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ainshtine
 
 
 
카페 게시글
기본 자료실 스크랩 한국 최초의 성경전래지
ainshtine 추천 0 조회 82 17.07.15 23:1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충청남도 서천군 마량진 포구...

 

 

 

 

충남 서천군 서면 마량리.

마량진포구...

 

 

순조실록(純祖實錄) 권 19(조선왕조실록 제 48권)에 순조 16년

(丙子年, 1816) 7월 19일(음) 병인조의 충청수사 이재홍(李載弘)의 장계에

 ‘其左右上下層閤問無數書冊中 渠又 拈出二卷 一卷給縣監 一卷級僉使’

글이 있다.

이 내용은 ‘마량진(馬梁津) 갈곳 밑에 이양선 두 척이 표류해 있었는데

마량진 첨사 조대복과 지방관 비인 현감 이승렬(李升烈)이 그 배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배에 있던 무수한 책중에서 각각 책 한권씩을 선물

받았다’는 뜻이다.

---------------------------------------------------------

영국 정부로부터 조선의 서해안 일대 해도를 작성하라는 명령을 받은

영국 군함 리라(Lyra)호의 함장 바실 홀(Basil Hall)과 머리 맥스웰

(Murry Maxwell) 대령이 이끄는 알세스트(Alceste)호가 1816년 8월29일 산동반도를 출발하여 9월 4일 비인만 마량진 갈곶에 정박하여 마량진

첨사 조대복의 문정을 받았다.(후에 문정의 내용이 영국인들의 기록으로

 남겨짐)

그리고 다음날 9월5일 현감 이승렬이 영국 군의관으로부터 서양식 진찰을 받았다(눈 혀 검사, 손목 진맥, 청진기로 가슴진찰, 진찰대 위에 눕혀 배 등 서양의사의 면밀한 진찰) 또한 리라호를 실측, 승무원의 총수 조사, 함포사격 시범관람, 식사초대 등을 받았다. 그러나 영국인들의 상륙에 대해서는 조대복이 목을 베는 시늉을 하며 반대를 하여 성사되지 않았다.

 바실 홀의 기록에 의하면 ‘조대복은 영국인들의 친절에 안도하면서 배에 있는 서적들을 구경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주는 선물을 모두 거절했으나 배가 출발하기 직전에 맥스웰 함장이 건네 준 대형 성경책은 거절하지 못하고 받았다.’는 것이다. 이 기록은 알세스트호에 승선했던 군의관 맥레오드(John Mcleod)의 항해기와 1818년 영국 런던에서 출판된 류큐항해기에도 실려 있다. 영국인들의 기록에서 첨사의 높은 문화적 소양에 대해 “그렇게도 색다른 인종의 습관을 잘 소화해 나가는 그 우아하고 자연스러운 태도는 정말 놀랄 만했다.  더구나 그가 지금까지 우리들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으리라 생각할 때에 그의 그 훌륭한 태도는 그 사회에 있어서의 그의 지위를 짐작케 할 뿐 아니라, 우리와 전혀 다른 환경에 놓여 있는 그 사회의 문화 정도가 무시하지 못하리만큼 높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는 연구심이 매우 왕성하여 사용법을 알지 못하는 것이 있으면 애써서 실험해 보고 성공하게 되면 아주 통쾌하게 웃어댔다. 그는 결코 터무니없이 놀라거나 과도한 찬사를 하는 일이 없고 세계 어느 곳에 갖다 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한 훌륭한 교양과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찬사를 하였다.

 

출처 : 충남 서천군과 서천군 연합회에서 주최한 마량진 한국최초성경전래지에 관한 4차례의 세미나 자료집에서

 

2003,10,14일(화) 오후2시 충남 서천 군민회관 강당에서 서천 "마량진"한국최초 성경전래지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서천 마량진 한국최초 성경 전래지 고증 세미나 및 선언식"을 갖었다.

이날 위원장 천현길은 대회사 를 통해
본 대회를 개최하게 된 취지는 한국역사학자이며 한국교회사학자 들의 심도있는 고증과 토론을 통해서 역사적, 학술적 의의와 가치를 담보하고자 하는 바이다.

