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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1월 2일 금요일
[(백)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바실리오 성인은 330년 무렵 소아시아의 카파도키아 지방 카이사리아의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은수 생활을 하기도 한 바실리오는 학문과 덕행에서 뛰어났다. 370년 무렵 카이사리아의 주교가 된 그는 특히 이단 아리우스파에 맞서 싸웠다. 바실리오 주교는 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그 가운데 『수도 규칙』은 오늘날까지도 동방 교회의 많은 수도자가 참고하며 따르고 있다. 성인은 379년 무렵 세상을 떠났다.
그레고리오 성인 또한 330년 무렵 바실리오 성인과 같은 지역의 나지안조 근처에서 태어났다. 그는 동료 바실리오를 따라 은수 생활을 하다가 381년 무렵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주교가 되었다. 그레고리오 주교도 바실리오 주교처럼 교리와 설교에 탁월하여 ‘신학자’라고 불렸다. 성인은 390년 무렵 세상을 떠났다.
말씀의 초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고백하며, 처음부터 들은 것을 간직하여 아드님과 아버지 안에 머무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제1독서). 사람들이 요한에게 누구인지 물었을 때 요한은 자신이 메시아가 아니라고 분명히 밝힌다(복음).
제1독서
<여러분은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2,22-28
사랑하는 여러분,
22 누가 거짓말쟁이입니까?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아버지와 아드님을 부인하는 자가 곧 ‘그리스도의 적’입니다.
23 아드님을 부인하는 자는
아무도 아버지를 모시고 있지 않습니다.
아드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이라야 아버지도 모십니다.
24 여러분은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면,
여러분도 아드님과 아버지 안에 머무르게 될 것입니다.
25 이것이 그분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 곧 영원한 생명입니다.
26 나는 여러분을 속이는 자들과 관련하여 이 글을 씁니다.
27 그러나 여러분은 그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고
지금도 그 상태를 보존하고 있으므로,
누가 여러분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기름부으심으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십니다.
기름부음은 진실하고 거짓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 가르침대로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28 그러니 이제 자녀 여러분,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그래야 그분께서 나타나실 때에 우리가 확신을 가질 수 있고,
그분의 재림 때에 그분 앞에서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그리스도는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9-28
19 요한의 증언은 이러하다.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었을 때, 20 요한은 서슴지 않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하고 고백한 것이다.
21 그들이 “그러면 누구란 말이오? 엘리야요?” 하고 묻자,
요한은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그 예언자요?” 하고 물어도 다시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2 그래서 그들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우리가 대답을 해야 하오.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오?”
23 요한이 말하였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24 그들은 바리사이들이 보낸 사람들이었다.
25 이들이 요한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
26 그러자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27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28 이는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에페 4,1-7.11-13)와 복음(마태 23,8-12)을 봉독할 수 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요한 1,23)라고 말합니다. 저는 ‘광야’라는 낱말을 보면 피하고 싶은 마음이 앞섭니다. 광야에 서면 나 자신의 모든 것이 그대로 다 드러나고, 나 자신과 치열한 싸움을 마주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삶의 어떤 조건도 갖추어져 있지 않은 그곳은, 내가 얼마나 위선적이고 욕심에 가득 차 있는지를 깨닫게 할 것 같아, 할 수 있는 한 광야보다는 세상이라는 현실에 안주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제 마음입니다.
견딜 수 없는 고독과 외로움을 느끼게 하는 광야는 예수님께서 유혹을 받으셨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 광야에서 세례자 요한은 메시아의 오심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1,27)라고 고백하며, 주님 앞에서 겸손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우리는 광야에 당당히 설 수 있어야 합니다. 많은 은수자가 광야에서 주님을 찾았듯이, 우리도 광야에 서서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또한 주님 앞에서 겸손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 속에서, 우리는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듯 자연스럽게 겸손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 모두 ‘광야에 선 사람’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도 세례자 요한처럼 겸손한 자세로 주님의 앞길을 준비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이철구 요셉 신부)
매질 당해도 저는 괜찮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여명기 우리 가톨릭 교회는 참으로 험난하게 굴곡진 여정을 걸어왔습니다. 4세기에 이르러 그토록 잔혹하고도 오랜 박해 시대가 끝나게 되는데, 이제야 좀 편안해지는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박해가 잠잠해지자 이번에는 이런저런 이단들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나 겨우 안정된 교회를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은혜롭게도 인간 역사 속 깊이 현존하시는 주님께서는 위기 중의 교회를 위해 그때 그때 적절한 선물을 보내셨는데, 그들이 바로 교회의 중심을 잡아줄 위대한 교부들이요 성인들이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성 대 바실리오 주교와 나지안조의 성 그리고리오 주교 학자입니다.
