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라면 무슨 일이든 하는 나라
/ 황창연 신부
우리 역사상 최초의 나라인 고조선을 세운 단군의 건국이념은 ‘홍익인간’입니다. 다들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말합니다. 단군할아버지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해 세운 나라인데,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이 진정으로 존중받고 대접받으며 살고 있을까요?
1970년대 새마을운동 시절, 전국에 울려 퍼졌던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라는 노랫말을 기억하시나요? 그렇습니다. 잘살아보자는 말로 상징되는 ‘돈’이 어느 사이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건국이념처럼 되었습니다. 잘살아보자는 각오가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세계에서 손꼽히게 발전된 나라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돈이라면 무슨 일이든 하는 대한민국이 된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마음이 아픕니다.
그 시절로부터 50년이 가깝게 흘러 이제는 새마을 노래 가사처럼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혀서’ 어느 정도 먹고살 만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더 잘살고 싶은 욕망 앞에 기꺼이 무릎 꿇는 물신주의가 온 세상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뉴스를 보면 ‘돈! 돈! 돈!’, 정치인도 ‘돈! 돈! 돈!’, 심지어 대통령까지도 ‘돈! 돈! 돈!’ 합니다.
한국에 머물렀던 영국인 저널리스트 다니엘 튜더의 책 《Korea : The Impossible Country》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뤄낸 엄청난 경제적 기적 뒤에 가려진 믿기 힘든 온갖 부작용과 희생을 빗댄 제목인데, 번역 출간하면서 출판사가 붙인 제목은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입니다.
저는 이 제목을 보며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기막힌 표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경제적인 기적을 이루어 풍요롭게 살게 됐지만, 삶의 기쁨을 잃어버리는 큰 희생을 치른 우리에게 딱 맞는 제목입니다. 우리는 돈을 얻은 대가로 인간이 누려야 할 진짜 행복을 많이 놓쳤기 때문입니다.
대기업을 일군 집안에서 돈 때문에 부모 자식이 등을 돌리고 형제끼리 소송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적을 이룬 대신 기쁨을 잃은 가정입니다. 돈은 많지만 사는 보람이나 기쁨이라곤 전혀 없는 인생을 아무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 영국 저널리스트의 눈에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온통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시름시름 앓고 있는 것처럼 보였나 봅니다.
요즘 우리 사회를 지옥에 비유해서 ‘헬(hell)조선’이라고 꼬집는 말이 유행합니다. 누구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는데, 누구는 ‘흙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도 합니다. 공정하지 못한 사회에 대한 젊은이들의 외침이라는 것도 알고, 바뀌어야 하는 것도 잘 알지만 1950년대 전쟁을 겪은 세대와 비교하면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그나마 여건이 아주 좋습니다. 그럼에도 인생의 목표를 오로지 돈 버는 일에만 두는 사람이 아직도 너무 많은 현실이 슬프기만 합니다.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따로 있습니다. 장애인을 위한 복지, 후손에게 물려줘야 하는 건강한 생태계, 사회적 약자의 인권 보호, 보존해야 하는 문화유산, 존중받아야 하는 삶의 질에 가치를 두어야 합니다.
» 전남 진도군 팽목항. 한겨레 자료 사진.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했습니다. 왜 침몰했나요? 많은 이유가 있지만, 저는 돈이 가장 큰 이유였다고 생각합니다. 6,000톤급 이상 대형 선박은 배 밑에 평형수를 담아야 합니다. 그래야 아무리 파도가 험난하게 출렁여도 균형을 잡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7,000톤에 육박하는 세월호는 필요한 평형수를 4분의 1밖에 담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머지 4분의 3에는 물 대신 짐을 실었습니다. 승객의 안전을 외면하고 돈을 챙긴 셈입니다. 그 결과 304명의 목숨이 바다에 버려졌습니다. 그중엔 아직 피지도 못한 소중한 꽃 같은 고등학교 2학년 250명의 학생도 함께 가라앉아 온 국민을 더욱 애통하게 했습니다.
중동호흡기증후군이라 불리는 메르스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은 메르스 환자 두 명이 발생했을 때, 병원이 곧바로 이 사실을 정부에 알렸습니다. 정부 역시 국민들에게 신속하고 자세하게 알려주었습니다. 두 명의 환자 때문에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 곳곳으로 병이 삽시간에 퍼질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모든 위험성을 알면서도 열흘 동안이나 감췄습니다. 메르스 확산 진원지 중에는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는 대기업 소유의 병원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국민의 안전을 위해 병원을 서둘러 폐쇄하기보다 자기들끼리 쉬쉬하면서 돈을 먼저 택했습니다. 그리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는지, 우리는 그때의 아픔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돈이라면 국민의 안전도, 생명도, 나라를 지키는 국방도 엉터리로 처리하는 대한민국입니다. 아직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학생 250명을 팽목항 앞바다에 내던져 죽게 한 사건은 세월호 선주와 선장의 책임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모두의 책임입니다.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만 반세기 동안 외쳐온 우리 모두가 책임져야 합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처럼 불행한 사고를 두 번 다시 겪지 않기 위해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반성하고 용서받고 변화해야 되는데, 몇 년이 지나도록 우리 사회가 변할 것 같은 조짐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