그동안 독일선교사 귀출라프가 충남 보령시 고대도에 상륙해 성경을 전했던 1832년 보다 16년이나 빠른 시기라는점에서 귀한 역사적 의의가 있다고 생각된다.
사료에 의하면 알세스트(Alceste)호에 승선했던 군의관 맥레오드(John Mcleod)의 항해기에 "1816년 9월 5일 조선첨사 조대복(趙大福)이 알세스트호에 올라 중앙정부의 명령을 전하면서 선실을 둘러봤다." 그때 선실 서가의 수많은 책 중 유달리 크고 아름다운 성서를 뽑아 이리저리 뒤적거렸다고 했다. 그 후 맥스웰(Murry Maxwell)함장은 조대복 첨사가 하선할때, 그 성서를 선물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이 1818년 영국 런던에서 출판된 조선 류큐항해기에도 실렸있고, 또한 CD-ROM국역조선왕조실록 에 의하면 조선 순조 병인 7월 19일 충청수사 이재홍의 장계에, 마량진(馬梁津) 갈곳 밑에 이양선 두 척이 표류해 있었는데 마량진 첨사 조대복과 지방관 비인 현감 이승렬(李升烈)이 그 배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각각 책 한권씩을 선물 받았다. 는 기록이 들어있다.

그러나 이 역사적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거나 그 뜻이 전해지지 못해서 안타까워 하던중에 금번 세미나를 통해 서천 "마량진" 이 한국 최초 "성경전래지"로 고증됨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선포한다.

이 글은
서천 "마량진 학국최초 성경전래지"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대회사 를 통해 발표한 내용이다

 

한국최초 성경전래지

 

한국최초 성경전래지

 

한국최초 성경전래지

 

한국최초 성경전래지

 

한국최초 성경전래지 (마량포구)
"아름다운 포구와 우리나라 최초 성경의 전래지가 있는 어촌마을" 우리나라 최초의 성경전래지이자 서해안 유일의 해돋이 해짐이를 볼 수 있는 마량포구는 주변에 마량리 동백나무 숲과 해양박물관등이 위치하고 있으며, 매년 해돋이 축제에는 10만 이상의 인파가 몰려드는 서해안의 정동진이다. 또한 마량포구의 해짐이는 서해 어느곳에서 본 해짐이보다 아름다우며 화려하다. 마량포구는 매년 해돋이 해짐이 축제, 자연상 광어축제 등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이축제 기간에도 20만 이상의 인파가 이곳을 찾아들고 있다.

* 한국 성경 전래와 그 의의
1. 영국 함선의 마량진(馬梁鎭) 도래와 기독교적·문화적 의의
영국 함선의 마량진 도래와 성경 전수 : 순조(純祖)실록 권 19 [국사편찬위원회 편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제 48권], 순조 16(丙子, 1816년)년 7월 19일 병인(丙寅)조에는 충청수사(忠淸水使) 이재홍(李載弘)이 충청도 마량진 갈곶 밑에 이양선 2척이 표류해 온 일을, 다음과 같이 장계로서 보고하고 있다. 1816년 9월 4일과 5일(음 7월18일과19일), 영국의 함선Alceste호(함장 Murry Maxwell)와 Lyra호(함장 Basil Hall)가 비인현 마량진 앞 갈곶에 도착했다. 이 배는 이 해 영국 정보가 중국파견하는 사신 암허스트(J.win.Am-herst)를 태우고 중국에 도착, 이들 일행을 광동에 내려놓고 대기하는 동안 본국 훈련에 따라 조선의 서해안일대를 탐험하면서 해도를 작성하는 중이었다. 이들 두척의 배가 마량진에 도착했을 때 마량진 첨사 조대복(趙大福)과 비인현감 이승렬(李升烈)이 문정(問情)차 두 배에 승선, 검사하고 모두 세 권의 책과 몇 건의 문서를 받았는데 그 받은 책이 다름 아닌 성경이었다. 부연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9월 4일에는 노대관 한 사람[조대복]이 몇몇 종자를 거느리고 리라호와 알세스트호를 차례로 문정하였고, 그 이튿날에는 새벽부터 어제의 그 노대관[조대복]과 친구 [이승렬]이 문정했는데 이날 그들은 선실에서 서가에 가득한 책들과 지구의 천구의 등을 보면서 신기한 태도를 보였다. 이승렬은 아담하게 정리된 서가를 보면서 그 중 책한권을 뽑아 갖기를 원했는데 그것이 바로 대영백과사전 전질 중의 한 권이어서 주지 못하고 그 대신 다른책 한 권을 주었는데 그것이 성경이었다는 것이다. 해도 작성을 끝낸 이들이 출항하려 할때 첨사 조대복은 며칠 더 기다리면 조정의 답신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리라호가 이미 출발했기 때문에 알세스트의 함장 맥스웰은 더 기다릴 수가 없었다. 아쉬워하는 첨사에게 맥스웰은 책 한권을 선물로 남기고 떠났는데, 그것도 성경이었다. 조대복은 아무런 선물도 받지 않으려 했을 뿐만 아니라 이 책[성경]을 주려 했을 때 거절했다. 그러나 선실을 떠날 때 맥스웰이 다시 권했더니 사양하지 않고 감사한 표정으로 받았다고 한다. 첨사에게 성경을 준 장면에 관해 영국측 기록에는 “그는 어떠한 선물도 받으려 하지 않았지마는 우리의 친절에 무척 기뻐하고 어느 정도 속이 풀렸다. 우리가 성경을 그에게 주었더니 감사한 모양으로 받아 가지고 퍽 우정적인 작별을 고하였다. (한국최초성경유입기념사업회 발기인대회, <성경유입참고문헌>참고)”고 했다. 그러나 충청수사 이재홍의 장계는 그 표정이 다르다. 두 기록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조선측 자료는 충청수사 이재홍 이 두 사람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보이는 것이 책 세 권에 약간의 문서가 있었다고 한듯하다. 그러나 영국측 자료는 두 권의 성경을 당시 조대복과 이승렬에게 각각 준 것만 밝히고 있다. 당시 영어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조선측이 자기들이 받은 것이 성경인 것을 알지 못했지만 영국측 기록에 의해 이 때 받은 것이 성경임을 알게 되었다.