바실리오 성인은(330~379) 신앙이나 인성, 덕행이나 추진력이 얼마나 탁월했던지 그냥 바실리오 성인이라고 하지 않고 대 바실리오라고 칭합니다. 그의 가문은 성덕의 온상이요 학교였습니다. 그의 부모는 두분다 성인이었습니다. 조부는 순교자, 조모 역시 성인이었습니다. 누님 마크리나도 성녀, 동생 그레고리오도 성인이었습니다.
그래서 한 성인의 탄생이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이탈리아 북쪽에 위치한 도시 토리노 같은 경우도 특별합니다. 돈보스코를 중심으로 수많은 성인성녀들이 탄생합니다. 그의 영적 지도자 요셉 카파소 신부, 그의 이웃 요셉 코톨렌고도 성인, 그의 애제자 도미니코 사비오도 성인, 그와 교육 이념을 같이한 마리아 마자렐로도 성녀, 그의 영성에 매료되어 중국까지 선교를 왔던 베르실리아 주교, 까라바리오 신부도 성인... 이렇게 한 명의 성인은 또 다른 성인의 탄생을 견인하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우리 한국 교회에서 순교 성인 외 증거자 성인의 탄생이 그토록 절실한 것입니다.
탄탄한 가문,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청년 바실리오는 콘스탄티노플, 아테네 등지에서 깊이 있는 공부를 거듭한 끝에 당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높은 경지에 도달합니다. 당시 대세 학문이었던 수사학 교수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그의 강의실은 언제나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바실리오의 마음은 광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깊은 사막 안으로 들어가 하루 온종일 하느님의 뜻만을 추구하는 수도자로서의 삶을 선택했습니다. 홀로 수도 생활을 하고 있던 은수자들을 모아 수도회를 건립했습니다. 그렇게 모인 형제들을 위한 영적 안내서를 집필했습니다. 수도원 부속 학교를 세워 교육을 시작했고 병원을 만들어 환자들을 돌봤습니다.
그 무렵 바렌스 황제가 아리우스파 이단으로 기울어져 가톨릭교회를 공공연하게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소식에 크게 분노한 바실리오는 수도원을 잠시 나와 체사레아로 갔습니다. 강력하고 설득력있는 어조로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옹호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기근으로 힘겨워하는 시민들의 구제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당시 시민들은 그를 친 아버지처럼, 참된 목자처럼 존경했습니다. 370년 대주교가 세상을 떠나자 사람들은 한 목소리로 바실리오를 후계자로 천거했습니다.
이에 크게 분노한 바렌스 황제는 어떻게든 바실리오를 아리우스파로 끌어들이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습니다. 그러자 협박을 합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재산의 몰수나 매질, 귀양이나 사형, 그중에 하나는 면하기 힘들 것이다.”라고 하며 몰아붙였습니다.
그러나 바실리오 대주교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추호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저는 수도자이므로 몰수당할 재산도 없습니다. 고행 역시 몸에 밴 것이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 매질 당해도 저는 괜찮습니다. 진정한 고향은 천국뿐이므로 저를 어디로 귀양 보낸다 할지라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 사형에 처한다면 즉각 천국에 갈 수 있으므로, 저는 그것을 간절히 원하는 바입니다.”
바실리오 대주교의 의연하고 당당한 태도 앞에 황제도 감탄을 하며 그의 적극적인 후원자요 지지가 됩니다. 벌을 주기보다 그가 관심을 보인 자선 사업에 힘을 실어줍니다. 체사레아 부근의 별장지를 내어주는데, 바실리오 대주교는 그 장소에 병원과 보육원, 양로원을 세워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요람으로 변화시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오늘 우리는 교회의 큰 두 기둥인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를 기념합니다. 혼란스러웠던 시대 속에서 두 성인은 서로의 우정을 바탕으로 교회를 지키고, 삼위일체 신앙을 변함없이 선포하였습니다. 그들의 삶은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집니다. “신앙인은 무엇을 따라가야 하는가?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코린토 1서에 대한 해설을 읽었습니다. 코린토 공동체는 여러 질문 속에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혼인과 독신에 관한 문제, 우상에게 바친 고기, 전례와 성찬례의 질서, 영적 은사의 사용, 그리고 몸의 부활 문제에 대해 분명한 식별의 기준을 제시합니다. 혼인을 하든 독신을 살든, 중요한 것은 사라질 세상에 마음을 두지 않고 주님을 섬기는 일임을 선언했습니다. 우상에게 바친 고기는 먹을 수 있지만, 믿음이 약한 형제를 넘어지게 하지 않기 위해 그가 보는 앞에서는 먹지 말라고 합니다. 자유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이며, 지식보다 앞서는 것은 형제에 대한 배려임을 가르칩니다. 또한 바오로 사도는 성찬례가 세속의 만찬과 결코 섞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성찬은 주님의 희생을 기억하는 신비이며, 남녀평등의 원리는 강조하되 무분별한 무질서를 경계합니다. 영적 은사는 개인의 명예나 자랑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주어진 은총임을 설명하며, 그 모든 은사 위에 ‘사랑’이라는 최상의 은총을 구하라고 권고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몸의 부활을 분명히 확인합니다. 썩을 몸이 불멸의 몸으로 변화할 것이며, 그 변화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이미 시작되었다고 가르칩니다.
