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좀 심하긴 하지만 햇살은 봄날 수준입니다. 밤새 불어댄 바람덕에 대기는 더할 나위없이 청명한데, 햇살이 화창하니 움직이는 반경 곳곳에 한라산 정상이 눈 앞에서 어른댑니다. 굳이 제주도다운 곳을 찾아가지 않아도 자주 목격하는 한라산 모습때문에 요즘 눈은 호강이고 마음은 설레임입니다.
휴대폰 카메라가지고는 그 벅찬 풍경을 다 담아낼 수가 없지만 매일 수산한못에서 바라다보는 이 전경이야말로 하루 일과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오전시간의 힐링타임입니다. 태균이와 준이 주간복지센터 등원 첫날, 바쁘게 아이들 태우고 가던 길에도 이 풍경을 외면한다면 그건 자연에 대한 예의가 아닌 듯 합니다.
주간활동센터는 표선중앙로에 있다보니 방향이 서남쪽이라 한참 한라산을 바라보며 달리게 됩니다. 엄마의 감탄사를 함께 느껴주려는 태균이도 연실 손가락질! 뭐든 엄마와 공감해주려는 태균이가 90%는 그 실제내용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고맙게 느껴집니다.
주간활동센터의 첫날, 정신없이 두 녀석을 집어넣으니 군말없이 선생님 따라서 들어가 버립니다. 18명이 총 인원인데 3반으로 나누어 진행한다 하니 그다지 나쁜 것 같지 않습니다. 원생들에게 가능하면 강요하지 않고 스스로 센터내 활동에 적응하도록 배려한다고 하니 여기도 행동문제가 있는 경우 입소자체를 제한하는 듯 합니다.
녀석들과 헤어져 지난 주 입소를 위해 시행한 건강검진 결과 받으러 표선 시골병원으로 달려가니 여전히 병원은 도떼기시장판! 정리에 꽤 취약한 저조차도 좀 정리해 주고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니 설치되어 있는 의료도구나 장비, 대기석, 곳곳의 인테리어 등등 세월의 때와 촌스러움이 배어있습니다. 의사방에 꽂혀있는 의료서적조차 어째 그리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지.
무심하고 무뚝뚝한 의사가 건강검진 확인서 작업을 하면서 '힘들지요?'라고 물어봅니다. 물론 대답을 들을 자세는 아니죠. 발달장애 청년을 그것도 둘이나 키운다니 잠시 생각은 들었겠지요. 그래도 태균이 소변과 혈액에서 나온 당뇨와 혈뇨 소견은 지적해줍니다. 그렇게 입소용 건강검진 결과를 받고는 다시 집으로 와서 잠시 쉬다가 택배포장하고 우체국가고... 의외로 하루가 바쁩니다.
다시 주간활동센터에 가서 중도에 태균이만 데리고 제주대학 병원으로 출발. 준이는 집에까지 데려다준다하니 활동끝나고 오기로 하는데, 첫날이라 두 녀석의 그 곳 센터에서의 적응하기 과정을 알려줍니다. 역시 아니야, 싫어로 일관한 준이. 가능하면 원생들의 의사에 따른다는 정책이 있어 아니야 싫어를 고지곧대로 믿어버리면 안되기에 준이의 반응대로 할 필요는 없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제대로 의사소통은 안되는데 몇 가지 언어는 구사하는 것은 이런 오해의 소지를 가져오게 합니다. 이렇게 발달장애 성년을 대상으로 하는 기관에서도 언어에 의존한 지도방식을 해나가는 측면이 있어서, 준이같은 경우 행동으로 지도해 줄 것을 부탁드렸습니다. 특히 준이는 언어를 통해 하려면 무조건 싫어! 아니야!를 남발하기에 의사를 존중해버리면 아무 것도 해 줄 것이 없습니다. 물론 본인이 스스로 하는 것도 없으니 돌봐주는 사람이 주도성을 가져야만 합니다. 차츰 센터도 이런 점을 터득해가겠지요.
태균이는 점심식사 후 바로 양치질을 하겠다고 해서 그게 문제였나봅니다. 아마 그 센터는 점심먹고 교사들이 휴식시간을 가진 후 점심 후 활동시작하기 전에 양치질 시간을 갖는 모양입니다. 몇 번 그렇게 반복되면 태균이는 잘 적응하리라 생각되는데 두 녀석 모두 극히 점심식사를 거의 먹지않았다 합니다. 예상은 했지만 선생님들이 심히 우려할만한 적은 양이었나 봅니다.
태균이는 이상하리만큼 기관에서 제공되는 식사는 형식만 차릴 뿐 거의 손대지 않습니다. 오랜 자기만의 규칙이라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근데 준이까지 그랬다는 것은 아침식사가 과했고 제주도에 와서 하루 두끼가 상습화되다보니 12시 점심은 부담이 된 듯 합니다. 아침식사량을 줄여보아야 되겠습니다.