2. 마량진 성경전수의 역사적인 위치
1816년 9월 마량진에 일시 정박한 영국함선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성경을 전해주고 갔다. 그 성경의 전수가 한국사 및 한국기독교사에서 갖고 있는 역사적인 위치는 어떤 것일까? 이 점은 한국에 기독교의 전래와도 어느정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마량진 사건 이전에 한국에 성경이 전래되었을 가능성과 실제로 남겨진 기록의 유무에 대해 살펴보았다. 마량진사건 이전에 성경이 한국에 전래되었을 가능성을 전혀 배제한다는 것을 불가능하지만, 그렇다고 성경이 소개되었다는 내용이 기록으로 남겨진 것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따라서 현재까지의 연구나 기록의 발견으로 봐서, 마량진 사건은 기록으로 확인된, 한국 최초의 성경전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최초의 이 성경 전수 사건은 그 뒤에 복음전파의 열매를 맺는 과정으로 연결되어 갔는가 하는 점이 확인되지 않기 때문에 ‘최초의 성경전수’에 값하는 영예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며, 다만 단회적인 역사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을 뿐이다.

3. 성경 전수와 한국 기독교의 출발
19세기에 들어서서 몇 차례에 걸쳐 유럽 계통의 개신교 선교사가 한국을 찾았다. 1832년 충남 홍주만의 원산도를 찾은 독일인 칼 귀츨라프 목사와, 1865년과 그 이듬해에 한국에 왔다가 죽임을 당한 영국인 토마스 목사가 그 좋은 예다. 귀츨라프는 1831년 이듬해 충남 홍성군 고대도에 상륙하여 조선 조정에 교육을 청하였다가 거절당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한역성경을 민들에게 나뉘주며 기독교를 전파하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감자 심는법과 포도 재배법을 가르쳐 준 뒤, 약 1개월만에 마카오로 돌아갔는데 이 때의 항해경험을《Journal of three voyages along the coast of China in 1831, 1832 and 1833》으로 남겼다. 그가 한역성경을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은 중국에는 이미 모리슨이 와서 성경을 한문으로 번역 출판했었기 때문이다. 토마스 목사는 대원군의 쇄국정책과 천주교박해 정책이 추진되고 있을 때 두 차례나 한국을 방문, 이 땅에서 피를 흘린 영국 선교사다. 그는 런던선교회의 파송을 받아 중국 상해로 왔으나 그의 아내 케럴라인의 죽음과 상해주재선교책임자 무어헤드와의 불화로 런던 선교회를 사임, 잠시 해관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그 뒤 스코틀란드 성서공회 윌리암슨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1985년 9월 13일 한국에 와서 2개월 반 동안 중국 성경을 나뉘주고 복음을 전했으며 그 이듬해 1866년 8월 16일에는 미국상선 제너럴셔먼호에 승선, 향도 자격으로 평양에 들어왔으나 9월2일 27세의 나이로 대동강가에서 피를 흘렸다. 그는 최후의 순간에 그가 가져온 한문성경을 한국인에게 전했다고 한다. 그가 한국에 왔을 때엔 중국에서는 이미 모리슨 역 성경과 문리 역 성경 등 몇종류의 번역성경이 있었다. 그가 죽음에 앞서 남긴 성경이 그 뒤 선교사의 도래 후에 그 자손들에 의해 선교사 마펫과의 접촉을 가능하게 했다는 전언이 있다.