얼마 전 AI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질문을 받았습니다. “교회는 이 시대에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신앙인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보다 부모의 행동을 보고 배웁니다. AI는 인간의 지식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가질 수 있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인간에게서 배웁니다. 그리고 그 기준은 예수님의 황금률입니다.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농업혁명 시대에도, 산업혁명 시대에도, AI 혁명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계명입니다.” 결국 시대가 변해도 신앙인의 기준은 사랑이며, 사랑은 행동으로 증명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누구요?” 세례자 요한이 너무 궁금했습니다. 요한의 가르침은 충격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율법과 전통을 지키려는 사람에게 새로운 질서를 이야기했습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권력을 이야기했습니다. 가난하고 병든 사람에게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했습니다. 변화를 꿈꾸는 사람에게 혁명을 이야기했습니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에게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새로운 질서를 보았습니다. 하느님의 다스림을 보았습니다. 신세계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입니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 있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겸손함을 보여 주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알았습니다. 우리 신앙인이 가야 할 길을 보여 주었습니다.
신앙인에게 필요한 것은 ‘식별’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과, 악의 세력을 따르는 것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계명을 지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알려 주신 길을 충실히 걸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안개가 자욱한 길을 운전하기가 쉽지 않은 것처럼 우리들의 삶에도 식별하기 어려운 안개가 끼게 됩니다. 좋은 것과 가치 있는 것이 함께 할 때는 식별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좋아하지는 않지만, 가치 있는 것 중에서 가치 있는 것을 식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좋아하지 않는 것이 우리를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좋아하지만 가치가 없는 것을 식별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훈련되지 않은 사람들은 비록 가치가 없다고 하더라도 지금 당장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좋지도 않고, 가치도 없는 것은 식별하기가 쉽습니다. 당연히 선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올바른 식별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는 기도 습관이 필요합니다. 둘째는 오늘 복음에서 본 것처럼 ‘주님의 길을 곧게 내며,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 없는 활동은 공허하고, 활동 없는 기도는 관념에 빠지기 쉽다고 합니다. 2026년에는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면 기꺼이 따라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아니기에>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요한은 서슴지 않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하고 고백한 것이다.”(요한 1,20)
나는 빛이 아니기에
빛을 머금어야 하고
빛을 머금을 수 있으니
오롯이 빛을 머금을 따름입니다
나는 길이 아니기에
길을 따라나서야 하고
길을 따라나설 수 있으니
기꺼이 길을 따라나설 따름입니다
나는 믿음이 아니기에
믿음을 보듬어야 하고
믿음을 보듬을 수 있으니
마음껏 믿음을 보듬을 따름입니다
나는 희망이 아니기에
희망으로 물들어야 하고
희망으로 물들일 수 있으니
깨끗이 희망으로 물들일 따름입니다
나는 사랑이 아니기에
사랑에 사로잡혀야 하고
사랑에 사로잡힐 수 있으니
송두리째 사랑에 사로잡힐 따름입니다
오늘의 성인
성 그레고리오(Gregory)
신분 : 주교, 교회학자, 교부
활동지역 : 나지안주스(Nazianzus)
활동연도 : 329/330-389/390년
같은이름 : 그레고리, 그레고리우스
나지안주스의 주교로 45년간 봉직했던 성 그레고리우스(1월 1일)와 성녀 논나(Nonna, 8월 5일)의 아들로 태어난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또는 그레고리오)는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나지안주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카파도키아의 카이사레아(Caesarea)에서 공부하던 중에 성 대 바실리우스(Basilius)를 만났고, 그 후 팔레스티나(Palestina)의 카이사레아 수사학교를 다녔으며, 아테네(Athenae)에서도 10여 년을 성 바실리우스(Basilius)와 미래의 황제 율리아누스 배교자와 함께 공부하였다.
30세 때에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즉시 바실리우스와 함께 이리스 강변에서 은수생활을 하다가 2년 후부터 부친을 돕던 중, 362년에 사제로 서품되고, 372년경에는 사시마의 주교로 임명받았다.
이 교구는 아리우스(Arius) 지역이었으므로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주교로 축성은 되었으나 부임하지는 못하였다. 발렌스 황제가 죽고 정통교회에 대한 박해가 수그러들게 될 때, 일단의 주교들이 그를 콘스탄티노플로 초청하여 아리우스파(Arianism) 지역에서 정통교회의 활성화를 도모하게 하였다.