첫날 적응에 관한 상담을 마치고 부리나케 달려간 제주병원. 일단 서울대병원에 비해 붐비지않고 검사며 지료가 거의 기다림없이 진행되니 이 점은 너무 좋습니다. X레이하며 소변검사 등등 검진을 위해 이곳저곳 거쳐보니 시설도 서울대 못지않게 넓고 좋습니다. 원래 4시반 예약이었는데 일찍 접수했더니 3시 40분 정도에 의사면담도 당겨지고...
병원대기가 이렇게 한가하니 다소 놀라움을 금치못하겠는데... 더 고마왔던 것은 담당의사의 친절함과 상세한 설명. 기껏 1-2분만에 끝나던 서울대 병원 진료에 비하면 놀라울만한 상황입니다. CT사진까지 함께 봐가며 상세한 설명과 우려점, 그리고 환자의 이야기와 의견까지 들어주는 여유로운 병원진료를 해본 적이 있는지?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거의 10분을 진료한 듯 합니다.
암튼 상황은 중하고 급격히 생성되고있는 요산과 이미 신장을 망기뜨리고 있는 배출안되는 요산덩어리들을 어찌 처리할 것인가는 우선 서울대 수술기록을 받아서 살핀 후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처음으로 상세히 CT사진을 보며 설명을 들으니 그 심각성이 또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그래도 해결해 나가야지 어쩌겠습니까?
다음주 월요일까지 서울대자료를 가지고 다시 의논하자는 결론을 내고 돌아가는 길, 준이가 집에 잘 왔나 마음이 쓰입니다. 다행히 진료시간도 앞당겨졌었고 서둘러 달려왔더니 오히려 우리가 먼저 도착해서 준이를 맞이했는데... 준이가 울었답니다. 엄마도 태균이형도 보이질 않으니 나름 겁이 났었나 봅니다. 늘 무심한 듯 해도 자기의 보호막은 의식되었나 봅니다. 늘 시키는대로 수동적으로 움직이기에 별 걱정 안했는데 이제 소외감정에 대한 두려움도 느껴지는지... 다행입니다.
종일 차에서만 보낸 완이는 별 활동없이 집에 도착하자 와락 울어버리고... 다른 건 몰라도 차에 타고 나가면 활동도 하고 그리고 싫컷 먹고... 이런 과정이 너무 좋은데 그게 없었으니 차 안에서 몇 가지 먹기는 했지만 무척 섭섭했나 봅니다. 미안하다, 내일부터는 단 둘이서 산에도 가고 만보도 걷자... 새끼손가락걸며 사과하고 다짐하자 비록 새끼손가락만 펴는 것은 하지 못해도 손은 살며시 내밀어 줍니다.
요즘 소근육 작동에 대해 관심이 무척 높아졌습니다. 아직 포인팅도 안되지만 하자고하면 손을 맡기며 만들어달라고 합니다. 바이바이할 때 손흔들기도 안되니 하자고 하면 자기손을 맡깁니다. 하려고하는 의지가 생긴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고, 이제 잠시잠시이지만 혼자두어도 별 말썽없이 잘 기다려줍니다. 무작정 뛰쳐나가고 충동적으로 해대던 돌발행동들이 놀라울 정도로 차분해졌습니다.
악을 써가며 돌발적이고 충동적인 행동에 대한 부정반응을 억세게 했더니 나름 생각하는 힘이 많이 생긴 듯 합니다. 화요일부터는 형들이 주간활동센터에 있는 동안 열심히 둘만의 활동을 해주어야 되겠습니다. 얼마남지않은 기간, 완이의 성장에 보탬이 될 활동에 최선을 보태야 되겠지요... 바쁜 하루였네요.
완이 저녁보충제까지 다 먹이고 이제 잠자리에 들 시간, 요산관련 자료를 폭풍검색해 봅니다. 아무도 확답할 수 없는 문제지만 요산배출을 억제하는 신장의 상태가 된 이유 그리고 급속한 요산들의 형성... 가장 가능성있는 해답은 장기복용한 이뇨제와 혈압약의 결합된 부작용일 수 있다는 것이 자료에 나옵니다. 이뇨제가 신장의 미세한 필터링세포를 힘들게 하는 것은 맞는 듯 합니다.
일단 제주대학 병원은 잦은 검진과 진료가 가능할 듯 하니 이 점을 충분히 활용해서 현재의 심부전 관련 약물 중단과 현재의 신장문제와의 연관성을 찾아가봐야 되겠습니다. 이뇨제와 혈압약의 동시복용 햇수가 길기는 했으니 가능성의 무게가 큰만큼 또다른 도전과제를 태균이가 남겨줍니다. 잘 이겨낼 것이라 생각됩니다.
첫댓글 아고 넘 걱정됩니다. 전 설대병원이 진료 검사 기록지를 빠짐 없이 신속히 보내주지 않음 어쩌나 그런 걱정부터 듭니다. 부디 제대병원이 태균씨와 합이 맞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네요. 내분비 내과 여의사님 한 분 똑부러진 분도 계시긴 하더라요.
준이 울음, 완이 울음 모두 넘 친숙하고 둘 다 그림이 겪은거라 공감 되고 짠합니다.
아무쪼록 모든 일이 잘 진행되길 빌 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