한국의 개신교사가 시작되는 것은 일반적으로 1885년 4월 5일 부활 주일에 한국에 입국한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등 복음선교사들에 의해서라고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서양의 복음 선교사가 도래하기 전에 성경이 한국어로 먼저 번영되고 번영된 성경이 용감한 한국인 선배 신자들에 의해 한반도 안으로 전래되어 개종의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다는것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역사는 먼저 만주 지역을 통해 일어났다. 만주지역과 관련해서는 스코틀랜드 연합 장로교회 소속의 선교사였던 로스 목사와 매킨타이어 목사를 잊을 수 없다. 그 중 로스는 처음부터 만주의 우장·영구로 들어왔고 그 뒤에 봉천으로 옮겨 선교활동을 펴면서 한국에 복음을 전할 기회를 갖고자 동만주의 한만국경지대를 순례하기도 했다. 뒤에 매킨타이어와 합류한 그는 1870년대 중반에 만주에 왔던 이응찬 백홍준 서상륜등 한국인 청년들을 만나 한국어를 교습받은 한편 한글성경 번역에 동참시켰다. 이어서 1879년에는 네 사람의 의주청년이 세례를 받게 되었으며, 그 뒤 1882년에는 성경번역과 출판에 참여한 김청송과 서상륜도 로스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187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성경번역 사업은 1882년 3월에는 누가복음서가, 5월에는 요한복음서가, 그 이듬해에는 사도행전이 각기 출판되었다. 한국어로 번역 출판된 최초의 성경이었다. 한국 기독교가 세계 선교사상 유례없는 성장과 발전을 하게 된 데에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생각된다. 바로 그런 역사에 마량진 성경 전수사건은 비록 묻혀 있어 큰빛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거름이 되고 한알의 밀알이 되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성경전래지 조감도

 

지도

 

영국함선 항해도

 

아펜젤러 추모비 제막식

 

아펜젤러 추모비 제막식, 서천앞바다


아펜젤러 선교사의 순직 장소가 그동안 알려졌던 군산 앞바다가 아니라 서천 앞바다에 있는 오세이도라 불리던 어청도 부근이라는 최근 교회사가들의 주장에 근거해 2006.6 아펜젤러 순직 104주년을 추모하며 감리교 충청연회 주관하고 서천군기독교연합회와 서천군이 공동으로 진행 중인 한국최초 성경전래지 성역화 사업의 일환으로 추모비 제막식이 있었다. 마량진에서 48Km 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어청도는 1914년 이전에는 행정경계상 충청남도에 속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최초 성경전래 190주년