이리하여 그는 아나스타시아(Anastasia) 교회에서 설교를 시작하여 수많은 개종자를 얻었다. 이때 그는 아리우스파인 막시무스(Maximus)와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고, 388년에는 새로 입교한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그의 가르침을 정통교리로 인정하고 아리우스파 지도자를 축출하는 칙서를 발표케 하였다.
이리하여 그는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가 되었다. 그의 임명은 굉장한 파문을 일으켜 381년에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공의회까지 열려 문제가 심상치 않게 발전하므로, 그는 교회 내의 평화를 위하여 주교직을 사임하였다. 그는 엄격한 은수생활을 하다가 고향 땅에서 운명하였다. 그는 정통교회의 수호에 큰 공적을 남겼고, 또 니케아(Nicaea) 공의회의 선언문에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동방교회에 의해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성 바실리오(대)(Basil the Great)
성 대 바실리우스(Basilius, 또는 바실리오)는 부유하고 이름 있는 그리스도교 집안 출신으로, 교회의 역사상 가장 뛰어난 가문 중의 하나이다.
그의 할머니는 마크리나(Macrina, 1월 14일), 그의 부친은 바실리우스(5월 30일), 그의 모친은 엠멜리아(Emmelia, 5월 30일), 그의 큰 누이는 마크리나(7월 19일), 그리고 두 동생은 니사(Nyssa)의 그레고리우스(Gregorius, 3월 9일)와 세바스테(Sebaste)의 베드로(Petrus, 1월 9일)인데, 모두가 성인품에 오른 분들이다.
그는 카이사레아(Caesarea), 콘스탄티노플 그리고 아테네의 학교에서 교육받았으며, 이곳에서 나지안주스(Nazianzus)의 그레고리우스와 깊은 우정을 맺었다.
357년경에 그는 동방의 주요 수도원들을 방문하였으며, 358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준 다음 네오카이사레아(Neocaesarea)의 이리스(Iris) 강변의 안네시에서 은수자로 정착하였다.
바실리우스는 불과 5년 동안을 그의 공동체와 생활했을 뿐인데도 동방 수도생활의 아버지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는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와는 달리 법 제정자는 아니었지만 그의 영향은 정교회 수도생활에 깊은 흔적을 남겼고, 주요한 원리로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사제로 서품된 후 성 바실리우스는 365년부터 카이사레아(Caesarea) 교구를 위하여 일했고, 370년에는 그곳의 주교로 선임되었다.
그는 또 아리우스파(Arianism) 황제인 발렌스(Valens)가 정통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할 때 용감히 맞서 싸웠다.
이 때문에 그는 지방 총독 앞에 끌려가서 자신을 변명하여야 했다.
바실리우스의 태도가 너무나 당당하였기 때문에 총독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고 한다.
“아마도 당신 같은 주교는 일찍이 본적이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런 대화를 보더라도 그의 성품을 짐작할 수 있으며, 그의 강직성 때문에 교황 성 다마수스(Damasus)와 서방 교회간의 관계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그는 병자와 가난한 사람을 구하는데 매우 적극적이었고, 요양원을 짓거나 혹은 대대적으로 진료사업을 펼쳤으며 설교가로도 명성을 얻었다.
그는 아리우스파(Arianism)와의 투쟁을 계속하면서 동방 정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발렌스 황제가 전투에서 사망한 지 불과 한 달 만인 1월 1일 카이사레아에서 사망하였다.
바실리우스는 초대 교회의 큰 거인이었다.
비잔틴 제국에서 아리우스파를 몰아낸 것이나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Council of Constantinople)에서 아리우스파를 단죄한 배경에는 바실리우스의 영향력이 대단히 컸음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그가 네오카이사레아에서 제정한 규칙과 조직이 동방 수도생활의 기초가 되었고, 현재까지도 그 전통이 이어져 온다.
또한 바실리우스는 성직매매를 완강히 거절하였으며, 가뭄과 한발의 희생자를 대대적으로 원조하였으며, 보다 훌륭한 성직자 양성을 도모하였고, 엄격한 성직자 법규를 주장하고, 과감하게 악습을 끊어버리면서, 카파도키아(Cappadocia)에서 만연된 매춘행위 관계자들을 파문하였다.
그는 유식하고 정치력도 있는 사람이면서 성덕이 뛰어났으며, 그리스도교회의 가장 위대한 설교가 중의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그의 해박한 저서들과 4백여 통의 편지들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성령에 관한 저서와 에우노미우스를 반박하는 세 권의 저서 그리고 그레고리우스 나지안주스와 함께 편집한 “필로칼리아”가 그 중에서도 유명하다.
그는 교회학자이며 동방 수도자의 아버지로 큰 공경을 받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