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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 하느님의 어린양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권위있는 믿음
35 그날 저녁이 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36 그래서 그들이 군중을 남겨 둔 채,
배에 타고 계신 예수님을 그대로 모시고 갔는데,
다른 배들도 그분을 뒤따랐다.
37 그때에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38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39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
40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41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서로 말하였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마르코 4,35-41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요한 보스코 성인은 1815년 이탈리아 토리노의 카스텔 누오보 근처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양을 치며 가난하게 살았지만, 어머니에게 엄격한 신앙 교육을 받으며 자라 사제가 되었다. 특히 청소년을 사랑하였던 그는 젊은이들의 교육에 심혈을 기울여 오다가, 가난한 젊은이들에게 기술을 가르치고 그리스도교 생활을 익히게 하고자 1859년 살레시오회를 세우고, 1872년에는 살레시오 수녀회도 세웠다. ‘고아들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큼 19세기의 탁월한 교육자로 꼽히는 그는 1888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1934년에 시성되었다. (오늘의 전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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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제1독서에 나오는 다윗 임금은 우리에게 인간이 겪는 비참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욕망과 오만이 낳은 죄가 위대하고 고결했던 인물을 죄인의 자리라는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이 증언하는 다윗의 삶은 마치 고대 그리스 비극을 비롯한 인류의 위대한 문학 작품들이 거듭 증언하고 있는 ‘인간 조건’의 생생한 예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조건이나 제약성을 말할 때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인간이 필멸의 존재라는 점, 인간의 삶이 우연성에 자주 좌우된다는 점, 인간이 세상사와의 관계 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 등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이야기를 통해, 어쩌면 우리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인간의 불완전성은 바로 죄를 짓는다는 사실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평생 쌓아 온 덕망, 겨우 누리게 된 행복을 다른 사람의 탓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일시에 잃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전율하게 합니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이 자신의 삶을 망치는 원수였다는 것을 깨닫는 진실의 순간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더구나 성경은,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들과는 달리 다윗은 자신의 죄에 대한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사실을 준엄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인간의 죄가 불러일으킨 비참함의 심연에서 인간의 가장 큰 위대함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다윗을 통해 알게 됩니다. 다윗은 끝없이 낮아져서 찢어지는 심정으로 자신의 죄를 고백합니다.
다윗의 무거운 죄가 그를 절망과 죽음으로 이끌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지도, 또 영웅적 오만으로 혼자서 죄의 결과를 짊어지려고도 하지 않는 가운데 오직 자신이 보잘것없는 죄인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으로 여기에서 인간의 가장 큰 위대함이 시작됩니다.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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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 신부님 글 드립니다~~~
「행복의 크기」
언젠가 혼자서 등산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가까운 산이라 가벼운 복장으로 훌쩍 떠난 등산이었지요. 그런데 산 중턱 쯤에 이르렀을 때 한 중년 부부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 부부는 나무 그늘에 앉아서 사과를 깎아서 드시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사과를 깎아 아내의 입에 직접 넣어 주면서 “여보, 사과 먹어.”하는데 너무나 보기 좋은 것입니다.
중년 부부이기에 젊었을 때의 활기와 아름다움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때의 그 모습은 제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할 정도로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산에 오르면서 계속해서 그 모습이 떠올려졌으니까요.
그 런데 문득 ‘저 부부는 사과를 깎아 먹는 그 모습을 누군가가 보고 아름답다고 감탄하고 있다는 것을 알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모르겠지요. 어쩌면 우리의 삶 전체가 이와 비슷할 것입니다. 나의 별 것도 아닌 행동 하나를 누군가는 부러워하고 감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다른 이들의 부러움을 받는 것들이 하나둘이 아닌데, 우리들은 그 행복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똑같은 사랑을 주시는 주님은 절대로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문제는 그 사랑을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행복의 크기가 다른 것뿐입니다.
***<아무것도 갖지 않은 상태는 마음먹기에 따라 부자가 될 수도 가난한 자도 될 수도 있다. 만족만 한다면 텅 빈 상자에서 우주를 꺼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장은진).>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마르코 4,35-41)
イエスは起き上がって、
風を叱り、湖に、「黙れ。
静まれ」と言われた。
すると、風はやみ、すっかり凪になった。
イエスは言われた。
「なぜ怖がるのか。まだ信じないのか。」
(マルコ4・35-41)
He rebuked the wind and ordered the sea,
"Quiet now! Be still!" The wind dropped
and there was a great calm.
Then Jesus said to them,
"Why are you so frightened?
Do you still have no faith?"
(Mark 4:35-41)
聖ヨハネ・ボスコ司祭記念日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チャムザムヘジョラ。 チョヨンヒ ハヨラ!"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イエスニムケソヌン クドレゲ、 "ウェ コブル ネヌニャ?'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アジット ミドミ オッヌニャ?"ハゴ マルスムハショッタ。
(마르코 4,35-41)
イエスは起き上がって、
이에스와 오키아갓테
風を叱り、湖に、
카제오 시카리 미즈우미니
「黙れ。静まれ」と言われた。
다마레 시즈마레 토 이와레타
すると、風はやみ、すっかり凪になった。
스루토 카제와 야미 슷카리 나기니 낫타
イエスは言われた。
이에스와 이와레타
「なぜ怖がるのか。まだ信じないのか。」
나제 코와가루노카 마다 신지나이노카
(マルコ4・35-41)
He rebuked the wind and ordered the sea,
"Quiet now! Be still!" The wind dropped
and there was a great calm.