지금으로부터 꼭 190년 전 순조 16년 1816년 9월 5일, 당시 중국을 거쳐 조선의 서해안 일대를 탐험하며 해도를 작성하던 영국 함선 알세스트호(맥스웰 함장)와 리라호(바실 홀 함장)가 마량진에 닻을 내리고 정박한 곳이 바로 '마량진 갈곶'(현재 충남 서천군 서명 마량리).  이들이 해안에 정박해 있을 때, 마량진 첨사 조대복과 비인현감 이승렬이 중앙의 명령으로 찾아가 의사소통을 시도하던 과정에서, 두 배의 함장인 맥스웰과 바실 홀이 조대복에게 전달한 책이 우리나라 최초의 성경이었던 것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지난 5일 성경이 전래된 지 190년만에 마량리에서 '한국최초 성경전래 190주년 기념예배'를 드리게 된 것이다. 또한 예배후 2부순서로 서천군기독교연합회는 한국 최초 성경전래지 기념관 건립 부지매입의 빠른 추진 등을 위해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업무 협약식을 맺었다. 황대근 목사(서천군 마량진 한국 최초 성경전래지 기념사업위원회 대표회장)의 사회로 진행된 1부 예배는 한상명 목사(실무회장)의 기도, 함필주 목사(기획위원장)의 경과보고, 나소열 서천군수와 이상만 의원의 축사, 윤여생 목사(공동회장)의 축도 순으로 진행되었다. 최희범 목사(한국기독교총연합회 총무)는 설교에서 "여러분이 성경전래지 성역화 사업을 위해 한국교회 뿐 아니라 세계교회를 향해서 엄청난 일을 한 지 3년이 되었다"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최선을 다해, 업무협약식을 계기로 더불어 함께 홍보하는 일에 전력하자"고 소감을 밝혔다. 또한 "마량진이 한국교회 역사에서 중요한 지역으로 떠오르는 날이 속히 이루어지며, 세계교회가 주목할 수 있는 놀라운 역사가 속히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고 기도했다. 나소열 군수(서천군수)는 대독한 축사에서 "우리 군의 입장에서 문화유산의 계승은 물론 관광지로서의 가치를 더욱 높이기 위해서 성역화 사업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라며, "지금은 작은 한 알의 밀알이지만 남다른 열정과 내실있는 활동을 통해서 우리 군의 마량진이 유서깊은 기독교의 중심지로서 자리매김 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이 자리의 계신 모든 분들의 전폭적인 성원과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기대했다. 2부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서천군기독교연합회 업무 협약식'을 가졌다. 박종순 목사(한기총 대표회장)를 대신하여 참석한 최희범 목사(한기총 총무)와 윤여생 목사(서기연 공동회장)는 업무 협약서에 사인하여 교환함으로 이후 성역화 사업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한국교회의 동참을 주도할 예정이다.


한국기독교 역사상 제1호 문화재 탄생 예정


 2002년 경 유승광 공주고 교사가 조선왕조실록을 뒤지다 우연히 마량진에서 책을 받았다는 부분을 발견하고 성경이 아니냐는 의견을 군청에 전달했다. 이후 서천군은 관련 기록(조선왕조실록, 멕레오드의 '극동항해기', 홀의 '조선 류큐 항해기')을 찾아내어 이같은 사실을 교계와 학계에 알리는 한편 연극으로 재현하는 등 주변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했다. 서천군은 2003년 4월 충남도와 문화관공부에 공식 브리핑을 실시하는 한편, 5월에는 각급 기관과 사회단체 종교단체가 참여하는 '마량진한국최초 성경전래지 성역화사업회'를 발족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후 <마량진 한국최초 성경전래지 성역화사업회 발족(2003. 5. 서천군민회관)> <제1차 마량진한국최초 성경전래지 고증세미나(2003. 7. 도둔감리교회)> <제2차 마량진한국최초 성경전래지 학술세미나 및 선언식(2003. 10. 서천군민회관)> <제3차 마량진한국최초 성경전래지 학술 심포지움(2004. 9. 서울 새문안교회)> <한영 문화교류 학술 세미나(2005. 9. 서천군민회관)> <사업설명회 및 기자간담회(2006. 2.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관)>에 이어, <마량진한국최초 성경전래190주년 기념예배'(2006. 9. 성경전래지 현장)>를 가지게 되었다. 그동안 한국최초 성경전래가 독일의 귀츠라프 선교사에 의해 보령 고대도에 상륙해 성경을 전했던 1832년보다 16년 앞선 것으로 1816년 9월 5일 마량진에 한국최초 성경전래가 되었음이 학계에 의해 고증된 것이다. 이러한 연구결과에 따라 '마량진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의하고, 서천군 서면 마량리 산 16-3번지 7,200여평의 대지에 494평 규모의 종교문화박물관과 722평 규모의 한영 문화교류 기념관, 부대시설로 조각공원, 상징탑, 문화광장 등이 들어설 예정이며 최초 성경전래지를 통한 역사교육의 장 조성과 내외국인 즐겨 찾는 관광지, 기존 관광자원과 연계한 역사문화관광벨트 조성 등으로 개발되게 된다. 이에 따라 기본계획 용역 수립, 문화재 지정, 사전 환경성 검토, 문화재 지표조사 등을 거쳐 실시설계를 통해 성지 조성 사업을 마칠 계획이다. 이를 위한 건축 예산액 190억원은 서천군과 충청남도와 문화관광부가 지원할 예정이며, 부지 매입에 필요한 40억원은 기독교계가 담당하기로 하였다. 부지 매입비 40억원 중 기독교대한감리회가 아펜젤러선교사 순직지 기념관 건립을 조건으로 10억원, 예장합동 통합 각각 5억원, 기장 기성 예장정통 대신 순복음 각각 4억, 예장합보 개혁 3억, 침례교 예성 2억 등의 비용이 배당되었다.


