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여쭤보고 다니다보니 백회인지 백혜인지 백해인지 백기인지 정확한 명칭을 알 수 없는 요리는 원래는 두부 요리가 아닌 흰색 요리였는데, 두부 요리로 바뀐 것이 아닌가 합니다. 아흔이 넘으신 분과 예순이 넘은 분의 할머니께서 만드셨던 음식은 찹쌀로 쑨 죽과 같은 형태였다고 하시는데 이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시면 그랬더라 라는 글이라도 꼭 답글을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명칭은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으면 진도의 말처럼 발음대로 사용하였으니 다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궁금한 것 중 하나는 그 찹쌀로 쑨 죽을 왜 메 앞에 올렸는가? 하는 것입니다. 일상의 밥상에서 식사 후에 숭늉을 올리는 것처럼, 식전에 속을 풀어주느라 풀태죽이라 하신 쌀죽을 먹기도 했었나요? 아니면 죽이 밥상에 꼭 올리는 음식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이야기를 들은 지역은 고군면과 의신면입니다. 의신면의 어떤 지역에서는 두부요리는 탕으로 올렸다고 하며, 어떤 집안에서는 백기나 백혜 등의 이름을 가진 음식은 모른다고도 합니다. 지역적으로 다른 것인지 집안에 따라 다른지, 아직 조사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제가 모르는 것이 이뿐이겠습니까마는 진도 안에서도 마을 간, 집안 간 차이가 적지 않았고, 그나마도 세월에 따른 변화가 큰 것 같습니다.
첫댓글 우선 진도 생활문화에 관심 많으심에 고맙십니다.
그랑께 말(言語)이란 것언 생성, 유용, 변화, 소멸 및 전승에 단계가 기본 바탕이지라.
그케 인류가 서로의 소통을 위해 맨들아지고 씀시로 편의상 바까짐시로 남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는 것이 말이란 것이지라
야튼 그 가운데서 발음도 편하고 소통도 잘되는 쪽이로 부단히 빈한단 것이 말에 속성이구만이다봉께 그 전제 아래 백기럴 발음상 백해, 백혜, 백회... 라고도 했음은 1960년대까장 진도에가 분명하게 있었든 현실이어람짜
어뜬 발음이 기본이었는지넌 일단 암도 몰룬 것이고 풀어사라 할 숙제고
그 전제 아래 지가 아넌
‘(찹쌀로) 쑨 죽과 같은 형태’넌
진도가
우선 ‘밈’이 있는데 이는 아주 묽은 ‘미음’이었고 쌀이나 좁쌀로 물이 풍덩하니 밀가게 쑤는 것이 밈이지라.
그라고 ‘풀태죽’이란 것이 있었구만이라
'숭년잉께 보릿가리로 풀태죽 쒀가꼬 끄니나 떼리고 살지라.'
풀태죽이라 하므는 묽은죽. 보릿가루나 밀가루로 묽게 쑨 죽을 진도서 그케덜 말했어람짜.
그랑께 죽보담은 더 묽우고 밈보담은 더 되직한 것이 풀태죽이었지라.
그라다믄 풀태죽 가운데서 보리풀태죽이나 좁쌀풀태죽은 색자가 있잉께 해당이 없겄고
쌀이나 찹쌀 풀태죽이 흐칸 백색잉께 백해? 백혜? 백회?...
요건 또 잔 더 풀어봐사라 씰 문제겄제만 그당시 일반적 진도 명칭은 ‘풀태죽’이었구만이라.
그라고
또 푸새럴 하등가 짐치 당글 찍에 씰라고 아주 밀가게 쑤는 풀은 진도서도 내나 풀이라고 해가꼬 요것도 쌀가리나 밀가리가 있으믄 고걸로 쑤제만 글 안하믄 걍 쌀로 묽우게 쒀가꼬 명베 차두에다 옇고 뽀락뽀락 주물러가꼬 그 묽우고 흐칸 풀물로 푸새럴 했었어라.
※ 푸새1 「명사」 옷 따위에 풀을 먹이는 일.
햐튼 진도서 해먹든 뚜부 요리인데 대개 백기라고 했제만 백해, 백혜, 백회라고 발음하기도 했든
그 음석은 뚜부탕(素湯)인데 일반적이로 소탕엔 괴기붙이가 안 들어 가넌 것이 원칙이제만
진도서넌 그와 딸리 꼭 댜지괴기나 꿀(石花, 굴)얼 옇고 물이 잔 자작자작하게 맨들아가꼬 지사상이나 멩절상에다 안 빶고 꼭 올리든 필수 상채림 요리였었지라.
야튼 흐칸 풀태죽에다 흰 白자럴 여가꼬 그케 불렀능가넌 잔 더 너룹게 고증을 통해가꼬 풀어 봐사라 씰 숙제같어람짜.
수고가 많압니다.
존 결과물 찾어내시길 응원합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명칭은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으면 진도의 말처럼 발음대로 사용하였으니 다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궁금한 것 중 하나는 그 찹쌀로 쑨 죽을 왜 메 앞에 올렸는가? 하는 것입니다.
일상의 밥상에서 식사 후에 숭늉을 올리는 것처럼, 식전에 속을 풀어주느라 풀태죽이라 하신 쌀죽을 먹기도 했었나요?
아니면 죽이 밥상에 꼭 올리는 음식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찹쌀죽 쒀가꼬 메 앞에 올렜단 풍습은 저로선 금시초문이구만이라
영기님 제보자 두 분 봤다는 지역이 어느 면 언뜬 동리인지... 거그 지역 일부만에 풍습인지
그 부분은 잔 더 고증하고 규명해 볼 일이구만이라
진도의 일반적 지사(祭祀)에서 삽시정저 뒤에 숭냉(熟冷, 熟水)을 가져다 메에서 한 숟꾸락 떠낸 밥알들을 걱다가 몰아가꼬(말아서) 올리고 지사럴 끝내넌 의식은 일종에 헌다(獻茶) 형식이로 그케덜 했제만 찹쌀죽 쒀가꼬 지삿상에 올렜단 야긴 저로선 첨 들응께라
또 숭년(凶年)에 죽이나 풀태죽이나 밈은 지끔에 디저트 개념이 아니라 절실한 연명 수단이었지라
보릿고개 때 밥을 못항께 죽, 죽도 못쑤믄 풀태죽인데 구황식물덜 잔뜩 옇고 죽쒀가꼬 살라고 그케 먹었지라
'똥구녁 찢에지게 가난하다'란 말도 쑥이나 송쿠(松肌)같은 걸로 죽을 쒀
맨당 그렁 것만 먹다봉께 변비로 그케 똥구녁이 찢어질 것 같어징께 나온말이지라
지끔에 오만 물자 푸진 환경이 아니라
숭년에 풀태죽은 어런은 배곯아 죽고 아그덜언 배터져 죽는다고
그케 입 한나 덜자고 '입맛없다'라 하심시로 곡기 끊고 스스로 길을 떠나신 선조님덜도 많아셨든 그 절실했든 환경이 바탕이었음도 눈여겨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야기를 들은 지역은 고군면과 의신면입니다.
의신면의 어떤 지역에서는 두부요리는 탕으로 올렸다고 하며,
어떤 집안에서는 백기나 백혜 등의 이름을 가진 음식은 모른다고도 합니다.
지역적으로 다른 것인지 집안에 따라 다른지, 아직 조사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제가 모르는 것이 이뿐이겠습니까마는
진도 안에서도 마을 간, 집안 간 차이가 적지 않았고, 그나마도 세월에 따른 변화가 큰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