준환 2차장만 참여했다. 그러나 신 실장은 그때 처음 국정원에 왔으니 유일한 국정원 대표는 김 차장이었다. 그런데 김 차장도 국정원의 중추인 7급 공채 출신은 아니었다. 행정고시(5급) 합격 후 국정원에 들어와 25년을 보낸 사람이다.
자문기구인 국개발과 별도로 만든 것이 국정원 내부 조직인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였다. 검사 신분으로 파견된 조남관 감찰실장이 대표를 한 이 TF는 3명의 검사와 24명의 국정원 직원으로 3개 팀 6개 조로 편성됐다. 이 TF에 참여한 검사는 국정원장 법률보좌관으로 이미 국정원에 파견돼 있던 이정수․김락현 검사와 추가로 파견된 김태은 검사였다. 이 TF가 국개발과 함께 국정원을 바꾸는 근거를 찾는 실질적인 사령부가 되었다.
국개발은 국정원의 문제를 살펴볼 과제부터 선정하려고 했다. 국정원이 제시한 과제는 12개였다. 국정원 감시네트워크라는 민간 조직이 제시한 것은 14개였는데, 마침 11개가 같았다. 국정원은 세월호 부문은 과제로 제시하지 않았는데, 민간조직은 세월호 관련으로 두 건을 제시했다. 베이징의 유경식당 탈북 여종업원 건은 정보사가 한 것이고 이들의 출국을 허용한 중국과의 외교문제가 있어 국정원은 선정하지 않았는데, 국정원 감시네트워크는 삽입한 차이가 있었다.
결국 민간조직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14개가 확정되고 이어 봉은사의 명진스님 건을 추가해 15개 과제를 조사하기로 했다. 조사는 적폐청산 TF가 키워드를 정해 보내면 국정원 전산실이 그 키워드가 들어간 문서들의 리스트를 보내주는 것으로 시작됐다. 간략한 요약이 담긴 리스트를 보고 국개발의 자문을 받은 TF가 봐야할 것을 선정해 보내면, 국정원 전산실이 원문을 PDF로 뽑아 보내주는 식이었다.
국개발 보고서는 사장(死藏)되는 것인가
이러한 식으로 15개 주제에 대한 국정원의 의심 행동을 살펴본 국개발은 국정원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를 논의했다. 그런데 조사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국가정보 활동에 대한 이해가 많아져, 일부 위원들의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국개발을 결성할 때만 해도 국내정치 개입을 막기 위해 국정원을 해외정보조사처로 바꾸자는 주장이 강했다.
그런데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은 국내와 해외로 나뉜 정보조직을 합치기 위해 DNI(국가정보국)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고 만만찮은 반대 의견이 나왔다. 국개발은 6개월을 가동하고 보고서를 제출하며 해산했다. 이 보고서에는 국내정보는 경찰에 넘기고 국정원은 북한과 해외에 전력하게 해야 한다는 방안 등이 올라가 있었다. 그러나 국정원은 국회가 국정원법을 개정해줘야 바뀔 수 있는데, 여당은 국정원법 개정안을 통과시킬 노력을 하고 있지 않다. 국정원법 개정을 통한 개혁을 하지 못하면, 국개발의 노력을 ‘결국’ 헛일이 되고 만다.
그러나 국정원은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변화는 했다. 국내 정보부서를 없애는 등 두 차례 조직 개편을 하고 국내분야 직원을 해외와 북한, 대테러 분야 등으로 재배치했다. 외부 전문가를 영입하고 여성 부서장도 처음 임명했다. 이러한 인사를 국정원이 단독으로 해냈다고 보면 오산이다. 국정원 인사는 민정수석실이 재검증해 상당히 바꾼 다음 이뤄졌다.
국정원의 이러한 개편과 동시에 추진된 4․27 판문점남북정상회담 등이다. 서 원장이 이끄는 국정원은 이 회담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그래서인지 조직과 인사를 바꾸는 개혁만 했을 뿐인 국정원을 7월 20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방문해, “국정원이 '적폐의 본산'에서 국민을 위한 정보기관으로 거듭났다”고 치하하는 일이 벌어졌다.
문 대통령은 “국정원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 정권에 충성할 것을 요구하지 않겠다.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을 확실하게 보장하겠다”라고도 강조했다. 이러한 국정원의 회생과 비교되는 것이 대통령령으로 설립된 기무사의 운명이다. 기무사는 장영달 전 의원이 이끄는 개혁위의 조사가 있은 후 바로 대개편을 맞았다. 그러나 개혁위의 보고서대로 개혁은 하지 않았다.