 한국최초 성경전래지에 감리교회 최초 선교사 아펜젤러 기념관 건립 예정


서천 마량리 앞바다는 한국 최초 성경전래지일 뿐만 아니라, 한국 감리교회 최초 선교사의 순직한 해역이기도 하다. 한국 최초 감리교회 선교사로 성경번역을 위해 인천에서 목포로 가던 중 어청도 부근(마량진에서 48Km 거리)에서 순직한 아펜젤러 선교사(1858-1902년) 기념관도 함께 성경전래지에 건립된다. 지난 6월 9일 충청연회(현상규 감독) 주관으로 충남 서천군 마량리에 아펜젤러 선교사의 순직 104주년 기념 추모비가 세워졌다. 기념비 제막은 한국최초 성경전래지 성역화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한상명 목사(서천제일감리교회, 성역화사업회 실무회장)는 "한국 기독교 최초 문화재로서 공인된 한국최초 성경전래지에 세워지는 아펜젤러 기념관 건립은 국가적으로 큰 의의가 있다"며, "한국을 위해 전 생애를 바친 아펜젤러 선교사의 희생이 부각되고 재조명되고 있는 상황에서, 감리교회가 앞장 서서 성역화사업을 위해 사명감을 가지고 적극 참여해 주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마량리 해변에 앉아 출렁이는 파도소리와 함께 들려주는 갈매기 소리... 아펜젤러 선교사의 아름다운 사랑의 순교 이야기를 전하려는 듯.  한국최초 성경전래지에서 성경번역을 위해 항해하다 조난당한 배에서 함께 승선한 교인들을 살리기 위해 순교한 아펜젤러 선교사, 그의 삶 자체가 성경 말씀을 실천했던 진정한 순교자였음을 보여주는 듯 하다

 

 

마량진 한국최초 성경전래지 성역화 사업 조감도        (출처- 홈피  http://www.smbible.net/index.php

 

한국최초 성경전래지에 감리교회 최초 선교사 아펜젤러 기념관 건립 예정

 

위치        서천군 서면 마량리 산 16-3 임야일원 7,200평, 2007-2011 5년 계획, 사업비 195억원 (토지구입비 40억원은 헌금으로, 건축비 약 190억원은 군, 도비에서 지원)

주요시설    종교문화박물관, 한영문화교류기념홀, 아펜젤러기념홀, 명상의 집, 야외조각공원, 주차장 등


서천 마량리 앞바다는 한국 최초 성경전래지일 뿐만 아니라, 한국 감리교회 최초 선교사의 순직한 해역이기도 하다. 한국 최초 감리교회 선교사로 성경번역을 위해 인천에서 목포로 가던 중 어청도 부근(마량진에서 48Km 거리)에서 순직한 아펜젤러 선교사(1858-1902년) 기념관도 함께 성경전래지에 건립된다. 지난 6월 9일 충청연회(현상규 감독) 주관으로 충남 서천군 마량리에 아펜젤러 선교사의 순직 104주년 기념 추모비가 세워졌다. 기념비 제막은 한국최초 성경전래지 성역화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한상명 목사(서천제일감리교회, 성역화사업회 실무회장)는 "한국 기독교 최초 문화재로서 공인된 한국최초 성경전래지에 세워지는 아펜젤러 기념관 건립은 국가적으로 큰 의의가 있다"며, "한국을 위해 전 생애를 바친 아펜젤러 선교사의 희생이 부각되고 재조명되고 있는 상황에서, 감리교회가 앞장 서서 성역화사업을 위해 사명감을 가지고 적극 참여해 주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마량리 해변에 앉아 출렁이는 파도소리와 함께 들려주는 갈매기 소리... 아펜젤러 선교사의 아름다운 사랑의 순교 이야기를 전하려는 듯.  한국최초 성경전래지에서 성경번역을 위해 항해하다 조난당한 배에서 함께 승선한 교인들을 살리기 위해 순교한 아펜젤러 선교사, 그의 삶 자체가 성경 말씀을 실천했던 진정한 순교자였음을 보여주는 듯 하다. 