Then Jesus said to them,
"Why are you so frightened?
Do you still have no faith?"
(Mark 4:35-41)
Memorial of Saint John Bosco, Priest
Mark 4:35-41
On that day, as evening drew on, Jesus said to his disciples:
“Let us cross to the other side.”
Leaving the crowd, they took Jesus with them in the boat just as he was.
And other boats were with him.
A violent squall came up and waves were breaking over the boat,
so that it was already filling up.
Jesus was in the stern, asleep on a cushion.
They woke him and said to him,
“Teacher, do you not care that we are perishing?”
He woke up,
rebuked the wind,
and said to the sea, “Quiet! Be still!”
The wind ceased and there was great calm.
Then he asked them, “Why are you terrified?
Do you not yet have faith?”
They were filled with great awe and said to one another,
“Who then is this whom even wind and sea obey?”
2026-01-31「いったい、この方はどなたなのだろう。風や湖さえも従うではないか」
+聖ヨハネ・ボスコ司祭の記念日に、神に賛美をささげよう。
おはようございます。
今日は聖ヨハネ・ボスコ司祭の記念日です。
救い主・イエス・キリストと神の母の聖マリア、聖母の配偶者聖ヨゼフ、聖ヨハネ・ボスコ諸聖人の大いなる祝福がありますように!
また、大天使とすべての天使、私たちの守護の天使が今日も皆さまを見守り平和でありますようお祈りします。
**********聖ヨハネ・ボスコ司祭は、1815年、イタリア・トリノ近郊のカステルヌオーヴォにおいて、農夫の子として生まれました。
幼くして父を亡くし、羊の世話をしながら貧しい生活を送りましたが、母親から厳格な信仰教育を受けて育ち、やがて司祭となりました。
特に青少年を深く愛していた聖人は、若者の教育に心血を注ぎ、貧しい青年たちに技術を教え、キリスト教的生活を身につけさせるため、1859年にサレジオ会を創立しました。さらに1872年には、サレジオ修道女会も設立しました。
「孤児たちの父」と呼ばれるほど、19世紀を代表する卓越した教育者であった聖ヨハネ・ボスコは、1888年に帰天し、1934年に列聖されました。
(今日の典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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マルコによる福音
<「いったい、この方はどなたなのだろう。風や湖さえも従うではないか」>
4・35その日の夕方になって、イエスは、「向こう岸に渡ろう」と弟子たちに言われた。36そこで、弟子たちは群衆を後に残し、イエスを舟に乗せたまま漕ぎ出した。ほかの舟も一緒であった。37激しい突風が起こり、舟は波をかぶって、水浸しになるほどであった。38しかし、イエスは艫の方で枕をして眠っておられた。弟子たちはイエスを起こして、「先生、わたしたちがおぼれてもかまわないのですか」と言った。39イエスは起き上がって、風を叱り、湖に、「黙れ。静まれ」と言われた。すると、風はやみ、すっかり凪になった。40イエスは言われた。「なぜ怖がるのか。まだ信じないのか。」41弟子たちは非常に恐れて、「いったい、この方はどなたなのだろう。風や湖さえも従うではないか」と互いに言った。(マルコ4・3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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毎日のミサ・「今日の黙想」です。
今日の第一朗読に登場するダビデ王は、私たちに人間が経験する惨めな姿をはっきりと示しています。欲望と傲慢から生まれた罪が、かつて偉大で高潔であった人物を、一瞬にして罪人の座へと突き落としてしまいます。旧約聖書が証しするダビデの生涯は、まるで古代ギリシア悲劇をはじめ、人類の偉大な文学作品が繰り返し描いてきた「人間の条件」を生々しく体現しているかのようにも見えます。
人間の条件、あるいは人間の制約性と言えば、まず思い浮かぶのは、人間が必ず死を迎える存在であること、人生がしばしば偶然に左右されること、そして人がこの世の出来事との関係の中で決して完全に自由ではいられないという点でしょう。
しかしダビデの物語を通して、私たちを最も苦しめる人間の不完全さとは、実は「罪を犯してしまう存在である」という事実なのではないか、という思いに至ります。生涯をかけて積み上げてきた徳や、ようやく手にした幸福が、他人のせいではなく、まさに自分自身の過ちによって、一挙に失われ得るという現実は、私たちを戦慄させます。
では、自分自身が自分の人生を破壊する敵であったと気づく、その真実の瞬間を、いったい何人の人が受け入れる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か。しかも聖書は、ギリシア悲劇の主人公たちとは異なり、ダビデには自らの罪について弁解の余地が一切ないことを、厳しく宣言しています。
しかし同時に、私たちは、人間の罪が生み出した悲惨さの深淵においてこそ、人間の最も大きな偉大さが始まることを、ダビデを通して知るのです。ダビデは、徹底的にへりくだり、心が引き裂かれるような思いで、自らの罪を告白します。
ダビデの重い罪が彼を絶望と死へと追いやらなかったのは、罪の責任を回避することもなく、また英雄的な傲慢さから、自分一人でその結果を背負い込もうともしなかったからです。彼はただ、自分が取るに足りない罪人であることを悟りました。
逆説的に、まさにここから、人間の最も大きな偉大さが始まるの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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毎日の聖書を読み、主をより信じ、罪を告白し、いつも自由で、平和で、幸せに過ごすことができますように。聖霊、来てください。
