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의 고백
김숙영
내가 먼저 저수지에 말 걸지 않았는데 저수지가 자꾸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물안개를 피우면서 스멀스멀 다가와도 내 발은 그저 시처럼 호응했을 뿐이다 먼저 나를 홀렸다 홀린 입술이 몽롱한 기억을 펼치면 두 발은 한사코 맹목적으로 간사했고 아홉 개의 꼬리는 여우처럼 다정했다 그러나 한 번도 젖지 않았다 유혹을 알고 있는 것은 나를 따라온 검은 개 하나뿐이었다
개의 꼬리의 방향이 위아래 좌우뿐이라고 여겼는데 언제나 저수지 쪽이었다
안개가 없는 날엔 고추잠자리를 잡으러 저수지를 맴돌았다 낮엔 저수지의 거대한 입이 느껴졌고 명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도 나는 쉽게 빠지지 않았다 몇 바퀴를 돌았는지 셀 필요가 없었다 억새와 뱀과 들쥐와 버려진 고양이가 각주처럼 달라붙었다
목소리는 추임새처럼 물결을 탔고 무릎의 감각은 한 뼘씩 진행형으로 바뀌었다
흔한 참회를 나는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주문을 외우는 자가 귀신이 되어 나타나더라도 혼자가 된 일요일을 들키지 않았다 그저 높은 철탑의 피뢰침까지 닿을 것 같던 나의 속삭임은 이 세상에 없는 것들을 향한 불가능한 우화에 지나지 않았다
맑은 날이든 흐린 날이든 저수지의 깊이는 늘 솔직했다
독백의 농도가 끝까지 들쑥날쑥했고 발목을 가두라는 소리만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목줄을 잡은 손을 격렬하게 뿌리치려는 검은 개와 아주 잠깐 두 눈이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