(글 출처- 기독교타임즈, 조충원 충청 연회기자) 

마량진 한국최초 성경전래지 성역화 사업 조감도  

 

2007년 현재 기념비

 

임시사무실

 

임시사무실

 

 

기념비

 

기념비

 

한국기독교 역사상 제1호 문화재 탄생 예정


 2002년 경 유승광 공주고 교사가 조선왕조실록을 뒤지다 우연히 마량진에서 책을 받았다는 부분을 발견하고 성경이 아니냐는 의견을 군청에 전달했다. 이후 서천군은 관련 기록(조선왕조실록, 멕레오드의 '극동항해기', 홀의 '조선 류큐 항해기')을 찾아내어 이같은 사실을 교계와 학계에 알리는 한편 연극으로 재현하는 등 주변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했다. 서천군은 2003년 4월 충남도와 문화관공부에 공식 브리핑을 실시하는 한편, 5월에는 각급 기관과 사회단체 종교단체가 참여하는 '마량진한국최초 성경전래지 성역화사업회'를 발족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후 <마량진 한국최초 성경전래지 성역화사업회 발족(2003. 5. 서천군민회관)> <제1차 마량진한국최초 성경전래지 고증세미나(2003. 7. 도둔감리교회)> <제2차 마량진한국최초 성경전래지 학술세미나 및 선언식(2003. 10. 서천군민회관)> <제3차 마량진한국최초 성경전래지 학술 심포지움(2004. 9. 서울 새문안교회)> <한영 문화교류 학술 세미나(2005. 9. 서천군민회관)> <사업설명회 및 기자간담회(2006. 2.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관)>에 이어, <마량진한국최초 성경전래190주년 기념예배'(2006. 9. 성경전래지 현장)>를 가지게 되었다. 그동안 한국최초 성경전래가 독일의 귀츠라프 선교사에 의해 보령 고대도에 상륙해 성경을 전했던 1832년보다 16년 앞선 것으로 1816년 9월 5일 마량진에 한국최초 성경전래가 되었음이 학계에 의해 고증된 것이다. 이러한 연구결과에 따라 '마량진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의하고, 서천군 서면 마량리 산 16-3번지 7,200여평의 대지에 494평 규모의 종교문화박물관과 722평 규모의 한영 문화교류 기념관, 부대시설로 조각공원, 상징탑, 문화광장 등이 들어설 예정이며 최초 성경전래지를 통한 역사교육의 장 조성과 내외국인 즐겨 찾는 관광지, 기존 관광자원과 연계한 역사문화관광벨트 조성 등으로 개발되게 된다. 이에 따라 기본계획 용역 수립, 문화재 지정, 사전 환경성 검토, 문화재 지표조사 등을 거쳐 실시설계를 통해 성지 조성 사업을 마칠 계획이다. 이를 위한 건축 예산액 190억원은 서천군과 충청남도와 문화관광부가 지원할 예정이며, 부지 매입에 필요한 40억원은 기독교계가 담당하기로 하였다. 부지 매입비 40억원 중 기독교대한감리회가 아펜젤러선교사 순직지 기념관 건립을 조건으로 10억원, 예장합동 통합 각각 5억원, 기장 기성 예장정통 대신 순복음 각각 4억, 예장합보 개혁 3억, 침례교 예성 2억 등의 비용이 배당되었다.