기무사는 설립근거가 대통령령이니 대통령령을 개정하면 개혁위 권고대로 쉽게 개편할 수 있는데도 무시한 것이다. 안보지원사로 이름을 바꾸고 원대 복귀시켰던 요원들을 검증해 다시 받아들이는 인적 개혁만 주로 했기에 ‘도로 기무사’라는 지적을 받았다. 쉽게 말하면 문 정부는 국정원과 기무사 임무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 ‘내 사람으로 채우는’ 물갈이만 한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정보맨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최고 지도가가 원하는 정보는 역시 해외보다는 국내가 많다. 최고 지도자를 뽑아주는 것은 국민이기 때문이다. 정보를 사용하는 최고 지도자의 관심이 국내에 있기에 정보기관도 국내에 편중한 것인데, 그것을 부인하고 해외 정보만 하겠다고 하면 최고 지도자는 결국 자가당착에 걸린다. 요란한 개혁을 한 듯이 해놓고 도로 제 자리를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그런 이유로 국정원이 정치의 시녀가 된다면 이렇게 설명했다.
“노태우 정부 때까지 청와대는 안기부의 국실장 인사에 전혀 개입하지 못했다. 청와대 참모진보다는 안기부장이 훨씬 대통령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민정부부터는 민정수석실이 각 기관이 보내준 인사자료를 토대로 다시 검증을 했다. 국정원은 정보활동을 하기에 ‘살아 있는’ 인사 검증을 한다. 그러나 청와대는 국정원 내부를 잘 알지 못하니 죽은 검증을 한다. 어느 한 자료에 그가 전 정권의 누구와 가깝다는 표현이 있으면 비토를 놓아 버리는 식이다. 그런데 그것을 국정원장이 막아내지 못하니, 국정원은 자꾸 청와대의 눈치를 보게 된다. 가장 심했던 것이 박근혜 정부였는데, 문재인 정부도 만만치 않았다.”
국정원 특활비는 제대로 지출되고 있는가
그는 “청와대가 최종 인사권을 행사한다는 것을 안 일부 직원들은 청와대 실세와 선을 대기 위해 노력한다. 실세는 그러한 이를 통해 국정원 사정을 파악할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관계가 만들어진다. 박근혜 정부 때 우병우 당시 민정수석과 추모 직원이 사적(私的) 라인을 가졌던 것은 그런 이유다”라고 한 후, “세월호 사건 때 국정원은 국내 문제라 개입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위기에 몰린 청와대는 ‘대통령 직속기관인 국정원이 왜 가만히 있느냐’며 해결책을 찾을 것을 요구했다. 이러한 압박은 사적 라인이 있을 때 강해지는데 이는 청와대가 국정원 인사에 개입함으로써 만들어진다. 국정원의 국내정치 개입을 만드는 것을 결국은 청와대다”라는 설명을 추가했다.
국정원 출신의 모 인사는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올인하는 국정원의 활동 자체가 바로 국내문제 개입을 초래한다”라고 진단했다. 그는 “국정원의 국내 활동을 묶어 놓고 남북관계 개선에 올인케 하는 것은 모순이다. 남북관계를 개선하려면 기업들이 활발하게 북한과 접촉해야 하는데, 통일부는 기업을 움직일 수단이 없다. 산자부도 할 방법이 없다. 때문에 지금처럼 청와대가 독려하는 모양새가 됐는데, 그렇게 할 수는 없으니 세월호 때처럼 ‘만능 해결사’인 국정원을 동원하려고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국정원의 국내 개입을 부른다는 것을 왜 이 정부는 모르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과 대화를 하려면 돈이 들어가는데, 그 돈을 국회가 다 들여다보는 통일부 예산으로 확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문정부의 대북사업은 지난해 준비된 것이 아니니 통일부는 그러한 예산을 편성하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국정원 예비비나 특활비 등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한 돈을 집행을 승인하는 것이 기조실장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문 정부는 이헌수 전 기조실장을 기소했지만 국정원 특활비에 대한 개편은 하지 않았다. 지금 남북관계는 청와대가 국정원을 활용해 주도하고 있다. 국정원은 청와대에 맞춰주고 있는 것인데 이것이 박근혜 정부에 맞춰준 과거의 국정원과 크게 다르다고 할 수는 없다. 이렇게 보는 이들이 많을 때 신현수 실장이 자진 사퇴를 했다.
그는 전임자를 의식한 듯 지인들에게 ‘60세 정년이 3개월 남았기에 미리 정년을 합니다’라는 요지의 인사를 올렸다고 한다. 그러나 국정원 측은 다른 설명을 한다. 그에게는 아픈 가족사가 있는데, 이제는 가족에게 충실하기 위해 그만두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사직 후 부인과 함께 자녀가 있는 미국으로 ‘홀연히’ 떠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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