 

한국최초성경전래지 기념비

 

한국 최초 성경전래 190주년


지금으로부터 꼭 190년 전 순조 16년 1816년 9월 5일, 당시 중국을 거쳐 조선의 서해안 일대를 탐험하며 해도를 작성하던 영국 함선 알세스트호(맥스웰 함장)와 리라호(바실 홀 함장)가 마량진에 닻을 내리고 정박한 곳이 바로 '마량진 갈곶'(현재 충남 서천군 서명 마량리).  이들이 해안에 정박해 있을 때, 마량진 첨사 조대복과 비인현감 이승렬이 중앙의 명령으로 찾아가 의사소통을 시도하던 과정에서, 두 배의 함장인 맥스웰과 바실 홀이 조대복에게 전달한 책이 우리나라 최초의 성경이었던 것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지난 5일 성경이 전래된 지 190년만에 마량리에서 '한국최초 성경전래 190주년 기념예배'를 드리게 된 것이다. 또한 예배후 2부순서로 서천군기독교연합회는 한국 최초 성경전래지 기념관 건립 부지매입의 빠른 추진 등을 위해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업무 협약식을 맺었다. 황대근 목사(서천군 마량진 한국 최초 성경전래지 기념사업위원회 대표회장)의 사회로 진행된 1부 예배는 한상명 목사(실무회장)의 기도, 함필주 목사(기획위원장)의 경과보고, 나소열 서천군수와 이상만 의원의 축사, 윤여생 목사(공동회장)의 축도 순으로 진행되었다. 최희범 목사(한국기독교총연합회 총무)는 설교에서 "여러분이 성경전래지 성역화 사업을 위해 한국교회 뿐 아니라 세계교회를 향해서 엄청난 일을 한 지 3년이 되었다"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최선을 다해, 업무협약식을 계기로 더불어 함께 홍보하는 일에 전력하자"고 소감을 밝혔다. 또한 "마량진이 한국교회 역사에서 중요한 지역으로 떠오르는 날이 속히 이루어지며, 세계교회가 주목할 수 있는 놀라운 역사가 속히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고 기도했다. 나소열 군수(서천군수)는 대독한 축사에서 "우리 군의 입장에서 문화유산의 계승은 물론 관광지로서의 가치를 더욱 높이기 위해서 성역화 사업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라며, "지금은 작은 한 알의 밀알이지만 남다른 열정과 내실있는 활동을 통해서 우리 군의 마량진이 유서깊은 기독교의 중심지로서 자리매김 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이 자리의 계신 모든 분들의 전폭적인 성원과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기대했다. 2부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서천군기독교연합회 업무 협약식'을 가졌다. 박종순 목사(한기총 대표회장)를 대신하여 참석한 최희범 목사(한기총 총무)와 윤여생 목사(서기연 공동회장)는 업무 협약서에 사인하여 교환함으로 이후 성역화 사업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한국교회의 동참을 주도할 예정이다.

 

기념비 내용 

 

한국 측 기록   (순조실록 권19, 조선왕조실록 제 48권) - 순조 16년 7월19일 병인조의 충청수사 이재홍의 징계 기록

영국 측 기록   (1818년 출간된 "한국 서해안 항해기")

전해진 성경    (1611년 초판 킹 제임스 역본으로 추정) 

 

영국함선 항해도, 바실 홀의 항해일지에 언급된 서면 마량리 일대 항해도

 

성경 전래 상상화

성경 전래 상상화

 

아펜젤러 목사 추모비

 

추모비 앞면 

 

추모비 뒷면

 

추모비 뒷면

 

아펜젤러 추모비 제막식

 

아펜젤러 추모비 제막식, 서천앞바다


아펜젤러 선교사의 순직 장소가 그동안 알려졌던 군산 앞바다가 아니라 서천 앞바다에 있는 오세이도라 불리던 어청도 부근이라는 최근 교회사가들의 주장에 근거해 2006.6 아펜젤러 순직 104주년을 추모하며 감리교 충청연회 주관하고 서천군기독교연합회와 서천군이 공동으로 진행 중인 한국최초 성경전래지 성역화 사업의 일환으로 추모비 제막식이 있었다. 마량진에서 48Km 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어청도는 1914년 이전에는 행정경계상 충청남도에 속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마량진 모습

 

현재 마량진 모습 

 

성역화 사업회 홍보물

 

성역화 사업회 홍보물

 

성역화 사업회 홍보물

 

성역화 사업회 홍보물  

 

성역화 사업회 홍보물  

 

초청 설명회 순서지

초청 설명회 순서지

 

지도

 

<가는길>

 

서해안고속도로 춘장대 IC 에서 서면 마량리 방향 해양박물관, 동백섬 방향 지나 마량진까지 끝까지 가면 나온다.  041-951-9339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